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익숙한 것들에서 낯설은 것을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막상 주제를 정해 놓고 생각을 해보니 떠오르지 않아 지금 나랑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 익숙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글을 쓸 때 가장 가까이 있던 커피가 담긴 컵을 보고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컵이라는 것은 어떤 것을 마시기 위해 담는 용도로 사용되고 지금도 커피를 담아 마시고 있었습니다. 철학적으로 다가가보려 했을 때 처음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물이 반 들어 있는 컵을 보고 사람들은 컵에 물이 반밖에 없네, 컵에 물이 반이나 있네. 이런 문장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다 이러한 문장도 많이 들어 익숙하고 낯설다는 느낌을 못받았을 때 문득 ‘담긴다’라는 용도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컵은 어떤 것이든 담을 수 있는 용도를 하는 물건입니다. 그렇지만 컵 이외에도 그릇이나 대야, 물병 등 물건을 담을 수 있다는 용도를 가진 물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당연하게 물을 마실 땐 익숙함에 물컵을 들었을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익숙한 것에 낯설다라는 감정이 들었습니다.
본래의 용도로 사용하지 않는 것들이 많은 데 우리는 물컵으로 물을 마시고 밥그릇으론 밥만을 뜨는 것인지에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오랜시간동안 그런 용도로 사용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당연하다고 받아들였겠지만 용도가 아닌 그 사람의 필요에 따라 혹은 그 물체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순간 우리는 물건에 대한 위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 보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이 낯설음을 통해 물건의 새로운 용도를 파악할 수 있고 다른 면을 인식하면서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였는지, 이렇게 돌아가는 사회에 의심하지 않고 사회가 정한 약속대로만 살아왔는지를 깨달을 수도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 낯설음은 단순히 어색함이나 이질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익숙함 속에 감춰진 또 다른 세상이 들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느끼고 사용했던 물건들에 낯설다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 질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히고 다양한 방면에서 이해하고 통찰할 수 있을 것이라 느꼈습니다. 삶이란 끊임없이 변화하며 우리는 그 변화 속에서 낯선 것을 익숙하게 만들고, 익숙한 것에서 다시 낯설다는 것을 발견하는 과정중에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순환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이고 익숙함 속에 감춰진 낯설음을 발견함으로써 우리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성장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첫댓글 '담는다'가 아니라 '담긴다'로 표현한 까닭도 한 번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컵이나 그것에 커피를 담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담는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담긴다'라고 표현한 것은 커피의 관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노자는 컵을 보면서 '담는 공간'에 집중했습니다. 담는 공간은 빈 상태이어야 하고, 따라서 '무(無)의 유용성'을 역설했습니다. 없는 것은 있지 않은 것이므로 유용하지도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그런데 노자는 유용성이라고 하는 것은 없는 것에서도 찾을 수 있고, 사실 없어야 한다고까지 역설했습니다. 이러한 역설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를 담아내려고 할 때의 유용성은 그것을 담아낼 수 없는 빈 공간 때문이라는 점에 주목했기 때문입니다. 덧붙여서 쓴 '용도'의 문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각각의 빈 공간은 그것에 담아내는 것에 맞추어서 제한된다는 점입니다. 밥 그릇은 한 끼에 먹을 곡물의 양과 온도 등을 고려하여 빈 공간을 만들고, 컵과 글래스도 그와 같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용도'라고 합니다. 용도는 빈 공간을 제한함으로써 생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