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낯설음이 시작되는 곳
나만의 낯설음을 발견하는 방법은 끊임없이 모든 것에 궁금증을 제기하는 것이다. 나는 살면서 내 삶 주위에 있는 수많은 것들에게 질문을 던졌고, 그 존재들에게 듣지 못한 대답들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한다.
모든 사진은 낯설음이 시작되는 내 주변에 것들을 직접 촬영하였다.
< 초록의 어떤 것들에 대하여 >
이 나무는 여기서 몇 번의 계절을 지나 왔을까? 모두가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흘러간 시간이 문득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관심을 주기 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무관심 속에 묵묵히 서있었나. 아니면 어제 혹은 오늘 내가 오기 전에도 누군가는 이 나무를 들여다 본 적이 있을까.
세상에 수많은 풀들이 있지만 이 세상에 같은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여기 있는 이 풀들은 인간들이 미처 보지 못한 세계를 높고 낮은 곳에서 지키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누구와 대화 하고 있을까 개미일까 나비일까 아니면 또 다른 어떤 것일까.
< 이전에는 없었던, 만들어진 것들에 대하여 >
이 악기가 무수히 많은 재료가 없었다면 이 소리를, 이 형태를 낼 수 있을까? 나무, 쇠, 플라스틱, 등등 수많은 재료와 마지막으로 연주해 줄 사람까지 뭐 하나라도 거치지 않는다면 세상에 나올 수도, 가치를 평가할 일 조차 없지 않은가? 이렇게 많은 것들이 더해져 하나의 새로운 요소가 되기도 한다.
마치 누구와 어울리고 누가 스쳐 가냐에 따라 차오르고 덜어내는 사람처럼.
문득 좋아하는 책들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종이와 몇 만자의 글이 잉크와 합쳐진 것 뿐인데 어떻게 이것은 사람을 성장시키고, 슬프게 만들기도 하며 때로는 반성까지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인가.
이것이 무엇보다도 고귀한 것이 아닐까? 한 권 한 권 차곡차곡 쌓여 뇌 속에 저장되는 것이라면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가볍지 않을까? 아무리 평생을 지니고 있어도 그 지식의 무게와는 비례하여 무거움을 의식하지 못할 테니까.
< 물성이 없는 어떠한 것들에 대하여 >
음악은 물성이 없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 몇분을 통해 나를 전세계 어디로든 데려가준다.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매일 듣던 노래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고 또는 그 힘이 너무 강렬해 더 이상 듣지 못하는 노래가 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사진에 있는 노래를 들을 때, 눈을 감았다 뜨면 일본의 여름이 펼쳐질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마치 바로 내 앞에서 뜨겁고 눅눅한 바람이 불어와 금방이라도 내 땀방울과 나를 삼켜버릴 것처럼.
그럼 음악으로 그리움을 달래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그대들은 음악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그리운 시절로 돌아가는 수단으로 사용하는가?
우리는 왜 살아간다고 하는가? 어차피 현재란 없고 과거와 미래만 있는 것이 아닐까? 1초전도 과거이고 1초뒤도 미래인데 현재의 경계선은 어디란 말인가? 우리는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는데 어째서 살아야 한다고 하는 것일까.
하루 하루 행복의 연장선인 사람들은 죽어가는 매일이지만 즐겁게 죽어가고 있는 중인걸까? 아니면 신체는 죽어 가지만 정신은 죽기전까지 매일 발전하고 살아간다고 볼 수 있을까?
잊는다는 건 어떤것일까 그럼 그와 반대로 그리움은 또 어떤 것일까. 그리운 것을 어디에서도 만질수도 볼 수도 없다면 그건 흐르는 시간에 서서히 잊혀지고 있다고 해야만 할까? 우리는 무언가를 잊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
세월이 흐를수록 바래져 가는 생생함을 무엇으로 붙잡아 두어야 하는가? 마음 한 구석에 먼지가 쌓여도 매번 우리는 그리움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을까?
첫댓글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졌군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는 쉽지 않고, 지금 찾아냈다고 해서 그게 정답일 수도 없겠지만,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많은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나무와 악기, 음악, 시간과 망각 등은 평소 우리의 관심사에서 비껴 나 있습니다. 문득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이내 "이게 무슨 생각이야" 라면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런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고, 의미가 있으며, 놀라운 것이랍니다. 얼마나 많은 초록을 경험했을까? 그리고 초록이 사라져버렸다고 할 때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그것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많은 것들을 조합해서 악기를 만든 최초의 사람은 누구일까? 그는 과연 우리가 생각하고 향유하고 있는 이런 것들을 상상했을까? 음악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고 할 때, 그것은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어갈 때 우리의 관심사는 세계 전체로 확장될 수도, 최초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도, 알 수 없을 만큼의 깊이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