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여성시대 그날을내등뒤로
김 슬기 ( 24. 취준생 )
oo대학교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하고 현재는 취준생이자 백수.
아직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빨리 취업 하고 싶은 마음에 여기저기 알아보다 교수님의 소개로
우연히 왕궁 도서관인 혜인관에 인턴으로 들어가게 된다.
말은 인턴사서 같은 개념이라는데 현실은 그냥 잡무를 보는 알바생 느낌.
그래도 좋았다. 워낙 경쟁률도 높고 들어가면 배우는게 많다는곳이니까.
운이 좋으면 특채로 정직원 전환도 가능하다길래 진짜 열심히 했다. 이거 되기만하면 완전 로또 아니냐.
생각보다 일도 재밌다. 왕궁이 워낙 넓으니까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밖에선 보기 힘든 책들을
혜인관에선 맘 놓고 볼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숙식까지 제공한다.
집이 궁과 멀어 왕궁에서 기숙까지 하고 있다. 그래서 가끔 저녁에 몰래 뒤뜰 산책하며 공주 된 기분도 느껴본다.
성격 참 특이하단 말을 많이 들어봤다. 대책없이 긍정적이란 소리도 들어봤고 너랑 있으면 진지할래야
진지할수가 없다는 말도 들어봤다. 대체적으로 그런 말들은 모두 좋은 뜻을 포함하고 있었기에 본인도 그걸
칭찬으로 듣는다. 그래서 혜인관에 들어와서도 상궁들과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 덕에 특혜 아닌 특혜를 받는 경우도 많았고.
딱딱하고 건조한 궁궐 사람들이랑도 어울릴 성격이면 넌 어디가서도 살아남겠다.
라는 얘기도 많이 들으며 생활하던 와중에 생각지도 못하는 인물과 마주친다.
이 제훈 ( 30. 왕제, 원우대군 )
형은 국왕, 본인은 왕제저하 원우대군이다.
왕립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다.
대부분 왕족들과 왕자들은 정치외교를 전공하거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는데
본인의 강한 의지로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그때도 지금도 꿈은 작가였으니까.
그러나 왕족은 직업을 갖지 못한다는 이유 하나로 작가라는 꿈은 늘 제 방에서만 꾸고 있다.
가끔 여유시간이 생기면 쓰고싶은 글과 시를 쓰지만 보여줄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원래 왕족이란 그런거니까. 가까이 있는 사람은 많아도 가깝게 지낼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외부 스케줄이 없는 날이면 뒤뜰 정원이나 방에서 책 읽는걸 즐긴다.
소설 수필 시집 가릴것 없이 책이라면 모두 좋아한다.
진작 혼례를 올렸어야 할 나이지만 아직 올리지 않았다. 그래서 궁 내,외로 말들이 많다.
예를 들면 왕제가 책과 글에 빠져 혼례를 등한시 한다던가, 어느 혜인관 상궁과 내통을 하고 있다던가.
그런 루머들까지 본인도 잘 알고있다.
결혼하기 싫은거 알겠어, 강요는 안하는데 쓸데없는 소리는 안나오게 조심했으면 좋겠다.
국왕인 제 형에게 한소리 들은 이후로 혜인관 출입을 하지 않고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해가 떴을때는.
그렇게 혜인관에 밤귀신이 있다는 소문의 주인공이 되어 살던 어느날, 의문의 알바생과 마주친다.
" 귀신이요...? "
집과 왕궁의 거리가 멀어 고생하는걸 알고 상궁마마님께서 왕궁에서 기숙할수 있도록 배려해주셨다.
혜인관 상궁들에게 배정된 숙직실이 있는데 그곳을 쓰던 상궁마마님 한 분이 사정상 그만두시게 되면서
마침 빈 자리가 생겼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혜인관 마감을 나 스스로 하겠노라 자청했다.
혜인관 문지기를 자처하고 며칠은 아주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었다.
마마님들이 퇴궐하시고 나는 켜져있는 컴퓨터는 없나, 정리가 덜 된 책은 없나 확인하고 모든 불을 끈뒤
문을 잠그고 가면 되는거니까.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퇴궐준비를 하던 김상궁 언니가 나를 불렀다.
" 너 혜인관에 밤귀신 있다는 말 들어봤어? "
" 네? "
" 조심해라~~ 귀신나온다~~ "
하고 뭐가 그렇게 좋은지 깔깔거리며 퇴궐하는 김상궁 언니를 보면서 원체 장난치는걸 좋아하는 사람이니
또 그런나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리고 모두 퇴궐한 혜인관 내부 불을 끄고 문을 잠그려는데
" 엄마!!!!!!! "
" 아...미안합니다. 놀랐어요? "
이상한 사람...아니 밤귀신과 마주쳤다.
어릴때부터 오래 알고 지내던 혜인관 최고상궁에게 부탁한 일이었다.
이런 말들이 많으니 밤에만 잠깐 들러 책 몇개만 읽어도 되겠느냐고.
잠깐 고민을 하다 저들은 모르는 일로 하겠다며 에둘러 허락하는 말에 시간이 날 때마다
혜인관에 들러 몰래 책을 읽었다. 마감시간이 열시쯤이니 아홉시쯤 들어가 가장 구석진 자리에 숨어 책을 읽으면
혜인관에서 일하는 상궁들도 대부분이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다 다들 마감작업에 집중할때 몰래 나오면 완전범죄와 다를게 없었다.
중간중간 몇 번 들킬 위험이 있었지만 다행스럽게 그런 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 날도 그렇게 될 줄 알았다.
정말 읽고싶던 책이었는데 마침 그 날 그게 눈에 들어왔다.
좋아하던 작가의 신작이었기에 망설일것 없이 구석에 쪼그려 앉아 책을 읽다 혜인관 불이 모두 꺼질때
비로소 시간이 꽤 지났음을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소리를 죽이며 밖으로 나가려는데 어두워 보지 못했던 의자에 부딪히며 큰 소리가 났다.
우당탕. 큰 소리에 나도 놀라 주변을 살피는데 문 앞에 서있던 어떤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 엄마!!!!!! "
근데 나를 보고 얼굴이 사색이 되어 소리를 지른다. 나 나쁜사람 아닌데...
" 미안해요. 책 읽다가 불이 꺼지길래 나가려는데 본의 아니게 놀래켰네요. "
" 어...어어..놀랐는데...안녕하세요.. "
밤귀신 있다는 말이 장난인줄 알면서도 불이 모두 꺼지고 조용한 혜인관에 까만 형체와 단 둘이 남겨진걸
알게되니 대뜸 소리부터 지르게 됐다. 그게 밤귀신이든 그냥 사람이든 너무 놀랐으니까.
빼액 소리를 지르니 그 까만형체가 후다닥 뛰어나온다. 다행인지 귀신은 아니었고 웬 남자였는데
얼굴이 하얗게 질린 나를 보고 사과부터 건넨다. 그런데 티비에서 많이 봤던 얼굴이었다.
" 근데 왜 여기 계세요..? "
" 아...그, 책 보다가... "
" 저는 또 귀신인줄 알고... "
국왕의 동생 왕제. 원우대군이었나. 티비보다 실물이 훨씬 나았다.
왕궁에서 일한다고 해도 실제로 국왕이나 왕비 같은 왕족을 보는건 어려운 일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왕제랑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다. 언젠가 상궁마마님께서 왕실 법도가 지엄하니
혹시라도 왕족과 마주치면 항상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했는데 너무 놀라서 그런거 다 몰라. 기억안나.
" 이것만 읽고 얼른 가겠습니다. "
" 에..? 근데 지금 닫아야 하는데요... "
" 아...20분..아니, 10분만... "
" 아니...닫아야 하는데요... "
닫을 시간인데 왕제가 책을 더 읽고 간단다. 마음 같아선 그러소서 하고싶은데 제 시간에 안 닫으면
내일 아침에 혼날게 분명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더니 왕제가 제 뒷머리를 긁적인다.
왕제가 나한테 그냥 이것을 다 읽고 가겠노라 명령하면 나는 내가 혼날걸 각오하고 뜻대로 하소서 해야 하는데
안된다는 내 말에 아쉬운 표정을 짓다가 들고있던 책을 내려놓는걸 보니 괜히 죄책감이 들었다.
" 내일 낮에 오셔서 읽으시면.. "
" 아, 제가 낮엔 여기 오면 안되는 상황이라.. "
" 그럼 제가 책 따로 빼놓을게요! 편하실때 오셔서 읽으시면 되는데...아니..되시는데인가.. "
솔직히 왕궁에서 쓰는 어법 같은거 하나도 모르겠다.
존댓말 쓰긴 하는데 이게 맞는건지도 모르겠고 왕제도 나한테 존댓말을 쓰니까 나는 극존대를 해야 할 것 같고.
말을 흐리며 우물쭈물하니 왕제가 웃는다.
" 그럼 그럴까요? "
왕족들은 다 인자하고 착한데 잘생긴 모양이다.
" 어...진짜네요. "
책을 따로 빼놓겠다더니 진짜 그런 모양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열시가 조금 넘어 책장사이 구석에 앉아
다른 책을 보고 있는데 어제 그 여자가 날 보더니 인사를 꾸벅 하고는 어제 내가 읽던 책을
어디선가 잽싸게 들고와 내민다. 약속 지켰어요! 하는데 그것마저 조심스럽게 소곤소곤한다. 눈치가 빠르네.
" 오늘은 그냥 마음 놓고 책 보셔도 돼요. 제가 생각해봤는데요, 맨날 밤에 몰래 책 읽고 가시는거죠? "
" 아...뭐... "
" 그래서 상궁마마님들 모두 퇴궐하시고 한시간 정도 뒤에 문 닫아도 되냐고 물어봤어요.
제가 그래도 알바...아니고 인턴사서인데 모르는게 많아서 둘러보며 공부도 좀 하겠다고 그랬더니
그러라고 하시더라고요! "
" 예에.. "
" 그래서 마마님들 모두 퇴궐하시고 한시간 정도는 왕제저하 마음대로 쓰셔도 될 것 같아요.
대신 비밀 지켜주셔야해요. 저 거짓말한거 들키면 완전 끝이거든요. "
끝이요, 끝. 하며 제 목에 손날을 가져다대고 찍 긋는 모습이 웃겨서 픽 웃음이 나왔다.
고마워요. 하니 그럼 편하게 일 보세요. 하고 나폴거리는 발걸음으로 사라지는데
간만에 다른 사람때문에 웃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자기가 알바라는거야 사서라는거야?
생각해보니 그래도 왕제인데, 내가 어제 너무 단호하게 안된다고 했나. 숙직실로 돌아가 침대에 누워서도
온통 그 생각이었다. 만약 내 단호함에 화가 난 왕제가 당장 나를 해고하라고 하면 어떡하지?
그래보이진 않았는데 사람은 겉만 보고는 모르는거니까. 그래서 상궁마마님께 한시간의 여유 시간을 얻어냈다.
내가 이만큼의 성의를 보이면 왕제가 화 내진 않겠지.
내 계획은 성공적이었고 이후로 왕제는 종종 혜인관에 들러 늦은 시간까지 책을 읽다 돌아갔다.
모두 퇴궐하고나면 왕제는 비로소 책장 사이에서 나와 테이블에 앉아 편하게 책을 읽는데
나는 그 묵묵히 책 읽는 모습을 구경하다 왕제가 가보겠다 하면 인사를 하고 나도 문단속을 한 뒤
돌아가면 되는 일이었다.
근데 며칠 지켜본 왕제는 정말 책 읽는걸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나도 그렇긴 하지만 차원이 다르달까. 정말 그 순간에는 책 속으로 빠져든것 같은 모습이라
단 둘이 남겨져 있어도 뭐라 말도 못걸고 차마 그래서도 안 될것 같았는데 어느 날 왕제가 먼저 말을 걸었다.
" 덕분에 항상 고마워요. "
" 에...아니요, 이정도야 그렇게 무리도 아닌데... "
" 나 때문에 퇴근시간 늦어지는거 아니에요? "
" 그렇긴하죠... "
" 아니라곤 안하네요. "
하고 웃는데 내가 또 말실수를 했나 난감한 얼굴로 쳐다보니 되려 왕제가 아...농담이에요. 하고 당황한다.
아 농담...!알아요..! 하니까 그제서야 다행이네요 하고 웃는데 왕제는 참 볼수록 괜찮은 사람이었다.
왕족 모두가 그러한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적어도 왕제는 그렇다는거다.
착하고 예의바르고 성품이 좋은. 그러고보니 내 주변에 왕제 좋다는 사람 몇명이 있었던것 같기도 한데.
저도 할 일이 있으니 신경쓰지 말라는 말에 며칠은 정말 신경쓰지 않았는데 문득 쿵 하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보니 여자가 앉아서 졸다가 책상에 머리를 부딪힌 모양이었다.
쿵 하고 부딪힌 머리를 제 손으로 쓰다듬다가 다시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아이같기도 하고.
신경쓰지 말라는 말을 내가 너무 곧이곧대로 믿어서 괜한 사람 피곤하게 만든것 같아 미안해졌다.
읽던 책을 덮고 시계를 보니 벌써 시간이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여자 앞으로 걸어가는데 발걸음 소리가 적지 않게 나는데도 세상 모르고 꾸벅꾸벅 졸고있다.
어떻게 깨워야하나 고민하다 가지런히 눈 감고 앉은 여자를 본의 아니게 구경하는데 제법 귀엽게 생겼다.
얼굴도 하얗고 눈도 크고, 잘 웃는게 어려보이기도 하고 아이같기도 하고.
그러고보니 궁궐엔 이런 사람이 없다. 잘 웃고 긍정적이고 그냥 순수한 사람. 궁녀는 아니랬는데
그래서 그런걸까. 아님 원래 그런 사람인걸까. 아무튼 좋았다. 덕분에 나도 웃게 되니까.
여자 앞에 있는 책상을 몇번 두드리니 화들짝 놀라서 깬다. 이제 가시게요? 하더니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카드키를 챙겨든다. 같이 나와 문을 잠그고 여자가 나를 보며 조심히 가세요. 하고 뒤를 돌다 다시 나를 본다.
" 별궁쪽에서 거처하시죠? "
" 네. "
" 그거 아세요? 여기 후문으로 나가면 별궁으로 더 빨리 갈 수 있어요. 어둡고 좀 험한 길이라 사람도 없고. "
자기가 지각할때 써먹던 방법이라며 그냥...꿀팁 공유랄까..라더니 제 갈길 가보려는 여자를 불러세웠다.
어차피 방향이 비슷하니까. 혼자 가면 좀 심심하기도 하고. 같이 있으면 재밌을것 같기도 하고.
후문으로 나가면 별궁이랑 더 가깝다는걸 왕제에게 알려준 이후로 종종 혜인관 문을 닫고 함께 별궁쪽으로
향하는 일이 많아졌다. 마침 내가 숙식을 해결하는 숙직실이 별궁 옆에 있기도 하고.
덕분에 왕제랑 조금 가까워져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왜 육군사관학교를 나오지 않고 문예창작을 전공했는지, 왕제로 살면서 겪을수 있는 일들이라던지.
그러면 나는 얘기를 듣고 웃고 공감하고 신기해하기도 하다가 내 이야기, 내 친구들과 주변 이야기들을 했다.
그럼 왕제는 궁에서는 겪지 못하는 일이라며 신기해하다가 나를 부러워했다.
그러다 느낀 사실인데 왕족으로 사는것이 대단해 보이지만 사실 힘들고 고단한 부분이 더 많다는것이었다.
그런데도 삐뚤어진 부분없이 매너있고 성품 좋은 왕제를 보며 기특하다. 라고 생각했던 적이 종종 있었다.
비록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지만.
" 이거 재밌어요? "
" 네, 읽어보실래요? "
왕제가 책을 읽고 있으면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혜인관에 들어오는 사람이 없나 감시하는 역할을 했는데
언젠가 왕제가 나한테 이거 볼래요? 하고 책을 내민 이후로 나는 문지기에서 벗어나 왕제와 독서를 함께하는
존재가 되었다.
왕제가 항상 앉는 자리가 따로 있는데, 창가 쪽 쇼파자리였다.
이후로 왕제가 책 몇권을 들고 와 제 앞자리를 가리키면 나는 맞은편에 앉아 같이 책을 읽었다.
자연스럽게 재밌는걸 보면 서로 추천하고 나눠 보기도 하고.
뭐랄까, 일종의 독서 친구 같은 개념이랄까. 아무튼 유익한 시간인건 분명했다.
어, 잔다.
맞은편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던 여자가 어느새 쇼파에 등을 기댄채 자고있었다.
그러고보니 자는걸 벌써 두번째 본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 싶어 일어나려다 생각을 고쳤다.
읽던 책이 좀 남아있기도 하고, 새근새근 너무 잘 자는것 같기도 하고, 그냥 계속 두고 보고싶기도 하고.
대신 입고있던 가디건을 벗어 덮어줬다. 기척때문에 잠이라도 깰까 조심스럽게 덮어주고 제자리에 앉는데
그런것도 모르고 여전히 잘 자고 있다. 보쌈해가도 모르겠다.
그 상태로 내내 책을 읽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가 깼다.
그러다 자기 몸에 덮어진 내 옷을 보고 당황하는게 웃겨서 그냥 두려다 잘 자길래. 했더니 얼굴이 빨개진다.
진짜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믿겠네. 당황하는걸 보고 소리내서 웃으니 여자가 고개를 갸우뚱 한다.
" 이거...세탁해서 드릴까요..? "
" 뭐하러요. 더러워진것도 아닌데. "
" 아니 그래도...제가 덮고 있던거라...의도한건 아니지만... "
괜찮아요. 하고 옷을 건네 받았다. 혜인관 후문에서부터 별궁까지 오는 길이 꽤 쌀쌀했다.
봄인데도 일교차가 심해서인데, 아까부터 기침을 좀 하던 여자가 입은 옷이 유난히 얇아 보이길래
덮어주었던 가디건을 다시 어깨위로 걸쳐주었다. 난감해하는 여자를 모른척 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다행스럽게도 가디건을 어깨에 걸치고 쫄래쫄래 잘 따라와주었다.
늘 헤어지던 장소에서 가디건을 돌려받고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위에 가디건을 올려놓고 샤워를 마치고 나와 옷걸이에 걸어두려는데 문득 좋은 향기가 스쳤다.
향수는 아닌데...그냥 체취인가. 섬유유연제 냄새처럼 자연스러운 향이 방에 가득 퍼졌다.
그러고보니 같이 있을때도 맡았던 냄새였다. 좋다고 생각했는데 내 옷에 가득 벤 냄새가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일단 세탁하지 말아겠단 생각이 들었다.
왕제가 해외 일정으로 당분간 자리를 비운다고 했다.
얼마나요, 물으니 열흘정도.그동안 칼퇴근 할 수 있어서 좋겠네요. 하고 웃는 왕제를 보니 괜히 섭섭했다.
말마따나 칼퇴근 해서 좋아야 하는데 당장 내일 떠나는걸 이제서야 말해주는게 서운했다고 해야하나.
딱히 그걸 나한테 미리 알려야 할 이유도 의무도 없지만 그냥 괜히 내 마음이 그랬다.
혜인관 문을 닫고 여느때처럼 같이 별궁으로 오다 헤어지는 기점에서 그럼 잘 다녀오세요. 하고 고개를
꾸벅 숙이니 왕제가 손을 흔들었다. 슬기씨도 잘 있어요. 하면서. 웃기는 왜 웃어?
그렇게 며칠이 지나갔다.
그동안 나는 열시 땡 하면 칼퇴근을 했고 일찌감치 숙소로 들어가 밀린 영화랑 드라마도 보고 야식도 먹고
나름 즐거운 생활을 보냈는데 이상하게 허전했다. 그게 왕제 때문인걸 아는데 그냥 모르는척 하기로 했다.
허전하면 안되니까. 허전하다고 그쪽이 없어서 허전해요. 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 역시 칼퇴근 했네요? "
그 날은 왕제가 돌아오기 이틀전이었다.
그 날 역시 나는 열시에 혜인관 문을 닫고 숙소로 오는데 늘 왕제와 헤어지던 그 기점에 거짓말처럼 왕제가 서있었다.
" 어...어어...? "
" 처음 본 날 귀신 본 그 표정이네 또. "
" 이틀 뒤에 오시는거 아니었어요? "
" 맞는데, 어떻게 알아요? 나 오는 날 세고 있었어요? "
짠하고 나타나서 사람을 꿰뚫는다.
그러더니 나랑 자연스럽게 발 맞춰서 걷는데 놀란 나와 달리 왕제는 여전히도 평온하게 웃는 얼굴이었다.
" 근데 정말 왜이렇게 빨리 오셨어요? "
" 그래서 싫어요? 이제 칼퇴근 못하니까? "
" 그런게 아니라... "
" 그냥 뭐..보고싶더라고. "
누가요? 하고 물으니 왕제가 아무말 없이 웃다가 자켓 안주머니에서 상자 하나를 꺼내 준다.
거기엔 조그만 진주가 달린 팔찌 하나가 있었다.
" 귀국하는 날이 자꾸만 세어지더라고. "
" 네? "
" 아 이제 일주일 남았네, 이제 5일 남았네. 그러다보니 못참겠어서. "
" 그래서 일찍 오신거라구요? "
" 어...그리고 팔찌는 그동안 혜인관 열어줘서 고맙다는 답례이고. "
" 아... "
"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뇌물이고. "
나 그거 세금으로 산 거 아니야, 내 돈으로 산거야. 하고 웃는 왕제를 보며 나도 따라 웃었다. 고맙습니다.
" 이거 뭐에요? "
" 그냥 답례요. 오는게 있으면 가는것도 있어야죠. "
" 아, 팔찌? "
" 왕제저하께서 주신거에 비해 볼품 없지만, 그래도 제가 직접 만든거에요. "
실로 엮은듯한 팔찌였다.
제법 꼼꼼하게 만든 팔찌를 신기하게 보다 팔에 차보니 딱 맞았다.
심플한 디자인도 마음에 들었지만 날 생각해서 직접 만들었단 사실이 더 마음에 들었다.
누가 날 위해서 이런걸 만들어준건 처음이었으니까.
" 이거 소원팔찌라고도 하는데, 팔찌를 차고 다니다가 끊어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대요. "
그러니까 열심히 차고 다니라는 말에 그냥 말없이 웃었다.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에 끊어지길 바라기엔 어쩐지 나한테 큰 의미가 될 것 같은 팔찌 같아서였다.
누구한테 이유 없는 선물을 준 것도 처음이고 또 그 누군가한테 직접 만든 선물을 받은것도 처음이니까.
여자랑 함께 있으면 처음인게 참 많다.
선물을 주고 받은것도, 매일같이 함께 책을 읽는것도, 주변사람 그 누구에게도 내 이야기 하나 하지 못하던 내가
스스럼없이 고민거리를 털어놓는것도. 그리고, 막연하게 보고싶단 생각이 드는것도.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워 팔에 채워진 실팔찌를 보다 많은 생각을 했다.
동그랗게 매듭지은 부분을 손끝으로 톡톡 치다가 눈을 가만히 감았다. 심장이 왜이렇게 뛰는지 알면서도
모르는척 했는데 이제는 그걸 인정하기로 했다.
" 나 팔찌에 소원 빌었어요. 꼭 이루어졌음 좋겠네요. "
" 이루어질거에요. 제가 그러라고 팔찌 만들면서 주문 걸어놨거든요. "
그날도 어김없이 함께 책을 읽다 각자 방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짠. 하며 자기 팔목에 채워진 팔찌를 자랑하는 왕제를 보고 나는 박수를 짝짝 치며 좋아했다.
맞은편에 앉아 책을 읽는 내내 왕제 팔에 채워진 팔찌를 훔쳐 보는데 괜히 기분이 좋았다.
어떻게 보면 정말 별거 아닌 실팔찌인데 그걸 진짜로 하고 다니는 왕제가 고맙기도 하고 뿌듯해서.
그러다 어둑해진 길을 걷는데 왕제가 먼저 말을 꺼냈다. 팔찌에 소원을 빌었다고.
" 무슨 소원인지 안궁금해요? "
" 궁금한데, 말씀 해주실거에요? "
" 음,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요. "
" 네? "
" 그래서 그사람도 나랑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다고. "
" 그렇구나... "
그런데 왕제가 빈 소원은 그다지 반갑지 않은 소원이었다.
늘 궁에만 있으니까, 저는 친구도 없고 가깝게 지내는 사람도 없다고. 결혼 하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고
누굴 이성적으로 좋아해본 적도 없다고. 벌써 한참전의 왕제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했던 말이었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왕제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줄은 전혀 몰랐다.
그냥, 그런 낌새가 없었으니까. 내가 그를 좋아한다고 그 사람이 내가 되길 바란건 아니었다.
왕제에게 줄 소원팔찌를 만들면서 내 팔찌도 하나 만들었다. 그때 빌었던 내 소원이 있는데,
괜한 소원을 빌었구나 싶은 마음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래 나는 그냥, 같이 책을 읽는...정말 후하게 쳐주면 친구 같은 정도니까.
애초부터 무리였다. 내가 그를 남자로 좋아한다는건.
팔찌가 끊어졌다.
선물 받고 한달이 조금 지났는데. 내 팔에 채워진 팔찌를 보고 친분이 있던 왕실근위병 한명이 한 말이 떠올랐다.
" 저도 그거 있었는데 한 일년 차고 다니니까 끊어졌어요. "
당시엔 얇은 실팔찌인데, 일년이나 걸렸다는 말에 조금 심난하기도 했다.
이게 끊어진다고 정말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나 나름대로의 결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팔찌가 끊어지는 날, 팔찌에 빌었던 소원이 이루어질수 있도록 나도 노력 해보겠다고.
그런데 팔찌가 한달이 조금 지난 지금 끊어졌다.
" 슬기씨. "
" 아, 오셨어요? "
" 이거. 나 팔찌 끊어졌어요. "
늦은 저녁 혜인관에 들렀다.
오늘은 만찬이 있어 오지 못할것 같다고 어제 미리 말해두었지만 생각보다 만찬이 일찍 끝나는 바람에
나는 곧장 혜인관으로 달려왔다. 마침 퇴근하려 문을 잠그던 여자와 마주쳤다.
생글생글 웃으며 끊어진 팔찌를 보여주는 나를 보고 여자가 어딘가 어색하게 웃었다.
" 신기하네요. "
" 왜요? "
" 저도 오늘 팔찌 끊어졌거든요. "
그리고 여자가 나와 비슷한 모양의 팔찌를 주머니에서 꺼내 보여줬다.
그러고보니 언젠가 제 몫의 소원팔찌 하나를 만들었다는 말이 생각났다. 늘 오른손목에 채워져 있던 그것.
" 슬기씨 소원은 이루어졌어요? "
" 글쎄요.아직 잘 모르겠어요. "
같이 별궁까지 걸어가는 길이었다.
이상하리만큼 내내 말이 없던 여자에게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나,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 내 소원 있잖아요. 기억해요? "
" 아, 네. 좋아하는 분과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다고... "
" 기억하네요. 소원이 이루어질진 모르겠지만 나 노력해보려고요. "
" 잘 될거에요. "
아, 다왔다. 잘 될거라며 희미하게 웃던 여자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늘 헤어지던 그 갈림길이었다.
이제 가보겠다는 여자를 다급하게 붙잡아 세웠다. 그러니까, 나 노력해 보겠다고.
" 나 왕제에요. 맨날 궁에만 박혀서 살아야 하고 그렇게 살았고...밖에 나가면 사람들 시선 때문에
맘 편하게 행동하지도 못하고 많이 불편하게 살고 있어요. 그래서 친구도 없고. "
" 네? "
" 그래서 딱히 좋아하는 사람도 없었는데 생겼어요. 나 많이 좋아해요. 근데 그 사람한테 내가 좋아한다고 말해버리면 부담스러워 할 까봐 말 못했는데 노력 해보려구요.
그렇게 해도 그 사람이 부담스러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 그렇구나... "
잠깐 숨을 멈췄다. 그러니까 여기가 중요한 부분이었다.
" 나 슬기씨 좋아하는데 어쩌죠. 부담스럽죠..근데 좋아해요. 어쩔수가 없어서 말 하는거에요. "
" 저요?? "
" 네, 사실 꽤 오래 됐는데, 그냥 지켜보는것 만으로도 좋아서 가만히 있었거든요. 말했다가 멀어지는게
무섭기도 하고. 근데 용기내지 않으면 영영 지켜보기만 할 것 같아서... "
" 아... "
" 좋아해요, 많이. "
" 저는... "
" 어떻게 하자고 해달라고 하는거 아니에요. 내가 슬기씨 좋아한다고 나랑 만나달라는것도 아니고
그러니 그쪽도 날 좋아해달라 강요하는것도 아니에요. 그냥 나 노력한다고요. 슬기씨가 나 좋아할수 있게. "
그러니까 나 부담스러워 하지 말아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분명 잠깐이었지만 너무나도 길게 느껴지는 정적이 지나가고 여자가 웃으며 입을 뗐다.
" 저도 팔찌에 소원을 빌었어요. 왕제저하가 빈 소원이 이루어졌음 좋겠다고. "
" 아... "
" 그래서 제 소원도, 저하의 소원도 이루어졌네요. "
잠깐 생각을 하다 나도 여자를 따라 웃었다. 내가 좋아하는 당신도 나랑 같은 마음이었음 좋겠단
내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그러니까 당신도 나를 좋아한다고.
" 그럼 우리 비밀연애 하는건가요? "
" 어, 그게 불편하면... "
" 네? "
" 그냥 결혼부터 할까요? 요샌 왕족도 일반인이랑 결혼 많이 해. "
장난치지 말라며 여자가 내 어깨를 때렸다. 웃는게 예뻐서 나도 따라 웃었다.
아, 근데 그거 장난 아닌데.
극 전개상 그냥 왕실이 있다고 쳐줘요....황실이라고 쓰고 싶은데 그러면 용어가 넘나 어려워서
그냥 왕실이라고 썼어요...이해해줘요...애기 머리 나쁘단말야...
대박이다ㅠㅠ 드라마스페셜인데? 여시야 연재해줘ㅠ
망상방으로 모실게여....ㅎㅎㅎ
뭐디...? 번호달고 망상방에서 보자..
아 대미친 여시야 진짜로 망상가줘 제발 진짜 이건 여기서 끝날게아냐 제발
이건 드라마로 제작되어야해 영화 안돼 2시간만에 끝낼 수 없어 드라마로 시즌제까지해서 오래오래 보자 응?? 하 설레서 미칠거같아 연재해주라 제발ㅠㅜㅠㅜㅜㅜㅜㅜ
대박 개존잼
여시야 망상방 가줄래? 아니 가주실래요?
망상방으로 모실게요...너무좋아 이런드라마 있으면 블루레이디비디까지산다진짜.....
망상방 가줘여 제발 ㅠㅠㅠㅠ
와 지챠ㅜㅜㅜㅜㅠ개설렌다ㅠㅠㅠㅠㅠㅠ애기 쥬근다ㅠㅠㅠㅠㅠㅠ설레서 쥬근다ㅠ
대박 완전재밌어
ㅇ-<-<.......... 연재해주라.....
여시야..대박이다 그냥 글 안읽는ㄷ ㅔ ㅠ하
애기 연재해주라
용왕님 너무 좋아요.......
헐...이런 드라마나 영화 진짜로 해줬으면 좋겠따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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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꽃잠프로젝트의 에브리데이...일거야...!! 예전에 저장해놓은거라 확실히 기억은 안나네ㅠㅠ
뭐지?나는 쩌리를 눌렀는데 왜 망상이...? ㅠㅠㅠㅠ 연재좀 해주세요....슈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여시야 망상방으로 가주라 정식연재해주라
이거 읽는 내내 광대가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았쪄
망상방으로 모실게요ㅜㅜㅜㅠㅠ아니면 극본공모 내주세요ㅠㅠㅠㅠ
진짜 몰입해서 읽엇다 ㅠㅠㅠ쩔어
망상방 안가는데....쩌리에서 이런걸 읽게되다니.....하 연재하면 읽고싶구여..?
여시야 망상방가쟈 제바류ㅠㅠㅠㅠㅜㅠㅠㅠ
그래서 어케됐어???결혼했어??? 애는 몇이야!?? 토끼같은 딸 낳았겠지??? 김슬기 닮아서 졸라 귀엽고 통통 터지는 아들도 낳아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건 무조건 망상방이야!!!!!!!!!!!!!!여시야 진짜루 망상방 가야해
갸아아앙ㄱ
헐 존잼ㅠㅠㅠ다음편 다음편이요!!!!
망상으로 꺼져....!
여시 왜 아직 쩌리에있어???;;;; 빨리 망상방으로 가주라..... 세상에진짜...넘나조흔것......
망상가자
나 다시왓어...맨날 다시오고잇어 지금....자 이제 가자 망상방으로...☆
이여시 아직 망상 안갔네ㅠㅠㅠㅠㅠ 얼른 가서 더 쪄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뒷이야기 해줘ㅠㅠㅠㅠ(찡찡)
애기망상방 와주라주
대박!!!! 짱이야ㅠㅠㅠ 최고
망상열차 출바알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5.05 15:15
망상 가주라주ㅜㅜㅜ애기 뒷 내용 궁금하단말이야ㅠㅠㅠㅠ
개존잼ㅜㅠㅠㅠㅠㅠㅠ!!!
망상방으로 가주라!!!!!제발!!!!!!!!!
망상방 안 가구 왜 여기있어!!!!
헐 이거 뭐야ㅠㅠㅠ나 대왕연어해서 왔네ㅋㅋㅋㅋㅋ존잼이야
대왕연어 힘차게 등장...
오랜만에 생각나서 와봤는데 여전히 달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