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수확
초등학교 교감으로 재직하는 교육대학 동기가 있다. 나랑 학번은 같아도 내가 대학을 늦게 가 나이는 적어도 친구처럼 지낸다. 동기는 젊은 날 한때 전교조 활동에 관심을 보인 적 있다만 교감으로 승진해 학교 관리자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잠시 지역교육청 장학사로 나가기도 하더니만 체질에 맞지 않아 학교 현장으로 복귀해 어느 교육연구회도 이끌며 교장 자격까지 취득했다.
친구와는 가끔 산행도 함께 다니지만 서로 일정이 달라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나는 틈이 나면 꾸준히 근교 산을 오르거나 들판이나 강둑을 즐겨 산책하는 편이다. 친구는 테니스 동호인들과도 어울리고 내외가 같이 4대강 자전거 순례도 다닌다고 한다. 그런 속에 친구는 틈틈이 제법 되는 텃밭을 일구며 산다. 친구 텃밭은 자신의 이름으로 된 땅이 아니고 창원시청 공한지다.
수년 전 사파동에 창원축구센터가 건립되었다. 푸른 잔디가 깔린 전용구장 외 여러 면 보조 경기장이 들어섰다. 축구선수와 지도자를 위한 휴게시설과 실내교육 공간까지 마련되어 있고 그 주변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인근 주민들의 산책코스로 즐겨 이용된다. 진해에서 동읍으로 가는 비음산 기슭 25호 대체국도 아래 일정 부분은 어린이 전용 축구장이 들어설 부지로 남겨 놓았다.
어린이 전용 축구장이 들어설 부지는 예전에 원주민들이 살던 때부터 경작지로 지금도 농작물을 가꾼다. 다만 진작 수용된 땅이라 소유권은 창원시청이지 싶다. 친구는 이태 전 아파트 주민 산악회를 통해 알게 된 사람으로부터 그곳 밭의 경작권을 승계 받았다. 창원 공단에 나가던 친구 지인은 직장을 광양으로 옮겨 떠나면서 친구에게 백 평 남짓한 텃밭의 경작권을 넘겨주더란다.
친구는 그곳 텃밭에다 갖가지 푸성귀를 가꾸고 있다. 이 가을에 심겨져 있는 채소만도 여러 가지다. 무와 배추는 기본이고 쪽파가 자란다. 시금치와 상추도 싹이 올라왔다. 여름부터 자라는 치커리도 아직 싱싱하다. 고추와 가지도 끝물 열매를 달고 있다. 대파도 심어 놓고 토란도 캘 즈음이다. 여름에는 오이와 토마토도 따 먹었다. 어디에서 참취와 천마도 종자도 구해 심어 놓았다.
친구는 지난해 가을 고구마를 제법 캐어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처제한테 보내 간식으로 쓰게 했단다. 친구는 올해도 고구마를 심었다. 나는 지난봄 고향을 다녀오던 걸음에 고구마 싹을 여남은 포기 가져와 친구 텃밭 모퉁이에 심어 두었다. 한 달 쯤 지나 친구 텃밭을 방문했더니만 고구마 싹은 뿌리를 내려 생기가 돌았다. 고구마 이랑으로 침범해 온 달개비와 환삼넝쿨을 걷어주었다.
그새 나는 평일은 물론 주말도 무척 바쁘게 보낸 나날이었다. 내가 주로 나다니는 산책이나 등산의 동선은 친구의 텃밭과 방향이 달랐다. 텃밭을 가보려 해도 마음뿐이지 시간이 나지 않았다. 그런 속에 친구는 이른 새벽이나 퇴근한 저녁 무렵 수시로 텃밭에 나가 푸성귀를 가꾸었단다. 어쩌다 안부 전화를 넣어보면 텃밭에서 따 온 깻잎이나 호박잎을 쪄서 쌈으로 잘 먹는다고 했다.
어느 날 집사람이 친구 텃밭에 심어 놓은 고구마한테 한번 들려보지 않아도 되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고구마가 잘 자라고 있을 테니 가을이 오면 뿌리를 한 자루 캐어 오마고 자신 있게 답했다. 그러자 집사람은 심어만 놓고 보살펴 주지 않고 무슨 면목으로 고구마를 깨 오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집사람은 고구마 생육특성을 잘 몰랐다. 고구마는 줄기가 나가면 그대로 두면 된다.
가을이 깊어가는 시월이 왔다. 지난주 토요일 이른 아침 친구와 연락하여 텃밭에서 만났다. 친구는 알곡이 여물은 들깨를 베고 나는 호미로 고구마 줄기를 들추어 뿌리를 캤다. 토실하고 발그스레한 고구마 뿌리가 흙살을 비집고 볼가져 나왔다. 몇 덩이는 들쥐가 먼저 시식한 것들도 보였다만 내가 캐 가는 고구마 뿌리가 더 많음에 감사했다. 집사람이 한동안 즐겨 먹을 고구마였다. 13.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