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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하늘금은 지리주릉
가조(加祚)는 가야산 서남쪽의 명승지이다. 기이한 봉우리와 높은 재가 사방으로 둘러싸 둘
레가 3~40리이니, 특별한 경관이 서로 다투어 드러내고 자랑하는데 그 가운데 고견암(古見
庵)이 가장 기이하다. (……) 고견암에서 서쪽으로 6~7리를 내려와 발봉(鉢峰) 남쪽에 이르
면, 산이 제법 넓게 뻗어 여러 골짜기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모여서 폭포와 못을 이룬 것이
매우 사랑할 만한데, 비계산(飛鷄山)이 그 남쪽을 가로질러 마치 병풍을 펼친 듯하다. (加祚
爲伽倻西南之名勝。其奇峰峻嶺。四面環抱。周遭三四十里。殊觀異景。競爭發逞。而古見庵
爲最奇。(……)自古見庵西下六七里。至鉢峰之南。則山稍衍迤。水自諸壑來者。聚而成瀑潭
甚可愛。而飛鷄山橫其南如屛障然。)
―― 암서 조긍섭(巖棲, 曺兢燮, 1873~1933), 『견남정기(見南亭記)』
▶ 산행일시 : 2018년 11월 3일(토), 맑음
▶ 산행인원 : 12명(자연, 영희언니, 스틸영, 악수, 대간거사, 산정무한, 수담, 향상, 이공,
해피, 오모, 메아리)
▶ 산행거리 : GPS 도상 18.7km(1부 11.0km, 2부 7.7km)
▶ 산행시간 : 11시간 24분
▶ 교 통 편 : 25인승 버스 대절(두메 님 대차)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0 : 30 - 동서울터미널 출발
02 : 47 - 통영대전고속도로 인삼랜드휴게소
05 : 04 - 어인마을 가야산 무예학교, 산행시작
05 : 42 - 능선 진입
06 : 40 - 지남산(1,018.3m), 아침요기
07 : 35 - 의상봉(1,032.0m)
07 : 53 - 우두산(牛頭山, △1,046.3m)
08 : 15 - 등로 착오
09 : 22 - 마장재, 헬기장
09 : 52 - 1,094.1m봉
10 : 07 - ┣자 갈림길 안부
10 : 50 - 비계산(飛鷄山, △1,130.2m)
11 : 53 - 1084번 도로 대학동육교, 1부 산행종료, 이동
12 : 00 ~ 12 : 42 - 도리(道里) 모현정(慕賢亭), 점심
12 : 47 - 수포대(水瀑臺)
13 : 23 - 능선 진입
14 : 40 - 두무산(斗霧山, △1,036.2m)
15 : 15 - 두무산 신선 통시
15 : 40 - 두산지음재
16 : 28 - 모현정(慕賢亭), 산행종료
16 : 44 ~ 18 : 45 - 가조, 목욕, 저녁
20 : 35 - 경부고속도로 죽암휴게소
22 : 20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산행지도
2. 고도표
▶ 지남산(1,018.3m)
무박산행의 어려움은 기실 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바닥에 있다. 한밤중에 가조 어인마을을
찾아가느라 무척 애먹는다. 여느 무박산행 때처럼 새벽 4시가 되자 차내 불을 켜고 기상하였
으나 아직 목적지까지 40분은 더 가야 한다기에 얼른 소등하고 잠을 청한다. 오모 님이 잠시
라도 내비게이션에서 눈을 떼면 버스는 엉뚱한 곳으로 간다.
우두산 들머리로 잡은 어인마을까지 오는 데 당초 예상한 시간보다 1시간은 더 걸렸다. 1부
오전 산행거리가 도상 12km를 웃돌기에-아무리 등로가 오지 아닌 탄탄대로라 한들 절대거
리가 있다-최대한 일찍 산행을 시작하려던 계획이 약간 어그러졌다. 반면 이로 인해 사방
훤히 트인 암봉인 지남산 정상에서 장려한 일출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이만한 다행도 다시없
었다.
이 새벽 어인마을은 기온이 영하 1도다. 모처럼 고개 들어 쳐다보는 중천, 그믐달이 한층 차
갑게 느껴진다. 길섶 풀숲에 내린 서리는 헤드램프 불빛 비추면 반짝거리는 게 마치 서브다
이아라도 흩뿌려놓은 것 같다. 산자락 농로는 산속 임도로 이어지고 다시 묵은 임도를 오르
다가 숲속 소로로 구불대고 이윽고 인적마저 끊긴다.
지도 자세히 읽어 일단 계곡 너덜을 거슬러 오른다. 낙엽이 살짝 덮인 데는 미리 스틱으로 찔
러보아 물웅덩이가 아닌지 확인하고 지난다. 예전에 선바위 님이 이런 밤중에 계류를 건널
때 물풀 주변의 흰 물거품을 바위로 잘못 알고 덥석 딛었다가 풍덩하고 빠진 적이 있었다. 헤
드램프 비추어 길 아닌 길의 잡목 숲을 헤치랴 너덜 골라 딛으랴 사뭇 바쁘다.
그런 계곡 너덜도 더 뚫고 나아가기 어렵게 덤불숲이 우거졌다. 맨 앞에서 아는 길을 가는 것
처럼 등로를 개척하던 오모 님이 오른쪽 사면의 인적을 찾아낸다. 가파른 오르막이다. 공제
선 바로 위의 그믐달을 따기라도 하려는 듯 곧추 오른다. 길게 가로놓인 나뭇가지가 성가시
다. 대간거사 님이 오모 님 더러 발로 밟아 부러뜨리라고 주문하였으나 고사지가 아니라 부
러지지 않는 살아 있는 소나무 주간이다.
구부러질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저 소나무가 자기 인생관을 닮았다는 대간거사 님의 말에 웃
자니 배에 힘이 새어나가 오르기가 더 힘들다. 시바 료오타로(司馬遼太郞)의 역사소설인
『공명의 갈림길(功名が辻)』(1965년)이 언뜻 생각난다. 2006년에 일본 NHK가 그 소설
을 대하드라마로 방영하여 크게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전국시대의 혼란스런 세상을 어떻게
헤치고 나아가야 하는가 물음에 작가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고 넌지시 주장한다. 죽
어버리면(부러지면) 앞날을 기약할 수가 없고, 아무튼 살아남아야만(구부러지더라도) 공명
을 바랄 수 있으므로.
┳자 능선 진입. 잠시 휴식한다. 눈짐작으로는 꼭 왼쪽이 가야 할 방향 같은데 지도와 나침반
은 오른쪽을 가리킨다. 하긴 『내 청춘 산에 걸고』의 우에무라 나오미(植村直己, 1941~19
84)도 데날리 산 등정 때 안개 속에 길을 헤매면서 ‘믿을 것은 오직 나침반뿐’이라고 한 바
있다. 등로가 부드러운 것도 잠시다. 첨봉의 가파른 오르막이다. 앞사람이 낸 발자국계단을
따라 오른다.
지남산 아래 능선의 절벽과 맞닥뜨린다. 메아리 대장님이 척후하여 여기저기 쑤셔보지만 마
땅히 뚫을만한 곳이 없다. 왼쪽 사면을 길게 트래버스 하여 얕은 골짜기로 가서 그 골짜기를
따라 올라야 한다. 희끄무레하게 보이는 지남산 서남벽이 대단히 위압적이다. 거기에 다가간
다. 비탈진 골짜기는 갈지자 행보해도 바위 덮은 낙엽과 잡석이 얼마나 미끄러운지 일보 전
진하려다 이보 후퇴하기 일쑤다.
어렵사리 안부에 올라서고 배낭 벗어놓고 가쁜 숨 좀 돌리려 했더니 바로 위가 천하제일의
경점인데 아예 올라가서 휴식하자고 한다. 한 피치 바위 슬랩을 기어오른다. 그랬다. 암봉인
그래서 사방 일망무제인 지남산 정상이다. 새날의 역사를 목도한다. 여명의 벌건 기운이 반
공을 두르고 그 아래 뭇 산들은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 바위 저 바위에 올라 가
깝게는 비계산, 두무산, 오도산, 박유산, 금귀산, 보해산, 흰대미산, 양각산, 수도산, 단지봉,
가야산, 남산제일봉을 보고 또 보며 거기에 남긴 저간의 발걸음을 추억한다.
광활한 가조 들판 건너 황매산, 지리주릉, 백두대간, 육십령, 덕유주릉은 그 윤곽만으로 반갑
다. 때마침 운무를 뚫고 둥그런 불덩어리 해가 솟아오르니, 일순 천지가 숨을 죽이는 덩달아
우리도 숨을 죽이는, 장관도 이런 장관이 없다. 이때만은 평소의 우리 같지 않게 진지하고 경
건하다.
3. 앞은 장군봉, 멀리는 지리주릉
4. 황매산
5. 보해산, 멀리 안부는 백두대간 육십령
6. 지남산 정상에서 바라본 일출
7. 앞쪽 가운데는 장군봉
8. 우두산 가는 길
9. 의상봉, 왼쪽 멀리는 지리산 천왕봉
10. 멀리 가운데는 황매산
11. 지리산 천왕봉
12. 앞은 장군봉
▶ 의상봉(1,032.0m), 우두산(牛頭山, △1,046.3m)
지남산 내려 의상봉 가는 길. 날이 밝아서인가. 한결 길이 풀린다. 바윗길을 내린다. 슬랩에
고정 밧줄이 매여 있다. 능선 마루금은 우리로서는 오르내릴 수 없는 암릉이다. 마루금을 약
간 비킨 오른쪽 사면으로 길이 잘 났다. 봉봉 오르내리는 굴곡이 꽤 심하다. 곳곳의 인적 쫓
아 암릉에 오르면 첩첩 산의 조망을 즐길 수 있는데 지남산 정상에서의 그것만도 못하다.
울창한 소나무 숲을 지난다. 거창이 우리나라 굴지의 송이 산지라고도 하니 수긍이 간다. 이
때는 눈이 한가하다. 볼 것이 없기도 하거니와 갈 길이 먼 탓이다. 저마다 잰걸음하고 봉우리
를 우회하는 길이 나오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즉각 따른다. 이러다 혹시 엉뚱한 길로 빠지는
것은 아닌지 불안을 느낄 만큼 산허리를 길게 돌아간다.
의상봉을 그렇게 돌아 안부에 올라선다. 데크계단 209개 놓인 의상봉을 오를 시간적 여유가
없다. ‘지남일출’을 얻었으니 ‘의상조망’을 버린다고 해서 조금도 섭섭할 게 없다. 신라 문무
왕 때 의상대사가 참선하였다는 의상봉은 가조8경 중 제1경이다. 다른 8경은 제2경 고견폭
포(견암폭포), 제3경 용소, 제4경 각시소, 제5경 비계풍혈, 제6경 박유산, 제7경 미녀봉,
제8경 수포대이다.
곧장 우두산을 향한다. 슬랩 덮은 데크계단을 오른다. 계단마다 경치가 약간씩 다르게 보이
는 빼어난 경점이다. 걸음마다 전후좌우를 살핀다. 암릉을 살짝 비켜 오르고 빈 몸으로 내려
오는 일단의 등산객들과 마주친다. 수도지맥을 종주 중인 봉산악회인데 우두산 정상에 배낭
을 벗어놓고 의상봉을 다니러간다고 한다. 우두산에서 의상봉까지 편도 0.6km이다. 우리는
바로 그 곁을 지나오면서도 정상을 오르지 않았다고 굳이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우두산 정상. 여태 남쪽을 조망하였으니 이제는 북쪽을 조망한다. 가야산의 웅장무비한 전경
이 한 눈에 숨 막히게 들어온다. 물론 우두산 나이프 릿지에 올라서면 유장한 지리주릉이며
돌올한 의상봉을 바라볼 수 있다. 금계 황준량(錦溪 黃俊良, 1517∼1563)이 가을날 가야산
을 완상한 여기일까? 한편 가야산을 우두산이라고도 했다. 그의 시 「가을날 가야산을 완상
하며 주지승의 시축에서 차운하다(秋賞伽倻次持僧軸)」의 일부다.
실타래 같이 많은 나그네 회포 금하기 어려워 客懷難禁繭絲多
한 번 우두산 들어가 산수 구경하였네 一入牛頭賞磵阿
드넓은 구름 낀 산 모두가 즐거운 곳이러니 浩浩雲山皆是樂
아득히 넓은 조화는 본디 한계가 없네 茫茫元化本無涯
13. 장군봉과 우리가 지나온 능선
14. 앞은 가조
15. 앞은 죽전저수지
16. 가야산
17. 의상봉
18. 가운데는 가조, 박유산
19. 멀리는 지리주릉
20. 마장재 가는 길
21. 가야산
22. 멀리는 지리주릉
▶ 비계산(飛鷄山, △1,130.2m)
우두산을 오르내릴 아기자기한 암릉을 생각하여 손맛 좀 보련 했는데 다 틀렸다. 잔도를 설
치하거나 데크계단을 놓아버렸다. 산을 아주 망쳤다. 상심하여 가니 등로가 눈에 잘 들어오
지 않는다. 어느 누구라도 전에 못 보던 길이라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한참을 잘못 내
려왔다. 고견사로 가는 길이다. 뒤돌아 오른다. 이래서 내가 잠시 선두로 간다.
오지를 만들어서 간다. 왼쪽 사면을 대 트래버스 한다. 지능선 세 줄기를 횡단한다. 비지땀을
쏟으며 능선에 올라서고, 의상봉을 다녀온 봉산악회 회원들을 만난다. 우리 카페를 방문하여
산행일정을 이미 알고 있는 그들에게-오지산행팀이 이런 데서 길을 잘못 들다니-여간 민망
한 노릇이 아니다. 소득이라면 의상봉의 또 다른 모습을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는 것.
짧건 길건 슬랩만 나오면 데크계단으로 덮어버렸다. 나지막한 봉봉을 넘는다. 말목재 부근인
가 소나무 그늘 아래 장의자 놓인 쉼터에서 휴식한다. 휴식할 때마다 입은 줄줄이 대기하는
과일을 먹어주기에 바쁘다. 사과, 귤, 또 사과, 감, 청포도, 토마토, 거봉포도, 또 귤 ……. 여기
오는 내내 가을이 떠나간 자리가 스산하더니만 마장재 가는 길에서 하늘거리는 억새를 본다.
╋자 갈림길 안부로 너른 헬기장인 마장재 주변의 억새도 볼만하다. 봄이면 이곳은 철쭉동산
이다. 1,094.1m봉 오름길. 길고 가파르다. 늘어졌던 걸음을 바짝 조인다. 숲속 그늘에 들면
서늘하다가도 그늘 벗어나면 오뉴월이다. 하도 자주 갈지자 걸음하다 보니 오르막이 아닌 아
무 데서나 갈지자 걸음해진다. 이 다음 1,104.8m봉은 왼쪽 사면을 도는 길이 잘 나서 직등하
지 않고 그에 따른다.
우리 일행 중 1,104.8m봉을 직등한 이는 자연 님뿐이 아닌가 한다. 마루금 유지 내지는 산
욕심이 도져서가 아니다. 비계산 정상으로 잘못 알아서다. 그래서 비계산 정상을 맨 나중에
올랐다. 1,104.8m봉 넘고 비계산 정상을 가는 길은 천상의 원로라고 할만하다. 사방 훤히 트
인 바윗길이다. 걸음걸음이 경점이다. 전후좌우 가경을 둘러보며 감탄하느라 입안의 침이 다
밭는다.
비계풍혈을 구름다리로 지나고 슬랩을 데크계단으로 오르면 비계산 정상이다. 비계산(飛鷄
山)이 ‘닭이 날아가는 형상’이라는데 나로서는 이해부득이다. 멀리서 보면 정상의 삐죽삐죽
솟은 바위가 닭 벼슬의 모양이다마는. 자연 님이 당도하자마자 얼른 단체기념 찍고 하산을
서두른다. 순진한 자연 님을 위하여 도자 님이 간혹 이용하는 수법을 소개한다. 자연 님만 보
시기 바란다.
(앞서간 사람들이 후미가 어디쯤 오는지 궁금하여 부르면 뻔히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대답
하지 않고 묵살한다. 대답을 하게 되면 떨어진 거리를 가늠하여 안심하고 곧장 가버린다. 아
무런 대답을 하지 않으면 선두는 여러 걱정하여 기다려준다. 선두가 있는 데 가까이 가서는
당장 나타나지 말고 몰래 나름대로 휴식한 후 헐떡이는 모습을 가장하여 나타난다. 또 얼마
간 휴식할 틈을 벌 수 있다.)
비계산에서 가장 빠른 하산 길을 잡는다. 비계산 남벽 아래 도리다. 가파른데다가 햇낙엽이
깔려 있어 상당히 미끄럽다. 눈길보다 다 까다로운 낙엽길이다. 아울러 앞뒤 안전거리와 안
전시간을 유지한다. 앞사람이 낙엽 지쳐 이는 흙먼지가 자욱하다. 무덤이 나오고 평탄한 성
묫길이 임도다. 쑥부쟁이와 생강나무가 붙들고 있는 가을을 잠깐 본다.
23. 앞 왼쪽은 미녀봉, 멀리는 황매산과 지리산 천왕봉
24. 왼쪽은 오도산, 그 앞 오른쪽은 미녀봉
25. 멀리는 지리주릉
26. 멀리 왼쪽은 황매산 그 뒤 오른쪽은 웅석봉
27. 앞은 가조 들판(일부), 멀리는 지리주릉
28. 앞 왼쪽은 미녀봉
29. 앞은 비계산 북사면, 멀리 왼쪽 희미한 산은 비슬산
30. 멀리는 지리주릉
31. 멀리는 지리주릉
32. 앞 안부는 두산지음재, 멀리 하늘금은 미타산(?)
32-1. 비계산 정상에서, 스틸영 님
33. 비계산 정상에서
▶ 두무산(斗霧山, △1,036.2m)
1084번 도로 대학동육교 앞에 내리고 연락 받은 우리 버스가 때마침 달려온다. 두무산 들머
리인 모현정으로 이동한다. 우선 모현정 앞 양광 가득한 공터에 빙 둘러앉아 점심밥 먹는다.
선현의 정각 앞이라 우리의 식사와 백주 반주가 얌전하다. 모현정(慕賢亭)은 한훤당 김굉필,
일두 정여창 선생과 함께 학문을 강마하시던 최숙량 등 삼현을 추모하기 위하여 평촌공의 후
손과 향림 30고을 1000여명이 정성을 모아 건립한 정각(亭閣)이라고 한다.
두무산은 모현정에서 위쪽 수포대를 지나 골짜기로 오르는 길이 있다. 모현정을 돌보는 사
람이 사는 허름한 집 앞을 지난다. 잘 생긴 황구가 꼬리치며 반긴다. 그 위 반석지대가 수포
대다. 문화재로서 한창 새롭게 단장하는 중이다. 옥계가 폭포로 떨어지고 반석을 이리저리
휘돌아 내린다. 폭포 옆 석벽에 새긴 글씨는 暄蠹兩先生丈屨之所(훤두양선생장구지소), 坪
村崔公講磨之地(평촌최공강마지지)이다. 그 옆에 ‘水瀑臺’라고 새겼다.
장구(丈屨)는 지팡이와 짚신이란 뜻이니 이름난 사람이 머물러 있던 자취를 비유적으로 이
르는 말이다. 한훤당 김굉필(寒暄堂金宏弼, 1454~1504)과 일두 정여창(一蠹 鄭汝昌, 1450
∼1504)이 머물렀고 또한 평촌 최숙량(坪村 崔淑梁 1456~1515)이 강론하고 학문을 닦았
던 곳이다.
수포대 지나면 임도와 만나고 임도는 계곡을 따라 이슥히 오른다. Y자 갈림길이 나오고 오른
쪽은 오도산 2.1km, 왼쪽은 두무산 4.3km이다. 임도가 끝나고 계곡의 소로를 간다. 계류를
건너고 건넌다. 이정표가 안내한 지정등로의 인적이 흐릿하다. 덤불과 잡목이 우거지고 소나
무는 떼로 몰살당하여 길을 막는다. 아마 2010년 9월 태풍 콘파스의 소행이리라.
이 계곡 길은 분수령인 두산지음재로 이어지고 거기서부터는 두무산이나 오도산이나 탄탄대
로로 간다. 우리는 그리 진득하지 못하다. 탄탄대로가 못마땅하여 큰바위 돌아가는 여울에서
계곡 소로를 버리고 왼쪽 가파른 생사면을 치고 오른다. 한 피치 오르면 그리 사납지 않은 능
선 길이다. 잔봉우리 넘고 넘으며 차츰차츰 고도를 높인다.
첩첩 산 한 꺼풀씩 벗겨내어 마침내 두무산의 서쪽 너른 품에 다가선다. 촘촘한 등고선이 자
랑이다. 우리는 대담한 등정을 노린다. 두무산 서쪽 사면(서벽이라고 해도 무방하다)을 더덕
대형 펼쳐 오르는 것이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된다. 촘촘한 등고선 17개 선이 나
란하여 멀리서는 넙데데하게 보였으나 다가가자 제법 굴곡이 졌다.
우선 너덜을 오른다. 이 너덜지대를 벗어나면 초지이리라 자못 기대하고 덤빈다. 그런데 웬
걸 너덜지대를 벗어나도 그에 버금가는 돌투성이다. 더덕은커녕 한 발 한 발 오르는 게 급선
무다. 가파른 오르막에 붙잡을만한 잡목이나 돌부리가 보이지 않아 일일이 발 디딜 데를 만
들어 가며 오른다. 그나마 매끈한 암벽과 만나고 그 밑을 살금살금 트래버스 하여 협곡을
긴다.
저 위는 블라인드 코너가 아닐까 불안하였으나 다시 내려가야 할 경우 내 배낭 속의 슬링을
믿어 일로 직등한다. 오르고 보니 의외로 경사가 느슨한 엷은 능선이다. 배낭 벗어놓고 가쁜
숨을 돌린다. 흩어졌던 여러 일행들이 속속 합류한다. 두무산 정상이 멀지 않았다. 이제 고도
100m쯤이야 대번에 돌파하여 주릉에 올라서고 곧 두무산 정상이다. 선두그룹이다. 맨 나중
은 가장 된 고역을 치른 오모 님과 이공 님이다.
두무산(斗霧山)이란 이름의 유래는 이 산봉우리에 항상 안개가 끼여 있어서라고 한다. 삼각
점은 ‘합천 303, 1981 재설’이다. 조그만 바위에 교대로 올라 발돋움하면 미녀봉 주변의 첩
첩 산과 드넓은 가조 들판, 박유산 연릉 등을 조망할 수 있다. 하산. 잘난 등로를 따라 내린
다. 수렴(樹簾)에 가린 오도산을 흘깃흘깃 바라보며 간다. 두무산 신선 통시를 구경한다. 두
무산 신선이 이 통시에서 합천 묘산 쪽을 바라보며 큰일을 보시니(그리고 학문을 닦으시니)
바라보는 묘산에는 신선을 닮아 인물이 많이 나고 뒤로 하는 거창 가조에는 농토가 비옥하여
부자가 많이 난다고 한다.
산책로인 평탄한 길이 끝나고 급전직하로 떨어진다. 비계산을 내릴 때와 비슷하다. 사정없이
낙엽 지쳐 흙먼지 뿌옇게 일으키며 내리쏟는다. 바닥 친 안부는 ┣자 갈림길인 두산지음재
다. 직진은 오도산, 오른쪽은 수포대, 모현정으로 간다. 지능선을 약간 내리면 계곡길이 시작
된다. 계곡 옆의 잡목 숲속 소로로 간다. 골짜기 해거름의 추색은 더없이 찬란하다. 두고 가
는 가을이 못내 아쉬워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34. 미숭산(?)
35. 수포대(부분)
36. 앞 왼쪽은 미녀봉, 두무산 정상에서
37. 가조 들판
38. 앞 오른쪽은 미녀봉 연봉
39. 왼쪽 중간은 숙성산
40. 두무산 정상에서
41. 수포대, 모현정 가는 길
첫댓글 같은 산을 가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가는 것도 묘미가 있네요. 왠지 두무산에 대해 해박해진 느낌?
서브 다이아, 오랫만에 들으니 정겹네요. 명품 사진과 글을 보니 기억속에 내장되지 못했던 경관들과 감정들이 되살아납니다. 이래서 산행기의 가치를 알겠네요.
가는 가을을 붙잡고 싶지만,,,뼈빠진 오르내림이었지만 눈이 호강한 가조벌판 주변이었습니다
역시~~~
사진기는 니콘인지...
아님 찍사가 악수님인지...
멋진 사진으로 산행내내 나왔던 감탄사가 다시금 되새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