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역한 세대에서
(사도행전 2:37-42)
오래 전 이탈리아 나폴리의 한 공장에서 위대한 성악가를 꿈꾸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려운 생활 중에 겨우 첫 레슨을 받았을 때, 교사는 그에게 "너는 성악가로서의 자질이 없어. 네 목소리는 덧문에서 나는 바람 소리 같다."고 혹평했습니다. 그 소년은 큰 좌절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소년의 어머니는 실망하는 아들을 꼬옥 껴안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너는 할 수 있어, 실망하지 말아라. 네가 훌륭한 성악가가 되도록 이 엄마는 어떤 희생도 아끼지 않고 너를 돕겠다." 소년은 어머니의 격려를 받으면서 열심히 노래했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세계적인 성악가 '잉리코 카루소'였습니다.
그가 부정적인 말을 가슴에 담고 살았다면 꿈을 포기한 채로 살았을 것입니다. 사랑이 담긴 따뜻한 말 한마디의 격려는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꿈을 주는 어머니의 말한마디였습니다.
베드로는 초대교회에 설교한 내용이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힌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어요.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하였어요.
1. 어찌할꼬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일을 밤낮으로 금식시하신 후에 주리셨어요. 시험하는 마귀가 와서 예수님께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하였어요.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라>고 하였어요.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요한복음 8장 12절에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어둠에 있던 바디메오가 예수님을 만나 빛을 찾았습니다. 외로움이 있었던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 기쁨과 축복을 받았습니다. 12년 혈루증을 않은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 고침을 받았습니다. 백부장의 하인은 백부장이 예수님께 나와 <말씀만 하옵소서>하고 나갔더니 고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서 질병을 고치시고 더러운 귀신을 쫓아 내시고 거친 파도를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변화되게 되어 있어요.
사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던 사람인데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1997년 외환 위기도 큰 어려움 없이 넘긴 한 사업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2011년 겨울 그는 무리한 투자로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신용불량자가 됐습니다. “어찌할꼬”만 외치며 술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딸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이러다 죽겠다. 제발 교회 한 번만 가자.” 사실 그는 미션스쿨을 나왔고 세례도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돈을 좇아 살면서 교회를 떠났고 예수 믿는 친구들을 무시했었습니다. 곤고한 상황에서 딸의 사정에 못 이겨 다시 교회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하자 형제들의 비아냥도 들었고 믿음의 확신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내게 먹을 것이 떨어져야 하나님과 화해하고 사람과도 화해할 수 있습니다”는 목사님의 메시지가 그의 마음을 찔렀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 형제들과 깊은 갈등을 겪고 있었는데 이 말씀을 듣고 자신이 제일 큰 죄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돈을 하나님처럼 섬겼던 죄를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고난 가운데 말씀이 들려 참된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죄를 깨닫자 그는 그동안 자존심 때문에 외면했던 ‘빚부터 갚으라’는 공동체 권면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아갈 수 있도록 지체들이 몸소 찾아와 격려해줬습니다. 여러 위기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공동체에서 솔직히 고백하며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심을 경험했습니다.
가장 큰 은혜는 가정의 회복이었습니다. “교회 한 번만 가자”고 했던 딸은 아버지의 변화를 보며 믿음이 더욱 깊어졌고 예수 믿는 청년과 결혼해 믿음의 가정을 이뤘습니다. 매 순간 말씀으로 “어찌할꼬” 물으며 하나님 앞에 작은 순종을 쌓아가자 형제들과의 관계도 회복되어 갔습니다.
이것이 한 사람의 진정한 회개가 가져온 놀라운 열매입니다. 남 탓, 상황 탓할 때 결코 볼 수 없는 회복이 내 탓을 인정하고 회개할 때 일어납니다. “어찌할꼬”에 대한 답은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회개는 한 나라의 회복까지 가져오는 열쇠입니다.
2.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으세요.
예수의 이름은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입니다.
누가복음 10장 17절에 “칠십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행복하더이다”
예수의 이름은 기도응답받는 능력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에 <너희가 내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예수의 이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성령충만한 베드로와 요한이 제 구시 기도시간에 성전에 올라갔다. 성전에 나면서 앉은뱅이가 구걸하고 있었다.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구걸했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 사람에게 <우리를 보라>고 했다. 그는 <무엇을 얻을까?> 바라 보았다.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네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했다.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걸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했다. 모든 백성이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예수의 이름은 그의 인생전체가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의 이름은 사람의 육신뿐만아니라 사람의 영혼을 함께 고치는 구원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은 절망의 삶을 소망의 삶으로 바꾸는 이름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3.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합니다.
본문 42절에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에서의 ‘가르침을 받아’는 선포된 복음을 – 설교 –을 기반으로 하는 교훈이나 교리를 전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선포된 복음이 지닌 진리의 뜻을 알기 위해서 사도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고 이를 배우는 제자로서 그 배운 내용을 실천하였습니다.
“서로 교제하고”에 오로지 힘썼습니다. 이 어구에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에 따르는 것으로 이어지는 ‘그리고’에 해당하는 등위 접속사가 있습니다. 즉,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그리고 서로 교제하라는 것은 물질을 나누거나 성령의 인도하심에 참여하여 교제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에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돌보시는 자비를 베푸시는 것에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땅에서 발생하는 약자인 고아와 과부를 비롯하여 가난한 백성을 돌아보시고 그들의 생명을 보호하시며 존속해 나가게 하는 것에서 약자를 돕는 자비법을 주시고 여기에 담긴 ‘하나님을 사랑할 것’과 함께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서로) 떡을 떼며”에 오로지 힘썼습니다. 이것은 떡의 나눔에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이 ‘나눔에’ 있은 ‘떡’은 ‘빵’(bread), “빵(떡)덩이”(loaf)로 여러 다양한 종류의 분말 가루로 구운 빵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는데, 이 빵은 고기와 함께 가장 중요한 형태의 양식이었습니다. 이 떡의 나눔에 있은 것은 유대인의 유월절 잔치에서 보게 되는 만찬이 주의 만찬에 의해서 가져나가게 된 것에 따른 것으로, 초대교회가 떡의 나눔에 있은 것은 단순히 식사 관습만이 아니라 주의 만찬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보게 되는 초대교회는 주님의 제자들이 모일 때마다 주의 만찬을 통해서 애찬의 성격을 갖는 기본적인 식사를 가져나갔습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기도하기를’ 오로지 힘썼습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오로지 힘쓰는 ‘서로 교제하고’가 있었고, 또한 오로지 힘쓰는 ‘떡의 나눔에’ 있었으며, 그리고 또한 오로지 힘쓰는 ‘기도하기를’에 있었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도하다’를 뜻하는 단어는 원문에서는 ‘기도’, 또는 ‘기도처’를 뜻하면서 복수형이 쓰였습니다. 이는 기도에 있은 사람이 한 사람이 아니라 복수, 곧 초대교회 모임에 있는 온 성도들이 함께 기도에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1장 17절에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 라고 하신 예수님이 말씀하신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에서입니다.
무슨 기도를 해야 할까요?
성령충만, 영혼사랑, 질병치유, 자녀축복, 삶문제 해결을 위해 기도합니다.
마태복음 12장 28절에서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더럽고 추하며 악한 영인 귀신들이 물러갑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심도 성령이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마귀아,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님의 능력으로> 너를 거부한다. 이제 너를 섬기지 않고 너의 모든 일을 포기한다! 나의 주 예수님, 이제부터는 당신을 섬기는 삶을 시작하겠습니다." 마귀는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하게 얻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죄를 다스립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술을 다스립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음란을 정복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질병을 다스립니다.
예수의이름으로 가난을 다스립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저주를 다스립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를 다스립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성령충만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름부음으로 충만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게 합니다.
패역한 시대에 무엇을 해야 하나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성령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