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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남...이름 석 자 내 안에 피멍울처럼 늘 아프고 애써 외면하고 싶을만큼 숨막히는 고통이였음을
아버지 당신은 모르셨겠지요.
대꼬챙이처럼 날캄한 나의 말끝이 무정한 당신에게 섭섭하고 싫단 생각이 들어 늘 못마땅한
딸자식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몸의 피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빼버리고 수혈을 받아
내 몸안에 흐르는 당신의 유전을 지워버릴 수만 있다면 나는 몇 번이고 그러고 싶었을만큼 당신이 힘들었습니다.
내 의지와 무관한 나의 선택의 여지없이 화인처럼 물려받은 姓씨를 바꿔버릴 수만 있었으면 좋겠다 바랐습니다.
당신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서야 한다면 평생 그냥 혼자 살고 싶었습니다.
나는 어쩌다가 당신같은 사람의 딸로 태어났을까..무한 원망이 나도 모르게 가슴에 부유하며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천국에 갈 수 있다면 그것은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그래서 당신의 구원은 내게 너무 억울한 일일 것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일흔아홉...평생,
어느 자식 손 한 번 잡아준 적 없이 고맙다, 미안하다, 잘들 살아야 한다...말 한 마디 없이...
여섯 자식들은 못듣고 안들어도 포기할 수 있었던
"미안하다" 는 말 한 마디만
해도해도 너무하게 미워하고 아프게 피투성이 상처를 주었던 막내딸에게 위로되게 남겨주고 가시지...
아버지 보고 계시지요?
삶과 죽음의 경계와 무게 종이 한장보다 못한 무게란 것을 뼈저리도록 느꼈습니다.
평생을 오로지 당신 몸 외엔 없었던 아버지시지만
끝이 좋으면 다 좋다했던 말처럼 가시는 마지막을 너무나 감사하게 마침표 찍어주신 것
아버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
3월 31일 오전나절 언니가 전화를 했었다.
뭐하느냐고 어디 있느냐고?
그냥 집에 있는데..왜?
오늘이 막내 올케 선경이 생일이야, 같이 점심 먹게 집으로 와라..
그래?? 알았네..
계속 여러가지 누적된 일들로 몸도 마음도 피로감이 극에 달해 근자에 너무나 몸이 좋지 않은데다
어쩌자고 잠도 오지 않는지..전날 1초도 눈을 감지 못한 채 책 한권을 들여다보다
창밖에 환해져서 딸아이를 깨워 요기를 시켜서 학교로 보내놓고 비자루질을 하다 연락을 받은터라
어짜피 전날 아버지 좋아하시는 무우생채김치도 가져다 드릴겸
5분여 거리에 있는 언니 집으로 향했다.
치매가 눈에 띠게 증상을 더해가시는 어린아이 같아지는 아픈 엄마 때문에 모처럼 쉬는 비번일에도
이래저래 바쁘고 힘든 언니가 안되서 내가 더 수고하고 애써야지 하면서도
엄마 아부지를 보고 돌아오는 날이면 가슴에 돌뭉터기를 얹고 돌아오는 것 같은 숨막힘이 힘들어서
왠지 망설이곤 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막내올케가 미리 와 있었고 거실바닥에 걸레질을 하며 언니의 분주한 모습과
바로 아래 여동생이 우린 사골국물을 들고 또 들어와
엄마와 얘길 하고 여전히 기운 없다고 방에 누워 계신 아버지를 뵈었다.
씻는것을 싫어하시는 아버지를 그날, 욕조에 물을 받아 한 시간여동안 깨끗히 목욕을 시켜 드리느라
허리가 아프다고 파스로 붙인 언니...
덕분에 개운한지, 점심은 생각 없다며 따뜻한 자리에 이불 덮고 누워 계신 아버지를 빼고 엄마가 좋아하시는
중화요릴 시켜 점심을 나누고 있는데
막네 은영이가 전화를 해왔다.
"언니, 가윤이 아빠가 자꾸 화장실을 데려다 달라고 하는데 올 수 있어? 도와줄 사람이 없네..."
....어지간하면 곧바로 젓가락을 놓고 택시를 잡아 탔을 것이였지만
내 스스로 걱정이 들만큼 내 몸이 이상이 느껴지는데다, 무기력증에 시달리는데다 막네올케 생일이라니
거절할 수 없어 억지로 젓가락질을 하고 있던 터라
머뭇거리며 거절을 하고나니 입안에 모래알이 굴러다니는 것 같은 그 쓰라림이라니....
그리고 점 더 있다 가겠다는 막내올케를 놔두고 언니와 오후 3시가 같이 집을 나와
언니는 시장으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시장에 들른 언니는 장 본 것을 배달 부탁하고 막네가 있는 병원으로 갔던 모양.
먹는것은 지나칠 정도로 과한 막네제부가 배변활동을 스스로 잘못하니
5일 일주일에 된대변 겨우 한덩어리..그런식이다보니 여동생이 홀로 감당하기엔 너무나 버겁고 힘들것이다.
맘에 걸린 언니가 간 그날도 응가는 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자꾸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느끼는지
움직이지 못하는 육신을 일으켜 화장실 데려다 달라고 한단다..
변기 위에 홀로 지 몸 지탱하고 앉아 있지도 못하는데 지 색시에게 미안해 하는 마음처럼
안되는 몸 인정하기 쉽지 않는 모양이다.
오후 6시 57분쯤 병원에 있다는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침대에 누워 있는데
집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면서 왜라고 물으니
"아부지가 밥드시러 나와 식탁의자 앞에 서서 오줌을 누셨다고 연락이 왔다면서 가볼 수 없겠느냐" 고...
....'설마 오줌 싸는 것까지 쑈는 아닐텐데..' 싶은 생각이 들고 또 속도 상하고 이상한 맘이 들긴 했지만
가볼 수 있다고 답은 못했다.
내가 거울 앞에 서서 내 모습을 봐도 이상타 싶을만큼 기운도 없고 염려가 들정도로 내 몸이 힘들어서..
언니가 그럼 근영이 한테 연락을 좀 해봐야겠다면서 혹시 집으로 가서 아부지 상태가 병원으로 가야할 것 같으면
인하대학병원 대신 사랑병원으로 갈란다..해서 나도 그게 낫다고 동의하고 전화를 끊었었다.
2주전 인하대병원으로 정기 예약일에 가서 이런저런 검사를 또 했었지만 딱히 특별한 이상 없댔고
아부지 역시 아픈곳은 없지만 기운이 없단 말씀이셨으니
영양제라도 맞혀드릴까 하여 의사에게 물으니
"아버지께 영양제는 물빠진 독에 물붓는 것이니 환자분이 잘드시고 조금이라도 자꾸 움직이는게 최선이라" 했었다.
그리고 4월1일 새벽 1시 20분에 울리는 언니의 전화
아부지가 이상하니 빨리 와라"
서둘러 옷을 줏어입고 잠든 딸 아이 방 한 번 살펴 보고 서둘러 언니집으로 달음질쳐 갔더니
아파트 입구에 119구급차가 와 있고 엘리베이터를 보니 12층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아버지를 싣고 내려오는구나...
문이 열리고 형부가 경황없이 동행해 내려오다 나를 보고 처제가 일단 동행을 하라 나는 어머니 모시고 가겠다하여
내가 등급차에 동석하여 올랐다.
구급대원들이 계속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지만 혈색이나 움직임이 이미 숨이 끊어져 보여
여윈 발과 다리를 만져보았다.
산 사람의 체온보다 차가웠다.
병원에 도착하여 응급실 입구 처치실로 들어가서도 여전히 심장에 압박을 기하는 의료진이
따라들어간 내게
"환자가 심정지 상태다 자가호흡이 없는 상태니 일단 20여분 동안은 심폐소생술을 할 것이지만 이미 숨이 끊어진지
오래됐다면 뇌에 산소공급이 안돼서 어려울 것이라고.
네.
대변을 검게 보셨나요?
아니요.
질병이 있었나요?
인하대학병원에서 꾸준히 관리를 받고 계시고 2주 전에도 정기 검진일 방문 결과 이만저만 했노라면서
기운 없으시다는 것 빼고 아프신데는 없으셨습니다.
저렇게 된지 얼마나 됐나요?
죄송하지만 제가 같이 사는 자식이 아니라 자세한 상황은 일단 잘모르겠습니다
아는 사람들이 금방 도착할 것입니다.
...아버지의 입고 계신 옷가지들이 가위에 잘리고 여기저기 혈맥들에 바늘을 꽂아보기 위해 온 몸 혈관들을
더듬고...
호흡기 내과에서 받는 혈전 용해제를 장복하신 탓에 바늘이 스친 자국마다 핏방울이 맺혀 멈추질 않는데
혈관이 잡히질 않는다.
대퇴부 대동맥을 찾아 어찌어찌 약액을 주사하였지만 그마저도 금새 불필요한 것이되고
...그사이 휠체어에 엄마를 모시고 온 형부랑 언니에게 입구 접수처에 아버지 정보를 기입케 하고
동행한 구급대원이 물어오는 상황들에 답변을 주었다.
"도착했을 때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 는 말을 들었다.
나도 궁금하여 언니에게 자다가 그러셨느냐 물었더니
그날 느낌이 좀 그래서 잠을 안자고 있었는데 바깥에서 발소리가 들려서 엄마가 나왔다 들어가셨나? 했는데
좀 있으니 엄마가 부르는 소리가 나서 갔더니 아버지가 이상해서 119를 불렀다고
차후 엄마에게 아부지 자다가 그러셨느냐 물었더니
잠이 안와서 나는 못자고 있는데
니 아부지는 한숨 잘자고 깼는데 앉아서 한바퀴 휘둘러 보길래
화장실 갈라고? 하니까
그런다고 대답을 하더니 일어서려다 풀석 앉길래
"오줌 눌라면 그냥 내가 씻어놓을테니 여기 쓰레기 통에다 그냥 싸"
"알았네..."하면서 좀 움직이더니 그대로 넘어져 버리더라고 그래서 니 언니를 불렀다고 하시면서
잠들기전에 나보고 여기 좀 주물러라 저기 좀 들어라 귀찮게 해싸서
나도 아퍼 죽것구만 귀찮게 한다고 했다.
어디가 어쩌냐고 아프냐??고 하니까 아프지는 않는데 저리는 것 같다고 주물러 달랬다 하신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깨서 순식같에 벌어진 상황이였다.
내가 구급차에 동행을 해 병원으로 오는 동안 형부가 운전하는 차에 엄마를 모시고 병원으로 향하는 동안
동행한 언니가 장남에게 연락하고 남동생이 다른 형제들에게 연락을 급히 취하고...
인공심폐 소생술과 기계장치들의 도움으로 심박수 88-90 사이를 오가는 화면을 보는데
아버지의 셋째 딸이 놀란 모습으로 도착, 심박수치 78...
맥은 이미 정지 상태인 채 큰남동생이 도착하여 아버지를 만났다
장남 가족들의 모습을 보인 후 심장움직임의 수치가 또 얼만큼 내려갔다.
언니네와 나 남동생네...가 아버지 곁을 지키고 선 가운데 응급실 의료진들의 움직임은 임종환자의 모든
순서대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기저귀를 채우려고 바지를 내리니 이미 집에서 채웠던 기저귀에 색깔 선명한 노란 변을 조금 보셨다.
그것을 벗겨내고 새것으로 갈아 채워놓고 하는 동안 파주서 사는 둘째네 식구들이 당도했다.
심박수 78-75 사이를 ...오가던 수치가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의 신주단지 같은 둘째 아들을 기다리느라 못떠나시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에
둘째 남동생이 손을 잡고 아버지의 귀에 대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을 보면서 이제 편히 가시는가... 살피고 있는데
심박수 수치만 69대로 줄어들어 있다...
멀지 않는 곳에 있는 막네 남동생네와 연락이 안된다고 애들 태우며 이사람 저사람이 연락을 부부에게 아무리 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둘째 남동생이 문밖으로 나가 근처 지구대에 연락을 했다.
아버지 임종중이신데 연락이 잘안되니 집에 가서 좀 깨워 보내달라고..부탁을 해놓고
정지된 숫자에서 변함 없는 아버지를 바라보고 둘러서 있다가
내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앉아 아버지의 귀에 대고 얘길 했다.
"아버지, ...괜찮습니다. 그 어떤것도. 다 괜찮으니 무조건 밝은대로 가세요. 환한 빛을 따라 가셔야돼요. 꼭요..
아버지가 거기서 혹시라도 부끄럽고 창피한 생각이 들어서 숨고 싶어질지라도 절대로 어둔곳 깜깜한 곳으로 가시면
안돼요.
예수님은, 아버지의 모든 인생을 다 지켜보셨고 그런 아버지인 줄 알면서도 선택하고 사랑하셨던 것이니
예수님 손 놓지 마세요. 아버지 아셨지요?!.."
...아버지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 한 줄기...
내 손으로 닦아드리리고 기다리는데
한참 후에
하얗게 놀란 남동생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아버지의 식은 손을 부여잡고 오열을 했다.
"아버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아버지..."
가슴미어지는 소릴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데...이미 입에 꽂아둔 산소공급 외엔 다 치워진 아버지의
심박수가 급격히 떨어지는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젠 가시는가보다 싶은데
심박수 20..에 멈춰 끊어질 줄 모른다..
언니가 아버지의 귀에 대고
"아부지, 은영이는 못와요..아시잖아요. 그러니까 가세요..."
...그럼에도 변함없이 움직이지 않는 숫자 20.
바로 아래 여동생이 은영이한테 전화를 걸었다.
"은영아, 아부지가 너 보고 싶은갑다. 목소리라도 들려드려라 .너 기다리는 것 같다
아부지 귀에 대줄테니 얘기해라."
전화기를 귀에 대주고 막네여동생이 작별 인사를 하게 하고
끝났냐? 하고 전화기를 아웃하자마자. 삑-...소리를 울리는 기계음과 0이란 숫자...
그 기계음과 동시에 마주한 시계는 새벽 4시 41분.
4월 1일 오전 4시 41분. 그것이 내 아버지가 이 세상에 마침표를 찍은 시간이 되었다.
나중에 들었다.
그날 지 아내 생일이라 함께 저녁을 먹으려고 일찍 퇴근을 해서 집에 다 도착했는데 큰누나한테 전화가 와서
차를 돌려 아부지한테 가는데 퇴근길이라 막히기도 하고 가서 보니 엄마가 그 몸으로 아부지 저지른 사고
치우느라 끙끙대고 있는게 보여 속도 상하고
그래서 ..아부지한테 병원가자고 했더니 안갈란다고 계속 고갤 저으시며 싫다고 해서
생전 뚱한 소리 한 번 안했던 아이가 아버지께 화를 냈었던 모양.
하니 그대로 아버지 숨 끊어지셨다면 그 아인 사는동안 내내 스스로를 자책하며 살았을 것이다.
맘 여리고 정도 많은 애가 어찌 하였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만큼.
병원에 도착하고 세 시간여만에 헉 소리도 없이 고통이나 통증 하나 없이 그렇게 감사하도록 평안히
이생을 떠난 아버지...
과거 오래전에도 아버지 임종 준비하란 의사 말에 이곳에서 일하다 연락받은 형제들이 급히
검은 옷을 챙겨입고 시골로 떠났던 적도 있었으니
그동안 오랜 병원 생활로 우리네 형제들의 속을 태운 아버지를 보면서 임종을 힘들게 할까 싶었다.
까무러치다 깨다를 반복하다 자식들 가슴 멍들게 하고 가시면 어쩌나...
엄마보다 길게 사시면 누가 감당하나...
그리고 아버지로써 우리 자식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것으로 죽어가는 막네사위보다는
일찍 가셨으면...하고 바랐었다.
병원에 모시고 가서 살펴도 딱히 아픈데 없었고
당신 스스로도 아픈데는 없다시던 아버지의 몸무게는 31kg이였다.
젊음을 술과 바꾼 결과로 기능이 떨어진 육신이 아무리 좋은 것을 먹고 약을 써도 수명이 다해
기력이 쇠하신 탓 말고는 더이상 할것도 해줄 것도 없이
일곱 자식들의 효도를 받아 누리며 한 평생 가장, 아버지...로써 애쓰신 적 없이 편히 사신 덕에
우리 동기간은 피눈물 나게 힘들고 아팠었지만
뼛속까지 아린 상처를 죽는날 바로 전까지 아낌없이 주시던 아버지는
그렇게 감사하도록 편안하고 깔끔하게 죽음을 맞으셨다..
참으로 자그맣고 가벼운 헛 몸...
아끼고 아끼며 꼽꼽하단 소릴 들으며 자식들 힘들게 하시더니
당당히 쓰시지도 못하고 저렇게 가실것을...
아버지의 차디차고 작은 몸에 걸친 수의 새옷으로 걸치시고 깔끔히 단장하고 떠나신 모습을
보며 입관전 마지막 어루만져본 아버지의 얼굴...
"잘 가시요 은영이 신랑 아픈것이랑 다 가지고 새끼들 힘들지 않게 싹 다 가지고 가버리시요"
불시울 벌건 엄마의 마지막 인삿말,
아버지 고맙습니다. 아부지가 우리 많이 힘들게 하셨지만 그 덕분에 우리 형제들이 우애깊게 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살아생전 한 번 쯤 미안하다 고맙다 한 마디만 해주시지...잘 살께요. 우애하면서...나의 작별의 말을 뒤로
아버지 수고 많으셨고 고생하셨습니다. 나중에 꼭, 뵙시다...꼭 천국에 가서 뵐께요...막네 아들의 흐느낌소리와
여러 존주들의 배웅을 받으며 입관을 마치 내 아버진 행복하셨을 것이라 믿는다.
새벽에 아버지를 이송하는 차창 밖에선 피려는 꽃들의 기척이 들레어 있더니
아버지 장례절차를 마치고 엄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봄꽃들이 있는대로 활짝 피어 바람을 맞고 있었다.
평소 선산타령에 조상을 찾던 아버지가 얼마전 그냥 화장하라고 했었었다.
게다가 저 아랫녘 멀디먼, 연고도 없는 바닷가 연안 선산은 겨울에도 햇볕이 좋아 눈이 쌓이지 않는
따뜻한 곳이지만 하룻길로 다녀오가기엔 너무 힘든 곳인지라
부모님을 모셔두고 안갈 수도 없는 자식된 입장에서야 가까운데 모시고 싶어 모두 화장 후 부평공원묘지
납골당에 안치키로 합의 했다.
새벽 6시 발인예배를 드리고 장의버스에 올라 도착한 화장터.
묻으면 뭐한다냐고 당신 죽으면 그냥 태워서 뿌려버리라던 어머닌 정작
아버지 화장한다는 말에 두 번 죽이는 것이라고 불속에서 얼마나 뜨겁겠느냐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같을 것이라고
나중에 부활할 때 몸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얼굴까지 붉히며 거부반응을 보이셨다.
화장터에 가서 기다리는 동안 그 마음과 생각이 너무 심해 아버지 화장화로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말자고 하여
내 딸이 계속 휠체어를 태우고 할머니와 얘길 주고 받으며 한켠에 있게 했더니
글씨를 아시니 아버지 이름자에 화장이란 전광판이 빨갛게 밝혀진 것을 보고
느그 할아버지 태우는것이냐고...하시며 자꾸 힘들게 하셨다한다.
그렇게 화장되는 동안 못마땅한지 힘들어 하시던 엄마는 아빠의 뼈들을 담아내는 것을 보고 조금 안도하셨던 모양.
화장이니 납골묘니...말로는 들어봤어도 한번도 본 적 없으시던 엄마는
사람들이 '태워서 뿌려버린다'는 말을 곧이 곧대로 듣고 상상하셨던 모양이다..
하얀 아버지의 뼈들을 유골함에 넣고 납골당으로 이동하면서 보니 새로 단장된, 그리고 여전히 공사중인 공원묘지는
참 잘 만들어져 좋았고 유족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식이 여러갈래여서 좋구나 싶기도 했다.
산수유 매화 벗나무 ...개나리..진달래..온갖 꽃들이 많은 너른 묘지를 보면서 버스로 이동하는데
딸아이랑 같이 앉은 울엄마
"시방 어디간대?"
할머니, 지금 할아버지 좋은데 모셔두러 가는거예요..
"평온당" 이라 이름지어진 새로 지은지 얼마 되지 않은 햇살 가득한 납골당으로 들어가니
"또 어디로 들어가는 것이냐" 며 조바심나는 표정인 엄마...
"엄마, 이젠 아버지 분골함 모셔둘 곳으로 왔어요"
평온당 667 함...그리고 공지사항을 숙지시켜주는 직원의 말을 들으며 아버지께 모든 자손들 골고루 눈인사와
말을 건넸다.
그리고 옆에 서 계신 엄마를 부축해서
"엄마, 아버지 계신곳이예요. 한 마디 하세요~"...하니
아버지의 명폐와 분골함을 바라보신다...
다른 사람들의 순서를 위해 내려오는데 휠체어에 태운 할머니를 밀고 함께 엘리베이터를 탄 내 딸아이에게
엄마가 그러셨다고 한다.
"나는 태워서 가루를 뿌려버리는 줄 알았는데 저렇게 하는것이다냐? "
"네에 할머니, 할아버지 뼈 다 모아서 저렇게 놔두고 사진이랑 같이 넣어놓고 보고 싶을 때마다 찾아와서 맘대로
보는 거예요. 아까 봤죠? 거기 멋지게 사진 넣어진 다른 사람들...전 좋아보이는데요?"
했더니.
아 그러냐?...하시며 말씀이 없으시지만 얼굴이 편안해지시더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서 형제들이 참으로 고맙고 대견했고 내 아이들이 얼마나 든든하고 또 고맙던지..
많이 울었다.. 저 아이들이 저렇게 자라나는 동안 엄마 자리 힘겨워 혼자서 잠을 잃고 아파했던 시간들이
헛것이 아니였단 생각에 참 감사했다.
그리고 내 형제들이 버젓하게 사회인으로 당당히 서 있음이 얼마나 좋았던지...
오는 사람들마다 깜짝 놀랄정도로 눈이 커지게 만드는 화환들이며 문상객들과 자손들...
묵직한 명함이 달린 리본들이 넘쳐서 더이상 받지 못할만큼, 다른 장례실을 이용하는 상주들에 미안할만큼
통로를 막는 그 화환들하며
장례식장에서 vip라는 대접을 해 주고 서비스를 제공해줄만큼 모든게 넘쳤다.
부모님들이 속한 친정교회 목사님께서 올라와 예배를 드릴 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만큼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나서 형제들 눈물샘보가 터져버렸었다.
삼십수년을 알고 지냈으니 우리들이 성장하는 동안 다 지켜봐주신 고마운 분이시니 아픈곳을 얼마나
잘 어루만져 주셨는지..
예배를 마치고 나와 오랜 이야기를 나누고 내동생 은영이를 급히 데리고 은영이 신랑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가셔서 기도해 주시고서 다시 장례식장에 여동생을 내려주시고 급히 가셨다.
내려가는 길 요기라도 하시라고 건네는 봉투를 기어이 거절하시고
부목사님과 장로님들 함께 떠나시는 모습에서 눈을 떼려니 만감이 교차했다.
아버지 장례를 치루면서 형제들도 우리네들 아이들도 참 많은 것들을 느끼고 또 새기었단 생각을 많이,
그리고 그것을 느꼈었다.
납골당에서 내려오는데 아들애가 내곁으로 다가와 든든한 팔로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웅이야, 혹시라도 나 죽거든 난 뼈도 추스리지 말고 그냥 가루로 만들어 깔끔히 뿌려라..."
했더니
"에이~엄마는 아직도 한참이나 지나야 올 일을 뭔소리냐고 "
사람은 모르는 거니까, 또 어느날 젊은 채 무슨 일을 만날 수도 있으니 미리 말하는거다
오래 살아서 늙어 맘이 변해 또 어쩔른지 모르겠다만 내가 다른 말을 하더라도 지금 하는 이 말이 본심이요 진심이니
그 때 말은 신경쓰지 말고 그렇게 해줘"
하니,
"엄마, 나는 내가 모시자 주의라 묻고 싶지 그러고 싶지 않아."
야야, 그러지 마라 같이 살 때 잘 살면 족하지. ..니 새끼들 고생시킬 일 만들지 마라
하니
엄마, 염려마. 내가 산을 하나 사면되니까..거기 딱~ 모셔놓고 내가 다 알아서 할께. 난 애들도 낳을 수 있을때까지
낳을거야 "
아이구야 니 돈 마이 벌어야것다.. 엄마 카페도 차려준대지 산도 사야지...이왕 하는김에 은영이모랑 같이 챙겨주라
막네이모랑 내가 많이 닮아서 다른 사람들이 쌍둥인 줄 알거니까 같이 해줘.
옆에 두어발짝 앞서 지딸애랑 같이 가던 여동생 돌아보며
"언니 산도 산 나름이지. 언니 들어가기 딱인 산이면 어쩔라고~"
"그래? "
"에이~~걱정 하지 마세요."
"대웅아, 이모가 과부가 되게 생겼다...우리 가윤이 좀 잘챙겨주라..."
웃으며 하는 그 말이 뱃속을 저릿하게 뚫는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딱~~....
아부지 보내고 조만간 지 남편을 보내야 할 내동생이 내내 눈에 아파서 힘들었던 사흘..
엄마를 모시고 일곱남매가 언니네 집에 모셔 마무릴 즐겁게 하고 밥을 먹고 내일 예배에 전부 참석하여
집례해준 교회에 인사를 드리기로 약속하고 흩어졌다.
언니네와 큰남동생네와 우리 식구만 남아 또 다른 시간을 보낸 어제..
모든게 허망할만큼 마침표를 잘 찍어주신 아버지 덕분이였다.
아버지...고맙습니다.
☆
달반 전쯤이였던가?
엄마 손톱을 깎아드리고 있는데 방에서 나와 식탁의자에 앉으신 아부지가
"눈이 침침해서 손톱을 깎을래도 깎을수가 없다고 누구한테 부탁할 사람도 없고..."
"....아부지, 엄마 해드리고 제가 깎아드릴께요 잠시만요."
엄마 손톱손질을 끝내고 식탁의자로 가까이 마주 앉아서 아버지의 손톱을 손질하려고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태어나 처음 잡아보는 아버지의 손...
어느 자식 손 한 번 잡아준적 없는 내 아버지의 손...을 내 생애 처음으로 내가 먼저 양손으로 잡았다..
순간 내 머리 뒤통수로부터 전류가 흐르듯 전해지는 느낌...
'아!...돌아가시겠구나...' 말로는 왜라고 딱 꼬집어 낼 수 없는 그 느낌이 다시금 찾아 들었다.
내가 손톱을 손질해 드린 후 돌아가신 분들의 얼굴이 떠오르며 난 막내제부보다 먼저 가실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그리고 어느날부턴가 투여한 약물을 줄였는데도 제부의 상태는 조금 더 회복되어
신수가 좋아보이고 휠체어에 내려 앉히면 앉아 있을만큼이 되었다.
사람들은 기적이라도 일어날지 모르겠다는 기대감을 슬며시 가슴속으로부터 떨리게 갖기 시작했고
난 차마 여동생에게 내 느낌을 말할 수 없어 언니한테만
'아버지...돌아가실 것 같단 '말을 했었다.
짧은 동안 너무 큰, 무거운 일들이 지나고 지나는 중이라선지 정신이 너무 없다.
깜박증세가 심각해지고 비몽사몽이라니...
아부지 돌아가시기 전날 단 일초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 잠이 오질않아서.
왠일인지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며 다음날 언니네 집에 가서 어영부영 또 하루가 갔었는데
그 새벽녘 언니의 전화를 시작으로 잠을 몇시간이나 잤었는지 ...
비가 내리는 저녁...
딸아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데 아부지 생각이 난다..
가족 톡방에선 아부지 안치함에 놓을 사진을 고르느라 의견들을 모으고 있고...
낼 주일 지나고나서 아버지 사망신고며 엄마 연금이며 은영이 남편 장애등급 받는 일이며..등등으로 또 정신줄
잘 챙겨야 할 일이 벌써부터 바쁘다...
아부지~
우리 위해 기도하고 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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