제목: 익숙하면서 낯선 자신, 그리고 지금 여기.
나는 무엇이며 누구이자 왜 여기 있는 것일까? 살면서 제대로 된 생각을 해본적일 있을까? 나 자신이 어느날 낯설게 느껴지고 내가 나를 모르겠는 때가 한번 씩, 아님 한 번 이상 느낄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질문을 던진다. 너는 누구냐. 왜 내 몸 안에 있는 것이냐. 왜 어쩌다가 여기 이 공간에 있느냐 하고 말이다. 질문 그대로 생각해보면 나 자신이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자신에게는 이름이 있으며 외모와 성격, 특징이 있는데 그것들이 나 자체가 되지는 않는다. 그냥 내 자체의 특징이자 요소일뿐이다. 실제로 겪은 내 사례를 통해 나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말해주려고 한다. 어느날 나는 자다가 일어나 평소대로 멍을 때리고 있었다. 하지만 쌔한 느낌이 들면서 내가 낯선 몸에 들어와있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내면은 난데 외면은 내가 아닌 것만 같았다. 영화 속에서만 나올 법한 육체이탈 느낌이였다. 분명 외면은 난데 내가 아닌 느낌이였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낯선 느낌이라 나에게 질문을 계속 던졌다. 너는 누구냐. 근데 여기서 다시 생각해보니 그 질문은 나 자신에게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나 자신을 설명하라고 하면 이름이 나오고 특징, 좋아하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앞에서 말했듯이 나 자신 그 자체를 꾸며주는 특징이자 각각의 요소였던 것이였고 나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누구지라는 생각이 든것이였다. 나 처럼 똑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정작 이러한 경험을 겪고 난 뒤에 나를 더 알아가고 싶은 사람이 소수 있는 반면에 대다수는 그냥 나를 모르고 지나쳐간다. 나 자신을 제대로 생각해볼 기회인데도 말이다. 이 경험을 한 뒤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내 정체성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나도 들었고 점점 나에 대해 알아가려고 특징들과 요소들을 점점 알아내기 시작했다. 먼저 내 가치관을 알아내기 시작했다. 나에게 무엇이 중요하고 안중요한지를. 또한 나 자신을 성찰하면서 깊히 반성하기도 하였다. 또한 삶의 목적과 이유를 생각해내다 결국 나 자신을 알아가는 건 너무나도 어렵구나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들 나 자신을 알아가는 중이다라는 말이 공감이 되기 시작했다. 생각에 생각을 타고 넘어가다가 내가 왜 여기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하였다. 우리는 왜 여기있는 것일까. 이 공간이 낯설게 느껴질 때도 많다. 한번씩은 다른세계가 있다는 상상은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상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데아를 본 떠 만든 것이라고 플라톤이 말했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아는 세상은 본 떠 만들어진 세상이고 이 어딘가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봐야 믿는다. 그것이 인간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안보이는 것은 믿지 않는다. 마치 신의 존재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모른다. 신의 유무를. 이처럼 우리가 사는 공간도 안보이는 그 미지의 공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단지 인간 특성상 봐야 믿는 것이지 우리는 보지 못했기 때문에 자각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두 가지 말하고 싶은것이 있다. 바로 나 자신을 만나보라고 하고 싶다. 물론 쉽게 알지못하고 아직도 잘 모른다. 그치만 나 자신을 모르고 사는 것은 이 세상을 진정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다는 것과 같다. 나 자신을 모르기에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둘째, 세상을 바라볼 때에 꼭 이성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나약한 존재이다. 이 큰 세상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기에 봐야 믿는것이 아닌 생각을 하며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분명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첫댓글 자신을 객관화 하는 방식으로 낯설게 보는 것은 괜찮겠지만, 너무 여기에 몰입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대개 자신을 향해 질문을 던지지 않는 사람은 질문을 던지라는 말에 반응을 보이지 않고, 그런 말이 없어도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질문을 자주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제안을 토대로 할 때, 우선 나 자신을 만나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나 자신을 모르기에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것"이라는 말에서도 확인되듯이, 나 자신을 비춰볼 대상을 찾아 깊이 탐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주자는 이것을 격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인간 내면에 천착하다보면, 자기 기만, 자괴감에 빠져들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마주하는 사람, 사물, 역사적 사건 등에 자신을 비춰보는 방식을 사용할 수 있겠지요. 다음으로는 "세상을 바라볼 때에 꼭 이성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실은 이성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이성적 방법을 추구하되, 그것에 너무 얽매이지는 않는 여유를 주는 것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