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전 10: 9 주를 시험하다가 - 고전 10: 11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고전 10: 9 주를 시험하다가 -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그가 자기 백성을 버리시지 않고 늘 함께하시며 도우시리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런 믿음이 있을 때 그는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다. 이 말씀의 배경은, 민수기 21장이다.
백성들은 만나가 싫어졌다. 박한 식물이라고 말했다. 이 박한 식물. 메뉴도 바뀌지 않는 이 박한 식물에 우리가 지쳤다. 그리고 더 이상 안 먹겠다고 버틴다.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1]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크페이라조멘'(*)은 하나님의 선하심, 능력, 지혜 등을 그릇된 동기에서 알아보려는 인간의 생각을 가리키는 동사이다.
* 마 4: 7 -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 행 5: 9 -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 히 3: 9 -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관용을 시험하고 구원의 능력을 시험하였다.
* 시 78: 17-18 – 17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범죄하여 메마른 땅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 18 그들이 그들의 탐욕대로 음식을 구하여 그들의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인간이 범할 수 있는 인간이 범할 수 있는 죄 중에서 가장 큰 죄이다.
2]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이스라엘 백성 중에 어떤 이들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심을 의심했고 하나님 앞에서 불평하였다가 뱀에게 물려 죽었다.
3]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모세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였던 것처럼 고린도 교인들도 주를 시험하는 죄를 범하였다. 그들은 율법으로부터 해방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사용함에 있어서 그 한계(限界)를 벗어났다.
즉 이교도들의 우상 축제에 참여함으로 주를 시험하였다.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우상숭배의 죄에 빠지지 않도록 구원하실 수 있는지를 시험하였으며 설사 그러한 죄를 범했다고 할지라도 용서하고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는 관용이 있는지를 시험하였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이런 상태를 경고하면서 자신을 포함한 의미로 2인칭 복수 동사를 사용하고 있다. 이로써 주를 시험할 가능성이 바울을 포함한 모두에게 있음을 시사한다.
고전 10: 10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역사는 한 마디로 ‘원망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민수기 11장에 보면 원망한다. '하나님, 음식이 이런 음식 밖에 없습니까? 만나 밖에 없습니까?' 원망한다.
민수기 12장에 가면 지도자를 원망하고, 특별히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원망한다.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했다고 원망한다.
민수기 14장에 가면 아예 다 포기하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과 항변한다. 이 끊임없는 원망의 역사.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원망이다.
1]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본 절에서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지은 네번째 잘못을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모세와 아론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이었다.
본 절은 고라의 반역과 그를 따르는 일만 사천 칠백 명이 염병으로 멸망한 사건을 가리키는 듯하다.
* 민 16: 41, 49 – 41 이튿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 하고 49 고라의 일로 죽은 자 외에 염병에 죽은 자가 만 사천칠백 명이었더라.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이 9장에도 나오는데 본 절이 가나안 정탐군의 보고를 듣고 가데스 바네아에서 하나님을 향해 원망을 발했던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언급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에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즉각적인 심판이 없었으므로 전자의 경우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Godet).
2]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올로드류투'(*)는 히브리어 '함마쉬히트'(*)의 인용이다.
* 출 12: 23 –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려고 지나가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문설주의 피를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에게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기 위해 온 멸망 시키는 하나님의 '천사'를 가리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다가 치명적인 염병(plague)으로 멸망을 받았다.
* 민 16: 48 -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에 염병이 그치니라.
바울은 이 '염병'을 출 12: 23의 내용에 근거하여 '멸망시키는 자'로 해석했을 것이다(Godet).
믿음이 있는 자는 병에 걸렸을 때나 물질적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도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고 자신의 현실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알고 지혜로우시고 의로우시고 선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러지 못하였다.
3]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고린도 교인들 중에 바울을 반대하여 우상 축제에 참여하는 일단의 무리들이 있다.
그들은 바울의 가르침에 따라 우상 축제 참여에 반대하는 그들의 지도자들에 대하여 원망과 불평을 하였다. 원망의 반대는 뭘까요? 감사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그의 긍휼과 자비를 끊임없이 인정하며, 주님 앞에 찬양을 올려 드리는 삶. 찬양하는 사람에겐 원망이 없다.
원망의 마음이 일어나시거든 감사하고, 찬양하기 바란다. 그걸 가지고 감사하지 않고, 그걸 가지고 원망하고 있다. 더 좋은 거 없나?
우상 숭배의 역사, 간음의 역사, 주를 시험함의 역사, 원망의 역사, 그것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가나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한다.
바울은 그러한 불평자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예를 들어 경고를 하고 있다.
고전 10: 11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
결론적으로 이 현실이라는 역사 속에서 우리가 받아야 할 교훈을 발견하여야 한다.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며, 내일의 변화를 바라보면서 말세를 만나게 될 우리를 깨우쳐야 한다.
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는 우리에게 본보기가 되고 또 말세를 당한 우리에게 교훈이 된다.
우리는 그들의 실패를 본보기 삼아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에 빠져 실패자가 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2]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말세를 만난 우리’라는 말은 신약시대가 말세임을 증거한다. 성경은 지구의 역사가 대략 6천년임을 증명한다.
성경은 정확한 역사책이다. 아담은 창조된 후 거의 천년 가량 살았고 그가 죽은 지 얼마 후 노아가 태어났다. 아담의 창조 후 2천년경에 아브라함이, 3천년경에 다윗이, 4천년경에 예수께서 오셨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마지막 때에 자기 아들을 보내주셨다. 주께서 승천하신 후 2천년이 지나고 있으니 확실히 지금은 말세지말(末世之末) 즉 말세의 마지막이다.
(1) 말세
말세에 해당하는 헬라어 '타 텔레 톤 아이오논'(*)은 문자적으로 '세대들의 끝'이라는 의미이다.
이 말은 유대인 시대의 끝을 뜻하기도하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의미하기도 한다(Hendriksen).
* 마 13: 39 -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 히 1: 2 -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또한 '메시야 시대' 자체를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Godet). 그러나 바울이 긴 세월의 '완성'을 뜻하는 단어 '운텔레이아'(*)를 사용하지 않고, 한 세월의 '끝'을 뜻하는 '타 텔레'(*)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창조 이래 지나간 모든 시대의 '끝'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Lenski).
즉 그리스도가 이땅에 옴으로써 유대 민족이 율법을 통한 제한적인 구원의 길로 인도되었던 시대가 막을 내리고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시대가 열렸음을 뜻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 히 9: 26 -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2) 깨우치기 위하여(경계)
'경계'에 해당하는 헬라어 '누데시안'(*)은 '권고하다' 혹은 '교정하다'는 뜻을 갖는 단어로 앞에서 언급한 내용들이 당시 고린도 교인들에게 필수적인 것임을 강조한다.
* 살전 5: 12, 14 – 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3] 넘어질까 조심하라. (10: 1-13)
선진들의 자취는 역사의 거울이 된다. 앞서간 사람들의 올바른 걸음걸이는 뒤에 따라가는 사람들에게 승리의 길잡이가 된다. 그렇지만 간혹 목표를 잃고 방황하거나 주저앉는 모습은 다른 사람에게 실패의 흔적으로 비쳐진다.
옛날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40년간 광야 여행을 하면서 겪었던 애환과 함께 그들의 모습이 후세 사람들에게 거울로 작용하고 있다. 그들이 하나님께 받은 축복과 특권을 행사했지만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다가 징벌을 받았던 불행한 흔적도 남아있다.
사도 바울은 조상들의 역사를 더듬으면서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당부하였다. 넘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넘어지지 않는 믿음의 장부가 되어야만 한다.
* 고전 16: 13 -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1) 넘어진 사람들
이사야 14: 12에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라고 하였다. 성경 역사에는 많은 사람들이 일어섰다가 넘어져버린 기록이 있다.
① 선 줄로 생각하는 자였다.
12절에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였다. 여기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방심하는 자를 뜻한다. 높은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많은 경륜과 관록이 있고, 여러 사람이 부러워하는 위치에 있는 자다.
넘어지고 실족하는 사람은 어리거나 가벼운 사람이 아니다. 체구가 크거나 중량감이 있는 사람일수록 실족할 확률이 많고 그만큼 위험부담도 크다.
신앙 세계에서도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았거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넘어질 위험이 많다. 모세와 함께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들은 유월절의 피 뿌리는 절기를 통하여 출애굽한 사람들로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고 신령한 음식과 음료를 마신 사람들이다(2-4절). 그렇지만 모두 다 광야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② 시험에 빠지는 사람이다.
본문 5절에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고 하였다. 다 같이 출애굽의 감격과 홍해를 건너온 체험이 있었지만 광야 생활에서 오는 시험의 벽을 넘지 못한 사람들이다.
본문 7-10에는 그들이 겪었던 시험의 유형이 열거되어 있다. 그들을 넘어지게 하고 멸망하게 한 요인은 여러 가지다.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숭배하거나(출 32: 4). 발람의 덫에 걸려 모압 여인들과 음행하다가 2만 3천명이 죽었다(민 25: 1).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뱀에게 물려죽거나(민 21: 6). 패역한 사람들의 충동에 말려 주님을 원망하다가 멸망했다.(민 14: 29-37).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와 같은 시험은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밀려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③ 멸망을 당한 사람이다.
히브리서 6: 4-6에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 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라고 하였다.
성경에는 에서 처럼 축복의 특권을 받고도 소홀히 여기거나 방심하다가 불행하게 된 사람이 많이 있다.
* 히 12: 16-17 – 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17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언약궤를 앞세운 여호수아의 군대가 요단강을 건너고 여리고 성을 단숨에 함락시키고 기세등등하게 진격했으나 아이성 전투에서 방심하다가 주저앉고 말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아간의 범죄 때문이었다. 아간의 실족은 이스라엘을 불행하게 하였고, 가족들까지 멸망하고 말았다.
* 수 7: 22-26 – 22 이에 여호수아가 사자들을 보내매 그의 장막에 달려가 본즉 물건이 그의 장막 안에 감추어져 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는지라. 23 그들이 그것을 장막 가운데서 취하여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가지고 오매 그들이 그것을 여호와 앞에 쏟아 놓으니라. 24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과 더불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그 외투와 그 금덩이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딸들과 그의 소들과 그의 나귀들과 그의 양들과 그의 장막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25 여호수아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오늘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물건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26 그 위에 돌 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의 맹렬한 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도 실족하여 넘어지고 불행하게 되었다.
* 삼상 31: 6 -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무기를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
(2) 넘어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신 것은 넘어질 수밖에 없는 개연성을 두고 하는 말이다. 차라리 앉아 있거나 누워있는 사람은 넘어질 염려가 없지만 서 있는 사람에게는 넘어질 위험성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① 불안한 세상이다.
인간이 사는 세상은 예측할 수 없는 불완전한 상황이 연속되고 있다. 천재지변과 같은 자연 재난이나 기후의 이변으로 일어나는 환경문제도 크게 작용한다. 그런 것 말고도 정치적인 상황이나 사회적인 여건도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요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초대교회의 경우 수백 년 동안 무신론적인 세상 권력이 교회를 넘어뜨리려고 온갖 박해를 가했다. 그런가 하면 중세기 이후 기독교에 자유가 선언된 시절에는 여러 가지 이단들이 일어나서 교회를 흔들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인간의 지식과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하여 세속주의와 쾌락주의의 사상이 교회를 휩쓸고 있다. 이사야가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라고 한 것은 넘어지기 쉬운 세상의 형편을 표현한 말씀이다(사 40: 30).
② 불완전한 인간이다.
앞서 언급한 세상적 상황이 넘어짐의 외적 요소라고 한다면 인간의 불완전성은 내적 요인이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주님 앞에서 바른 신앙고백을 하였고 열정적으로 주님을 사랑하였다. 그렇지만 결국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다.
* 마 26: 69-75 – 69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70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71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72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73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74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버려두고 갈릴리 바다로 달아났다.
* 요 21: 3 -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베드로가 처음부터 주님을 거부했거나 계획적으로 주님을 부인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였다. 그것은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기 때문이다.
* 마 26: 41 -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사도 바울도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 도다.”고 하였다(롬 7: 19). 마음으로 큰소리치고 결심도 하지만 그것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자기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③ 가파른 벼랑 끝에 서 있는 상황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천당이 아니다. 이 세상은 어디에나 다 마귀가 활동하는 공간이다. 마귀는 호시탐탐 하나님의 백성을 넘어뜨릴 궁리만 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여기에서 예외는 없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다 갖춘 사람이라도 마귀의 공격을 받으면 순식간에 곤두박질하고 넘어지는 경우를 수없이 보았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의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하였다(벧전 5: 8).
다윗은 자기의 생명을 찾는 자가 그를 넘어뜨리려고 올무를 놓고 음모를 꾸미며 그가 실족하는 것을 보면서 즐길 것을 생각하니 속이 상한다고 하였다.
* 시 38: 12-16 – 12 내 생명을 찾는 자가 올무를 놓고 나를 해하려는 자가 괴악한 일을 말하여 종일토록 음모를 꾸미오나 13 나는 못 듣는 자 같이 듣지 아니하고 말 못하는 자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14 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내 입에는 반박할 말이 없나이다. 15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16 내가 말하기를 두렵건대 그들이 나 때문에 기뻐하며 내가 실족할 때에 나를 향하여 스스로 교만할까 하였나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선 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잠시도 방심하거나 교만하지 말고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한다.
(3) 넘어지지 않는 사람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고 하였다(히 12: 1).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인물이 그 사람들이다. 그들은 온갖 박해와 시험을 당하면서도 넘어지지 않고 거뜬히 이겨 낸 사람들이다. 이들이야 말로 승리의 간증자였다.
① 믿음에 굳게 선 사람이다.
.
히브리서 11: 1-2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고 하였다. 믿음은 아득한 미래를 현실로 여기며,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를 증거하는 것이다. 아벨과 에녹과 노아와 아브라함과 모세와 같은 사람들이 그런 증거자다.
믿음이 없는 사람의 눈에는 허망하게 보이는 것이라도 그들의 눈에는 확실한 근거가 되었다. 이 믿음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거기에다가 인생을 걸었지만 실패하지 않았다. 이 믿음 때문에 수없이 많은 죽음의 고비를 당하곤 하였다. 어떤 사람은 심한 고문을 받았으나 구차히 피하지 않았다. 결박당하고 옥에 갇히고 채찍에 맞고 톱으로 켜고 칼로 죽이는 죽음을 당했지만 결코 넘어지지 않았다.
* 히 11: 35-38 –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② 훈련된 사람이다.
디모데전서 4: 7-8에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하였다. 경건에 이르는 연단은 영적인 훈련을 의미한다.
* 고전 9: 24-25 –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예수님께서 제자의 도를 가르치실 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였다(마 16: 24). 심하게는 자기의 지체 중 하나가 저를 넘어지게 한다면 손이나 발을 찍어 버리더라도 실족하지 않게 하라고 하였다.
* 마 5: 29-30 – 2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영적 훈련에 숙달된 사람은 어떤 시험에도 넘어지지 않는 비결을 터득하고 있다. 그것은 겸손한 자세다. 잠언 16: 18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하였다. 그리고 자기를 걸어 넘어지게 할 만한 요소를 내려놓는 것이다.
* 히 12: 1 -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③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이다.
중생한 성도는 그의 삶의 전부를 하나님께 의존하는 자였다. 사도 바울은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고 하였다(고전 15: 10). 우여곡절이 많은 세상에서 흔들리거나 넘어지지 않고 굳게 설 수 있는 것도 오직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시기 때문이다.
이사야 41: 10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도 베드로에게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라고 하였다(눅 22: 31-32).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강한 손으로 자기 백성을 붙들어 주신다.
* 사 49: 16 -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