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8년 여름, 제국은 몽골족에 대한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이번 출정에서 주목되는 점은, 과거와는 양상이 달라진 전략 목표였다. 과거 몽골족과 벌인 전쟁의 목표가 적의 절멸이었다면, 이번 전쟁의 목표는 적을 제국의 산하에 복속시키는 것이었다. 러시아 제후 연합군은 Yaik에서 킵차크 군을 격파하고 항복을 받아낸 후, 카스피 해와 아랄 해 사이의 길을 통해 남하하여 일 한국의 영토로 진입했다. 일 한국의 주력 부대가 카스피 해 남쪽의 호라산Khorasan 군주와 겨루는 틈을 노린 것이었다.
-제국의 역습-
이후의 전황은 제국에 유리하게 전개되었고, 마침내 제국과 몽골족 사이에 협정이 이루어졌다. 제국은 몽골족이 동쪽 변경에 정착할 수 있도록 땅을 내주었다. 그 대신 킵차크 칸과 일 칸은 제국의 예속 왕이 되어 지그문트 황제의 종주권을 인정하고, 그 증거로 그들의 고유 신앙을 버리고 정교도로 개종하였다.
이로써 제국의 동방 전선은 평화를 되찾았다. 제국의 신민들은 몽골족을 제국에 편입시킴으로써 항구적인 평화를 가져온 지그문트 황제와 Salmo 부황제의 영단을 칭송했다. 그러나 3곳의 속주를 받은 일 칸과는 달리, 1곳의 속주만을 받은 킵차크 칸의 가슴 속에는 가혹한 대우에 대한 노여움이 불타고 있음을 당시에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킵차크 칸 에센 부카의 어린 시절 스텟. 이것이 바로 텡그리의 축복이다-
-9살의 나이에 6살 아들을 두신 위대한 일 칸. 6살 짜리 아들 카잔 또한 텡그리의 축복을 받은 스텟 소유자이다-
위대한 연대기 작가 뚱보 마틴의 기록에는 제국의 질서 아래 편입된 몽골족의 생활상에 대한 흥미로운 글들이 여럿 있는데, 그 일부를 발췌해 여기에 소개한다.
“...몽골족을 관찰하면서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은 무능했던 1세대에 비해 그들의 자식들인 2세대-그들의 고향을 떠나 이 곳 서방에 정착한 후 태어난 아이들-의 자질이 매우 우수하다는 사실이다. 몽골족 2세대의 자질은 매우 놀라워 그들이 유라시아를 그토록 빠른 시간 안에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가늠케 한다......(중략)......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그들의 번식력이다. 몽골족은 놀라운 속도로 병사들을 늘려나간다. 마치 하룻밤 새에 땅 속에서 병사들이 솟아나온 것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또한 그들의 군주는 마음대로 사생아를 낳으며, 그 사생아들은 곧 적자로 인정되어 계승권을 가진다. 게다가 그 사생아들을 낳은 군주의 나이가 고작 만 3세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는 내 허풍이 과하다고 생각하며 눈살을 찌푸릴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연코 사실임을 신의 이름으로 맹세한다...”
-오랜 기다림 끝에 아이는 태어났다-
1252년, 지그문트 황제는 새로 태어난 조카의 엉덩이에 푸른 반점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 아기의 이름은 산모의 의향에 따라 ‘테무게’라고 지어졌는데, 몽골족의 머나먼 동쪽 고향 땅을 지키는 ‘화로의 수호자’에게서 따왔다고 한다.
이후 지그문트 황제는 다시 제국 통합 정책을 추진해 나갔지만, 그때마다 봉신들의 반대에 부딪쳐 번번이 좌절을 하였다. 약간이라도 전쟁을 치를라 치면, Realm Duress가 떴던 것이다. 이에 지치고 좌절한 지그문트 황제는 제국 재통합의 꿈을 다음 대에 걸기로 했다.
1260년, 콘스탄티노플에 역병이 돌아 궁정에도 환자가 속출하니, 이를 근심하던 지그문트 황제는 조카 테무게를 Salmo 부제의 궁정이 있는 팔미라 영지에 수양 자녀(Fosterling)로 보냈다. 팔미라 사막지대의 기후가 역병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1264년, Salmo 부황제가 사망했다. 이에 Salmo의 아들인 Girard가 그 뒤를 이어 부황제로 취임했다. 그런데 충성스럽던(Loyalist) 아버지 Salmo와는 달리, Girard 부황제는 자신이 사적으로는 지그문트 황제의 친구(Friend)라는 점을 이용하여 자신이 이미 황제라도 된 것처럼 오만하게 행동하니(Rebellious) 지그문트 황제는 마음속으로 경계심을 품게 되었다.
-1267년, 굶주린 늑대들은 먹이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1267년, 평화는 20년을 채우지 못하고 깨지고 말았다. 마침내 킵차크의 칸이며 ‘황금의 늑대’라 불리는 에센 부카가 독립을 선언하고 제국을 집어 삼키려 한 것이다. 제국에 복속될 당시 1만 5천에 불과하던 킵차크 한국의 병력은 20년도 안 되는 사이에 17만으로 불어나 있었다.
이 전쟁의 전개 과정은 연대기 작가 뚱보 마틴의 7부작 대서사시 <A Dance with Wolves>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이 서사시의 제목에서 이름을 빌려와 ‘늑대의 춤’ 전쟁이라 불린다.
‘늑대의 춤’ 전쟁은 제국 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한 전쟁이었다. 비겁한 제후들은 자기 안위만을 도모하여 킵차크 칸에게 자신의 영지 일부를 넘기고 제멋대로 정전하여 킵차크 칸을 도왔다. 게다가 적의 영토에서 싸울 경우 보급이 어려워 달이 바뀌면 수천의 병력이 증발하는 일은 다반사였고, 겨우 적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싶으면 갑자기 땅 속에서 솟아나온 적의 대군에 좌절해야만 했다.
지그문트 황제의 평화 사절이 수도 없이 말을 달려 킵차크 칸의 게르로 향했지만, 킵차크 칸 에센 부카는 이를 모두 무시하고 황금 군단을 이끌며 러시아 대초원을 휩쓸었다. 에센 부카의 세력이 가장 강성하던 시기에는 노브고로트와 키예프까지 킵차크 군이 들이닥쳤을 정도였다. 이에 지그문트 황제는 암살자를 보내 에센 부카를 살해했지만, 평판만 나빠졌을 뿐 전황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이 전쟁의 연대기를 기록하던 뚱보 마틴은 참혹한 전황에 대한 비탄과 분노에 가득 차 글을 쓰다 고혈압이 악화되어 사망했다. 덕분에 총 7부작으로 예정되어 있던 연대기 <A Dance with Wolves>는 제5부까지만 집필된 미완성의 작품이 되었고, 따라서 마틴이 수집해 두었던 이 전쟁의 스샷은 소재를 알 수 없게 되었다.
-1264년 부황제 취임 당시의 Girard. 그와 그의 후계자들(Successors)은 동년 동월 동일에 사망하는 운명을 맞게 된다-
‘늑대의 춤’ 전쟁이 한창이던 1268년, 악화되는 러시아 전선의 상황에 신경이 곤두서있던 지그문트 황제에게 Girard 부황제의 불손무례한 행태가 또다시 전해졌다. 이미 수천 매의 황금을 내려 Girard 부제를 달래왔던 지그문트 황제였지만, 이제 더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짐은 Salmo 부황제의 제안을 받아들여 킵차크 한국을 멸망시키는 대신 땅을 내주는 자비를 베풀었다. 그런데 지금 킵차크의 야만인이 반기를 들어 짐을 괴롭히고 있으니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아비의 죄는 자식이 갚는다 했다. Girard 그 놈은 제 아비의 죄를 생각하면 자숙하고 있어도 시원찮을 것을, 오히려 이토록 방자하게 굴다니! Girard, 네 놈은 짐의 조카 테무게가 얼마 전에 치른 성인식을 보고도 느낀 바가 없단 말이냐? 예전에는 대안이 없어 짐이 참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황제는 황실 의전관을 불렀다.
“의전관, Girard 부황제의 후계 서열에서 짐은 몇 번째인가?”
이에 의전관이 답했다.
“폐하, 폐하와 Girard 부황제 전하께서는 육촌 형제이시기 때문에 폐하는 10위 안에도 들지 못하십니다. Girard 부제 전하는 총 12명의 아들과 손자, 외손을 두고 계시기 때문에 폐하께서는 13번째이십니다.”
그러자 지그문트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말은 Girard 부제가 나보다 먼저 사망하더라도 그의 작위와 영지가 내게 올 일은 없다는 소리로군.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나 그 12명이 모두 죽지 않는 한 말이지.”
얼마 후, 지그문트 황제는 수도 근교 카스타메레 숲 속에 세워진 황제 전용 별장의 완공을 기념하여 황실 가족들을 초청했다. 황실의 2인자이자 차기 황제인 Girard 부황제와 그의 가족들도 당연히 참석하였다.
그 날은 밖에서 세찬 비가 내렸지만, 온갖 호화로움을 다한 별장의 화려함과 진수성찬으로 가득한 연회의 흥겨움은 사람들로 하여금 궂은 날씨를 잊게 했다. 이윽고 연회가 파할 때쯤, 기분 좋게 취한 Girard 부황제는 주변을 둘러보며 사랑스러운 손자와 외손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곧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어느새 주변에는 다른 황족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고, 자신의 아들과 손자들만이 연회장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변을 알아차린 Girard 부황제가 몸을 일으켜 가족들에게 지시를 내리려는 순간, 연회장의 문이 열리면서 무장한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Girard 부제의 아들과 손자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 날 카스타메레 별장에서 일어난 대학살은 음유시인들이 <카스타메레에 내리는 비>라는 이름의 작품으로 노래하고 있을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노래에 따르면, 연회장 바깥에서 무심한 표정으로 비명 소리를 듣고 있던 지그문트 황제는 '작업'이 완료되었다는 보고를 받고는 시종장을 불러 카스타메레 별장을 불태우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카스타메레 별장은 완공을 축하하는 날에 황실 가족들의 피로 적셔지고, 불태워지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소각된 카스타메레 별장의 잔해는 폐허 속에 그대로 방치되었다. 그리고 카스타메레 별장의 황량하고 을씨년스러운 폐허는 황제권에 도전한 자의 말로가 어떠한지 보여주는 증표로 남게 되었다.
Girard 부제를 포함한 13명의 대숙청으로 지그문트 황제의 악명은 하늘을 찌르게 되었다. 그의 배드 보이는 37점으로, 평판은 'We are worse than dishonorable scum' 이 되었다. 또한 봉신들의 충성도 수치 중 평판 수정치는 -14.8%를 기록했다.
한편, Girard 부제가 죽었기 때문에 제국은 후계자를 잃었다. 이제 세간의 관심은 지그문트 황제가 지명할 새 후계자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에 쏠렸다. 이에 부응이라도 하듯이 지그문트 황제는 곧바로 조카 테무게를 새 부황제로 임명하고, 이전의 그 어떤 2인자도 누리지 못한 지고의 권력을 부여했다. 테무게 부제에 대한 엄청난 수의 작위와 영지 수여로 지그문트 황제의 평판은 단숨에 상승해 ‘We have an honourable reputation' 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1271년 4월, 마침내 4년간에 걸친 ‘늑대의 춤’ 전쟁이 막을 내렸다. 이로써 킵차크 한국은 멸망하고, 지그문트 황제는 최종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긴 것이 기적이라고 믿어질 정도로 상처뿐인 승리였다.
-오래된 상처가 아파온다... 십자 흉터는 그대로인가-
제국의 제4대 황제이자 가장 위대한 황제인 성聖(Saint) 로마노스 5세는 북아프리카 원정 도중 시시한 전투에 입은 상처가 원인이 되어 단명하였다. 그래서 로마노스 5세는 유훈으로 이후의 황제들이 친히 전투에 나서는 것을 금하였다. 그리고 이 유훈이 여전히 새겨들을만 하다는 사실은, 로마노스 5세 사후로부터 100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입증되었다.
반란을 일으킨 앙카라 영주의 군대가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쳐들어왔을 때, 지그문트 황제는 로마노스 5세의 유훈을 어겼다. 적병이 1,700여명에 불과한 것을 보고 우습게 여겼던 것이다. 지그문트 황제는 4만 대 1,700이라는 압도적인 우세를 점한 전투에서 어디선가 날아온 부러진 칼날에 베여 부상을 입었고, 그 상처가 악화되어 1278년 2월 27일, 숨을 거두었다. 그는 37년이 넘는 기간을 통치한, Spartenos 왕조 역사상 가장 오래 재임한 황제였다.
-1278년 2월 27일, 테무게 황제가 등극하다-
지그문트 황제의 사후, 그의 조카인 테무게 부황제가 제관을 이어 받았다. 테무게 황제의 취임 일성은, 계승법을 선거제(Elective Law)에서 혈족 계승법(Salic Consanguinity)으로 변경하겠다고 선언하고 부황제 지명 제도를 폐지한 것이었다. 이는 39년 만의 계승법 변경으로, 황제 자리는 오직 Spartenos 가문만이 독점할 것이라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제 사람들의 관심은, 과연 테무게 황제가 예언이 가리키는, ‘세상을 주름잡을 종마’인지의 여부에 쏠리고 있었다.
-다음에 계속-
|
첫댓글 헐.. 몽골계 비잔틴 황제네염. 그나저나 몽골을 정교도 개종시키고 복속하는 정책은 심히 비잔틴 답네요. 물론 다시 반란한 몽골도 몽골답구여. ㅋㅋㅋ
몽골을 복속시킬 때는 좋았는데, 정교로 개종한 상태에서 반란을 일으키니 왠지 3배는 더 강해진 듯한 느낌이--;; 킵차크 한국과 싸우느라 눈에 핏발 세우고 밤새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는데, 너무 짜증나서 게임 그만둘 뻔했습니다. 덕분에 제대로 스크린샷 남길 여유 같은 것도 없었구요. ㅎㅎㅎ
나라안정도는 -3....이거이거....ㅌㅌ
안정도가 -3을 기록한 것은 이미 100년도 더 전의 일입니다~ㅎㅎㅎ 이벤트로 -1 정도까지 겨우 상승했다 싶으면 어김없이 뜨는 Realm Duress 덕에 안정도 유지는 오래 전에 포기했지요 ㅠㅠ 이제 오로지 정복뿐입니다!
세상을 주름잡을 종마 치고는 좀 아버지보다 못하다는 느낌이...
바로 보셨습니다~^^ 최초의 몽골인 황제 테무게에게는 다음 편에서 허무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는 세상을 주름잡을 종마가 아니었던 거죠. 그냥 '종마'일 뿐... --;;
몽골쪽의 능력치가 매우 무섭군요.(처리하시느라 고생하셨겠...) 다음편이 기대됩니다.
매번 기대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몽골 처리하느라 밤샌 것을 생각하면 정말~ㅠㅠ
정말 재미있거든요 ㅋ
드뎌 몽골계 왕이 ㅋㅋ
ㅎㅎ드디어 몽골계 황제가 탄생하기는 했는데... 장점 대신 단점도 많아 말 그대로 애로사항이 꽃피네요~ㅋ
알렉시우스보다 더 괴물들이다 ㄱ-
CK 최초 출시 당시 알렉시오스 콤네누스의 포스는 정말 후덜덜했지요. 게다가 당시에는 100% 효율 유지 가능 직할령의 수가 intrigue가 아닌 stewardship으로 결정되었고, 비잔티움 직할령 보너스가 무조건 +20 이던 시절이라~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