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대서양 한복판에 9개의 화산섬으로 이뤄진 포르투갈령 아소레스(Azores) 제도
얼마 전 프랑스인 시아버지가 카리브해 마르티니크 섬으로 떠났다. 친구 두 명과 섬에 있는 작은 요트를 포르투갈의 섬, 아소레스로 옮겨 놓기 위해서였다. 시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요트 선수를 꿈꿨지만 집안의 반대로 평범한 직장 생활을 했고, 평생 "퇴직만 하면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갈 거야." 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러니까 이 '일'은 어린 시절부터 어울리며 배를 좋아한 친구들이 퇴직 후에야 이루게 된 꿈의 모험이었다.
가족 모두가 응원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있었다. 모험을 떠나는 세 명 모두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다 시아버지가 최근 허리 디스크로 극심한 통증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섬 사이의 거리는 바닷길로 4000킬로미터가 넘는다. 진통제를 먹고 다리를 절뚝이는 모습에 말리고 싶었지만 시아버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떠났다.
그렇게 노인 셋을 태운 배는 2주가 넘도록 북대서양에서 바람과 조류만으로 움직였다. 가족들은 위성 통신으로 하루에 한 통씩 보내오는 문자로만 시아버지의 안부를 확인했다. 대부분은 그날의 바람 세기와 방향, 운전 거리 같은 내용이었지만, "아들아 생일 축하한다." 같은 문자도 있었다.
나는 매일 밤 GPS로 북대서양 한가운데, 망망대해에 찍혀 있는 점 하나를 보며 상상했다. 팔십 대 노인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어떤 마음으로 지내고 있을까. 인생을 돌아보고 있을까. 두렵지는 않을까.
2주 후, 까맣게 탄 세 노인이 파리 공항에 도착했다. 한 명은 다리를 절뚝이고 다른 한 명은 목발을 짚고 있었지만, 얼굴만은 태양처럼 밝게 빛났다.
곽미성 | 작가
곽미성 님은 파리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에 담는다. 에세이 《다른 삶》 《외국어를 배워요. 영어는 아니고요》 등을 썼다.
비바 라 비다!
프리다 칼로(1997~1954년),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여섯 살 무렵, 높은 열에 시달린 뒤 소아마비 진단을 받았다. 후유증으로 오른쪽 다리가 짧아져 오른발에 양말을 여러 겹 신고 다니며 이를 숨겼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운동을 배우게 했다. 그녀는 수영, 축구 등을 하며 마음을 단단히 다졌다.
열여덟 살 때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타고 있던 버스가 전차와 충돌한 것이다. 이 사고로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일 정도로 크게 다쳐 1년 동안 병원 침대에 종일 누워 지냈다. 그녀의 부모님은 이번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가 침대에서도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특수 이젤을 제작해 준 것.
서른 중반이 된 프리다는 화가로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명성이 점점 높아진 데 반해, 건강은 나빠져만 갔다. 척추 수술이 실패해 또 다시 8개월간 누워 지내기도 했다.
프리다는 병상에서도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고, 개인전도 열었다. 의사의 염려를 뒤로하고 구급차를 타고 자신의 전시회에 참석했다. 침대에 누운 채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노래하며 그 자리를 즐겼다.
애석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오른발의 상태가 안 좋아졌다. 피부 조직이 괴사해 절단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위기를 겪을 때마다 받은 부모의 사랑을 기억해서일까, 수술을 앞두고 그녀는 일기에 썼다.
'발이 왜 필요하지? 내게는 날 수 있는 날개가 있는데.' 그녀가 마지막으로 그린 것은 수박이다. 단단한 껍질이 여린 속을 지켜 주는 수박. 그림 한쪽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 '인생이여, 만세'라는 뜻.
비바 라 비다, 1954년. 프리다 칼로
이은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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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동글과 음악 즐감하고 갑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ㅎㅎ
고운 멘트로
공유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
설렘 가득한 9월
맞이하세요
동길짱 님 !
고운 걸음으로
공유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
기쁨과 설렘으로 가득한
새로운 한 주 지내세요
사랑천사 님 !
좋은글 감사 합니다
고운 멘트로
공유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
동트는아침 님 !
조석으로 시원해져
지내기가 조금
편해졌습니다,,
오늘도 좋은하루
건강하게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