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 일찍 도착하여 오시는 님들과 상견례를 나누고 여권을 받아서 접수했다.
쭉 뻗은 인천공항의 영종대교는 무의도 여행에 올 때를 기억나게 했고, 한분이 여권을 놓고 와서 안양까지 택시를 타고 가져왔는데...
택시비가 자그만치 300,000\. 여행비는 290,000\
회장님과 나는 그만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여행사 직원이 나와서 40명의 탑승수속을 밟아 주었고, 또 한회원은 발렌타인 술을 90,000\에 샀다.
서울에서는 200,000\ 이라고 하니 면세점이 싸긴 쌌다.
천진에 내려서 현지 가이드 최순금씨는 북경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자신은 조선족이고 학교 선생이란다.
24K라고 불러도 된다고 했다. 우리는 깔깔 껄껄대고 웃었다.
작은 키에 둥그런 얼굴한 순금씨는 7살난 아이가 있다고 했는데 늘 입가에는 웃음이 있어 즐거운 기분을 들게 했다.
황량한 천진에서 북경으로 가는 고속도로는 쭉 뻗어있지만 들판으로 이어진 겨울은 우리의 시골을 연상케 했다.
이따금 연못이 있고 집이 있지만 초라했다. 여기서 북경까지는 서울서 천안거리였다. 순금씨 말에 의하면 여기는 작은차가 비켜가는 게 아니고 큰 차가 비켜간다고 했다. 비행시간이 변경되어 우리는 북경에 도착하니 어두움이 이미 와 있었다.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서커스 관람을 갔다. 뭐 볼게 있을까 하고 관심을 두지 않았으나 점점 나는 매료되었다.
체조의 미학이라고 할 만한 묘기는 박수갈채가 이어져 나왔다.
그처럼 부드러운 몸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지구상에 있을까?
허리를 굽혀 턱을 바닥에 대고 두 다리를 수직으로 세우는 묘기등은 참으로 진기했다.
자전거에 10명이 타고 무대를 돌고, 또 양손에 접시 4개씩을 막대기로 쉬지 않고 돌리면서 자전거를 타는 것, 피라미드 모양으로 4사람이 삼각형을 이루는가 하면 참 재미있게 보았다.
이튿날 이어지는 여행 패키지는 중국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알게 해주었다.
용경협이라는 곳은 여름에는 댐 위로 올라가 배를 타고 여행하는데 겨울이라 빙등축제를 하고 있었다.
얼음성, 용, 물고기, 꽃,등 수많은 형상을 투명한 얼음으로 조각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했던 것이다.
오색찬란한 불빛으로 얼음성 위에서 회원들은 사진 찍기에 바뻤다.
얼음으로 이루어져 있어 추위가 주위를 엄습했다.
밖으로 나와 보니 산 위에는 꼬마전구로 용경협<龍慶俠> 이라고 커다랗게 조명을 하여 놓았고, 또 강택민<江澤民> 이라고 크게 조명으로 이름을 보게 해놓았는데 어둠은 용경협과 더불어 중국의 지도자를 기억하게 하였다.
어둠을 뚫고 중국찻집에 들려 차의 효험을 깨닫게 하여 주었으며, 많은 회원들이 차를 샀고, 숙소에 들어와서는 호텔 근처에 있는 술집에 가서 새벽까지 술마시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다음날
북경시내를 질러서 천안문 광장에서 사방을 살펴보고 거리를 달리는 많은 자전거를 보면서 우리의 70년대 중반을 떠올렸다.
이화원에 들려 마지막 황제의 결혼식을 올렸던 곳을 창문을 통해서 보면서 역사의 사실성을 느끼게 했다.
궁궐 속에 있는 수많은 건물들은 거대했고 고풍스러워 대국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나게 하였다.
차를 타고 만리장성에 가서 곤돌라를 타고 장성에 도착하여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성벽을 구축한 것을 보고 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날씨는 청명해서 수많은 산봉우리를 볼 수가 있었으며 이 성을 쌓아 거란족의 침입을 막았다고 생각하니 당시의 국가간의 침공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게되었다.
만리장성을 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을까?
기계도 없이 오직 인력과 동물만 가지고...
그러자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떠올랐다.
세계에서 가장 파란 하늘을 갖고 있다는 이집트.
불가사이한 피라마드.
천진공항을 출발하면서 가이드인 순금씨와 손을 맞잡고 다음을 기약하고 우리는 서울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인천공항에서 해산식을 갖고 공항버스로 한강줄기를 거슬러 서울로 오면서 나는 우리의 발전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비록 지금은 불황이 깊고, 임금투쟁으로 공장들이 중국으로 속속 떠나버리지만, 우리의 저력이 영원하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하였다.
한강의 눈부신 야경들.
또다시 한강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토요일.
무박산행을 가기 위해 신사동으로 향했다.
여행이 이렇게 피곤할까?
아마 비행기를 타기 위해 그리고 이동하고 하는 시간은 산행보다 피로하게 했다.
추암해수욕장에 도착하여 어둠 속에서 커다란 파도를 몰고 와서는 백사장에 부서지고 또 밀려오는 파도를 보면서 그 자연의 괴력에 감탄을 하고 김밥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동해로 향했다.
지금쯤 눈이 있어야 할 산에 건조하여 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두타,청옥산.
이 두산은 성벽처럼 연결되어 있어 함께 불리운다.
해발 1,400m나 되는 낮지 않은 산 특히 무릉계곡은 조선시대 우암 송시열 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은거했던 곳이다.
우리 옛 선조들은 혼탁한 정계를 떠나 후학을 가르치며 은거하였던 것이다.
두타산 국립공원에서는 산행을 해뜰 때에야 입장을 시키기에 우리는 7시에 산행을 시작했다.
무릉계곡을 건너면서 기억에도 없는 조선시대의 학자의 호를 떠올리며 시공을 초월하여 21세기에 살아가는 나를 뒤돌아 보면서 걸었다.
가물어서 계곡에는 우렁찬 물의 모습은 간데 없고, 커다란 바위들만 뎅그러니 있었다. 산성을 향해서 올랐다.
어느정도 오르니 바위에서 떨어지는 물이 얼어 붙어서 빙벽을 만들었다.
감탄하고 또 올랐다. 마주보이는 능선에는 칼날같은 바위들이 촘촘히 박혀있었고
나뭇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가지를 들어낸 나무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푸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 만이 싱싱함을 느끼게 하였다. 참나무 군락을 올라서니 두타산 정상이었다.
이미 선두를 본 팝콘님,푸들<개털>님이 식사를 하고 있었고, 우리는 해적님이 가져온 삼겹살과 김치와 술을 곁들여 냠냠쨥쨥하며 부지런히 식사를 하였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막히는 것이 하나만 있었다. 그것은 청옥산인데 해발이 두타산보다 조금 높기 때문이었다.
뾰족한 준령들이 끓이지 않고 이어져 있었고 댓재로 해서 두타와 청옥산으로 이어지는 것은 백두대간 줄기였다.
무릉계곡은 길고 길었다.
소연님과 화사한5월님이 다리를 쩔둑거리며 산행을 마쳤는데 아마 지금은 다리가 몹시 아플 것이었다.
관절이 안좋은 소연님과 5월님은 따뜻한 물에 수건을 적셔 찜질하고 다리를 약 20도 정도 올리고 잠을 자는게 좋을 것같다.
왜냐하면 피가 다리로 몰려 있기 때문인데 이렇게 하면 혈액순환이 잘되어 통증이 빨리 가라앉기 때문이다.
아픔을 참고 끝가지 산행을 마친 두 분께 수고의 감사를 드리며 다음 산행에도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첫댓글 눈덥힌 겨울 두타,청옥산을 사진으로 보고 싶군요 올려 주실거죠
중국여행...두타산,,청옥산..무릉계곡..즐건여행하구..오시엇군여??이궁,,,난언제나..가보나???
헉~!!!!!!!!!!!!!!!!....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