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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가좋다오 원문보기 글쓴이: (일맥)
기독인도 국가에 대항해야하나?
권세자들에게 굴복하라! (롬 13:1-7)
글/송수천 목사
우리는 지금 신앙의 공항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기독교인은 국가관이 어떻게해야 성경적인지?? 기독인은 나라에 어떻게하여야 신앙생활과 조화를 이룰까? 일부 목사들이 세상에서 하는 것처럼 시위를 하는데 과연 기독인은 무엇을 하여야할까? 주위 종들은 어떻게할까? 중립을 지킬까? 모른척할까? 아니면 속이 상할때마다 나라에 반기를 들어야 하나? 그의문점을 성경은 어떻게 제시하고 있는지? 오늘 그것을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13장에 들어와서는 세상을 사는 사회인으로써의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지켜야 할 기독교의 윤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윤리와 더불어서 사회적인 윤리는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우리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났을 때 벌써 이웃이 있었습니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존재입니다. 웃고 울며 속고 속이며 함께 뒹굴며 사는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반듯이 인류라는 전체의 사회와 어떤 관계를 가짐으로써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개인과 전체 세계와의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의 교량이 필요한데 그 교량 역할을 국가라는 단체에서 해결해 줍니다. 그러므로 국민이 된 사람은 누구나 민족과 국가에 대한 높은 권리와 무거운 의무를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는 조국이 있고 민족이 있고 국가가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국가관이 없다면 그는 그 시대의 사람이 아닙니다.
바울은 국가의 국민으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답게 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 수 있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도들이 국가의 국민으로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 수 있을까? 만약 성도가 국가에 대하여 항상 부정적이고 세금을 내지도 않고, 여러 가지 부정한 방법으로 속인다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리스도인은 드러난 동네입니다. 열 번 잘 하다가도 한 번 잘 못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가 있습니다. 또한 국가가 악을 행하고 법 적용의 형평성을 잃어버릴 때 그리스도인들이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다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주님은 성도들의 삶을 <빛으로! 소금으로!> 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인간의 영혼 문제만 취급한 것이 아니고 인간 전체의 문제를 취급하셨습니다. 어느 날 바리세인 하나가 예수님을 골탕 먹이려고 세금 문제를 가지고 와서 질문을 합니다. 그 당시 민족적인 민감한 문제인데, 로마의 황제인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가하냐? 불가하냐?"를 가지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의 대답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국가적인 권위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기본자세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국가관, 정치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천국의 시민이지만 또한 이 땅 위에 대한민국의 시민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천국의 시민인 것처럼 우리의 육은 이 땅의 시민이기 때문에 이 땅 위에 시민 생활을 어떻게 올바르게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며 또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의 덕목을 어떻게 세우느냐를 다루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국경은 없으나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조국이 있습니다. 만일 성도가 국가관이 없다면 그는 국민으로써 권리를 포기해 버린 사람입니다.
6·25 때 일어난 일입니다. 인민군들이 밀물처럼 밀고 들어와 남한 각처가 빨갱이 수중에 들어갔을 때 진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진주 시민들은 UN군의 폭격을 피하여 남강 옆에 있는 숲 속으로 대피하고 있었는데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탄으로 진주시가 불바다가 된 것을 보고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이때 한 발의 폭탄이 촉석루의 논개 사당에 명중되어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대피중인 시민들이 목을 놓아 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왜 그들이 울었는가? 개인적인 이해 때문에 운 것이 아닙니다. 진주의 자랑이요 역사와 문화의 전당이 불탄다는 것은 민족의 얼이 불타는 것이기에 시민들은 통곡을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애국이라는 것은 무슨 거창한 것에서 찾아보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민족 혼 앞에 울 수 있는 마음이 바로 애국입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것도 애국입니다. 질서를 지키는 것도 애국입니다. 질서는 공동체의 기본입니다. 기본 하나만 잘 지켜도 행복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조국이 있습니다. 우리가 6·25 때 잠깐 혼란한 틈에 얼마나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무자비한 총칼 앞에 목숨을 잃었는가? 신앙은 나라가 건전할 때 성숙해 질 수 있습니다. 나라가 평안해야 우리도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한국 교회사를 보면 많은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이 나라를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3·1 독립만세 사건을 보세요! 우리 기독교인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지금도 나라의 위기 앞에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옛날 영국의 '크롬웰'은 청교도 혁명을 주도했으며, '조지 워싱톤'은 미국 독립운동을 일으켰으며 'AB 링컨'은 흑인 노예 해방을 위해 남북전쟁도 불사했습니다. 이러한 인물들의 투쟁은 억압과 불의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사명감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조국이라는 울타리가 있고 그 울타리 안에는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 자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권세 자들에게 굴복하라는 것입니다.
▶1절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바울이 이 말씀을 하게 된 배경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신정국가체제에서 살아왔기에 하나님 밖에는 왕이 없다고 믿고 있는 그들에게 로마가 강제적으로 점령하여 다스리자 계속적으로 폭동을 일으켰고, 하나님 외에는 아무에게도 조공을 바칠 수 없다고 믿고 거칠게 행동하는 무리들이 생기게 되자 바른 국가관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 당시 바울의 이 주장에 '자기는 로마의 시민권이 있기 때문에 그런 소리를 한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으나 바울은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그리스도인의 정신으로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는 취지의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주제는 <국가의 권위에 순복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오랫동안 논란을 불러일으킨 주제입니다. 이것은 교회와 국가의 두 관계를 정의하는 일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와 국가 간의 관계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네 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국가가 교회를 통제한다'는 '국가우선론'입니다. 독일의 히틀러가 이 이론을 잘 이용했지만 망했습니다.
㉡'교회가 국가를 통제한다'는 '신정론'입니다.
㉢국가가 교회에 호의를 베풀고, 교회는 국가의 보호를 받기 위해 국가의 편의를 도모해 주는 '콘스탄틴' 주의가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 우선론과 신정론의 타협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와 국가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독특한 책임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동반자라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 이론 가운데 네 번째를 가장 성경에 부합하는 이론이라고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교회와 국가는 근본적으로 다른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가라고 할 때 근본적으로 사회의 질서를 보호하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인간의 타락 이후에 필요악으로 주신 공동체입니다. 바울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국가에 대하여 가져야 할 기본적인 삶의 모습으로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고 가르칩니다. 그 이유를 이어서 말하기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2)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국가의 권위에 순종해야 할 이유로 하나님께서 권세를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국가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도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국가의 권위는 국민에 대한 '봉사'를 우선시 해야 그 권위를 인정받게 됩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일종의 정치적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정치가 어디서부터 생겨났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창1: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세상 우주 만물을 다 창조하시고 마지막으로 사람을 만드신 다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부터 정치가 시작되었습니다.
불교에서는 사람도 자연의 일부로써 결국에는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인생무상을 말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에게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인간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다스리는 것>이 정치입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질서를 만들고 다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다스리라'는 말은 '죽이든지 마음대로 해도 좋다'는 뜻이 아닙니다. 또 소유하라는 것도, 네가 '다 가져라'는 뜻도 아닙니다. 여기서 '다스리라'는 말은 '어머니가 자식을 돌보듯이 돌아 보라'는 뜻입니다.
부모가 자식보다 생각과 지혜가 많음으로 돌아보고, 또 형이 아우를 돌아보는 것 이것이 다스림입니다. 정치는 국민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정되게 평안하게 행복하게 살게 해 주어야 합니다. 1절의 말씀의 의미는 모든 사람(각 사람)은 국가의 권세에 굴복해야 합니다. 국가의 권세는 세우신 위정자들을 말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고, 악을 제어하며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권세자(왕과 관리들)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마22:21절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신 것은 국가에 대한 의무도 바로 하고 하나님께 대한 의무도 다 하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이 왜 갑자기 정치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가? 그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당시 바울로부터 이 서신을 받아 읽게 될 로마 교인들은 대부분이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로마 정부의 지배아래 있었습니다. 식민지 백성으로 어렵게 살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로마 정부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극단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고 하는 극렬분자도 있었고 열성당원이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이 열심당원들은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 밖에 왕이 없다고 믿었고, 세상에 왕은 아예 인정하자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로마 황제를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더 나아가서 로마 정부에 세금을 바치는 것도 거부했습니다.
오히려 고분고분 세금을 바치는 자가 있으면 암암리에 죽이기도 하고 집에 불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로마 정부를 뒤집어엎겠다는 일념으로 어떤 폭력도 마음대로 행사했습니다. ▶우리는 바라바라는 인물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빌라도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을 때, 마27:15-17절에 보면 유대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소원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전례가 있는데 그 대 바라바라는 유명한 죄수가 있었는데 빌라도가 군중들에게 "너희는 네가 누구를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예수냐?" 라고 물었을 때 군중들이 바라바를 놓아 달라고 악을 섰습니다. 그래서 바라바가 풀려 나왔는데 이 바라바가 누구인가 하면 열심당원으로써 로마 정부에 아첨하는 자들을 죽인 폭도입니다.
이런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로마의 유대인 중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매우 애매한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로마 정부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매우 난감한 위치에 놓여 있을 때 바울이 이 말씀을 주어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정치에 관한 말씀이 몇 군데 있는데 참조해 봅시다. 딤전2:1-2절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정치를 잘 해 주면 우리가 마음대로 모여서 예배드리고 선한 일도 할 수 있지만 정치가 흔들리면 신앙생활도 지장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치가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또 딛3:1절에 "너희는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라"고 했으며, 벧전2:13절 이하에서도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를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주제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입니다. 절별로 몇 가지로 생각해 보자!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굴복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그 속에 있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역사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떠난 적이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음을 아는 것이 지혜자요 현명한 사람입니다. 정치도 어느 나라에서 누가 통치자가 되든지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그 속에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없다면 하루 아침에 끝나고 맙니다.
여기서 '위에 있는 권세'란 질서와 체계가 있는 권세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국가나 사회나 가정이나 교회에서조차도 주어진 권세를 무시하지 말고 세워주고 복종해야 합니다. 가정에는 부모의 권세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목사의 권세가 있고, 전도사, 구역장의 권세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권세에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위험이 따릅니다.그러므로 어떤 처지에 있든지 각 사람은 자신의 위에 있는 권세에 일단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성경 곳곳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권세를 주관하시고 세우셨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단2:21절 "그는(하나님)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 자에게 총명을 주시는 도다"
단4:32절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2절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국가의 권세를 하나님이 세우셨기 때문에 그 권세를 대항하거나 거스리는 것은 하나님을 대항하고 거스리는 것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통치자의 권력을 존중하지 않으면 권력을 주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을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한다'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국가제도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중요한 사상은 국가의 권위가 하나님에 의해 위임되었다고 하는 사실과, 국가는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된 사항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가의 권위는 하나님의 사자(대행자)로서 백성들의 유익을 위하여 선행을 행하는 자에게 상을 주며,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그 악행을 처벌하는 봉사의 의무를 수행하는 국가의 권위를 말합니다. 국가의 권위를 말할 때 하나님께서 권세를 주셨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위치에서 절대 권력을 행사하라는 말은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하여 권위를 주셨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칼빈은 "존경할 만한 가치가 없고 악랄한 사람이라도 공적인 권력을 장악하면 하나님의 거룩한 권세가 그에게 들어간다. 그러므로 백성은 가장 훌륭한 왕에게 바치는 것과 똑같이 그에게도 바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재판을 받으실 때 빌라도의 권세를 인정해 주셨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향하여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요18:33)"고 묻고는 요19:10절에서 빌라도가 예수님을 향하여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이 말은 빌라도가 예수님을 석방할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권한이 자기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이 유명한 대답을 하셨습니다. 요19:11절 "위에서 주지 아니 하셨다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현대인의 성경에서 쉽게 풀이를 해 주었습니다."빌라도야! 네가 하나님께로부터 총독의 권세를 받지 아니하였다면 나를 그렇게 다룰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대답의 진실을 알아봐야 합니다. 예수님의 대답 속에는 비록 불법 재판을 하는 빌라도지만 그가 가진 권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하여 국가의 통치자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을 깨달았습니다. 요즘 민주화라는 미명아래 권위를 경멸하는 풍조가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 믿는 많은 사람들도 대통령이 마음에 드느니 안 드느니, 정치가 마음에 안 드느니 국가 권력을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그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그렇게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위정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사항은 바울이 권면하고 있는 내용이 무한정한 복종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정부의 명령이 하나님의 뜻과 반대된다면 복종해서는 안 됩니다. 구약에 대표적으로 다니엘서에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를 보세요! 그들은 왕의 금 신상에 절하고 경배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왕의 명령이나 법령이 내려졌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일에는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은 정말 중요합니다. ▶초대교회 때 로마는 '가이사'를 '주'로 부르라고 위협했지만 거절했습니다. 그 이유는 섬김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반대될 때는 국가의 명령이라고 할지라도 거절해야 합니다.
▶3절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국가의 법에 순종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관원들은 법을 집행하는 공직자들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선한 일을 하라고 한 것은 '법을 법대로 잘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공직자들이 먼저 법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우리들에게 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 되라는 권면입니다. 법을 지키기만 하면 우리가 공직자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도리어 칭찬을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그러니까 법을 지키고 남을 돕고 살면 경찰이 와서 "당신 갑시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표창을 줄 것입니다. 아무리 권세를 잡은 정부의 관원들일지라도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법을 지키고, 가령 납세의 의무를 다하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교통 법규를 잘 지키고 그리하면 관원들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법을 어기면 어긴 자는 처벌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좀 창피한 이야기지만 미국에 이민을 간 한국교포들이 교통법규를 잘 안 지키기로 소문이 나 있답니다. 여러분! 미개인과 문화인의 차이는 얼마만큼 법을 잘 지키느냐에 따라 달려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누가 보지 않아도 철저하게 법을 잘 지킨답니다. 질서는 참 귀한 것입니다. 질서를 세우는 것은 법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우리 모두는 법을 잘 지키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법도 그렇지만 하나님의 법도 은밀한 곳에서도 잘 지켜야 합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부인의 유혹을 받고도 '신전의식' 즉 하나님의 앞 인줄 깨닫고 그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인간의 의지로는 이길 수 없고 지킬 수 없으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 어떤 세상의 유혹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선을 행하는 자들이 되어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도 잘 했다고 칭찬 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시34:14절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 지어다" 벧전3:13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 하리요" 갈6:9절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4절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국가에 권위를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 본문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선을 행한 자에게 보상하여 선을 증진시키고, 또한 악을 행한 자에게 그것을 처벌하여 악을 억제하기 위함입니다. 선을 행한 자에게 칭찬한다고 하는 것은 국가가 선한 일들, 즉 평화를 수호하는 것, 법률과 질서를 유지하는 것, 인권을 보호하는 것, 정의를 증진시키고 궁핍한 자를 돌아보는 것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법에 따라 처벌해야 합니다.
여기 '하나님의 사자'란 표현은 '법과 질서를 주관하는 정부의 관원들을 하나님의 사자'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하나님의 일꾼, 하나님의 심부름꾼'이라는 뜻에서 사용된 말입니다. 그러니까 세상 관원과 지배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임명되어 '세상을 위하여 섬기는 자란 의미를 가진 자'란 의미입니다. 공직자는 하나님의 사자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가끔 못된 짓을 합니다. 우리는 얼마 전에 인천 북구청 세무공무원의 비리를 보았습니다. 먹어도 엄청나게 먹었습니다. 또 며칠 전에 신문을 보니까 어떤 세무 공무원은 빠징고에 2십7억이나 국고금을 빼 돌렸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여기 하나님은 공직자들에게 법을 집행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습니다. 이것을 칼에 비유했습니다. '칼'은 권력과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일부 공직자들이 그 칼을 잘못 남용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지배자에게 주어진 권력은 국민의 정의와 복지를 위하여 하나님이 맡기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공직자들이 법을 안 지키는 마당에 무슨 법이냐?"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아예 조그마한 교통법규도 안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히려 안 지키는 것이 용감한 행동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소한 법하나를 안 지킴으로써 오히려 자기가 영웅이 된 것처럼 생각한다면 얼마나 삐뚤어진 시민정신인가?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삐뚤어진 시민정신을 바로 잡아 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왜? 우리는 세상에 빛으로 보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하고 가르침으로써 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 '하'반절에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여기서 '진노'라 함은 하나님의 공의에 심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관원들에게 악을 행하는 자들을 심판할 수 있는 권세를 주었습니다.
▶세상의 법도 어기면 징계가 있듯이 하나님의 법도 어기면 반듯이 징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징계를 받을 경우 그 징계가 왜 왔는가?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 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불신앙과 불순종과 교만과 완악으로 달려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깨닫게 하기 위하여 징계의 잔을 주십니다. 세상의 징계는 감옥소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징계는 깨닫고 회개하기만 하면 더 좋은 것으로 축복해 주십니다.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 국가가 권위를 시행하는 수단으로 '칼'(공권력)로 무장시키신 이유는 죄가 없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죄가 있는 사람들을 처벌하여 백성들이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유신정권과 5·6공화국을 거치면서 국가의 공권력이 남용되어 질서를 유지하고 선한 자들을 보호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을 처벌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것이 아니고 그 반대로 정권유지를 위하여 무분별하게 공권력을 남용한 선례들을 목격한 바가 있습니다. 이것은 정당한 권위의 행사가 아니라 폭력입니다. 그래서 국가를 위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권위를 바르게 사용하여 본래 목적에 맞게 하나님의 영광과 백성들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공권력을 사용하도록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5절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무슨 말입니까? 굴복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죄를 지으면 잡으러 오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굴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혹시 관원들이 모르고 안 잡으러 왔다 하더라도 우리들은 강제적으로 잡혀가야 되는 사람이 아니라 양심에 의해서 살아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주님이 주신 양심대로 바로 살아야 되는 존재들입니다.
▶구원받아 중생한 사람들을 가리켜 '거듭난 양심, 선한 양심'이라고 합니다. 행23:1절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누구의 고백입니까?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이 귀한 믿음입니다. 행24:16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바울은 하나님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양심 따라 섬겼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선한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벧전3:16절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 선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길 뿐만 아니라 나라의 법과 질서도 잘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국가의 법과 질서에 순종하는 것이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나 형벌 때문에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자발적인 양심에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의 복종은 노예적인 복종이 아닙니다. 양심적인 복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세상의 법이 신앙 양심에 분명히 어긋나는 것이면 우리는 행5:29절에서 베드로가 선언한 것 같이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씀을 따라 행해야 될 줄 믿습니다.
▶6절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일군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세금을 잘 내라는 말씀입니다. 본문의 배경은 그 당시 유대인들이 공세를 내는 것은 로마 제국을 위하여 바치던 세금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의 원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세금을 내는 것은 마귀의 본부에 주는 것으로 알고 그 돈 가지고 로마정부가 더 막강한 힘을 가지고 탄압하게 되므로 세금을 내지 말아야 한다는 극단적 애국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세인들이 예수를 올무에 넣으려고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물었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저희의 악함을 아시고 말씀하시기를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셋돈을 내게 보이라"고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말씀하시기를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 배경을 본받아 바울도 세금을 바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납세는 국민의 의무입니다. 교육도 국방도 노동도 국민의 의무입니다. 의무는 지켜야 권리가 따라옵니다. 세무 공무원이 띄어 먹고, 안 띄어 먹고 간에, 정부가 맘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서 우리의 안녕과 행복을 위하여 세금을 내야 합니다.
▶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우리가 국가에 대하여 빚을 많이 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만약 나라가 없다면 우리가 존재할 수 있습니까? 국가가 없이 내 가정이 안정할 수 있습니까? 무질서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 지금 국가가 있고 법이 있고 관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범죄, 폭력, 살인, 납치 사건이 연일 터지는데 만약 무정부 상태라면 엄청난 혼란이 옵니다. 그렇습니다. 나라가 없으면 우리의 행복도 보장받을 수가 없습니다. 나라는 우리의 울타리입니다. 그러므로 좋던 싫던 세금을 내야 합니다.
▶7절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계속 공세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공세'는 모든 세금 및 공과금을 의미합니다.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이 말씀 속에 기독교인의 윤리적 자세가 들어 있습니다. 성도들끼리 물질 관계도 주고받는 것이 정확해야 합니다. 이 물질 문제 때문에 성도들이 제일 많이 시험에 듭니다.
▶성도들끼리 물질문제, 보증문제는 성경에서 금하고 있습니다. 잠6:1-2절 "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혔느니라." 잠11:15절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하여도 보증이 되기를 싫어하는 자는 평안하니라."
▶잠22:26절 "너는 사람으로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이 되지 말라" 이런 문제로 시험에 들지 마시고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이기 때문에 사람을 바라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나라에는 세금이 있듯이 영적인 세금도 있습니다. 십일조, 감사헌금, 절기헌금 등등이 잇는데 이런 것들은 강제적인 입장에서 내는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감사와 믿음의 씨앗으로 심어야 합니다.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나라를 다스리는 자들을 존경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위정자들에게 존경심이 없다면 결국 그들이 집권하는 정권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것이 되며 그렇게 되면 위에서 권세를 주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결과가 됩니다.
기독인은 사회의 안정과 평안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은 말씀을 지키는 것이고 주의 일을 할때 평안 할일 입니다. 렘29:7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니라"
▶국가에 대한 성도의 태도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국가제도를 세우셨고, 하나님의 영광과 백성들의 유익을 위하여 권위를 주셨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러한 국가에 대하여 당연히 우리는 그 권위에 굴복해야 합니다. 만약에 거기에 대하여 불복한다면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이 되며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게 됩니다. 우리가 굴복한다는 것은 본문에 기록된 대로 세금을 바쳐야 하고, 마땅히 그들을 존경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세우신 위정자들을 위해 깨어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