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생각해봅니다. 일단 ‘인형’부터 떠오릅니다. 나아가 ‘예쁜 인형’이고 남자가 아닌 여성입니다. 분홍색 치장에 날씬한 몸매, 그야말로 이상적인 여성을 그려낸 인형입니다. 뭇 남성들에게는 자신의 애인으로 만들고 싶을 대상이고 뭇 여성들에게는 되고 싶은 자신의 모습입니다. 알고 보니 이 인형이 만들어진 지 7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획일화된 모습으로부터 탈피하여 시대를 따라 다양하게 변해왔다고 합니다. 각양의 직업을 입히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남녀평등에서 여성우월의 정신까지 담아내기도 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자기들만의 나라를 만들기도 한 것이지요. ‘바비랜드’라는 나라 말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인형을 가지고 놀 때가 많습니다. 비단 사람 모양뿐만 아니라 동물의 모양으로도 많이 끼고 놉니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마음 놓고 자신의 이야기 친구로 여기는 것이지요. 부모나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서슴없이 내놓기도 합니다. 옆에서 아이가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을 보면 그런 낌새를 느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실제 친구보다도 어쩌면 부모보다도 더 애지중지 하면서 아끼고 사랑합니다. 유일한 말동무이기도 할 테니까요. 물론 나이가 들면서 차츰 실제 인간에게로 관심이 옮겨갑니다. 그러나 실제 사회에서의 인간관계에 인형과의 훈련이 많은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속내를 드러내며 말을 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니 말입니다.
인형을 어린아이가 만들 수는 없습니다. 어른이 만들어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에 아마도 여자보다는 남자가 만들어주었으리라 짐작합니다. 혹 엄마가 자신의 아기를 위해 만들어주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기를 돌보는 자신의 모습을 담아서 만들지 않았을까요? 아빠는 아들을 위해서 사냥할 때 보았던 동물이나 아니면 사냥하는 자신의 모습을 담아 건장한 남자를 만들어주었을 지도 모릅니다. 남자와 여자의 이 역할은 인위적이라기보다는 자연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잉태하여 10개월 가까이 함께 지내고 출산하여 젖을 먹이며 2, 3년을 가까이 지내야 합니다. 아기와 가까운 사람은 엄마입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여자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인형이 대부분 아기들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기를 키우는 엄마를 따라하는 놀이로 나타난 것이지요. 그러나 시대가 변하였습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가고 역할도 다양해집니다. 그에 따라 여태 남자들의 보조 역할만 하던 여성들이 오히려 남성보다 앞서가는 경우도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서는 분야도 그리고 그에 따른 인원도 비약적으로 증가합니다. 21세기에 와서는 구태여 남녀를 구분 짓지 않으려고도 합니다. 그 반대로 오로지 여성의 역할로만 여기던 직업에 남성이 껴드는 경우까지 생깁니다. 게다가 인권과 남녀평등의 문제까지 곁들여집니다. 그러니 이제는 남녀 구분이 의미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 시대를 반영하여 이 영화가 제작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장면 서두에 여자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아기 인형들이 내던져지고 밟히고 깨지고 아이들에게서 팽개쳐지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여태 유지되어 오던 관습이나 문화를 바꾸자는 의도가 보입니다. 있어온 현상을 표현한 것뿐입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유지되어 온 문화이고 풍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한 세기 속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만큼 의식도 바뀌었습니다. 그다지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러려니 생각할 뿐입니다. 새로울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다만 유행하던 인형을 통하여 상기시킨 것 정도가 새롭다고나 할까요? 손에 가지고 놀던 것이 화면에 움직이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정도 말입니다. 현실에서는 새로울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바비랜드에서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바비’는 어느 날 인생 속의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바비와 죽음은 사실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인형이 죽을 리는 없는 일이니까요. 죽음은 살아있는 사람에게나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현실세계는 어떠할까 궁금해집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보기로 작정합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켄’이라는 남자친구가 동행합니다. 바비랜드에서 켄은 그저 장식용에 불과했습니다. 바비와 켄의 현실세계 여행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하지요. 오로지 예쁨으로 무엇이나 할 수 있던 세계에서 남자들의 세계로 뛰어든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곳의 여자들에게도 해방을 얹어주려고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튼 여전히 생각 중인 것은 이 남녀의 의식입니다. 아무리 평등을 부르짖어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일반적인 남자라면 예쁜 여자에게 눈길이 갑니다. 옆에 있던 여자가 공평하게 대해달라고 주장해도 그래야지요 하면서 의식을 깨울 때까지는 말입니다. 물론 일할 때는 공평하게 분배해줄 수도 있고 평등하게 기회를 나누어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나타나는 현상까지 뭐라 간섭하기는 어렵습니다. 좀 과격하게 비유하면 남자가 젖을 물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물론 모유가 아니라면 가능하겠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모유가 우유보다 월등하게 좋다는 것은 인정할 것입니다. 함께 살지만 차이는 인정하고 가야지요. 영화 ‘바비’(Barbie)를 보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첫댓글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 멋진 한 주를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