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쟁이 교사의 객적은 이야기

글 쓰는 교사의 객쩍은 이야기 중국 정사(正史)에서 삼국지의 ‘서서’라는 인물은 딱 두 줄만 나오는데. ‘유비가 책사 서서의 천거에 의해 제갈양을 불러왔다’가 끝이며 ‘서서의 모친이 조조에게 잡혀가자 조조 편에 투항했다’가 덤으로 붙는다. 그러나 나관중의 원작은 차치하고라도 정비석, 이문열은 지향점의 차이가 있지만 저마다의 기량에 의해 대략 50쪽 이상의 허구를 가미한다. 내용 요약은 다음과 같다. 은둔을 끝낸 서서는 유비 편에 서서 하후돈 조인 등이 이끄는 조조의 10만 대군을 격파하는 능력을 발휘한다. 이에 놀란 조조가 인물을 묻자 신하 정욱이. ‘서서입니다. 그의 어머니가 성에 있으니 효심을 이용해서 편지를 쓰면 어렵지 않게 취할 수 있을 겁니다.’ 하면서 이차구차 모친을 불러온다. 조조가. ‘귀공의 자녀는 유비라는 도적의 손에 넘어가 역적질 중이니 편지로 아들을 불러 황실을 도모합시다.’라고 권유하자 모친은. ‘네놈이 역적이고 유황숙은 군자다. 내 아들이 너를 죽여 유황숙의 이룸을 보는 걸로 만족하겠다.’ 라고 강력 반발하면서, 조조가 자기를 죽이도록 유도한다. 자신이 죽으면 아들 서서가 조조에게 넘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조조가 목을 치려 하자 정욱이. ‘이건 서서의 모친이 스스로 죽음을 택하려는 의도입니다. 목을 치게 되면 모친은 의로운 인물로 기록되고 승상은 나쁜 인물로 원성을 사게 됩니다.’ 하면서 가로막는다. 그 후 정욱은 의도적으로 친한 척 모친을 모시면서 정성스레 문안편지를 시도한다. 서서의 모친 역시 외로움에 사무쳐 답장을 보내자, 정욱은 그미의 글씨체를 흉내 내어 서서의 모친인 양 ‘네가 없으니 내가 죽은 목숨이구나’라는 식의 가짜 편지를 보낸다. 이에 놀란 서서가 어머니에게 가기로 결정하니 유비 역시 의롭고 아픈 이별을 할 수밖에 없다. 서서의 모습을 배웅하다가 나무에 걸려 보이지 않자 ‘저 나무를 베어버리고 싶다’며 통곡하는데, 말굽 소리가 크게 들리며 가까이 다가온다. 서서가 돌아오는 줄 알고 크게 기뻐하지만 그건 아니다. 일단 돌아온 서서는 ‘제갈 양을 찾아 삼국통일을 도모하라’는 훈수를 던지고 작별을 고하니 그게 삼고초려의 배경이요 제갈공명과 만리장성의 드라마가 된다. 뒷이야기지만. 서서가 조조의 성에 들어가자 모친이 노발대발하며. ‘네가 공부를 했다면 충과 효를 함께 할 수 없음을 알지 않느냐’하며 절망 속에서 자결을 하였고.   5학년 때, 장래 희망에 대한 글짓기 시간이다. 벗들의 희망은 가난한 아이들이 그렇듯 농부나 기술자가 가장 많았지만 간혹 대통령이나 스포츠 스타가 등장하기도 했다. 나는 ‘시인이 되겠다’고 긴 문장으로 적어내었는데 담임님이 그 학교 교감님이신 아버지에게 얘기를 한 것 같다. 그날 밥상머리에서 아버지는 ‘문학가는 배가 고프다’며 만류하셨다. 그때 뜬금없이 ‘선생을 하면서 글을 쓰겠다’고 대답했는데 그게 내 운명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안데르센과 이원수의 동화를 가장 많이 읽었고 강소천 작가는 같은 ‘강씨’라서 자부심을 세웠던 것 같다. 감나무 그늘에서 손오공이나 로빈손을 익다가 낮잠에 빠지던 예쁜 그림도 있었고.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나의 장래로 규정했던 ‘글’이란 제발 무엇일까. 김준태가 던져놓았던 콩알일까, 망망대해에 거품처럼 퍼져있는 마약일까. 그 속에서 한 평생 자맥질한 것 같다.   문학청년 그 고독의 시절. 스승이 없었으므로 무작위로 시집을 읽었고 눈대중으로 문장의 흐름을 익혔다. 글의 깊이를 구별하진 못했지만 시인 부류에 대한 막연한 틀이 잡히기도 했다. 나는 시인의 흉내를 내기 위해 머리를 길렀고 고무신을 끌고 캠퍼스를 어슬렁거렸다. 비상사태와 긴급조치가 연이어 발동되던 시절이었으나 나는 시국의 울분보다는 취객의 로망에 집착해서 세상의 질곡에 눈을 뜨지 못했다. 그저 사랑의 스잔나 같은 영화 장면과 주안상을 떠올리면서 아, 하는 감탄사를 내뱉는 수준이었는데.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1980년 8월 제대병이 되는 날까지 ‘광주’를 몰랐다. 복학생이 되면서 처음으로 사회과학 책을 접했다. 광주항쟁 직후 동일방직이나 원풍모방 유인물을 몰래 돌려보는 ‘삶의 문학’ 선배들의 표정이 신선해서 머뭇머뭇 합체했다. 그 속에서 프레이리와 루카치를 읽었고 조지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만났고 전태일과 김지하의 시집을 복사해서 돌려보았고 미국에서 강연한 김대중 테이프를 숨어서 듣던 시국이었다. 그리고 숙명처럼 여고생을 가르치는 총각 선생이 되었고, 아주 잠깐 행복했다.   1985년 청년의 혈기가 기울어갈 즈음. ‘민중교육 당신의 자녀를 노리고 있다’ TV의 그 특집 기사를 술집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으니, 그게 ‘민중교육지 사건’이다. ‘해도 해도 너무 하는 그 새빨간 거짓말’을 사람들이 믿는 순간부터 행복했던 총각 교사의 스크린들이 산산조각 깨져나갔다. 솔직히 나의 실체는 허망했다. 나는 그 잡지에 ‘비늘눈’이라는 단편소설 한 편을 발표했을 뿐이다. ‘어느 지방대 출신 대학졸업생이 사립학교에 취업하려 했으나 재단측의 기부금 요구에 회의를 느껴 포기함’(85.8.12 조선일보)이 내용의 전부다. 그리고 신새벽 경찰서에 끌려가면서 도미노처럼 자꾸 살을 붙이고 색깔이 칠해지는 것이다. ‘기부금 채용이라는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나라를 혼란스럽게 했고 결과적으로 북괴를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를 했노라’는 조서를 실물이 나도록 만나고 거부해야 했다. ‘나중 얘기지만 내 소설을 읽은 독자들이 ‘아니, 이게 무슨 해직 사유야?’하며 혀를 내두를 때마다 나는 민망했다. 그때 나를 조사하던 형사가 담배를 권하며. “학교를 쫓겨날 텐데 무엇을 하고 살아갈 거냐?” “글을 쓰겠다.” 게슴츠레 답변하자 그는. “내 동창생 중에 박범신이라고 있는데 그만큼 쓰기를 기대하겠다.” 라며, 안쓰럽게 바라보던 게 기억난다.   93년 전교조 해직교사 원상복직 추진위원장 시절 다시 금단의 기로에 섰었다. 단두대에 목을 넣기 위해 징계위원회에 출두했다. 징계위가 끝나고 나오는데 안면 있는 선배 관료가 바깥으로 따라 나오더니, ‘징계가 떨어질 것 같다’고 하는 바람에 나는 불쑥 ‘전면적으로 글을 쓰겠노라’ 선언했다. 그러나 바깥에서 몇몇 후배가 질타했다. 해직교사가 되면 교육운동을 해야 한다는 벗들의 논리를 반박할 수 없었다. 90년대 시국은 투쟁으로 서서 세상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당연한 논리를 받아들였지만, 현관을 열고 집에 들어가면 다시 책상머리가 그리운 것이다. 누가 나에게 그동안 무엇을 하며 살아왔느냐고 물으면 두 가지로 답할 수밖에 없다. 무엇 하나 충실하지 못했지만, 하나는 글을 쓰는 것이고 하나는 전교조라는 신앙 공동체였다. 이 두 가지 도정은 출발이 다르다. 글은 내가 선택한 숙명적 작업이요, 전교조는 소용돌이처럼 밀려오는 시국 속에서 체화된 환경이다. 글을 쓰는 것은 낱낱이 기록으로 남지만 전교조 조직은 헌신성과 신념을 담보로 하면서 갈수록 몸이 무뎌짐이 느껴져서 안타까웠다. 제자 같은 전경들과 육두문자를 쓰며 주먹싸움도 했고 징계위원회에도 출두해서 항명도 했고 교무실이나 거리에서 유인물도 돌렸다. 최루탄 냄새를 털어내면서 닭다리를 뜯어먹다 보면 자꾸 이빨이 흔들거렸다. 관료들에게 받은 상처는 금세 아물 수 있었지만 동지들에게 상처를 받은 상처는 아물지 않아서 뜬눈으로 새우기도 했다.   2012년은 나에게 20여 년 만에 찾아온 변형의 해였다. 안식년을 맞이하여 나는 ‘공주대 도서관 →원주 토지문화관 → 북유럽 → 연희문학창작촌 → 마라도 창작스튜디오’ 등을 뱅뱅 돌면서 체험할 수 있었다. 밥 먹고 글만 쓰면 되는 ‘전업 작가의 해가’ 온 것이다. 그리고 연희문학창작촌에 가는 길. 맨 처음 토지문화관을 혼자 찾아갈 때 정도의 설렘은 아니었지만 소소한 파문이 일긴 했다. 그리고 젊은 날 경찰서 조서 받을 때 들었던 소설가 박범신이 책임자라는 정보도 들은 상태였다. ‘작가촌의 일상은 무엇일까’하는 기대로 마트에 들러 빨래비누 한 장을 들고 갔다. 대학시절부터 세탁과 세면에 전천후로 사용하는 도구다. 빨래비누로 추리닝을 빨고 몸을 닦고 머리를 감으면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지던 추억의 리펫이다. 이는 신촌에서 자취하는 딸내미의 등장과 함께 당장 댕기머리 샴푸와 아카시아 비누로 바뀌었지만. ‘작가들은 과연 고시생처럼 머리띠 동여매고 새도록 글을 쓰는 것일까’ 이런 환상은 보름 즈음에 깨졌다. 그 공간은 글에 집중하는 작가와 글과 술의 혼재 속에서 살아가는 작가로 구분되었고, 나는 후자 쪽에 급속도로 편승되었다. 견고했던 시간 틀이 의 깨지면서 파죽지세가 되었다.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동이 트기도 했고 전 날의 언행이 기억나지 않아 조목조목 복기하면서 후회에 빠지기도 했다. 나중에는 내가 술자릴 보고 도망치는 어이없는 장면까지 노출되었고. 지금도 연희동으로 상징되는 5공화국 대통령 전두환 씨의 사저와 담벼락 하나 차이로 붙어있다. 큰길 건너 저편에는 노태우 씨의 저택이 있노라고 들었지만 어딘지는 모른다. 아무튼 길 건너에는 도심 속의 저택이 많았고 군데군데 경비원들이 서성거리는 것을 목격하면서 쫄밋쫄밋 통과하기도 했다. 파라솔에 기대어 찻잔을 기울이다 보면 경비병들의 ‘근무 중 이상 무’ 소리가 들리고 더러는 혼자 동초를 서는 사내의 콧노래 소리가 담벼락을 넘어오기도 했다. 좌우지간 창작촌은 도심 속의 솔밭이었다. 소나무 그늘에서 책을 읽거나 담배를 피우다 보면 때까치들이 돌절구의 고인 물속에서 헤엄을 쳤고 배불뚝이 고양이가 게으른 표정으로 비스켓을 핥는 것이다. 그리고 고요하다. 불 켜진 방마다 작가들이 고구마 뿌리 같은 꿍꿍이를 다지면서 글을 쓰거나 술을 마실 것이다. 전체 매니저는 안현미 시인인데. 그미는 대천 모임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이정록, 강형철 정우영 등과 함께 맛이 가게 마시던 자리에서 만났던 얼굴이다. 안도현, 윤대녕, 이승우 같은 문예창작과 대학교수들이 방학을 통하여 잠깐 들르기도 했으나 진한 술자리는 없었다. 문제는 내가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난 점이다. 동창생들과 어울려서 얼큰하게 취해 돌아오다가, 마침 판을 벌이는 작가들의 술판에 또 끼어들기도 했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 도망치기도 했으니, 그 새벽은 내가 예전에 출근 직전에 대학 도서관에 다녀오던 금쪽 같은 시간이다. 전업작가인 오을식 소설가에게 덕을 많이 받았고 오도협 시인 그리고 임제다 동화작가 등과 어울렸고 박찬세 시인도 뒤늦게 합세하기도 했다. 장년의 오을식 작가는 문학상 상금으로 생계형 글쓰기를 했는데 소위 젠틀맨 체질이다. 소소하지만 도움을 너무 많이 받아 오래도록 송구스러울 뿐이다. 오도엽 시인은 노동운동 출신이다. 여관방에서 잡히는 순간 그동안 참았던 잠이 수렁처럼 쏟아졌단다. 5년여 수배 생활 끝에 1년6개월 선고를 받았는데 공교롭게도 비전향장기수들의 옆 사동이었다. 30년 철창생활을 했던 장기수들이 오시인보다 2개월 빨리 석방되면서 그리도 미안한 표정을 짓더라고 해서 가슴이 아렸다. 그는 철창 속에서 시가 뭔지도 모르면서 문장을 툭툭 생산했단다. 대못이나 볼펜심으로 우유봉지나 은박지 성경이나 불경의 여백에 글을 써서 바깥으로 내보냈단다. 그러나 대부분 젊은 작가들의 주제는 올림픽 이야기와 영화배우 이야기처럼 가볍고 분망했다. 나는 일제고사 해직교사와 밀양송전탑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죽음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대 화제가 달랐다. 그런데도 대부분 글이 좋았다. 우리들의 젊은 날처럼 심각하지 않았고 그저 분망했던 점이 많이 다르다.   ‘서서’ 이야기는 기실 작가에 대한 관심사가 아니라. 그네들의 문장 때문에 옮긴 것이다. 조조의 진영으로 넘어가는 서서를 바라보는 유비의 눈빛이 슬픈 배경이 된다.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자 ‘저 나무를 베어버리고 싶다’는 심정 묘사는 문장의 심화다. 망연자실 서 있던 유비의 귀에 점차 커지는 말굽소리가 들리면서 ‘서서가 돌아오는구나’ 하며 쿵쿵대던 심장소리는 청각적 심상이요, ‘충과 효를 함께 갈 수 없는 걸 모르느냐?’며 호통치는 모친의 절규는 정문일침이다. 모친의 자결은 예고된 반전이지만 독자들은 서스펜스에서 헤어날 수 없다. 그런데 밤이 되면 눈물이 흐른다. 한 줄의 문장으로 한 권의 책을 쓸 수 없는 것은 내 불성실 탓이다. 추석날 둥근 달 아래 85세의 어머니가 문득. “너는 왜 박경리처럼 못쓰니?” ‘이게 어머니께 받은 유전자 전부를 활용하는 과정입니다’ 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렇다. 글은 절망 속의 희망이요, 이슬 머금은 들꽃인 동시에 유곽의 노류장화다. 그리고 가끔 ‘못 찾겠다. 꾀꼬리’처럼 눈물을 글썽이게 만들어서 눈이 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