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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운1장30절] 상제께서 정미년 섣달 스무사흘에 신 경수를 그의 집에서 찾으시니라. 상제께서 요(堯)의 역상 일월성신 경수인시(曆像日月星辰敬授人時)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천지가 일월이 아니면 빈 껍데기요, 일월은 지인(知人)이 아니면 허영(虛影)이요, 당요(唐堯)가 일월의 법을 알아내어 백성에게 가르쳤으므로 하늘의 은혜와 땅의 이치가 비로소 인류에게 주어졌나니라” 하셨도다. 이때 상제께서 일월무사 치만물 강산유도 수백행(日月無私治萬物 江山有道受百行)을 가르치고 오주(五呪)를 지어 천지의 진액(津液)이라 이름하시니 그 오주는 이러하도다.
新天地家家長歲 日月日月萬事知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福祿誠敬信 壽命誠敬信 至氣今至願爲大降
明德觀音八陰八陽 至氣今至願爲大降
三界解魔大帝神位願趁天尊關聖帝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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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의 진액(津液)' 이라 이름붙여진 <五呪> 가 나와 있다....이 <五呪> 의 4번째 문구에 '八陰八陽' 이 보인다....
(1) '八陰八陽'
'八陰八陽' 은 그림으로 구경할 수 있다...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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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서 '八陰八陽' 은 아라비아 숫자 88 로 표시되어 있다.....이 88 은 田 위에 놓여져 대각의 한 축을 이룬다....그러니까 X 의 한 축이다...이 88 을 8괘로 치환하면 離 와 坎 이 된다....
성사의 十 과 X 로 이야기하자면.....
十: 건곤간태 ( 이 축은 성사께서 이미 보여주셨다...)
X: 곤과 태 사이에 離 가 위치하고, 건과 간 사이에 坎 이 위치한다....
離 는 물상으로는 日 이고, 오행으로는 火 이다....
坎 은 물상으로는 月 이고, 오행으로는 水 이다....
(2) 日月日月萬事知
日月日月萬事知 는 즉, 火水火水萬事知 이기도 하고, 陰陽陰陽萬事知 이기도 하다.....
이런 추론의 근거는 성사의 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추론의 근거)
[제생1장43절] 상제께서 전주 이 치안의 집에 「고견 원려 왈지(高見遠慮曰智)」의 글을 써 놓으셨도다.
智者 與天地同 有春夏秋冬之氣 每事 任意用之 謂之智慧勇力
大智 與天地同 有春夏秋冬之氣
其次 與日月同 有弦望晦朔之理
又其次 與鬼神同 有吉凶禍福之道
萬事起於陰 以布陽 先察陰晦 以觀陽明 每事先觀始發處
陰起事而陽明 陽起事而陰匿 要須先察陰陽 陰陽則水火而已
日用事物起居動靜 在於耳目口鼻聰明道理 耳屬水 目屬火 明白然後萬事可知
水生於火 火生於水 金生於木 木生於金 其用可知然後 方可謂神人也
陰殺陽生 陽殺陰生 生殺之道 在於陰陽 人可用陰陽然後 方可謂人生也
人爲陽 神爲陰 陰陽相合然後 有變化之道也
不測變化之術 都在於神明 感通神明然後 事其事則謂之大仁大義也
事有決斷然後 有變化之道也
春夏秋冬秋爲義 義則決斷也
六用三德 三德則天德地德人德也 統合謂之大德也
德義有生殺之權 生殺則陰陽 知此兩端而已
天用地用 人用之 調理綱紀 統制乾坤 此之謂造化手段也
理雖高 出於太極无極之表 不離乎日用事物之間
年月日時分刻輪廻 皆是元亨利貞天地之道也
天地之用 胞胎養生浴帶冠旺衰病死葬而已
養則收藏處 藏則出用處 觀其收藏出用之物 以致出也
人而用之之道 捨此而何以也
入而養中 出而形外 因其已知之理而益窮之 自然心自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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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에는 '萬事可知' 라는 표현이 보인다....푸른 색으로 표시했다....
'日月日月萬事知' 의 <萬事知> 와 '日用事物起居動靜 在於耳目口鼻聰明道理 耳屬水 目屬火 明白然後萬事可知' 의 萬事可知 는 순서의 차이만 있을 뿐 같은 말이다..... 萬事可知 를 파고들면(=깊이 파면), 결국 萬事知 하는 수준까지 가게 된다는 뜻이다.....그리고 그 대상은 日月 이다...
여기까지 이해했다면, 아래 구절의 日本王 도 이해할 수 있다.....
(아래)
[행록4장8절] 상제께서 최 창조의 집에서 종도 수십 명을 둘러앉히고 각기 세 글자씩을 부르게 하시니라. 종도들은 천자문의 첫 글자부터 불러오다가 최 덕겸(崔德兼)이 일(日) 자를 부를 때 상제께서 말씀하시니라. “덕겸은 일본왕(日本王)도 좋아 보이는가보다” 하시며 “남을 따라 부르지 말고 각기 제 생각대로 부르라” 이르시니라. 이튿날 밤에 상제께서 덕겸으로 하여금 담뱃대의 진을 쑤셔 내되 한 번 잡아 놓치지 말고 뽑아서 문밖으로 버리게 하시니 그는 말씀하신 대로 진을 바깥에 버리자 온 마을의 개가 일시에 짖는도다. 덕겸이 신기하게 느껴 “어찌 개가 일제히 짖나이까”라고 여쭈니 상제께서 가라사대 “대신명(大神明)이 오는 까닭이니라.” 그가 “무슨 신명이니까”고 여쭈니 상제께서 “시두손님이니 천자국(天子國)이라야 이 신명이 들어오나니라”고 일러 주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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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王 은 결국 (日)月王 이라는 뜻이다....月 은 日 을 근본(=本)으로 해서 나온다는 뜻이다......
神 의 조판은 아래와 같이 생겼다.....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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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 이라는 글자를 중심으로 X 모양으로 글자가 배열되어 있는데, 이것이 神 의 조판이다.
그러니까 성사께서는
신의 조판은 (=X: 진손감리) 이 곳에서 보여주었고, 人의 조판은 (=十: 건곤간태) 바다를 건너면서 보여주신 셈이다.....
각설하고.......
(3) 七星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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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은 우당께서 그리신 2개의 그림에 포함되지 않는다.....2개의 그림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성사께서는 '出將入相金光贊' 이라고 표현하셨다......
(참고)
[공사1장30절] 상제께서 “하도낙서 지인지감 김 형렬, 출장입상 김 광찬, 기연미연 최 내경, 평생불변 안 내성, 만사불성 김 송환(河圖洛書知人之鑑金亨烈 出將入相金光贊 旣然未然崔乃敬 平生不變安乃成 萬事不成金松煥)”이라 쓰셔서 불사르시고 날이 저물었을 때 쌀 열 말씩을 종도들에게 나누어서 덕찬과 형렬의 집에 보내셨도다.
칠성의 역할에 관해서는 金光贊 을 들여다보면 된다.....
(참고)
[행록3장57절] 이 일이 나기 전날 상제께서 광찬을 정읍에 있는 경석에게 보내고 원일을 태인에 있는 경원에게 가게 하고 공우를 또 다른 곳으로 보내셨도다. 이렇게 피하게 하신 것은 광찬과 원일의 성질을 알고 계시는 터이고 공우는 여러 번 관재를 당하였던 까닭이었도다.
[행록4장41절] 상제께서 어느 날 차 경석ㆍ김 광찬ㆍ황 응종을 앞에 세우고 공우에게 몽치를 들게 하고 윤경에게 칼을 들리고 “너희가 이 이후에도 지금의 스승을 모시고 있듯이 변함이 없겠느냐. 변함이 있으면 이 몽치로 더수구니를 칠 것이오. 이 칼로 배를 가를 것이니라”고 꾸짖기도 하고 타이르시기도 하셨다.
[행록4장55절] 김 광찬(金光贊)이 어느 날 개벽공사가 속히 결정되지 않으므로 모든 일에 불평을 털어놓고 “나는 자살하겠노라”고 말하여 좌석을 흐리게 하니라. 상제께서 좌중을 보시고 “모든 일에 때가 있나니 마음을 돌려 어리석음을 벗으라. 너희는 죽는 일을 장차 나에게서 보라”고 이르셨도다.
[행록4장56절] 상제께서 광찬이 불만을 품은 것을 심히 괴롭게 여기셔서 형렬에게 이르시니라. “광찬이 자살하려는 것은 제가 죽으려는 것이 아니요 나를 죽으라는 것이니라. 내가 정읍으로 가리니 이 길이 길행이라. 뒷일은 네게 통지하리라.” 二十八일에 상제께서 공우(公又)를 데리시고 동곡을 떠나 정읍 경석의 집에 가셨도다.
[행록5장7절] 하루는 형렬이 상제의 명을 좇아 광찬과 갑칠에게 태을주를 여러 번 읽게 하시고 광찬의 조카 김 병선(金炳善)에게 도리원서(桃李園序)를 외우게 하고 차 경석ㆍ안내성에게 동학 시천주문을 입술과 이를 움직이지 않고 속으로 여러 번 외우게 하셨도다.
[공사1장14절] 상제께서 을사년에 함열에 계실 때이니라. 형렬을 비롯한 종도들을 거느리고 익산군 만중리(益山郡萬中里) 정 춘심의 집에 가셔서 춘심에게 명하사 “선제를 지내리니 쇠머리 한 개를 사오라” 하시고 백지 한 권을 길이로 잘라 풀로 이어 붙이고 절반을 말아 두 덩이로 만들고 한 덩어리씩 각각 그릇에 담아 두셨도다. 상제께서 밤중에 앞 창문에 두 구멍을 뚫고 쇠머리를 삶아서 문 앞에 놓고 형렬과 광찬으로 하여금 문밖에 나가서 종이 덩어리를 하나씩 풀어서 창구멍으로 들여보내게 하시고 문 안에서는 종이 끝을 다시 말으시니 종이 덩어리가 다 풀리니라. 별안간 천둥과 같은 기적소리가 터지니라. 이 소리에 외인들도 놀랐도다.
[공사1장15절] 그리고 상제께서 정 성백에게 젖은 나무 한 짐을 부엌에 지피게 하고 연기를 기선 연통의 그것과 같이 일으키게 하시고 “닻줄을 풀었으니 이제 다시 닻을 거두리라”고 말씀하시자 별안간 방에 있던 종도들이 모두 현기증을 일으켜 혹자는 어지럽고 혹자는 구토하고 나머지 종도는 정신을 잃었도다. 이 공사에 참여한 종도는 소 진섭(蘇鎭燮)ㆍ김 덕유(金德裕)ㆍ김 광찬(金光贊)ㆍ김 형렬(金亨烈)ㆍ김 갑칠(金甲七) 그리고 정 성백(鄭成伯)과 그의 가족들이었도다. 덕유는 문밖에서 쓰러져 설사를 하고 성백의 가족은 모두 내실에서 쓰러지고 갑칠은 의식을 잃고 숨을 잘 쉬지 못하는지라. 이를 보시고 상제께서 친히 청수를 갑칠의 입에 넣어 주시고 그의 이름을 부르시니 바로 그는 깨어나니라. 차례차례로 종도들과 가족의 얼굴에 청수를 뿌리거나 마시게 하시니 그들이 모두 기운을 되찾으니라. 덕유는 폐병의 중기에 있었던 몸이었으나 이 일을 겪은 후부터 그 증세가 없어졌도다. 이것은 무슨 공사인지 아무도 모르나 진묵(震默)의 초혼이란 말이 있도다.
[공사1장16절] 병오년 정월 초사흘에 김 형렬과 김 성화의 부자와 김 보경의 부자와 김 광찬의 숙질이 동곡에서 상제를 시좌하고 상제께서 명하신 대로 하루 동안 말도 아니 하고 담배도 끊고 있을 때 상제께서 이틀 후에 여러 종도를 둘러앉히고 당부하시기를 “오늘 호소신이 올 것이니 너희는 웃지 말라. 만일 너희 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웃으면 그 신명이 공사를 보지 않고 그냥 돌아갈 것이고 그가 한번 가면 어느 때 다시 올지 모를 일이니 깊이 명심하고 주의하라.” 종도들은 깊이 명심하고 조심하더니 갑자기 성백이 큰 웃음을 터뜨리니 모두 따라 웃은지라. 그날 오후에 성백은 별안간 오한을 일으켜 심히 고통하더니 사흘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 있노라니 상제께서 성백을 앞에 눕히고 글 한 절을 읽으시니 그가 바로 쾌유하였도다. 상제께서 날마다 백지에 그림 같은 약도와 글자를 써서 불사르셨도다.
[공사1장17절] 김 광찬ㆍ신 원일ㆍ정 성백ㆍ김 선경ㆍ김 보경ㆍ김 갑칠ㆍ김 봉규 등 여러 종도들이 二월 그믐에 동곡에 모였느니라. 다음 달 이튿날 상제께서 공사를 보시기 위하여 서울로 떠나시면서, “전함은 순창(淳昌)으로 회항하리니 형렬은 지방을 잘 지키라”고 이르시고 “각기 자기의 소원을 종이에 기록하라”고 모여 있는 종도들에게 명하시니 그들이 소원을 종이에 적어 상제께 바치니 상제께서 그 종이에 안경을 싸시고 남기ㆍ갑칠ㆍ성백ㆍ병선ㆍ광찬을 데리고 군항(群港)으로 가서 기선을 타기로 하시고 남은 사람은 대전(大田)에서 기차를 타라고 이르신 후에 이것을 수륙병진이라고 이르셨도다. 그리고 상제께서 원일에게 “너는 입경하는 날로 먼저 종이에 천자 부해상(天子浮海上)이라고 정서하여 남대문에 붙이라”고 명하셨도다. 원일은 곧 여러 사람과 함께 대전으로 떠났도다.
[공사1장18절] 상제께서 군항으로 떠나시기 전에 병선에게 “영세 화장 건곤위 대방 일월 간태궁(永世花長乾坤位 大方日月艮兌宮)을 외우라”고 명하시니라. 군항에서 종도들에게 물으시기를 “바람을 걷고 감이 옳으냐 놓고 감이 옳으냐.” 광찬이 “놓고 가시는 것이 옳은가 생각하나이다”고 대답하거늘 상제께서 다시 종도들에게 오매 다섯 개씩을 준비하게 하시고 배에 오르시니 종도들이 그 뒤를 따랐도다. 항해 중 바람이 크게 일어나니 배가 심하게 요동하는도다. 종도들이 멀미로 심하게 고통하므로 상제께서 “각자가 오매를 입에 물라”고 이르시고 갑칠로 하여금 종이에 싼 안경을 갑판 위에서 북쪽을 향하여 바다 위에 던지게 하였으되 그가 북쪽을 분간하지 못하여 망설이고 있는지라. 상제께서 다시 갑칠을 불러들여 “왜 얼른 던지지 못하느냐”고 꾸짖으시니 그는 그대로 아뢰었도다. 상제께서 “번개 치는 곳에 던지라”고 이르시니 그는 다시 갑판에 올라가니 말씀이 계신 대로 한 쪽에서 번개가 치는지라 그곳을 향하여 안경을 던졌도다.
[공사1장19절] 이튿날 배가 인천에 닿으니 일행은 배에서 내려 기차로 바꿔 타고 서울에 이르니 광찬이 상제를 황교(黃橋)에 사는 그의 종제 김 영선(金永善)의 집으로 안내하였는데 원일은 남대문에 글을 써 붙이고 먼저 와 있었도다.
[공사1장22절] 상제께서 어느 날 벽력표를 땅에 묻고 나서 종도들에게 “모두들 제각기 흩어져서 돌아가라. 十년 후에 다시 만나리라. 十년도 十년이요 二十년도 十년이요 三十년도 十년이니라”고 말씀하셨도다. 누가 여쭈기를 “四十년은 十년이 아니 오니까.” 이에 상제께서 “四十년도 十년이나 그것을 넘지는 않으리라”고 말씀하시고 모두 돌려보내시니라. 상제께서는 오직 광찬만을 데리고 며칠 더 머무시더니 광찬에게 돈 百냥을 주시면서 “네가 먼저 만경(萬頃)에 가서 나의 통지를 기다리라” 이르셨도다.
[공사1장24절] 상제께서 이달 그믐에 동곡으로 돌아오신 다음날 형렬을 데리시고 김 광찬이 가 있는 만경에 가셨을 때에 최 익현이 홍주(洪州)에서 의병을 일으키니 때는 모를 심는 시기이나 가뭄이 오래 계속되어 인심이 흉흉하여 사람들이 직업에 안착치 못하고 의병에 들어가는 자가 날로 증가하여 더욱 의병의 군세가 왕성하여지는지라. 상제께서 수일간 만경에 머무시면서 비를 흡족하게 내리게 하시니 비로소 인심이 돌아가 농사에 종사하는 자가 날로 늘어나더라. 이때 최 익현은 의병의 갑작스러운 약세로 순창에서 체포되니라. 그가 체포된 소식을 들으시고 상제께서는 만경에서 익산 만중리 정 춘심의 집으로 떠나시며 가라사대 “최 익현의 거사로써 천지신명이 크게 움직인 것은 오로지 그 혈성의 감동에 인함이나 그의 재질이 대사를 감당치 못할 것이고 한재까지 겹쳤으니 무고한 생민의 생명만을 잃을 것이니라. 때는 실로 흥망의 기로이라 의병을 거두고 민족의 활로를 열었느니라”고 하셨도다.
[공사1장25절] 상제께서 종도와 함께 계실 때 김 광찬에게 “네가 나를 어떠한 사람으로 아느냐”고 물으시니 그가 “촌 양반으로 아나이다”고 대답하니라. 다시 상제께서 물으시기를 “촌 양반은 너를 어떠한 사람이라 할 것이냐.” 광찬이 여쭈니라. “읍내 아전이라 할 것이외다.” 그의 말을 들으시고 상제께서 가라사대 “촌 양반은 읍내의 아전을 아전놈이라 하고 아전은 촌 양반을 촌 양반놈이라 하나니 나와 네가 서로 화해하면 천하가 다 해원하리라” 하셨도다.
[공사1장30절] 상제께서 “하도낙서 지인지감 김 형렬, 출장입상 김 광찬, 기연미연 최 내경, 평생불변 안 내성, 만사불성 김 송환(河圖洛書知人之鑑金亨烈 出將入相金光贊 旣然未然崔乃敬 平生不變安乃成 萬事不成金松煥)”이라 쓰셔서 불사르시고 날이 저물었을 때 쌀 열 말씩을 종도들에게 나누어서 덕찬과 형렬의 집에 보내셨도다.
[공사2장1절] 상제께서 정미년 三월 초에 광찬을 대동하고 말점도(末店島)에 들어가시려고 (광찬의 재종이 말점도에서 어업을 경영하고 있었음) 갑칠과 형렬을 만경 남포(南浦)에 불러 두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지금 섬으로 들어가는 것은 천지공사로 인하여 정배됨이니 너희들은 성백(成伯)의 집에 가서 그와 함께 四十九일 동안 하루에 짚신 한 켤레와 종이등 한 개씩을 만들라. 그 신을 천하 사람에게 신게 하고 그 등으로 천하 사람의 어둠을 밝히리라” 하셨도다. 두 사람은 명을 받들어 성백의 집에 가서 그대로 시행하였도다. 그 후 상제께서 말점도로부터 나오셔서 그 짚신을 원평 시장에 가서 팔게 하시고 그 종이등에는 각기 “음양(陰陽)” 두 글자를 쓰셔서 불사르시니라.
[공사2장2절] 또 백지로 고깔을 만들어 마장군(馬將軍)이라 써서 문 위에 걸고 짚을 한 아름쯤 되게 묶어 인경을 만들어 방 가운데에 달아매고 백지를 바른 다음에 二十四방위 자를 둘러쓰고 그 글자 사이에 다른 글자를 써 넣고 또 그 위에 백지를 오려서 비늘을 달아 붙이시니 그 모형이 마치 철갑옷과 같아지니라. 그 자리에 형렬ㆍ공신ㆍ광찬ㆍ장근ㆍ응종ㆍ원일ㆍ도삼ㆍ갑칠ㆍ그 외 몇 사람이 있었도다.
[공사2장11절] 상제께서는 약방에 갖추어 둔 모든 물목을 기록하여 공우와 광찬에게 주고 가라사대 “이 물목기를 금산사에 가지고 가서 그곳에 봉안한 석가불상을 향하여 그 불상을 업어다 마당 서쪽에 옮겨 세우리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 불사르라”하시니 두 사람이 금산사에 가서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이로부터 몇 해 지난 후에 금산사를 중수할 때 석가불전을 마당 서쪽에 옮겨 세우니 미륵전 앞이 넓어지느니라. 이 불전이 오늘날의 대장전이로다.
[공사2장12절] 상제께서 용두치 주막에 계실 때 광찬에게 한방의서(漢方醫書) 방약합편(方藥合編)을 사오게 하시고 “네가 병욱의 집에 가서 주묵(朱墨)으로 이 책 중에 있는 약명에 비점을 찍으라” 이르시니 광찬이 명대로 시행하여 올리니 상제께서 열람하시고 그 책을 불사르셨도다.
[공사2장13절] 상제께서 농암에서 공사를 행하실 때 형렬에게 이르시기를 “허 미수(許眉叟)가 중수한 성천(成川) 강선루(降仙樓)의 일만이천 고물은 녹줄이 붙어 있고 금강산(金剛山) 일만이천 봉은 겁기가 붙어 있으니 이제 그 겁기를 제거하리라” 하시고 “네가 김 광찬ㆍ신 원일과 함께 백지 일 방촌씩 오려서 시(侍) 자를 써서 네 벽에 붙이되 한 사람이 하루 四百자씩 열흘에 쓰라. 그리고 그 동안 조석으로 청수 한 동이씩 길어 스물네 그릇으로 나누어 놓고 밤에 칠성경(七星經) 三七편을 염송하라” 명하시니라. 형렬은 그 명을 좇았으되 신 원일이 즐거이 행하지 아니하므로 상제께 아뢰니 상제께서는 “정읍 이 도삼을 불러서 행하라” 분부하시니라. 형렬은 그를 데려다가 열흘 동안 분부대로 행한 후에 김 갑칠을 보내어 일을 마쳤음을 상제께 아뢰게 하였더니 상제께서 갑칠에게 양(羊) 한 마리를 사주며 “내가 돌아가기를 기다리라”고 이르셨도다.
[공사2장19절] 상제께서 十二월에 들어서 여러 공사를 마치시고 역도(逆度)를 조정하는 공사에 착수하셨도다. 경석ㆍ광찬ㆍ내성은 대흥리로 가고 원일은 신 경원의 집으로 형렬과 자현은 동곡으로 떠났도다. 상제께서 남아 있는 문 공신ㆍ황 응종ㆍ신 경수 들에게 가라사대 “경석은 성(誠) 경(敬) 신(信)이 지극하여 달리 써 볼까 하였더니 스스로 청하는 일이니 할 수 없도다”고 일러 주시고 또 “본래 동학이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주장하였음은 후천 일을 부르짖었음에 지나지 않았으나 마음은 각기 왕후장상(王侯將相)을 바라다가 소원을 이룩하지 못하고 끌려가서 죽은 자가 수만 명이라. 원한이 창천하였으니 그 신명들을 그대로 두면 후천에는 역도(逆度)에 걸려 정사가 어지러워지겠으므로 그 신명들의 해원 두목을 정하려는 중인데 경석이 十二제국을 말하니 이는 자청함이니라. 그 부친이 동학의 중진으로 잡혀 죽었고 저도 또한 동학 총대를 하였으므로 이제부터 동학 신명들을 모두 경석에게 붙여 보냈으니 이 자리로부터 왕후장상(王侯將相)의 해원이 되리라” 하시고 종이에 글을 쓰시며 외인의 출입을 금하고 “훗날에 보라. 금전소비가 많아질 것이며 사람도 갑오년보다 많아지리라. 풀어 두어야 후천에 아무 거리낌이 없느니라”고 말씀을 맺으셨도다.
[공사2장20절] 상제께서 “선천에서 삼상(三相)의 탓으로 음양이 고르지 못하다”고 하시면서 “거주성명 서신사명 좌상 우상 팔판 십이백 현감 현령 황극 후비소(居住姓名西神司命 左相右相八判十二伯 縣監縣令皇極後妃所)”라 써서 광찬에게 “약방의 문지방에 맞추어 보라”고 이르시니라. 그가 “맞지 않는다”고 아뢰니 “일이 헛일이라”고 말씀하시기에 경학이 “여백을 오려 버리고 글자 쓴 곳만 대어보는 것이 옳겠나이다”고 말하기에 그대로 행하니 꼭 맞으니라.
[공사3장1절] 상제께서 무신년 봄 백암리 김 경학ㆍ최 창조의 두 집으로 왕래하시며 성복제와 매화(埋火) 공사를 보셨도다. 김 광찬의 양모의 성복제가 최 창조의 집에서 거행되었느니라. 창조는 상제의 지시에 좇아 돼지 한 마리를 잡고 그 고기에 계란을 입혀 전을 만들고 대그릇에 담아서 정결한 곳에 두고 또 상제의 분부에 따라 상제의 의복 한 벌을 지어 두었도다. 저육전이 다 썩었으므로 창조가 동곡으로 사람을 보내서 상제께 아뢰니 상제께서 그 사람을 좀 기다리게 하시고 형렬에게 이르시니라. “네가 태인에 가서 최 내경ㆍ신 경원을 데리고 창조의 집에 가라. 오늘 밤에 인적이 없을 때를 기다려 정문밖에 한 사람이 엎드릴 만한 구덩이를 파고 나의 옷을 세 사람이 한 가지씩 입고 그 구덩이 앞에 청수 한 그릇과 화로를 놓고 작은 사기그릇에 호주를 넣고 문어 전복 두부를 각각 그릇에 담아 그 앞에 놓아라. 그리고 한 사람은 저육전 한 점씩을 집어서 청수와 화로 위로 넘기고 한 사람은 연달아 넘긴 것을 받고 다른 한 사람은 다시 받아서 구덩이 속에 넣고 흙으로 덮어라. 그리고 빨리 돌아오너라”고 일러주시니 형렬이 그대로 시행한 후 시급히 상제께 돌아가는 길에 돌연히 검은 구름이 일더니 집에 이르자 폭우가 쏟아지고 뇌전이 크게 치는지라. 상제께서 형렬에게 “이때쯤 일을 행할 때가 되었겠느냐”고 물으시니 그는 “행할 그 시간이 되었겠나이다”고 여쭈었도다. 상제께서 가라사대 “뒷날 변산 같은 큰 불덩이로 이 세계가 타 버릴까 하여 그 불을 묻었노라” 하셨도다.
[공사3장9절] 상제께서 대흥리에서 三十장의 양지 책의 앞장 十五장마다 “배은망덕 만사신 일분명 일양시생(背恩忘德萬死神 一分明一陽始生)”을, 뒷장 十五장마다 “작지부지 성의웅약 일음시생(作之不止聖醫雄藥 一陰始生)”을 쓰고 경면주사와 접시 한 개를 놓고 광찬에게 가라사대 “이 일은 생사의 길을 정함이니 잘 생각하여 말하라”고 하시니 광찬이 “선령신을 섬길 줄 모르는 자는 살지 못하리이다”고 여쭈니 상제께서 말씀이 없으시다가 잠시 후에 “네 말이 가하다” 하시고 접시를 종이에 싸서 주사(朱砂)를 묻혀 책장마다 찍으셨도다. “이것이 곧 마패(馬牌)라”고 이르셨도다.
[교운1장18절] 그 후 광찬(光贊)과 형렬(亨烈)이 상제와 함께 전주(全州)에 동행하였느니라. 김 석(金碩)이란 자가 문하에 입도하게 되었도다. 입도에 앞서 상제께서 광찬과 형렬을 좌우에 두고 청수를 앞에 놓고 두 사람에게 태을주(太乙呪)를 스물한 번 읽게 하신 후에 석으로 하여금 읽게 하셨도다.
[교운1장19절] 김 광찬과 신 원일이 상제를 모시고 있던 정미년 정월 어느 날 상제께서는 그들에게 “귀신은 진리에 지극하니 귀신과 함께 천지공사를 판단하노라” 하시면서 벽에 글을 다음과 같이 써 붙이셨도다.
知事萬忘不世永定化造主天侍
至
氣
今
至
師 願 法
爲
大
降
全 慶
州 州
銅 龍
谷 潭
解 報
冤 恩
神 神
日 月 年
[교운1장20절] 종도들이 모인 곳에서 상제께서 三월 어느 날 가라사대 “지금은 신명 해원시대니라. 동일한 五十년 공부에 어떤 사람을 해원하리오. 최 제우는 경신(庚申)에 득도하여 시천주(侍天呪)를 얻었는바 기유(己酉)까지 五十년이 되니라. 충남(忠南) 비인(庇仁) 사람 김 경흔(金京訢)은 五十년 공부로 태을주(太乙呪)를 얻었으되 그 주문을 신명으로부터 얻을 때에 그 주문으로써 많은 사람을 살리라는 명을 받았느니라”고 말씀을 하시고 이어서 “이 두 사람 중의 누구를 해원하리오”라고 물으시니 시좌하고 있던 종도들 중에서 광찬이 “상제님의 처분을 기다리나이다”고 아뢰니 상제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시천주는 이미 행세되었고 태을주를 쓰리라” 하시고 읽어 가르치시니 그 주문은 이러하였도다.
“吽哆吽哆 太乙天上元君 吽哩哆㖿都來 吽哩喊哩娑婆啊”
[교운1장22절] 황 응종이 노랑 닭 한 마리를 상제께 올리니라. 상제께서 밤중에 형렬에게 그 닭을 잡아 삶게 하고 김 형렬ㆍ한 공숙ㆍ류 찬명ㆍ김 자현ㆍ김 갑칠ㆍ김 송환ㆍ김 광찬ㆍ황 응종 등과 나눠 잡수시고 운장주(雲長呪)를 지으셔서 그들에게 단번에 외우게 하셨도다. 이것이 그때의 운장주이니라.
“天下英雄關雲長 依幕處 近聽天地八位諸將 六丁六甲六丙六乙 所率諸將 一別屛營
邪鬼唵唵喼喼如律令娑婆啊”
[교운1장39절] 상제께서 매일 글을 쓰셔서 큰 두루마리를 만들어 형렬ㆍ광찬ㆍ윤근ㆍ경학ㆍ원일에게 명하시니라. “너희들이 창문을 봉하고 방 안에 들어가서 방 안에 있는 두루마리를 화로에 불사르되 연기가 방 안에 가득 차게 하고 다 타거든 문을 열라. 일을 하려면 물불을 가리지 않아야 되니라.” 모두들 말씀에 좇아 그대로 행하였으되 연기 때문에 숨을 쉴 수 없는도다. 참지 못해 윤근과 원일이 문밖으로 뛰어나오고 나머지 종도들은 두루마리가 다 타기를 기다린 연후에 문을 열었도다.
[교운1장44절] 상제께서 무신년 四월에 전주에 가셔서 여러 종도들로 하여금 글월을 정서하게 하시니라. 상제의 말씀에 따라 광찬은 김 병욱의 집에 머물면서 상제께서 전하는 글을 일일이 등사하고 형렬은 상제를 따라 용머리 주막에 가서 상제로부터 받은 글월을 광찬에게 전하느니라. 광찬은 그 글월을 정서하여 책을 성편하였도다. 상제의 명대로 책이 성편되니 상제께서 광찬에게 “세상에 나아가 그 글을 전함이 가하랴” 하시니라. 광찬이 상제의 존의에 좇을 것을 여쭈니 상제께서 그에게 “경석에게 책 한 권을 주었으니 그 글이 나타나면 세상이 다 알 것이라” 말씀하시고 성편된 책을 불사르고 동곡으로 떠나셨도다. 책 중에 있는 글이 많았으되 모두 불사르셨기에 전하지 못하였고 한 조각만이 종도의 기억에 의해서 전하는도다.
士之商職也 農之工業也 士之商農之工職業也 其外他商工留所(疑有闕文)萬物資生
羞耻放蕩 神道統 春之氣放也 夏之氣蕩也 秋之氣神也 冬之氣道也 統以氣之主張者
也 知心大道術 戊申十二月二十四日
左旋 四三八 天地魍魎主張
九五一 日月竈王主張
二七六 星辰七星主張
運 至氣今至願爲大降
無男女老少兒童咏而歌之
是故永世不忘萬事知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교법2장32절] 김 광찬은 동곡에 있으면서 상제께서 차 경석과 상종하시는 것을 과히 좋게 생각하지 않으니라. 그는 경석이 본래 동학당이고 일진회에 참가하여 불의한 일을 많이 행하였을 터인데도 이제 그를 도문에 들여놓은 것은 상제의 공평하지 못하심이라고 불평하고 때로는 “우리가 도덕을 힘써 닦아 온 것이 모두 허탕이 되리라”고 상제를 원망하기도 하기에 형렬이 상제를 배알하여 그 사유를 고하리라고 말하여 그를 위로하였도다. 어느 날 형렬이 광찬을 데리고 상제께 배알하였으나 그 사유를 모두 고하지 못하고 오후에 돌아가려 할 때에 상제께서 광찬에게 “주인은 김 형렬이 좋으니 동곡에 가서 있으라” 일러 주시고 형렬을 따로 불러 가만히 “광찬을 데리고 집에 돌아가서 잘 위로하여 주라”고 일러 보내셨도다.
[교법3장13절] 상제께서 몇 달 동안 경석을 대동하시고 공사를 보셨도다. 이때 상제께서 임피(臨陂) 최 군숙(崔君淑)의 집에 머물고 계셨는데 어느 날 이곳을 떠나 동곡에 들르지 아니하고 바로 태인으로 가셨느니라. 이 일로써 광찬은 “우리는 다 무용지물이라”고 더욱 불평을 품고 상제를 크게 원망하는지라. 형렬은 민망하여 태인 하마가로 찾아가서 상제를 배알하고 광찬의 불평을 알리면서 “어찌 그러한 성격의 소유자를 문하에 머물게 하시나이까”고 의견을 아뢰니 상제께서 “용이 물을 구할 때에 비록 가시밭길이라도 피하지 않느니라”고 말씀하시니라. 형렬이 곧 돌아와서 광찬에게 “고인 절교 불출오성(古人絶交不出惡聲)”이라 이르고 금후부터 불평을 말끔히 풀라고 달랬도다.
[권지2장26절] 상제께서 일주일 동안 계속 코피를 흘리시더니 갑칠에게 관을 만들게 하고 감주 한 그릇을 잡수시니 곧 원기를 회복하셨도다. 이때에 광찬과 갑칠의 사이에 생긴 갈등을 상제께 아뢰니 벌써 알고 계시니라.
[권지2장34절] 차 경석이 어느 때 정읍 고부인이 안질로 고생하고 자기 아들 희남(熙南)이 앓아 누운 것을 상제께 알리려 동곡에 아우 윤경을 보내니 마을 입구에 김 자현ㆍ김 광찬 등 十여 명이 상제로부터 “차 윤경이 대흥리에서 찾아오리라”는 말씀을 듣고 마중을 나와 그를 맞았도다.[제생1장11절] 용두치에 교자를 타고 다니는 김 모란 앉은뱅이가 살고 있었도다. 그가 하루 상제를 찾아뵈옵고 편히 걸어 다니게 하여 주시기를 애원하니라. 상제께서 그를 앞에 앉히고 담뱃대에 따라 일어서라고 이르고 그가 담뱃대가 높아짐에 따라 점점 높이 일어서려고 애를 쓰게 하시고 형렬에게 “예고신 예팽신 석란신 동서남북 중앙신장 조화조화 운오명령훔(曳鼓神曳彭神石蘭神東西南北中央神將造化造化云吾命令吽)”을 읽게 하시니라. 그리고 상제께서 다시 그를 뜰에 세우고 걷게 하시며 광찬으로 하여금 그의 종아리를 쳐서 빨리 걷게 하시니라. 그는 교자를 버리고 걸어서 돌아갔도다. 그 후에 그는 걷게 된 인사로 상제께 三十냥을 공양하니 상제께서 그것으로 행인들에게 주식을 베풀어 주시고 그 사람은 행인들 앞에서 상제께서 다리를 펴주셨다고 고마운 인사를 하니라.
[제생1장15절] 김 광찬은 상제를 모시고 김 성화가 있는 고을 임피 군둔리(臨陂軍屯里)에 이르러 며칠 동안 머물렀도다. 상제께서 죽게 된 성화의 이웃 사람을 제생하셨느니라. 상제께서 환자를 만나 그 병은 그대로 치료하기 어려우니 함열(咸悅) 숭림사(崇林寺) 노승을 조문하고 돌아오게 하셨도다. 환자는 중병의 몸을 이끌고 그곳을 돌아옴으로써 사경에서 벗어났도다. 그가 이튿날 다시 숭림사에 찾아가니 노승이 죽었는지라. 조문하고 돌아오면서도 상제 말씀에 위력을 느끼고 두려워하였도다.
[제생1장44절] 김 광찬은 상제께서 의복을 갈아입게 되었음을 눈치 채고 미리 의복 한 벌을 지어 두었다가 올렸더니 상제께서 그 의복의 바느질의 정묘함을 칭송하시니라. 광찬이 “옷을 지은 여자는 침선과 모든 범절이 훌륭하나 앉은뱅이라 신세가 가긍하나이다”고 여인의 신세를 아뢰니 상제께서 긍측하게 여기사 “나와 함께 한번 가자”고 하시더니 광찬을 앞세우고 두어 차례 찾아가 보시고 별다른 치료는 베푸시지 아니하셨으나 그 여인은 스스로 힘을 얻어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도다.
[예시1장36절] 상제께서 백지 일곱 장에 병 자기이발(病自己而發)과 장 사 병 쇠 왕 관 대 욕 생 양 태 포(葬死病衰旺冠帶浴生養胎胞)의 글을 써서 각각 봉하신 후에 김 형렬을 시켜 전주에 있는 일곱 사람에게 전하고 해가 지기 전에 되돌아오게 하셨도다. 종도들이 그 뜻을 물었으되 대답하시기를 “지금은 모르고 성편 뒤에는 스스로 알게 되리라”고 하셨도다.
김 형렬은 전주에 가서 이르신 대로 김 병욱ㆍ김 광찬ㆍ김 윤근ㆍ김 준찬ㆍ김 낙범 등에 나눠주었으되 나머지 사람은 출타하였으므로 날이 저물까봐 그냥 돌아오니라. 이것을 보시고 상제께서 “늦어도 다 돌리고 올 것이었거늘” 하시면서 꾸짖으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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