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이 끝나기를 바라며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중 매일매일 하던 기다림이 낯설게 느껴져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그러다 문뜩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주에는 끝날 시험, 빨리 오기를 바라는 버스, 쉬고 싶은 주말, 종강, 기다리던 사람과의 만남, 그리고 긴 연휴까지 우리는 많은 시간을 기다림으로 채웠던 것 같습니다.
기다림은 길고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하지만 그 기다림 끝에 있는 것은 대부분 대단치 않은 것들이었습니다. 시계를 보며 빨리 오기를 바라는 버스는 항상 같은 종착역으로 우리를 데려다주고, 기다리던 주말, 연휴는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기다리던 사람과의 만남은 취소되면 우리에게 허망함만을 남겨줍니다. 이렇듯 기다림 끝에 허무함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지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기다림의 괴로움으로 인해 즉각적인 성취와 순간의 즐거움에 더 눈이 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기다림이 의미가 없던 행위였는지 질문을 받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답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즉각적인 성취와 순간의 즐거움을 바라기에 기다림이 주는 인내와 성찰이 더 빛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긴 시간을 인내하고, 그 고통은 견뎌냈습니다. 비록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마주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우리는 더욱 성숙해졌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성장은 무엇보다 가치 있는 것이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일 겁니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우리는 조금 더 성숙해진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익숙했던 기다림을 천천히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첫댓글 기다림이라고 하는 것은 으레 짜증납니다. '무엇인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물리적 시간 단위와는 상관 없이 언제나 '길게' 느껴지고, 물리적인 고통의 정도와는 상관 없이 '고통스럽게' 느껴집니다. 이걸 당연하게, 익숙하게 생각하면 기다림은 의미 없는 시간이 됩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 기다림이라는 시간 만큼 행복하고 들뜨게 되는 경우도 없습니다. 상품이 도착할 때까지, 사람이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그 상품과 사람에 대한 기대로 들뜨고, 그래서 조급해지기 때문입니다. 대개 어떤 것을 성취하고 나면 우리는 만족감을 느끼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다림의 시간은 그러한 만족감이 아직 실현되지 않은 채, 기대하게끔 하기 때문에 들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다림'을 '길고 고통스러운 과정'으로 보는 대신 '기다림'이 '실현되기를 희망하기에 충분한 시간과 희망을 가진 시간'으로 본다면 기다림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종교에서는 현실적 삶을 이런 점에서 희망적으로 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