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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제 원문보기 글쓴이: 케도
일본놈들이 집요하게 독도침탈을 감행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일본군 장교 출신 박근혜의 애비, 박정희(다카키마사오)가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군사정권 유지 자금 마련 위해 팔아 먹었다는 것입니다.
1961년 5월16일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군사반란
※다카키 쓰레기넘이 분명하다.
이것을 일명'독도밀약'이라고 합니다.
당시 고노 이치로 일본 건설장관(좌)과 정일권 총리(우)
정일권-고노 ‘미해결의 해결’ 대원칙 아래 모두 4개 항으로 합의 하였고,
1965년 1월11일 범양상선 박건석 회장 자택에서 서명하고,
박정희 재가 뒤, 일본쪽의 보안상 미제 용산기지에서 전화로 보고 했다고 합니다.
정인숙과 정일권의 추한 스캔들
1970년 3월 17일 정인숙 암살사건(鄭仁淑 暗殺事件)
1970년 3월 17일 밤 11시경, 서울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이다
1970년 3월 17일 피해자 정인숙(본명: 정금지)은 총상으로 사망하였고
1970년 3월 17일 그의 차를 운전하던 넷째 오빠 정종욱은 넓적다리를 관통당하였으나
1970년 3월 17일 생존해 있었다. 정종욱은 택시 기사에게 도움을 청하여 구조되었다.
1970년 3월 17일 정인숙에게는 3살 된 아들이 1명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정성일씨 )
1970년 3월 17일 아이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정일권씨라고 소문이났다.(정일권)
1970년 3월 18일 정인숙의 수첩에서 당시의 권력 핵심 인사 26명의 이름과
1970년 3월 18일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는 게 알려지면서 국회에서도 쟁점화됐다.
1970년 3월 18일 당시 세간에선 정씨의 3살배기 아이의
1970년 3월 18일 친부가 누구냐를 놓고도 화제가 됐다.
정인숙
정일권(丁一權 /中島一權 나카지마 잇켄)
생일::1917년 11월 21일
출생:소련 연해주 니콜리스크(現우수리스크_
사망:1994년 1월 17일(미국 하와이)
복무:1940년 ~ 1957년
특징:1940년 일본육군사관학교 55기를 졸업( 친일파 )
특징:1940년 만주군 소위로 임관해 만주군 지린부대 교관에 보임되었다
친일파와 재벌혼맥도
김종필(중앙정보부 부장)- 오하라(일본외무상) 메모(1962년)
한일수교 관련 문서
독도(다케시마)에 관한 비밀협정(일명 독도밀약 )
“앞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으로써 일단 해결한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한일기본조약에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解決せざるをもって、解決したとみなす。從って、條約では觸れない).”
부속조항 :
(1) 독도(다케시마)는 앞으로 한일 양국 모두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을 인정하고,
동시에 이에 반론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2) 장래에 어업구역을 설정하는 경우 양국이 독도(다케시마)를 자국 영토로 하는 선을
획정하고, 두 선이 중복되는 부분은 공동수역으로 한다.
(3) 현재 한국이 점거한 현상을 유지한다. 그러나 경비원을 증강하거나 새로운 시설의
건축이나 증축은 하지 않는다.
(4) 양국은 이 합의를 계속 지켜나간다.
> ‘독도밀약’의 직접당사자 한국과 일본의 ‘7인의 사무라이’ 그들은 누구인가?
> 김종락-종필 형제의 임무. 형은 독도, 동생은 청구권자금 마무리 맡았다
> “친소련 라벨로는 총리 못 된다” 김종락의 직언에 고노 장관 흔들렸다
> 김종락 보고라인은 박정희뿐… 이동원(외무장관)·김동조(주일대사) 배제
> 혁명정부 경협자금 마련 급해 독도문제는 ‘나중에’ 분위기 압도
여기서는 너무 길어서 다 언급 못합니다.이 매국노들이 어떻게 독도를 팔아 치웠는지
아주 자세히 나옵니다.
아래로 가시면 <부끄러우유산>방에 그 전문이 나옵니다.
당신이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널리 널리 알려서
공중파 방송을 타야 합니다.
아주 징합니다. 친일반민족세력 처단 안한 비극이
1945년 광복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도 이 반민족 새끼일본인세력이 정계, 재계,관계, 언론계, 문화계,법조계, 사학계 등
우리 한국사회 모든 분야에서 지배세력으로 있고,
이들이 계속 한국민을 노예거지로 만들어 착취하며,
한줌도 안되는 자기들만의 나라, 그런 세상을 자손만대 이어가려고 합니다.
월산명박이를 대통령으로 앉혀 놓고 지금 아주 확실하게 애국세력을 없애려고 합니다.
뉴라이트/조중동/한나라당/초대형목사교회/삼성등 매국재벌은 혼맥과 인맥으로
저들만의 특권계급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이 나라를 절단내고 있습니다.
극소수 특권계급( 새끼 일본인들 )에게 법원이 왜 저렇게 관대하게 판결하는지
이제 아실것입니다. 서민은 생계형으로 70만원 훔쳤다고 실형선고하는데
이것은 수백배 수천배 도적질한 저 매국재벌놈들은 다 풀려납니다.
이건희편
2008-04-22 김용철 변호사 폭로사건’으로 이건희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다.
2008-04-22 이건희-경영일선에서 퇴진 선언
2008-07-16 이건희-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민병훈 부장판사)-차명주식거래를 통한 조세포탈
2008-07-16 이건희-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2008-07-16 이건희-벌금 1100억원을 선고했다
2008-07-16 이건희-사건의 핵심 쟁점이었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인 에버랜드 전환사채(CB)
2008-07-16 이건희-편법증여 혐의는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2008-07-16 이건희-또한 삼성 SDS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발행 혐의는 공소시효가
2008-07-16 이건희-지나 면소 판결했다. 면소는 공소권이 없어졌기
2008-07-16 이건희-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09-12-29 이건희 단독 특별사면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은이) | 사회평론 | 2010-01-29
판매가 :16,500원 (25%,5,500원 할인)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4350502
2010-01-29 삼성을 생각한다(출판:김용철 변호사)
2010-01-29 이 책에는 ‘관리의 삼성’이 그동안 법원·검찰·국세청 등 권력기관을 상대로
2010-01-29 어떤 형태의 로비를 펼쳤는지와 경영권을 세습하는 과정에서
2010-01-29 증거 조작도 마다하지 않는 행태가 반도체 회로도처럼 세밀하게 묘사돼 있다.
2010-02-17 삼성 사장단협의회-이건희 회장의 경영복귀 문제를 논의
2010-02-24 삼성 사장단협의회-이건희 회장의 경영복귀 문제를 논의
2010-02-24 복귀 요청 건의문을 작성해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 이건희 회장에게 전달합니다.(오늘)
2010-03-24 삼성그룹 이인용 부사장-“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 회장으로 경영 일선에 복귀하기로 했다
2010-03-25 이건희 경영복귀 / 향후 ‘삼성 체제’ 어떻게
2010-03-24 이건희 前회장, 경영 복귀… 오늘부로 삼성전자 회장에
김우중편
1999-08-26 대우그룹- 8월26일 12개 계열사가 동시에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1999-08-26 국내 종업원 10만5천명, 계열사 41개, 해외법인 3백96개를
1999-08-26 거느린 '공룡' 대우가 몰락하는 순간이었다.
1999-08-26 대우 워크아웃 신청, 당시 부채는
1999-08-26 국내외 채권은 국내 397억5천7백만 달러,
1999-08-26 국외 71억3백만 달러에 이른다. 국외 채권 중 55억 달러에 해당하는
1999-08-26 부분에서 40%만을 갚는다 해도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잡힐
1999-08-26 대우의 국내외 부채는 435억6천만 달러에 달한다
1999-08-26 김우중 회장-김포공항을 통해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난다
1999-08-26 김우중 회장-책임회피 해외도피행
1999-00-00 김우중-도피생활합니다(1999년~2005년6월)
1999-11-02 대우 임직원 사법처리 어떻게 되나
1999-11-02 이헌재(李憲宰) 금융감독위원장-구조조정과정에서 일어난
1999-11-02 불법행위와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에 대해서는
1999-11-02 즉각 사법처리하겠다는 원칙을 밝혔다
2005-06-14 김우중-한국에 입국 새벽 5시50분 도착합니다
2005-07-06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가 6월 16일 <대우보고서>를 발표했다.
2005-07-06 김우중이 22조 9천억 원을 분식회계한 대가로 대우그룹의 노동자들은
2005-07-06 67개 연관 기업에서 3만 9천53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2005-07-06 분식회계 규모가 14조 6천억 원에 달했던 (주)대우는
2005-07-06 무려 62퍼센트의 직원을 ‘구조조정’했다.
2006-05-30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재판장 황현주 부장판사)-
2006-05-30 ●41조원대 분식회계 혐의
2006-05-30 ●10조원대 사기대출 혐의
2006-05-30 ●25조원대 외화 불법반출 혐의
2006-05-30 대우그룹 회장에 대해 공소사실 대부분을 유죄로 판단하고
2006-05-30 징역10년에 벌금 1000만원, 추징금 21조4400억여원을 선고했다.
2006-05-30 재판부는 김 전 회장이 고령이고 질환이 있는 점을 고려해 오는
2006-05-30 7월28일이 만료인 구속집행정지를 취소하지는 않았다.
2006-11-03 김우중-서울고등법원 항소심에서 분식회계 및 사기대출,
2006-11-03 김우중-횡령 및 국외 재산도피 혐의로 징역 8년 6개월,
2006-11-03 김우중-벌금 1천만원, 추징금 17조9천253억원의 형을 구형받았습니다.
2006-11-03 김우중-항소를 포기하여 형이 확정되었다.
2007-12-31 김우중-대통령 특별사면으로 사면되었다.
김승연편-한화그룹 회장
2007-03-08 서울 청담동의 G가라오케-김회장의
2007-03-08 둘째 아들이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2007-03-08 서울 북창동 S유흥주점 조모(34) 전무 등 4~6명은
2007-03-08 단골 술집인 G가라오케에 들렀다
2007-03-08 시비는 G가라오케 화장실 앞에서 발생했다
2007-03-08 조씨는 김 회장의 아들이 계속 째려보는 등 거슬린다는
2007-03-08 이유로 뺨을 때렸고 차남 김동원(22세)가 넘어졌다
2007-03-08 김승연 회장-폭행소식은 이날 초저녁에 들었다
2007-03-08 김승연 회장-종업원 색출을 직접 지휘했다
2007-03-08 김승연 회장-폭력조직 ‘맘보파’ 두목 오모씨 등 폭력배 20여명을 동원하다.
2007-03-08 사건 발생 직후부터 증권가와 언론 쪽에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2007-03-08 여의도 증권가에 나도는 정보지(속칭 ‘찌라시’)에
2007-03-08 김 회장 보복 폭행 건이 거론됐다.
2007-03-08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오영승(43) 경위-사건 첩보를 처음으로 입수하다.
2007-03-08 S유흥주점 종업원들로부터 사건발생 직후 현장 상황을 제보받았다
2007-03-09 오영승경위-광역수사대 강력2팀 팀원을 동원해 2주 가량 내사를 실시하다.
2007-04-24 연합뉴스-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다
2007-04-24 연합뉴스-우리는 사건을 제보 받은 즉시 취재에 나서 4월24일 기사를 썼다”
2007-04-27 한겨레신문(보도)-김 회장 직접 폭력에 가담했다
2007-04-28 김승연회장-경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다.
2007-04-29 김승연회장(16:00)-경찰에 출두, 다음날 새벽까지 조사를 받았다
2007-05-02 KBS뉴스- 김 회장의 (2년 전) 논현동 룸살롱 폭행사건 보도하다.
2007-05-09 추적 60분-봐주기 수사인가?, 조직적 은폐인가? [경찰 수사의 문제점지적]
2007-05-10 경찰-김 회장의 차남 동원(22)씨는 불구속 입건됐다
2007-05-10 서울중앙지검 형사 8부-김승연 회장과 경호과장 진모(40세)씨에 대한
2007-05-10 사전 구속영장을 서울중앙지법에 청구했다
2007-05-11 법원(10;30)-김승연 회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
2007-05-11 법원(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55세)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다.
2007-05-25 홍영기 서울경찰청장(14:30)-전격 사퇴 퇴임식 행사
2007-05-25 경찰청-ⓐ김학배 서울경찰청 수사부장 직위해제하다.
2007-05-25 경찰청-ⓑ한기민 형사과장 직위해제하다.
2007-05-25 경찰청-ⓒ장희곤 남대문경찰서장 직위해제하다.
2007-05-25 경찰청-수사실무를 맡았던 강대원 남대문경찰서
2007-05-25 경찰청-수사과장 등 12명을 징계키로 했다
2007-05-25 서울중앙지법 형사31부-구속적부(適否)심사를 기각하다.
2007-05-26 서울중앙지검 형사 8부-구속기간을 열흘 연장했다
2007-05-27 사이버경찰청 경찰관 전용 게시판-수뇌부는
2007-05-27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글이 잇따랐다
2007-05-28 이택순 경찰청장-사퇴 거부합니다.
2007-06-05 김승연 회장 오늘 구속 기소
2007-06-05 서울중앙지검 형사 8부-수사결과를 발표했다
2007-06-06 이택순 경찰청장 사퇴해야 86% 찬성
2007-06-21 김승연회장 2차공판 22일로 연기
2007-09-11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부(김득환 부장판사)
2007-09-11 김승연회장도 집행유예 사회봉사 200시간"
2007-09-11 징역 1년6월의 실형이 선고됐던
2007-09-11 김회장에 대해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2007-09-11 사회봉사명령 200시간을 선고했다
2007-10-10 김승연 회장 “치료 필요” 사회봉사명령 집행 석달 연기
2007-12-20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사회봉사명령을 이행했다(~2008-02-29 까지)
2007-12-20 ※매주 3∼4일, 하루 9시간 가량
2008-03-03 김승연 회장-사회봉사 소감문 “22일간 봉사완료
2008-03-03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과 함께 사회봉사명령 200시간이 선고됐던
2008-03-03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사회봉사를
2008-03-03 마치고 소감문을 작성해 법무부에 제출했다.
박용성편
2005-04-00 박용성-두산인프라코어의 대표이사 겸 회장이 되다
2005-07-18 박용오 두산그룹 회장에서 물러나다
2005-07-00 박용오 전회장이 동생 박용성의 회장 취임에 반발한다.
2005-07-00 박용오 전회장-검찰에 그룹의 경영현황을 비방하는 투서를 제출했다.
2005-07-00 박용성 회장-이를 반박하면서 ‘형제의 난’은
2005-07-00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으로 번졌다.
2005-09-11 두산계열사 전.현 대표 주중 소환, 비자금 출처.용처등 추궁
2005-09-11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두산산업개발 등 비자금 조성
2005-09-11 혐의가 포착된 두산 계열사의 전.현직 대표들을 이번주부터
2005-09-11 소환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2005-09-11 2000년 이후 비자금을 조성해 총수 일가의 은행대출 이자 1백38억원을
2005-09-11 대납했을 당시 회사 사장을 지낸 강모씨를 불러 이자대납 지시여부,
2005-09-11 비자금 출처 및 용처 등을 조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2005-11-05 박용성(朴容晟) 두산그룹 회장이 두산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에
2005-11-05 대한 검찰수사 발표를 앞두고 회장직에서 사임 합니다.
2005-11-05 박용오(朴容旿) 전 두산그룹 회장과
2005-11-05 형제간 진흙탕 싸움’을 벌여 온 박 회장이2005-11-05 사태 수습을 위해 오너 일가의 경영 일선 후퇴라는
2005-11-05 승부수를 던짐으로써 두산그룹의 진로는 안개 속에 휩싸이게 됐다.
2005-11-30 법원-두산그룹 피고인 14명은 공판에 모두 출석했다.
2005-11-30 박용성 전 회장은 하청업체와의 거래 금액을 부풀려 차액을 되돌려받는
2005-11-30 등의 수법으로 1995년부터 최근까지 두산산업개발(옛 두산건설),
2005-11-30 세계물류, 동현엔지니어링에 300억여원의 비자금을 만들도록
2005-11-30 지시한 혐의와 두산산업개발에서 이뤄진 2838억여원의
2005-11-30 분식회계에 개입한 혐의 등 검찰의 공소사실 대부분을 순순히 시인했다.
2005-11-30 박용오 전 회장은 “비자금을 사용했지만 비자금 조성을 공모한 적은
2005-11-30 없으며, 두산산업개발의 분식회계도 지시하지 않았다”고
2005-11-30 일부 혐의를 부인하면서 두산산업개발의
2005-11-30 비자금 조성 혐의만 인정했다
2006-02-08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강형주)-회사돈 286억원을 횡령하고
2006-02-08 수백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기소된
2006-02-08 두산그룹 전 회장 박용오씨와 박용성씨에게
2006-02-08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벌금 80억원을 선고했다.
정몽구편
2006-04-08 정몽구 회장 오늘 새벽 귀국 (새벽 5시15분 인천공항)
2006-04-08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박영수·주임검사 최재경)는
2006-04-08 정 회장을 출국 금지하고
2006-04-08 다음주 안에 불러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2006-04-19 정몽구 회장-글로비스 주식 2250만주 1조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발표)
2006-04-19 사회적 비난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나온 고육지책이었다.
2006-04-24 정몽구 회장 오늘 소환(오전 10시 )- 대검찰청
2006-04-24 중앙수사부(부장 박영수·朴英洙)
2006-04-28 정몽구 회장 구속 수감(오늘)
2006-05-16 정몽구 회장 기소…1200억대 횡령·3900억대 배임혐의
2006-05-16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횡령과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2006-05-23 정몽구 회장 주말 보석 신청 예정
2006-05-23 정몽구 회장은 서울구치소에서 25일째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2006-06-26 정몽구 회장-세 번째 공판
2006-06-26 비자금 조성 사실에 대해 총론적으로는 인정했으나
2006-06-26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2007-09-06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선고 판결합니다
2007-09-06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던 원심과는
2007-09-06 달리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습니다
2007-09-06 ▲사회공헌 약속 성실 이행( 웃음만 나옴~ )
2007-09-06 ▲경제인 상대 준법경영 강연 ( 눈가리고 아웅)
2007-09-06 ▲일간지 등에 준법 경영에 대한 기고 ( 역겹군~ )
2007-09-06 사법부의 재벌 봐주기?
손길승편
2003-10-03 손길승회장 검찰소환 재계반응 - SK.전경련 "혹시나" 바짝 긴장
2003-10-03 검찰, 손길승 SK회장 구속 여부 논의
2003-10-03 검찰중수부는 조사 결과 회계부정으로 SK 해운을 통해 조성한
2003-10-03 비자금의 전체 규모를 파악했다고 밝혔습니다.
2003-10-03 검찰은 2천억원대로 알려진 비자금 가운데 적어도
2003-10-03 3백억원 이상이 여야 정치권에 흘러 들어간 사실을
2003-10-03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2003-10-03 SK 정치권에 100억대 제공 확인-손길승회장 조사뒤 일단 귀가
2003-10-03 손길승 SK그룹 회장을 상대로 한 이틀간 조사에서
2003-10-03 여야 정치권에 1백억원대의 비자금을 제공한 정황을 확인하고
2003-10-03 다음주부터 관련 정치인 5∼6명을 소환 조사키로 했다.
2003-10-17 심란한 손길승회장 마음정리?,지난 주말 사찰찾아 '휴식
2003-10-23 국세청-손길승회장 탈루혐의 고발,SK해운 소득 4,065억 빼돌려
2003-10-23 국세청-1천4백99억원을 추징키로 했다
2003-10-25 손길승 전경련회장 내주 사퇴
2003-11-05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손길승씨는 SK 분식회계통해
2003-11-05 조성된 비자금 1,000억 선물투자로 날렸다
2003-11-05 검찰은 이 과정에 SK해운의 실질적 경영을 맡은 손길승 회장이
2003-11-05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단서를 잡고 손회장의 구체적인
2003-11-05 역할과 개인적인 횡령 혐의가 있는지도 캐고 있다
2003-11-11 2002년부터 한나라당이 자꾸 그룹을 못살게 굴어 확인해보니
2003-11-11 돈을 더 내라는 거였다. 대선 때 할당된 양이라며 1백억원을 얘기했다
2003-11-11 그는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표적 사정할 수 있다는 식으로 나오는데
2003-11-11 안줄 수 있었겠나. 그래서 김창근 구조조정본부장과 나, 둘이서
2003-11-11 책임지기로 하고 처리했다.
2003-11-12 본궤도 오른 대선자금 수사 - 검찰시선 '이회창 캠프 비선' 으로?
2003-12-10 이회창씨 대선자금 고백해야
2003-12-31 최태원 SK(주) 회장 밝혀 - "경영투명성 강화 방안 준비
2004-01-09 손길승회장 1조원대 유용,검찰 영장...孫 "7천여억 선물투자 90% 날려"
2004-01-11 SK그룹-5人 경영협의회' 구성,손길승회장 출감때까지 한시적 운영
2004-01-11 서울 종로구 서린동 본사에서 주요 계열사 사장단 회의인
2004-01-11 수펙스(SUPEX)추구협의회'를 열고 오너인 최태원 SK(주) 회장
2004-01-11 등 핵심 계열사의 최고경영진 5명으로 'SK경영협의회'를 구성했다
2004-01-12 SK서 거액 불법자금 수수,의원 3~4명 주중 소환
2004-05-31 손길승 전 SK그룹 회장-한나라 보복두려워 100억줘" SK 손길승前회장 증언
2004-05-31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부(재판장 이현승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2004-05-31 공판에서
2004-06-28 손길승 전 SK그룹 회장이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2004-06-28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이현승 부장판사)는
2004-06-28 28일 SK해운 자금 7천6백억여원을 계열사에 부당지원하거나
2004-06-28 선물투자로 날려 회사에 큰 손실을 끼치고(특경가법상 배임)
2004-06-28 여야 정치권에 불법대선자금을 제공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 등을
2004-06-28 모두 유죄로 인정, 이같이 판결했다.
2008-04-28 법원-손길승 前 SK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2008-04-28 벌금 400억원에 대한 선고유예를 선고한 항소심이 확정됐다.
최태원편-SK그룹 회장
2008-05-30 대법원 1부(주심 전수안 대법관)는 29일 부당 내부거래와
2008-05-30 분식회계 혐의 등으로 기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에 대해
2008-05-30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2008-05-30 ※판결문에서 "업무상 배임죄 등 피고인들의 유죄
2008-05-30 부분에 대한 원심 판결은 정당하며 검사의 상고는2008-05-30 이유 없어 받아들이지 않는다
2008-05-30 최 회장은 SK글로벌을 경영하면서 분식회계를
2008-05-30 통해 1조5000여억원의 이익을 부풀리고 자신이 소유한
2008-05-30 비상장 워커힐호텔 주식과 SK C&C 소유의 SK주식을 맞교환하도록
2008-05-30 해 계열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 등으로 2003년 구속 기소됐다.
조양호-한진그룹 회장
2002-11-말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서울 서소문동 대한항공 빌딩
2002-11-말 지하추자창에서 황모 상무로 하여금 현금 20억원을
2002-11-말 한나라당측 김영일 의원과 서정우 변호사에게 제공한 혐의다.
2004-04-26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심이택 대한항공 부회장 불구속기소
2004-09-07 조양호 한진회장 항소심 벌금 3000만원형 선고
2004-09-07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 이홍권)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에
2004-09-07 불법정치자금 20억원을 준 혐의로 기소된 한진그룹 회장 조양호 피고인에
2004-09-07 대한 항소심에서 벌금 3000만원을 선고했다.
2004-09-07 조양호 피고인은 2002년 대선때 한나라당 김영일 사무총장의 요청을
2004-09-07 받고 비자금 20억원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2004-09-07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2004-09-23 검은거래’에 관대한 재판부
지금은 옷만 바꿔입은 제2 일제식민통치시대를 받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일제가 직접 통치했지만, 이제는 새끼일본인들을
내세워 간접통치를 하고 있는 샘이죠.
국사책 하나만 보더라도 지금도 일제식민통치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죠.
현재 학교국사책은 일제가 만들어 준 것인데, 해방후 친일파를 처단 못하여,
사학계도 일제가 키워낸 친일사학자들이 모두 장악해,
국사책으로 채택된 것입니다.
내집마련을 하려면 평생걸리고, 취업도 점점 어려워지고, 물가는 계속오르고,
사교육비로 가정경제가 휘청거리고, 붕어빵 병영식 학교교육등
점점 더 삭막하고 지옥같은 세상으로 변하는 이유,
아직도, 감을 못잡습니까,
반면에 극소수 한국사회 특권계급 지배세력은
하층민들이 죽지 않을 만큼만 주고
점점 재기불능의 노예로 만들어가고 있죠.
보도와는 달리 월산명박
(月山 明博 쓰키야마 아키히로
(つきやま あきひろ))의 가족은 풍요롭게 살았던것 같습니다.
출처: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_2&uid=40053
일본 호적-이명박(월산명박)
월산명박( 츠키야마 아끼히로 )의 일본생활 가족사진
오른쪽 앉아서 여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아끼히로 리의 아버지
보도와는 달리 아끼히로 리씨의 가족은 풍요롭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부친 이충우씨(1981년 작고)가
일본 오사카에서 생활한 모습을 담은 사진이 처음 발견됐다.
이 대통령 가족은 1945년 일본이 2차세계대전에서 패망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때 배가 대마도 인근에서 가라앉아 모든 것을 다 잃고 맨몸으로 고향 땅을 밟았다.
때문에 일본 생활과 관련된 기록들은 하나도 없어 일간스포츠가 입수한 이 사진은
이씨의 일본 생활을 보여 주는 유일한 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노부히로(68·島田伸宏) 일본 시마다목장(현 게이항우유) 사장의 고모인 에이코(84·英子)는
이씨가 1935년 오사카 시마다목장에서 일했을 때 동료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재일동포 2세 김득수(63)씨를 통해 본지에 공개했다.
김씨는 "에이코씨가 '다른 사람들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충우씨(여자 아이를 안고 앉아 있는 사람)가 시마다목장 공장장이어서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라고 전했다.
최근 이 사진을 본 이 대통령 누나 귀선(79)씨는 "세월이 너무 흘러
긴가민가하지만 자세히 보니 젊었을 때 아버지 모습이 맞는 것 같다"며 놀라워했다.
또 60대 중반의 귀선씨 친척도 "얼굴 생김새를 보니 언니(귀선씨) 아버지가 맞다.
사진 속의 여자 아이 얼굴도 코와 눈매를 보니 지금의 언니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귀선씨는 이 사진을 본 뒤 에이코씨에게 전화를 걸어 사진을 보내 준데
대해 감사의 인사말을 전했다.
귀선씨는 에이코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진짜 에이코씨가 맞느냐,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다. 기회가 되면 만나고 싶다"라고 했다. 에이코도
"귀선씨의 일본 오사카 방문을 희망한다"라고 화답했다.
귀선씨와 에이코는 히라노구 가미소학교를 함께 다녔던 것으로 알려졌다.
(90.9.4 군산경찰서 고발조치)사용해온 혐의로 고발. (90.1.6 부산지검 울산지청)
첫댓글 년도를 봐도 친일민족반역자의 생명줄에는 노무현정권과는 연관성이 아주 깊다... 이명박을 체포할 수 있었던 시기에 노무현은 오히려 그런 이명박과 은밀히 BBK사건과 자신의 퇴임후 신변보장에 대한 밀약을 체결하고.... 노무현, 왜 자꾸 우리의 기대를 벗어날까?? 왜 살아생전에 보여졌던 모습과 죽고 난 뒤 밝혀지는 사실들에서 말이다.. ㅠㅠ
문재인을 보면 더욱더 실망감이 들고 오히려 노무현과 친노들은 이명박보다 더 한 범죄조직이였다는 공포까지 밀려든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