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모당(望慕堂)_ 멀리서 부모를 그리워한다.
눈부신 햇살과 파란 하늘빛 속에서 “떠나간 벗을 그리워한다.”꽃말을 가진 백일홍 나무(배롱나무)가 분홍빛 웃음을 웃고 있다. 뒤 쪽에서는 대나무가 잔잔한 박수를 보내고 있다.
망모당은 단정한 선비가 서책을 읽고 앉아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왕궁면 광암리 장암마을에 있는 망모당(望慕堂, 멀리서 추모한다)은 우리고장 익산 출신이며 조선 선조 때 문인이었던 표옹(瓢翁) 송영구(宋英?, 1556~1620년)가 은거하였던 집의 후원에 있던 별채이다. 선조 40년(1607년) 표옹이 동쪽 10리 거리 우산(紆山 현재 왕궁면과 완주군 봉동읍 제내리의 경계에 있는 산)에 모신 부친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 이 집을 지었다.
중국에서 하얀 연꽃인 백련을 처음 들여온 송영구가 고향 마을에 연못을 만들었다 전한다. 근처에 100여 명이 앉아서 놀 수 있는 넓은 바위가 있어 마을 이름을 장암(長岩)이라고 부르며 이 바위 밑으로 왕궁천(王宮川)의 냇물이 흐르고 있다.
내룡(來龍), 안산(案山), 득수(得水) 3박자가 갖춘 명당 송영구 고택의 본채와 사랑채는 사라지고 이 망모당 건물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망모당은 정면3칸,측면3칸의 팔작집으로 1979년 지방유형문화재 제90호로 지정되어 있다.
망모당 현판 글씨 왼쪽 밑에 ‘주지번서( 朱之蕃書)’가 뚜렷한 사연 속으로 빠져들었다.
국경을 초월한 스승과 제자의 愛_표옹 송영구와 주지번
때는 지금으로부터 400여년 왕궁 장암마을 표옹 송영구 씨댁 사랑채.
50대 초반의 표옹이 30대 후반의 낯선 복장을 한 이와 마주하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는 학문의 경지가 깊은 인물들이 모여 있는 한림원학사(翰林院學士)이며 대학자이자 문장가인 주지번이다. 그는 공식외교 사절단의 최고책임자인 정사(正使)의 신분으로 중국 황제의 황태손이 탄생을 알리기 위해 조선에 왔다. 서울에 있어야 할 그가 전라도 시골 장암마을까지 온 사연은 오직 하나 일생의 스승이자 은인이었던 표옹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1593년 명경(明京의)의 객관의 부엌.
여러 차례 시험에 낙방한 청년 주지번은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 장자의 남화경(南華經)을 읊조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관심을 보인 이가 당시 조선의 사신 표옹이었다.
표옹은 그에게 친절하게 좌초지종을 물어보았다.
“너는 누구이길래 이렇게 천한 일을 하면서 그 어려운 ‘남화경’을 암송할 수 있느냐?”
“저는 남월(南越) 지방 사람입니다. 몇 년 전 과거를 보기 위해 북경에 왔는데 여러 차례 시험에 낙방을 해서 노자가 다 떨어져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과거시험 답안지를 어떻게 작성하였는지 종이에 써보아라”
그가 문장에 대한 이치는 깨쳤으나 형식에는 미흡한 점이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표옹은 조선의 과거 시험에 통용되는 답안지 작성법을 가르쳐 주었다. 또 자신이 지니고 있던 중요한 책들을 필사해주고 상당한 금액의 돈까지 쥐어 주었다.
그날 그의 인생을 바꾼 스승을 만난 건 참으로 큰 행운이었다.
갑자기 그의 머리가 훤해지고 답답한 가슴이 뻥 뚫렸다.
한 줄기 강렬한 빛이 비쳐 왔다.
표옹의 지도와 배려 때문이었을까?!
주지번은 표옹을 만난 지 2년 후인 1595에 과거에 장원급제하였다.
객관 부엌에서 만난 지 13년 만에 그 청년이 중국을 대표하는 사신이 되어 머나먼 왕궁 장암마을까지 잊지 않고 찾아와 준 것이다.
주지번이 왕궁 장암마을에 올 때 전주객사를 거쳐 왔다. 그곳의 ‘풍패지관(豊沛之館)’이란 현판을 그가 써주었다. 이는 전주가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고향이기 때문에 전주 한고조의 유방의 출생지인 풍패와 같다하여 적은 것이다.
주지번은 은인이자 스승인 표옹에게 희귀한 책 80여권을 선물로 드렸다고 한다.
주지번서( 朱之蕃書)가 뚜렷한 ‘망모당(望慕堂)’ 현판 글씨를 써주었고 직접 산세를 파악해 표옹의 묘자리를 잡아 주었다고 한다.
진천 송씨의 유명한 떡‘백자편’과 소쇄일
진천 송씨 집안에는 ‘백자(百子)편’이라고 불리는 특이한 모습의 떡이 있다. 사람 발뒤꿈치 모양의 흰떡 수 십 개를 부채살처럼 둥그렇게 모아놓은 다음, 그 위에다 계속해서 둥그렇게 얹어놓는다. 마치 피라미드처럼 6∼7층을 겹쳐서 쌓아놓는다. 지금도 문중 시제 때는 만들어서 모두 먹는다. 백 명의 자손이라는 백자의 뜻과 같이 송씨 문중의 자손들이 번창하기를 의미하는 떡이다.
매년 음력으로 7월16일. 백중 다음날에 망모당에서는 소쇄일(掃灑日)이라는 행사가 있다. 집안 전체가 모여서 청소도 하고 같이 식사도 하는 날이다. 옛날에는 비단 송씨뿐만 아닌 인근의 선비들도 참여해서 백일장도 열렸다고 한다. 이 행사에 참석하느라고 여산에서 삼례에 이르는 일대가 흰옷 입은 선비들로 가득했다고 전한다.
맛의 무릉도원 ‘도문대작’ 촬영 에피소드
새벽녘에 비가 왔다. 꿈결에도 촬영일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날씨는 맑아졌다.
공교롭게도 맛의 무릉도원 ‘도문대작’ 촬영 일이었던 8월 16일에 망모당에서는 집안 행사가 있었다. 이 행사가 끝난 후 망모당에서 초라한 밥상을 앞에 둔 허균이 굶주린 채 책상 앞에 앉아 도문대작을 쓰는 장면을 촬영한 것은 오후 3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촬영 중간 중간에 비가 내렸다. 다행히 건물 안에서 찍어서 큰 불편은 없었다.
허균 역은 전 문화관광부장관이었던 배우 김명곤 씨가 맡았다.
오전에는 허균이 유배생활을 했던 함열현(현 함라) 관아터, 도축장터, 웅포덕양정 등을 배우 김명곤씨와 미륵사지 김승대 학예사로부터 설명을 듣는 장면을 촬영했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촬영일 8월 16일은 음력 7월 16일 소쇄일이었다.
주지번이 사신으로 왔을 때 허균이 종사관으로 그를 영접했다고 하니 놀랍다.
맛의 무릉도원 ‘도문대작’은 KBS 1TV에서 오는 9월 13일 토요일 오전 9시부터 53분간 방영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리움이 있다면
스승과 제자, 아이와 부모님의 손을 잡고 망모당을 한 번 들려보는 것은 어떨까?!
☞ 망모당 가는 길(익산 왕궁면 광암리 356번지)은 호남고속도로 익산 IC에서 보석박물관(오른쪽) 지나 새로 조성된 왕궁농공단지 정문 앞길을 따라 가다 보면 나온다.
우리들의 모교인 왕궁초등학교 옆에 있는 장암마을에 이러한 유물이 있는줄은 몰랐습니다.
일부러라도 한번 찾아볼려고 합니다.
첫댓글 06년도에 가보았지 그옆에 송병례가 살고있다우..담아둔 영상이있고..
소병례 집 부근인감, 오늘 아홉시에 도문대작이라는 프로를 꼭 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