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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파트리스 에브라는 책을 하나 쓸 것이다.
"난 이미 마음속에 제목을 정해놨어요" 그가 말한다.
"길거리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까지"
만약 그가 영국 매체와 하는 첫번째 메이저 인터뷰가 아닐지라도 이건 꽤 읽어볼만 하다.
에브라는 멋진 이야기꾼이다. 이번주에 우리는 유나이티드의 캐링턴 훈련장에서 이번주에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퍼거슨의 24년 재임기간동안의 그누구못지않게 생각이 깊고 영리한 사람이다.
5개국어에 유창하고 지금은 한국어를 마스터하기 위해 열심인 그는 그의 절친 박지성과 격의 없이 이야기하며, 다양한 주제들로 논쟁한다.
첼시와 맞붙었던 것에서부터, 그가 이제 정신적인 고향으로 여기는 이곳으로 이르게 된 그 길고도 험한 여정까지.
지난시즌 그가 아스날을 갓난애들이라고 언급했을 때 아스날에서의 악명높은 폭발에서부터, 왜 카를로스 테베즈가 여전히 유나이티드 선수여야 하는지까지.
그가 스트라이커에서 보직변경하여 세계 최고의 레프트백 두명 중 한명이 된 얘기는 말할 것도 없다.
유나이티드에 대한 그의 태도는 매혹적이다. 그는 퍼거슨을 '하나의 문화'라고 일컬으며, 유나이티드 셔츠를 입고 계속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는 'the fire'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이건 그의 안에서 타오르는 것뿐만 아니라 그가 믿는 그사람이 절대 이 클럽을 걸어서 떠나지 않을거라는걸 말한다.
"감독님은 세상을 떠날때도 벤치에서 있으실거예요" 그가 얼굴가득 미소를 지으며 공언한다. "그게 그의 운명이에요"
시즌 초에 퍼거슨은 그의 선수들과 은퇴하는 것에 대해 말했었다.
"경기 전이었어요. 그는 그의 은퇴설을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물었어요. 그가 그의 집에 앉아서 티비를 보고 라디오를 듣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냐는 거였죠. 그가 말하길 "그럴 기회는 없어. 난 내 평생 일해왔고, 죽을때까지도 일할거야" 라며 잠시 웃으셨죠. 그러고 "이건 나의 승리야. 난 이곳을 떠날수가 없어"
"경기전에 감독님은 항상 작은 이야기를 해주세요. 가끔 그는 애버딘 감독시절 얘기를 해요. 또다른 때는 드레싱룸을 돌며 여러 선수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어요. 여기 우린 한국, 프랑스, 세르비아, 불가리아 등 영국과 전세계 여러곳에서 모였죠. 어떻게 우리가 모두 이 같은 장소에서 하나가 됐는지 그는 우리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죠. 우리가 가졌던 여러 장애물들은 이곳에서 극복돼요. 그건 선수들에게 큰 기운을 북돋워주죠."
에브라는 처음으로 감독님의 분노를 자초했던 때를 떠올린다. 그의 데뷔전이었는데 어려운 상대 맨체스터 시티에게 3-1로 졌을 때였다.
"그는 45분만에 날 뺐어요" 에브라가 말한다.
"그는 화가났죠. 그는 그냥 날 보며 엄청 심각하게 얘기했어요. "미스터 에브라, 이제 그냥 영국 축구가 무엇인지 똑바로 지켜보고 배워."
에브라는 그 이상의 것을 했다. 그는 유나이티드에 대해서도 배우기로 결심했다. "난 DVD들을 잔뜩 가져왔어요"
"뮌헨참사, 버스비아이들, 바비찰튼, 조지베스트, 데니스로, 칸토나, 이 클럽에대한 모든 스토리들이었죠. 이 클럽과 관계된사람들을 만났고, 난 그들에 대해 알고싶었어요. 그들이 이 클럽을 위해 무얼 했는지. 경의를 표할수 밖에 없었죠. 왜냐면 바비찰튼경과 악수를 하면 정말 레전드구나 하는게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이곳에 있는 모든 어린 선수들은 이 클럽의 역사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전 DVD들을 보고나서 이 유나이티드 셔츠를 존경할 필요가 있다는걸 깨달았죠. 전 이 이야기를 존경할 필요가 있었어요. 경기를 할때마다 내 머리속에는 항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위해 플레이하는건 정말 특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 셔츠를 입으면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있는 것이죠. 제가 이 클럽을 위해 뛸수 있다는 것에 대해 전 신에게 감사를 드려요. 이곳에 와서 훈련을 할수 있다는 것, 라이언 긱스와 폴 스콜스같은 레전드들과 함께 뛴다는 것에 대해 말이에요.
"내가 이곳으로 이적해왔을때 사람들이 나에게 무엇이 가장 흥분되냐고 묻더라구요. 난 로날도와 웨인루니가 아니라 긱스와 스콜스같은 선수와 함께 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어요. 그들은 이 클럽의 역사예요. 긱스는 그의 커리어에서 아무것도 우승하지 못한 선수처럼 훈련에 임해요. 이기고자 하는 그의 욕망은 훈련장에서도 마찬가지에요."
그와 똑같은 욕망이 퍼거슨에게도 있다. 모든것을 이룬 68세의 나이에말이다.
"알렉스 퍼거슨 경은 하나의 문화예요. 그리고 그는 승리자죠. 축구는 피라미드와 같아요. 꼭대기에 오르는 것은 쉽지만 그곳에 머물러 있기란 어렵죠. 그는 가만히 쉬게 놔두질 않아요. 항상 다음 경기를 위해 굶주려 있어요."
"난 우리가 전반전은 2-0으로 마쳤는데 그가 우리에게 헤어드라이어를 날려줬던때를 기억해요. 4-5골은 넣었어야 했기 때문이죠. 그는 우리를 보려고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에 대해 상기시켜줬어요. "왜 그들을 존중하지 않냐?" 그가 고함을 쳤죠."
"그는 최고의 수준을 요구해요. 유나이티드를 위해 그냥 괜찮은 경기를 하면, 벤치에 앉아요. 오직 끝내주는 경기를 할때에 팀에 머무를수 있는것이죠. 그게 법칙이고, 선수들은 그걸 받아들여요."
요즘같은 현대시대의 백만장자 축구선수들 역시 앞에 언급한 악명높은 헤어드라이어를 받아들인다.
"2년전인가 크리스마스 파티를 한 후였어요. 이런저런 얘기들이 나왔는데, 그는 우리를 불러 만남을 가졌고, 그냥 우리모두를 죽여버렸죠..경험많은 선수들이건, 어린선수들이건.. 우리의 잘못이었고, 그는 우리가 가지는 책임감에 대해 말하며 그걸 우리에게 상기시켜줬어요. 그는 그의 성질로 그 상황을 잘 다루었어요. 하지만 여기 선수들은 그를 엄청많이 존경하기 때문에 그가 항상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요. 만약 팀이 쳐져있다고 생각하면 여전히 그 헤어드라이어 처방을 내리겠지만요"
2006년 1월로 돌아가서, 모나코에서 유나이티드로 5.5M에 이적해서 지금은 퍼거슨 최고의 영입 중 하나가 되었지만, 에브라에게도 힘든 시기가 있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위해 플레이하기에 난 뭔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어요."
"모나코에서 난 7,000명의 관중들 앞에서 플레이했었는데, 유나이티드에 와서 갑자기 76,000명 앞에서 플레이 하게 된 것이었죠.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나 프랑스를 위해 뛰었던것 조차도 이곳준비에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맨체스터에 왔을때 난 새로운 직업을 찾았죠. 이건 그냥 축구가 아니다.. 첫번째 경기였던 시티전에서 난 큰 실수들을 너무 많이 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코너킥때 포스트 옆에 서서 "와우, 여기 축구는 정말 빠르구나"라고 생각했던게 기억나네요. 잉글랜드에서 축구하고 싶으면 우선 강해야 하고, 그 뒤에 축구를 즐겨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그 후에 난 낙담해 있었지만, 내가 이곳에서 성공할수 없을 거란 생각은 적절하지 않다고 느꼈어요. 난 여전히 내 능력에 자신감이 있었죠. 하지만 1월달에 이적하는건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그리고 내가족에게도 쉽지 않았죠. 내 아들은 3개월밖에 안됐는데 5개월동안 맨체스터 중심가의 호텔에서 살았으니까요. 날씨도 모나코랑 다르고! 크게 따귀를 맞는것 같았어요"
그는 리버풀전에서 제외됐을때를 기억한다.
"감독님이 저에게 넌 이 경기에 뛰지 않는다고 말하셨는데, 난 영어를 잘 못해서 완전히 이해할수가 없었어요. 난 옷을 갈아입고 피치에서 웜업을 했죠. 근데 카를로스 케이로즈가 날 불렀어요. "파트리스, 너 뭐하고 있어? 너 오늘 벤치에 없어" 그말은 날 죽였지요. 정말 당황스러웠어요."
어려웠던 6개월은 2006년 월드컵 프랑스 스쿼드에서 그의 자리를 놓치게 만들었다.
"난 내 자신에 대해 정말 화가났었어요. 나 없이 그곳에 간 우리팀을 보면서말이죠."
"난 생각했어요. "됐어. 난 뭔가 할 필요가 있어". 난 영국 축구를 위해 더 강해질 필요가 있었어요. 그래서 여름 내내 체육관에서 내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열심히 운동했어요. 난 정말 배가 고팠고, 다시 프리시즌이 돌아왔을때까지 난 준비가 되어 있었죠. 난 프리시즌이 필요없었어요. 우리가 남아공투어를 했을때, 난 플레이를 매우 잘했죠. 마이크 펠란이 날 한쪽에 밀어넣고 말하길, "이제 넌 유나이티드 선수구나"
그는 곧 레귤러 선수가 되었다. 가브리엔 에인세와 미카엘 실베스트르를 능가하며 그의 자리를 지켰다. 2007년 FA컵 결승 첼시전이 오기 전까진 말이다.
"그때가 그시즌 유일하게 안좋았던 기억이었어요."
"경기가 있기 며칠전에 한 이야기가 신문에 나왔죠. 내 이웃이라고 하는 누군가가 인터뷰한 내용인데 내가 축구선수가 되면서 어떻게 마약과 범죄 생활에서 탈출했는지에 대한 얘기였죠.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니예요. 하지만 그날 아침 보스랑 카를로스가 했던 얘기를 기억해요. "넌 이제 결승전에서 뛸수 없을거야" 그들은 말했고, 웃었어요. "우린 이 클럽의 명성을 지켜야 해"
"그들은 농담을 한거였지만, 결승전날 아침이 되었고, 감독님은 나에게 전술적인 이유로 에인세가 뛸거라고 말했어요. 물론 나도 전술적인 이유라는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실망했어요. 그는 나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죠. 10분 후에 그는 나에게 웜업을 하라고 했고, 80분동안 터치라인에 있었어요. 난 흥분했지만, 경기에 뛰지 못했어요. 그 시즌에 난 모든 경기에서 뛰었고, PFA에게서도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뽑혔거든요. 갑자기 이 클럽을 관둘 각오가 되었죠."
"하지만 난 진정하고 생각을 했어요. "아마 이건 테스트일거야. 이게 유나이티드에서의 생활이야. 넌 경기에 항상 뛸거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잖아." 이게 바로 내가 어린선수들에게 해주는 말이에요. 난 그들에게 그 얘기를 말해주죠."
그는 여전히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여전히 유나이티드 선수였어야 했다는 카를로스 테베즈에 대해 말했다.
"그가 우릴 위해 플레이 했었을때, 그는 정말 프로페셔널 했어요."
"그는 마음을 바쳐 플레이했어요. 난 그를 잘알아요. 난 여전히 그의 집에 놀러가고, 난 그가 여전히 유나이티드를 사랑한다는걸 알고 있어요. 난 그가 시티와 문제가 생기는걸 바라는게 아니예요, 하지만 그의 정체성은 여기와 맞았어요."
"심지어 그가 플레이하지 않았을때도, 그는 나와서 경기를 뒤집어놓았어요. 그는 언제나 싸웠죠. 난 그에게 넌 여전히 우리와 함께여야 했다고 말해요. 만약 언젠가 그가 시티에서 우승을하고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한다면 난 이렇게 말하겠죠. "좋아, 너 이적 잘했다 칼리토." 하지만 그때까진.... 난 그저 사실을 말하는거예요."
세네갈에서 태어났지만, 파리 근교에서 자란 에브라는 거대한 대가족을 갖고 있다.
"난 25명의 형제자매중 한명이에요."
"(세차례 결혼과 이혼을 한) 우리아버지가 TV를 많이 안보셨다고 말하는게 공정한거 같네요!"
에브라에겐 오직 축구뿐이었다. "그게 내가 원하는 전부였어요"
"난 밖에 나가 길거리에서 비와 눈을 맞으며 혼자서 했어요. 난 한번도 셔츠를 입어보지 않았고, 정말 팀 하나 가지고있지도 않았어요. 난 호마리우를 좋아하긴 했지만, 우상은 없었죠. 난 그저 축구하는걸 좋아했어요."
"저에겐 쉽지 않았죠. 오늘날 이자리에 오기까지 난 싸워야했어요. 난 절대 Clarefontaine같은 곳엔 가지 않았어요. 절대 아무데나 가지 않았죠. 그들은 축구화, 유니폼 모든걸 준다고 했지만요.난 Les Ulis라는 힘든 지역 출신인데, 나쁜지역은 아니예요. 아까 말한것처럼 갱스터들과의 생활에서 탈출했다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예요. 난 나의 출신지역이 자랑스럽고, 우리 부모님이 해주신 것들에 감사해요."
"하지만 사람들은 내가 그런 꿈을 좇는것을보고 미쳤다고 생각했어요. 학교에서 내가 어떤 직업을 갖고싶은지에 대해 쓴 기억이 있는데 난 축구선수라고 썼죠. 근데 선생님이 나에게 축구선수는 직업이 아니라고 했어요. 그녀는 나에게 축구선수가 되고싶어하는 애들 300명중에 단1명만이 축구선수가 된다고 했죠. 그녀가 말하길 "넌 니가 그 한명이 될거라 생각하니?" 그래서 전 대답했죠 "네, 그래요." 내 반친구들이 앉아서 나를 비웃었어요. 난 그들을 무시해버렸죠."
파리 셍제르망의 유스시스템과도 연결이 되어 있었지만 그가 17살이 되었을때, 비로소 주목을 받았다.
"난 지역 스포츠 센터가 조직한 토너먼트에서 플레이하는 스트라이커였어요."
"거기엔 그 이탈리아인이 있었고, 나에게 트라이얼받으러 토리노에 가지 않겠냐고 물었죠. 그들은 세리에B에 있었어요."
"난 그에게 내 전화번호를 줬고, 3일후에 그가 전화해서 우리 엄마한테 말했어요. 그녀가 말하길 "안돼, 우린 이사람이 누군지도 몰라" 하지만 내 형이 "봐봐, 파트리스는 아무것도 안하고있잖아, 그를 보내자"라고 말했죠."
"나는 그곳에서 10일을 보냈고, 그들은 나에게 유스팀의 멤버로 남아달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Marsala에서 온 스카우터가 나에게 접근을 해왔어요. 3rd디비전에 있는 시칠리아에 있는 팀인데, 그는 나에게 프로선수가 될 기회를 제공했어요. 그는 내가 집을 살수있게 해준다고 말했고, 난 OK했죠. 난 그곳 트레이닝 캠프에 도착했을때가 기억나요. 트랙슈트를 입고 거울로 나를 비춰봤죠. 정말 파라다이스 같았어요."
"오늘날까지도, 그때가 내 축구인생에서 최고의 기분이었어요. 리그나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했을때가 아니라 바로 그때 내가 17살이었을때, 프로축구선수가 됐을때 말이예요. 내가 해낸거죠. 난 사람들이 틀렸다는걸 증명했어요. 그곳은 정말 놀라운 클럽이었고, 하나의 큰 가족같았죠. 내가 그 클럽의 유일한 흑인이어서 사람들이 나에게 같이 사진찍어도 되냐는 요청을 많이 했어요. 왜냐면 그들은 흑인을 한번도 못봤었다더라구요. 하지만 난 길거리를 걸어다닐수 있었고, 사람들이 날 집으로 초대해서 식사를 하기도 했죠."
Marsala에서 그는 Monza로 이적했고, 다음엔 Nice로 갔는데, 그곳에서 그는 처음으로 레프트백에 배치되었다.
"내가 그자리에서 처음 뛰었던 땐데, 레프트백이 부상당해서 레프트윙이었던 내가 거기서 뛰었던 거죠."
"감독님이신 산드로 살비오니가 나에게 거기서 뛰라고 하면서 그 다음경기에도 거기서 뛰라고 했어요. 난 싫다고 했죠. 난 공격수였으니까요. 감독님은 "팀에 있고 싶으면 거기서 뛰어라" 라고 했고, 난 알았다고 했죠."
Nice는 그해 승격했고, 에브라는 리그2에서 최고의 레프트백에 이름을 올렸다.
"우린 리그에서 우승했고, 난 모나코, 디디에 데샹 감독님과 사인을 했어요"
"난 여전히 레프트윙에서 뛰고싶었지만 데샹이 "안돼, 넌 좋은 레프트백이야"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난 그 디비전에서도 역시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뽑혔어요. 우린 잘했고 2004년에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올랐죠. 그해에 난 프랑스 대표팀에도 들어갔구요"
모나코에서 그의 활발한 성격은 Albert왕자의 관심을 끌었고, 에브라는 팀메이트들이 보기에 불가능해보이는 우정을 형성했다.
"그들은 그가 나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낸걸 믿지 못했어요."
"하지만 우린 사이가 좋았고,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있기전에 그는 우리가 그의 아버지를 위해 우승하길 바란다고 말했죠. 슬프게도 우린 졌고, Rainier왕자는 그 다음해에 돌아가셨어요. 하지만 난 2008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그에게 헌사했어요."
에브라는 여태껏 그의 뿌리, 그의 정체성을 잃어본적이 없다. 그의 마음속에는 항상 길거리의 파이터본능이 있을 것이다.
"난 마음속에 여전히 불꽃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난 내가 그걸 항상 컨트롤할수 없다는걸 인정할거예요. 그 예로 당신은 내가 첼시의 그라운드맨과 다툰것에 대해 얘기할수 있겠죠. 그날 난 내 불꽃을 약간 잘 컨트롤했다고 생각하지만요."
"내가 첼시랑 시합할때마다 뭔가 잘못된 일들이 일어나는거 같아요. 하지만 정말 우연의 일치죠. 난 첼시를 상대로 플레이하는걸 좋아하고, 그들을 이기는게 좋아요. 왜냐면 그들은 트로피경쟁에서 대단한 라이벌이니까요. 하지만 난 또한 그들에게 경의를 표해요"
"에릭칸토나가 그가 가끔 그의 불꽃을 컨트롤 할수 없었을때, 그 불꽃이 없으면 그게 자기자신일수 없다고 말한걸 기억하고 있어요. 나도 마찬가지죠. 난 불꽃이 필요해요."
"하지만 난 나쁜앤 아니에요. 내가 태클을 할때 난 공을 따내려고 하는거지 절대 누군가를 다치게 하려고 하지 않아요. 그게 바로 저번시즌 막판에 파브레가스가 나에게 태클했을때 내가 그렇게 화가 났었던 이유예요. 그건 아마 내가 아스날이 베이비들 같다고 말했기 때문일거예요. 난 그 태클때문에 화가 났어요. 만약 당신이 누군가를 다치게 하고싶다면, 그들을 밖으로 초대하세요. 피치밖, 사람들과 심판이 없는 곳으로요. 오로지 나와 당신만 있는거죠. 피치위에서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려고 하면 안돼요."
에브라에게 있어서 그건 간단히 존중의 문제이다. 그는 애쉴리콜을 또한명의 빛나는 레프트백으로서 존경한다. 비록 그가 그렇게 말했지만, 에브라는 또다시 프리미어리그 동료선수들에게 그의 포지션에서 최고의 선수로 뽑혔다.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도 유나이티드를 존경한다. 그 클럽, 선수들, 과거와 현재, 그리고 감독님.. 이 클럽에서 보낸 4년중에서 퍼거슨이 그에게 처음으로 캡틴을 맡겼을때보다 더 자랑스러웠을때는 없었다. "캡틴이 됐다는게 날 가장 기쁘게 한건 아니예요. 하지만 나의 팀메이트들이 나때문에 정말 행복해했어요."
"내가 이곳에 도착했던 순간부터 이게 내 운명이라고 느꼈죠. 왜냐면 내가 유나이티드 선수가 됐을때에야 비로소 나의 진정한 정체성을 발견했거든요. 이곳이 나에게 딱 맞아요. 여기 사람들은 나와 주파수가 맞고, 난 진정한 내가 될수 있었어요."
첫댓글 와..쩐다
에브라 정말 좋다
한국어를 마스터하기 위해 그는 열심히 "나는 바보닙니다"를 열창하고 계십니다.
좋은기사다..ㅎㅎ 에브라도 차기주장감 맨유에서 은퇴하자 ㅋㅋ
아 증말 에브라 멘탈 ㅎㄷㄷ이구나 국민브라!!!!
다 읽었다.....멘탈 대박..2007 FA결승전에서 제외된 이후" 갑자기 이 클럽을 관둘 각오가 되었죠.하지만 난 진정을 하고 생각을 했죠.이건 테스트 일거야.이게 유나이티트드 생활일거야." 역시 긍정적인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군요
잘 봤습니다~
정독했네요...bbbbbbbbbbbbbbbbbbbbbb!!
5개국어 ;; ㄷㄷ
..맨체스터 내에서도 맨유팬이 맨시보다 많아지게된 결정적 이유중하나가..
바로 에브라가 위에언급햇던 맷 버스비경시대부터였다죠...
던컨 에드워즈를 비롯한 황금 유스팀의 엄청난 인기...그리고 성적들...
참사이후에도 골든 트리오의 존재 영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발롱도르 삼총사..
" 베스트 , 로 , 찰튼경 " ...의 영향이 엄청나게 커서 명문으로 발돋음...
맷 버스비경 세대부터 맨유가 " 붉은 악마 " 라는 칭호를받기도...
아 에브라 완전 좋아 ㅋ
다 읽었네요 ㅎㅎ 국민브라 멘탈도 쩌는구나.. 한국어 마스터해서 새로운 인증동영상 하나 올려줘요 ㅋㅋㅋ
잘 읽었어요~ 역시 국민브라 ㅋㅋ
에브라는 책도쓰고싶어하고 한국tv프로에도 나오고싶어하고 ㅋㅋ 하고싶은게 왤케많아?ㅋㅋㅋ
지성이형 관련 인터뷰도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ㅋ
진짜 사람이다
아 좋다 정말 ㅋㅋ
잘봤어요~^^ 에브라 멋있다!! 진짜..
좀따 하프타임때 읽어야징
잘보고 갑니다 ㅎㅎ
진짜 유스출신 선수라고 해도 믿겠음~완소 에브라!!!
같은 반 친구들과 선생님이 비웃었다는 얘기가 참 인상적이네요..
우왕 멋있어.. 그리고 이런거 보면서 느끼지만 유나이티드라는 팀은 정말 대단해
나라이던 클럽이던 직장이던 '역사'를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그 곳을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사는 선택과목의 현실 ㅠㅠ 슬프군..
괜히 명문이 아니구나 ㅎㅎ 세계 최고의 윙백!! 다만 슛팅 정확도가.. ㅋㅋ 암튼 사랑스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