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소설 ‘무소의 뿔 처럼 혼자서 가라’에는 세 여자 친구가 주인공이다.
여자1은 결혼해서 살림하다가 아이가 젖을 뗀 후, 혼 전의 대학 시간 강사 생활을 다시 시작한다.
그러다가 혼자 있던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해 죽는데......그 갈등으로 남편과 이혼한다.
여자 2는 돈 잘버는 의사와 결혼했는데, 의사는 바람둥이.....그래서 여자는 외도로 남편과 맞선다.
여자3은 세 여자 중에 가장 순종적인 여자, 그래서 남편의 성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그러나 영화감독 남편이 시나리오 작가와 한 이불 속에 있는 것을 보고 배신감에 자살을 한다.
공지영은 90 년대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작가다. 무소의 뿔처럼은 대단한 선풍을 끌었고 영화화 되었다,
그 후 소설 속의 세 여자 처럼 세상은 변했다.
공지영의 페미니즘 소설을 보기 전에, 그녀의 데뷔작 [동 트는 새벽]을 주목해 보자.
그 소설에서 공지영은 위장 취업한 대학생에 대한 연민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90 년대에 들어와서, 동구 공산권이 망하고 소위 좌파 운동권들이 방황하고 몰락하는 과정 역시 연민의 눈으로 공지영은 몇 편의 소설 속에서 보여 주었다.
그런데, 공지영은 단지 여기까지만이다.
공지영은 운동권에 대한 연민은 보여주었을 지 모르지만, 그 다음에는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그녀는 좌파에 대한 향수와 연민만 있었을 뿐이고 곧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것이었고, 그것은 곧 그녀가 스스로 자본주의자임을 선언했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80 년대 이후 운동권의 몰락 과정과 그들이 자본주의에 교묘하게 편입되어 가는 과정을 공지영 자신의 현실과 소설을 통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곳에 공지영의 페미니즘의 정체성이 있다.
그 정체성이 현재 한국 주류 여성들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90 년대 이후, 이혼과 외도와 자살로 대변되는 여성들의 홀로서기는 애처롭기 그지 없다.
그 행위가 소설 제목 무소의 뿔 처럼 혼자서 가라....로 대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이 든다.
왜 홀로 서야 하는가?
물론, 이해는 간다.
남성 중심의 주류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방법 밖에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홀로서기란 아무래도 석연치 않는 구석이 있다.
과거의 여자들은 이혼 외도 자살을 통해서 자유로워 질 수도 없었다.
그것은 마치 여자들이 선택해야 할 최후의 보루 같았다.
그리고 그녀들은 경제적인 자립을 해야 한다. 그것이 문제였다.
공지영의 좌파에 대한 연민과 함께 자본주의자로서의 선언과 한국 페미니즘은 그 괘를 같이 한다.
여자들은 홀로서기와 함께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을 버는 것만이 당당한 여자가 될 수 있는 지름길이다.
그곳에 전혀 홀로서기가 필요 없는 평범한 가정생활의 행복한 여자들까지 동참하기 시작했다.
여자들의 홀로 설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남성 중심의 전통의 가치관에도 원인이 있지만 그 보다 더욱 커다란 이유는, 자본주의다.
여자들이 홀로서기에 성공해서 그녀들을 나락으로 떨어 뜨리는 그 자본주의가 그녀들을 홀로서기로 강요했던 것이다.
전통의 사회는 공동체 정신이 살아 있는 사회다.
남성 중심의 가치관은 그 중 일부일 뿐이다.
공동체 정신을 유지하면서도 충분히 남성 중심 사회는 개혁 될 수 있는 것이다.
전통의 사회에서도 충분히 모계사회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전통의 사회를 남성 중심 사회로 만든 것은 조선 중기 이후 국가 권력이었다.
조선 개국 때까지 남성들은 결혼을 하면 상당 기간 처가살이를 했다.
그래서 匠家의 ‘匠’ 字는 처가를 뜻한다.
장가 간다는 말은 곧 처가살이를 한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조선 중기 이후, 국가 권력은 경국대전을 편찬하면서 왕실을 비롯하여 사대부들에게 시집살이를 강요하게 이르렀다.
즉, 전통의 사회 공동체가 살아 있는 사회와 남성 중심의 사회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던 것이다.
여성들의 홀로서기 강요한 사회적 원인은 산업자본주의였고
그것에 애처롭게 대항해서 그녀들이 버려지는 곳 역시 자본주의 시장이라는 난장판인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 난장판에 모든 여성들이 물 들어 있다.
현대 한국의 역사에서 특히 일제 강점기와 6. 25 동란을 거치면서 여성들의 힘은 대단했다.
박경리의 ‘토지’에서의 초희로 대변되는 한국 여성들은 현대 한국을 만든 장본이이었고 주인공이었다.
나는 그 점에서 여성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다르다.
공지영 스스로도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고 만, 자본의 사회는 과거 전통과 이데올로기의 사회와는 그 강도가 전혀 다르다.
자본주의의 정의는, 시장이 사회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을 뜻한다.
그곳에는 가치도 도덕도 윤리도 없다. 오로지 이윤만 있는 것이다.
여자들은 홀로 서기에 성공을 해서 이제 바야흐로 그 시장에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 낙태의 문제가 있다. 낙태는 여자들의 홀로서기와 아무런 상관도 없다.
여자들 육체의 자기 결정권과 낙태와 연결 시키는 것은, 여성들도 서서히 남성들이 맛 보았던 권력의 힘을 알아가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