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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산길을 걷는 것을 참 좋아했습니다.
왜냐하면 바삭 바삭하는 소리가 귓가를 재미있게 간지럽히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나뭇잎이 바삭거리는 소리도 작은 다람쥐가 달려가는 모습도 하나도 재미가 없었습니다.
내일부터 마을 어른께 가서 공부를 하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저만치 사라율이 보입니다. 아이는 사라율의 옆에 기대어 앉아서 조그만 소리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 사라율.. 나 이제부터 공부를 해야한데.. 근데 .. 공부하면 너와 있을 시간이 더 줄어들잖아.. 난 네 곁에 많이 있고 싶은데..”
아이는 가만히 사라율을 꼭 껴안았습니다. 거칠한 겉 껍질 속에 있는 사라율의 따뜻한 마음이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 같았습니다.
사라율은 그런 아이의 마음을 토닥이는 어머니와 같은 목소리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 율아..옛날에 내 곁에서 움막을 치고 공부하던 사람이 있었단다. 그 사람이 글을 읽는 소리는 마치 노래를 부르는 것 처럼 들렸어. 그리고 그는 공부를 하고 머리를 식히려 쉴때는 항상 내 곁에 왔단다.그리고 흙바닥에 나뭇가지로 한자를 쓰며 나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줬어..”
“ 어떤 이야기?”
아이는 두 눈을 반짝이며 사라율의 이야기에 귀를 귀울였습니다.
“ 네 이름인 栗 의 뜻에 대해서 ..”
“ 정말?”
아이는 더욱 호기심에 가득찼습니다.
사라율은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 어느날은 내 곁에 와서 밤율 ‘栗’을 쓰고는 설명해줬어. 栗 은 따로 떼어 보면
서녁서 西 + 나무목 木 이야. 그런데 이중에 西의 모양은 열매가 매달리는 형상인데 이것은 밤의 열매가 아래로 드리우기 때문에 이런 모습을 그려서 栗이란 글자를 만든 것이래. “
“내 이름이 밤열매란 뜻이구나“
아이는 기쁜 듯이 말했다.
“ 그리고 栗(율)이란 글자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어.
西는 ‘떨어져 나가다, 갈리다 라는 의미가 있단다. 그래서 밤송이 속에 열매가 2-3개 나누어져(西) 있다는 나무(木)라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해”
“아..그렇구나..“
아이는 한자 하나 하나에 여러 가지 뜻이 있는 것이 참 신기했습니다.
“율아.. 마을에 내려가서 한자를 배우면 내게 가르쳐 주지 않을래..”
“ 사라율에게 한자를 가르쳐준다고?”
아이는 항상 사라율에게 배우기만 했기에, 사라율에게 무언가를 알려준다는 것에 이상한 느낌이었습니다.
“ 그래.. 난 더 배우고 싶어..”
사라율의 그 목소리는 진지했고 아름다웠습니다.
“ 응.. 사라율이 원한다면, 나 열심히 배워서 꼭 많이 가르쳐줄게 ”
아이는 약속을 한다듯이 새끼손가락을 사라율에게 내밀었습니다. 아이는 가장 소중한 친구에게 무언가를 해준다는 것에 무척 들뜨고 기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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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시간이 될 때마다 사라율에게 와서 자신이 배운 한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어느날은 신기한 글자를 배웠다며 사라율의 옆에서 나뭇가지를 들고 가을추 ‘秋’
를 썼습니다.
“ 사라율, 가을추 秋 는 벼화 禾 + 火 이렇게 나눌수 있잖아.
벼가 불타고 있는 것이 가을이래.. 너무 신기하지?“
“ 응... 그런데.. 그건 너무 슬픈느낌이야 ”
사라율은 슬픈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 슬프다고? 뭐가 슬퍼?”
“ 율아... 난 매년 가을마다 슬퍼.. 어느날엔가 문득 언제까지나 계속 될 것 같은 여름은 타는듯한 기운이 .. 내 껍질을 감싸고 있던 온기가 가을이 되면 어느 순간 거두어지고 가을의 서늘한 기운을 느끼게 돼...”
“ 하지만, 너는 아주 많은 열매를 얻게 되잖아..”
아이는 두팔을 들어 열매를 그리는 듯 큰 원을 그렸다.
“율아..가을에는 서쪽에서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은 잘라버리는 기운이 들어온단다.기억하지.. 西의 의미가 떨어져 나가다.갈리다란 뜻이란걸 말야.. 그래서 가을이 되면 벼가 불타는 것처럼 쭉정이는 불에 태워지고 열매만 살아남게 돼.그것은 한편으로는 기쁘면서 슬픈감정을 느끼게 된단다..”
아이는 사라율의 슬픈 목소리를 들으며 마을 어른께 배운 또다른 글자인
근심수 愁를 떠올렸습니다.
가을(秋)의 마음(心)은 근심.. 슬픈듯한 마음이란 것을 사라율이 하는 말을 통해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 .. 그래서 매년 가을이 되면 난 항상 떠나보낼 준비를 한단다.슬프지만 열매를 맺기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거든”
‘ 가을이 되면.. 가을이 되면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해... ‘
아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라율이 했던 말을 마음속으로 되뇌었습니다. 낙엽은 떨어지고 하늘은 맑고 푸르렀습니다. 감나무에도 밤나무에도 열매가 한아름 열려있고, 논은 황금빛으로 물들어있습니다.
하지만.. 가을은 그런 풍요속에 한쪽에서는 슬픈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의 가슴 속에도 사라율의 슬픈 마음이 옳겨져 온 것처럼 슬픈 노래가 흐릅니다.
도전 4편 19장 1- 5절
이 때는 천지성공시대라. 서신(西神)이 명(命을 맡아 만유를 지배하 뭇 이치를 모아 크게 이루나니 이른바 개벽이라. 만물이 가을바람에 혹 말라서 떨어지기도 하고 혹 성숙하기도 함과 같이 참된 자는 큰 열매를 맺어 그 수가 길이 창성할 것이요. 거짓된 자는 말라 떨어져 길이 멸망할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