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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선행을 쌓은 집은 필히 경사가 따른다.
積 : 쌓을 적(禾/11)
善 : 착할 선(口/9)
之 : 갈 지(丿/3)
家 : 집 가(宀/7)
必 : 반드시 필(心/1)
有 : 있을 유(月/2)
餘 : 남을 여(食/7)
慶 : 경사 경(心/11)
선행을 많이 하거나 옛날 동냥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적선이라 했다. 선행을 많이 쌓은 집안(積善之家)은 그 자손들에게 필히 경사로운 일이 넘쳐난다(必有餘慶)고 믿었다. 앞뒤의 두 글자씩을 따서 적선여경(積善餘慶)이라 줄여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좋은 일을 많이 하라는 격언은 예부터 집안마다 가훈으로 좌우명으로 삼고 권장되어 왔다. 착한 일과 악한 일을 하면 그에 따라 좋고 나쁜 결과가 있다는 선유선보 악유악보(善有善報 惡有惡報)도 같은 말이다.
삼대 거지 없고 삼대 부자 없다는 속담이 전하지만 적선해도 오래 가지 않는다기보다 계속적으로 선행을 해야 한다고 보면 좋다. 이 성어는 비슷한 표현으로 여러 곳에서 전하는데 역경(易經)에 실린 것이 최초일 것이다.
삼경(三經)의 하나로 주(周)나라 때부터 전한다고 주역(周易)이라고도 하는 책이다. 팔괘(八卦) 중에서 건괘(乾卦)와 곤괘(坤卦)의 해설을 담은 문언전(文言傳)의 부분에 있다.
積善之家 必有餘慶
적선지가 필유여경
積不之家 必有餘殃
적불지가 필유여앙
臣殺其君 子殺其父
신살기군 자살기부
非一朝一夕之故 其所由來者 漸矣
비일조일석지고 기소유래자 점의
선을 쌓은 집은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고 불선(不善)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남은 재앙이 있다. 신하가 그 임금을 죽이고 자식이 아비를 죽이는 것이 하루아침 하루 저녁의 까닭이 아니고 그것이 싹튼지는 오래다.
착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오래 쌓은 뒤라야 복을 받고 화를 입게 된다는 뜻이다. 나무를 심어 과일을 따듯이 꾸준한 노력이 계속되지 않으면 그 성과를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나무에서 과일을 따게 되었을 때 그 관리를 소홀히 한다고 해서 금방 나무가 죽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몇 해를 거쳐 게을리 하게 되면 비로소 그 과일 밭은 완전히 버리게 된다.
그러나 노력을 쌓아 좋은 결과를 얻기는 어렵고 게으름을 피워 얻은 결과는 망치기는 쉽다. 복과 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선을 쌓는 집안은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고, 착하지 못한 일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는 재앙이 있다. 그러면서 신하가 임금을 죽이거나 자식이 아비를 해치는 것은 모두 그 집안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했다.
한나라 유향(劉向)이 편찬한 설원(說苑)이란 책에는 불선(不善)을 악(惡)이란 글자로 바꾸어 적악지가 필유여앙(積惡之家 必有餘殃)이라고 했다. 또 이 말이 너무 길기 때문에 적선여유경(積善餘有慶), 적악유여앙(積惡有餘殃)이라고도 하고 적(積)을 생략하여 선유경악유여앙(善有慶惡有餘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선을 쌓은 것 중에는 남이 아는 그런 선보다는 남이 알지 못하는 음덕(陰德)과 같은 선을 쌓는 것이 참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남이 몰라주는 노력과 봉사가 다음 덕에 속하는 일이다. 담총(談叢)편에 실려 있다.
경주의 최부자는 십이대 진사에 십이대 삼척석의 부자로 살면서 흉년이 들면 가난한 소작인(토지경작자)에게는 소작료 즉 도조곡(賭租穀)을 받지 않았다고 하며, 사방(四方) 백리거리 내에 거주인으로 식량이 없어 굶주리는 사람이 없게 하였으며 또 흉년에는 토지(논)를 매입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토지 소유자가 일시적 곤란을 참지 못해 논을 매도하게 되면 그다음 해 곤란한 생활을 하게 되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12대 진사라 했는데 진사는 소과(小科) 합격자로써 벼슬자리에 나가지 않는 명예직을 이르는 말이다. 즉 선비로서 품의와 자격을 갖춘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자자손손 십이대에 관직에는 나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진정한 적선지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경신(敬愼)편에 나오는 착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 하늘이 복으로써 보답하고, 나쁜 일을 한 사람에게는 하늘이 재앙으로써 보답한다.
人爲善者(인위선자)
天報以福(천보이복)
人爲不善者(인위불선자)
天報以禍(천보이화)는 말은 명심보감(明心寶鑑) 계선(繼善)편 첫머리에 올랐다.
좋은 일을 하더라도 떠벌리는 것보다는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이 더욱 값지다. 그래서 홍자성(洪自誠)이 채근담(菜根譚)에서 말했다. '드러난 선은 공이 작고, 숨긴 선은 공이 크다.'
善之顯者功小(선지현자공소)
而隱者功大(이은자공대)
세상에는 악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이 더 많은 것같이 보인다. 살인, 강도가 끊이지 않고 사기범도 넘쳐난다고 매체마다 보도한다. 국제적으로는 시민을 학살하는 테러도 줄이어 일어난다. 하지만 선행하는 사람은 더욱 많다. 다만 드러나지 않게 선행을 쌓아가기 때문이다. 악행이든 선행이든 하늘이 언젠가는 갚음한다.
이 말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글이 있어 옮겨봅니다. 충남 논산에 가면 광산김씨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종택이 있다. 사계 집안은 충청도 3대 명문가 중의 하나이다. 충청도 3대 집안을 꼽을 때 흔히 사계 김장생 집안, 우암 송시열 집안, 명재 윤증 집안을 꼽는다. 충청도 일대의 식자층 사이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가 있다. 사계집안의 적선에 관한 이야기다.
집안의 제삿날이었다. 제삿날 사용하기 위해서 백정 집에 가서 돼지고기를 샀다고 한다. 그 돼지고기를 사서 부엌에 걸어 놓았다. 그런데 집에서 키우던 개가 부엌에 들어가 그 돼지고기를 덥썩 뜯어먹는 게 아닌가. 그리고 나서 얼마 있다가 그 개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치다가 죽는 장면을 집안 식구들이 목격하였다. 돼지고기가 상한 고기였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사계의 아버지는 아랫사람으로 하여금 백정 집에 다시 찾아가서 나머지 돼지고기를 모두 사 오도록 했다. 두세 마리 분량의 돼지고기를 다시 구입해서 어떻게 하였을까. 모조리 땅에 묻어버렸다. 동네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조용하게 묻었다고 한다. 만약 고기집의 그 상한 고기를 동네 사람들이 먹으면 식중독을 일으키니까 땅에 묻어버렸던 것이다.
이러한 처사가 바로 사계 집안 어른들의 처신이었다. 보통의 인품 같았으면 상한 돼지고기를 팔았던 백정을 잡아다가 사정없이 볼기를 때렸을 것이다. 백정 자신은 상한 고기인 줄은 몰랐겠지만,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사건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계의 아버지는 그 나머지 고기마저 돈을 지불하고 사 오도록 조치하였다. 물론 상한 돼지고기였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말도록 엄명을 내렸다.
조용하게 처리하였다. 영문을 모르는 고기장수 입장에서는 수지맞는 일이었을 것이다. 백정도 볼기를 맞지 않고 동네 사람들도 모두 사는 일 처리를 한 셈이다. 이러한 가풍에서 사계가 태어나 성장하였음을 주목해야 한다.
반대로 적불선지가 필유여앙(積不善之家 必有餘殃)은‘선하지 않은 행실을 쌓는 집에는 반드시 재앙이 돌아온다’는 뜻을 지녔습니다. 선하지 않은 행동을 한 사람의 자손이 나쁜 일을 겪게 되는 일은 우리 역사 속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어린 조카인 단종에게 왕위를 빼앗았던 조선의 7대 임금 세조가 대표적이다.
세조는 단종이 죽던 해에 큰 아들이었던 의경 세자를 잃었고, 둘째 아들이었던 예종 역시 25세의 젊은 나이로 죽고 말았습니다. 예종을 이어 왕에 올랐던 의경 세자의 둘째 아들인 성종은 나라를 훌륭히 다스렸지요. 하지만 바로 뒤의 왕인 연산군은 포악한 정치를 펼쳐 폐위되기까지 합니다.
이 모든 일이 모두 세조 탓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선지가 필유여경 적불선지가 필유여앙이 주는 교훈을 여실히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1998년 미국 하버드 의과 대학에서 한 연구 팀은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 팀은 하버드 학생들에게 테레사 수녀가 인도에서 환자를 돌보며 봉사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여 준 다음, 이들의 면역 항체 수치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측정해 보았다. 놀랍게도 그 수치가 이전보다 50% 이상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남을 돕는 활동을 통해 일어나는 정신적, 신체적 변화를‘마더 테레사 효과’라고 이름 붙였다. 즉, 사람들이 선한 일을 생각하거나 그것을 간접적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몸 속에서 놀라운 치유력과 면역 항체가 생긴다는 것을 보여 준 실험이었다. 물론 자신이 직접 타인을 위한 봉사나 선행을 행하면 그 이상의 효과를 가져 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 積(적)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벼화(禾; 곡식)部와 음(音)을 나타내는責(책, 적)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責(책, 적)은 여기에서는 똑같이 생긴 것이 많이 모임을 뜻한다. 禾(화)는 곡식을, 積(적)은 곡식을 거두어 들여 많이 비축하는 일을 뜻하는데, 나중에 곡식에 한하지 않고 물건이 모이다, 쌓이다 따위의 뜻으로 쓰였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儲쌓을 저(儲), 蘊쌓을 온(蘊), 貯쌓을 저(貯)이다. 용례로는 사물에 대하여 긍정하고 능동적인 것을 적극적(積極的), 많이 모이는 일을 축적(蓄積), 일정한 평면이나 구면의 크기를 면적(面積), 물건이나 일이 산더미처럼 많이 쌓임을 산적(山積), 쌓여서 막힘을 적체(積滯), 작은 것도 많이 모이면 커진다는 적토성산(積土成山),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적진성산(積塵成山), 작은 것도 쌓이면 크게 된다는 적소성대(積小成大) 등에 쓰인다.
▶ 善(선)은 회의문자로 양(羊)처럼 순하고 온순하며 부드럽게 말(口)하는 사람을 나타내어 '착하다'를 뜻한다. 옛날 재판에는 양 비슷한 신성한 짐승을 썼다. 신에게 맹세하고 한 재판이란데서 나중에 훌륭한 말이 훌륭함, 좋다의 뜻이 되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악할 악(惡)이다. 용례로는 잘못을 고쳐 좋게 함을 개선(改善), 가장 좋음을 최선(最善), 착한 것과 악한 것을 선악(善惡), 선량한 마음이나 착한 마음을 선의(善意), 지난날의 잘못을 고치어 착하게 됨을 개과천선(改過遷善),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다는 다다익선(多多益善), 착한 남자와 착한 여자라는 선남선녀(善男善女), 착한 행실을 권장하고 악한 행실을 징계함을 권선징악(勸善懲惡), 잘한 뒤에 처리한다는 선후처치(善後處置) 등에 쓰인다.
▶ 之(지)는 상형문자로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이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나 어조사로 차용한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딸이 시집가는 일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 즉, 어떤 일에 주견(主見)이 없이 갈팡질팡함을 이르는 말 지남지북(之南之北) 등에 쓰인다.
▶ 家(가)는 회의문자로 宊(가)와 동자(同字)이고, 姑(시어미 고)와 통한다. 집(갓머리(宀; 집, 집 안)部와 안에서 돼지(豕)를 기른다는 뜻을 합(合)하여'집'을 뜻한다. 家(가)는 일부 한자어 명사 다음에 붙어 그 방면의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나 또는 어떤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어떤 일에 능하거나 또는 지식이 남보다 뛰어난 사람, 어떤 것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란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집 당(堂), 집 우(宇), 집 택(宅), 집 실(室), 집 궁(宮) 등이 있다. 용례로 가사(家事)는 집안 살림에 관한 일, 가출(家出)은 집에서 나가 돌아오지 않음,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은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된다는 말, 가보(家寶)는 대대로 전하여 내려오는 집안의 보물, 빈한(貧寒)한 집안이라서 아무것도 없고, 네 벽만 서 있다는 가도벽립(家徒壁立), 타국이나 타향에 살 때는 고향 가족의 편지가 더없이 반갑고, 그 소식의 값이 황금 만 냥보다 더 소중하다는 가서만금(家書萬金) 등에 쓰인다.
▶ 必(필)은 회의문자이나 형성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八(팔; 나눔, 필)과 주살익(弋; 줄 달린 화살)部의 합자(合字)이다. 땅을 나눌 때 말뚝을 세워 경계를 분명히 하여 나눈다는 데서 '반드시'의 뜻으로 쓰인다. 용례로는 없어서는 아니 됨을 필요(必要), 필수(必須), 없어서는 아니 되는 모양을 필수적(必需的), 필요로 하는 성질을 필요성(必要性), 아내는 반드시 남편의 뜻을 좇아야 한다는 여필종부(女必從夫),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죽게 마련이라는 생자필멸(生者必滅), 처음에는 시비 곡직을 가리지 못하여 그릇되더라도 모든 일은 결국에 가서는 반드시 정리로 돌아간다는 사필귀정(事必歸正), 헤어진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돌아오게 된다는 거자필반(去者必返) 등에 쓰인다.
▶ 有(유)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달월(月; 초승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𠂇(우; 又의 변형)로 이루어졌다. 있는 것, 존재하는 것을 뜻한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재(在), 있을 존(存)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망할 망(亡), 폐할 폐(廢), 꺼질 멸(滅), 패할 패(敗), 죽을 사(死), 죽일 살(殺), 없을 무(無), 빌 공(空), 빌 허(虛)이다. 용례로는 간직하고 있음을 보유(保有), 가지고 있음을 소유(所有),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음을 유명(有名), 본디부터 있음을 고유(固有), 공동으로 소유함을 공유(共有), 효력이나 효과가 있음을 유효(有效),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라는 유비무환(有備無患), 지금까지 아직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음을 미증유(未曾有), 계란에도 뼈가 있다는 계란유골(鷄卵有骨), 웃음 속에 칼이 들어 있다는 소중유검(笑中有劍), 입은 있으나 말이 없다는 유구무언(有口無言) 등에 쓰인다.
▶ 餘(여)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밥식변(飠=食; 먹다, 음식)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余(여)가 합(合)한 글자이며 먹을 것이 남아 돌다에서 '남다, 나머지'의 뜻으로 나중에 약자(略字)로서 余(여)를 쓴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남을 잉(剩), 두터울 후(厚), 도타울 돈(敦), 짙을 농(濃), 풍년 풍(豊)이다. 용례로는 넉넉하고 남음이 있음을 여유(餘裕), 남은 땅을 여지(餘地), 큰 물결이 지나간 뒤에 남는 잔물결을 여파(餘波), 남은 시간을 여가(餘暇), 여러 가지로 뒤얽힌 복잡한 사정이나 변화를 우여곡절(迂餘曲折), 막다른 골목에서 그 국면을 타개하려고 생각다 못해 짜낸 꾀를 궁여지책(窮餘之策), 독서를 하기에 적당한 세 여가로 즉, 겨울, 밤, 비올 때라는 독서삼여(讀書三餘), 여유가 가득하다는 여유만만(餘裕滿滿)등에 쓰인다.
▶ 慶(경)은 회의문자로 庆(경)의 본자(本字)이다. 남의 좋은 일에 사슴(鹿)을 선물로 가지고 가서(夂; 머뭇거림, 뒤져 옴部) 축하한다는(心) 데서 '경사'를 뜻한다. 옛날 경사스러운 일에 鹿皮(녹비)를 바친 데서 鹿(록)자를 더하여 경사스러운 일의 뜻을 나타낸다. 전(轉)하여, '좋다, 기뻐하다, 복지' 따위의 뜻으로 쓰인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빌 축(祝), 복 복(福), 하례할 하(賀)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조상할 조(弔)이다. 용례로는 축하할 만한 즐겁고 기쁜 일을 경사(慶事), 경사로운 일을 축하함을 경축(慶祝), 기쁜 일과 궂은 일을 경조(慶弔), 딸을 낳은 기쁨을 농와지경(弄瓦之慶), 아들을 낳은 기쁨을 농장지경(弄璋之慶), 입춘을 맞이하여 길운을 기원한다는 건양다경(建陽多慶), 재앙과 경사, 재화와 복록을 아울러 이르는 앙경화복(殃慶禍福)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