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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란, 내가 걸어 가는 인생길에 필연과 우연의 씨실과 날줄이 얼키어 자아내는 옷자락 같
은것...
몇번씩 일정을 바꾸어 가며 어렵사리 시간을 맞추었다.
나의 경우만 해도 결혼 후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진 2박3일의 여행길이다.
오늘 여행길의 동행들은 같은 학년의 자녀를 둔 자모모임에서 서로 뜻이 맞고 생각이 모아져
십년이라는 긴 세월을 매달 한번씩 정을 들여 왔다. 모두들 나보단 사회와 자녀 교육의 선배님
들로 만날때 마다 나는 한가지 이상 선물을 안고 돌아오는 동아리였다.
'들무새' ..모임의 이름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어려운 일을 함께 힘을 모아 도와 나간다는 뜻으로 얼핏 새이름처럼 고운이름
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늘 서로를 살피는 마음으로 도움주는 정보와 자녀들 성장이야기로 만나
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정이 깊어 졌고, 이제는 자녀를 떠나서 서로의 정분으로 함께 하는 시간
만으로도 흐뭇한 기운이 흐른다. 그런 자모들 끼리 거사를 계획하였으니 어찌 아니 즐거우랴!
대전을 떠나 연안부두로 가는 사이 두대의 차량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차안에서의 대화가 모락
모락 재미지고 길가의 금계국은 노란 얼굴로 하늘대며 환영의 손짓을 보내준다.
연안부두에 도착 타고갈 배를 보며 순박한 한 엄마는 자녀의 염려스런 걱정에' 엄마는 지금 아파
트만한 배타고 가~ 걱정 말고 잘 지내렴!' 함께 듣는 엄마들 모두 웃음바다다.
'오하마나호'! 정말 아파트 만한 배가 우리가 타고 갈 배이다. 날씨가 좀더 좋으면 바다의 노을을
즐기며 갈 수 있으련만 이만한 것도 다행으로 여기며 기대를 부풀린다.
원래는 제주에 도착하여 성판악에서 관음사로 백록담을 거치는 일정을 생각했지만 몸이 불편한
일행이 있어 어리목에서 영실로 코스를 수정했다. 백록담은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지만 새로운
코스에 나는 내심 기대가 크다.
배에 오르며 '여기 봐요~'하니 모두 유치원 어린이들 마냥 말도 잘 듣는다. 함박웃음이 참 좋다.
열심히 살림한 당신! 떠나라! 비우고 다시 채워오라!
맑은 노을은 아니지만 아쉬운대로 노을의 정취는 누릴 수 있었다.
노을... 동트는 붉은 하늘이 가슴을 뛰게 하는 기상이 있다면 저 붉게 물드는 노을의 정서는 가슴
바닥부터 이끌어 나오는 심연이 느껴진다. 하물며 가없는 깊이로 떨어지는 바다에 빠지는 노을
이기에 오늘.. 수면위에 어리는 그리움들이 함께 물결친다.
수평선과 해에게 맞추는 촛점으로는 시간이 정지한 듯한지 예인선이 시간을 좇듯 긴 꼬리를 달
고 지나간다. 이렇게 하루가 저물어 간다. 이 커다란 배는 오늘 나를 어디로 이끌어 갈까...
이층침대가 놓여 있는 방에 8명이 짐을 풀고 배안 구석구석을 신기한 듯 구경해 본다. 누구는 뱃
머리에서 영화'타이타닉'의 로즈와 잭의 포즈를 흉내내고 배안의 커다란 세미나실이며 로얄실,
꼭대기 옥탑(?)까지 빼 놓지 않고 탐색한다. 수줍음 많고 최고 살림꾼인 필규엄마다. 아니 오늘은
누구 엄마가 아니라 재금씨다. 야무진 살림 솜씨로 늘 살림에 도움 되는 정보를 퍼트리는 귀여운
세균! 웃어보라니까 V자까지 그리며 깜찍한 포즈를 취한다. ~ㅎ 이렇게 새까맣게 나온줄도 모르
고.. 마이 미안합니다~
행복해 하는 얼굴들이 참 보기 좋다. 아줌마를 제3의 性이라 했던가.. 그들의 힘이 바로 대한민국
의 저력인것, 열심히 자신의 자리에서 중심을 잡아 주었기에 나라의 기본인 가정이 탱글탱글 야
무지게 여물수 있고, 그들의 옹골진 마음자세에서 나라의 경제와 미래를 위한 두뇌의 배양이 되
고 있으니 부디 야유의 제3의 性이 아닌 보답으로 훈장의 뜻이기를 ...
배안에 마련된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라이브공연이 시작되었다. 즐거움은 누릴 줄 알
아야 한다. 서로의 마음에 시원한 맥주로 공감대를 이루고 낯선 이국가수의 옛노래를 들으며 손
뼉을 친다. 건강한 웃음과 솔직한 즐거움이 흥을 더욱 북돋운다.
기타를 든 남자는 마치 인디안을 연상하는 강한 체격과 우울한 눈빛을 가졌다. 가녀린 여가수의
몸짓과 음성은 낯선 타국에서 견뎌야할 일 들이 애처러울 정도로 여리다. 흘러간 팝송과 간혹 섞
어 부르는 제법 또렷한 가요의 노랫말에 진심으로 앵콜의 박수를 보낸다. 좋다. 핸드폰을 꺼 놓고
어쩌면 잠시 그간의 둥지를 떠나 오로지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으로 커다란 배는 우리를
이끌고 가고 그 시간 속에 귀에 익은 리듬이 언젠가 느꼈던 동질의 느낌세대로 나를 데려간다.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 시간.. 배는 미동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막상 자리에 누우니 온몸이 붕
떠있는 느낌이다. 지금쯤 하늘에는 별들도 잠들고 있을까? 위층에 자리한 내가 아래를 내려다
보며 복남이언니! 하고 말걸자 다시는 내려다 보지 말란다. 푸하핫! 풀어헤친 내머리가 꿈자리
사나울것 같으다나...
잠이 오지 않는다. 가만히 자리에서 내려와 모두 잠든 방을 빠져나온다. 뱃전이다. 온세상이 까
맣다. 어느것도 나의 시야와 생각에 들어 오지 못하고 차단된 까만 밤속을 이동하고있다. 째깍
째깍..째..깍...물소리 까만밤 떠오르는 모습..노랫말처럼 떠오르는 동그란 얼굴들..어둠 저편에
서 반짝거리는 별빛을 마음으로 보듯 동그란 영상에 하나씩 인사를 건넨다. 나.. 많이 행복해..
함께하는 시대와 그대들이 있어 많이 행복해..
치 떠올라 버렸다.
오전 8시 40분, 제주외항에 도착 15인승 미니버스에 올라 오늘 우리를 안내해주실 기사분과 인
사를 나눈다.
"어서 옵써! 어디서 옵데가?"
말끔하게 나이드신 기사는 지나는 길의 제주 안내를 매끈하게 설명해주신다. 제주시내를 지나
어리목을 향해 가는 길에 말 목장을 지나고 삼나무숲을 지난다. 차창밖으로 카메라를 누르지만
삼나무숲의 진경이 잡히지 않는다. 밀감밭을 보호하기 위한 방풍림으로 심었다는 설명이다.
원조도깨비도로를 지나쳐 1100도로를 거쳐 어리목매표소다.
매표소 입구의 "천의 얼굴(靈石)이다.
고개를 돌리니 오늘 올라야할 오름이 둥그렇게 다가온다. 흐린 날씨에 조망이 좋지는 않겠지만
따가운 햇볕을 피할 수 있어 체력이 걱정되는 일행들이 산을 오르기에는 오히려 적당한 날씨다.
천의 얼굴(靈石) 의 구멍 안에는 금붕어가 세마리 살고 있다. 할로윈 탈처럼 생긴 모양도 특이하
고 그 속에 물고기를 기르는 모습도 신기하다.
편안한 오름길이다. 등로는 잔돌과 굵은돌로 잘 정비되어 있고 양옆으로 산죽이 줄지어 자랐다.
왼편의 레일은 통신수단 인가보다.
편안한 오름길을 지나 우거진 수풀과 계곡이다. 한라산의 깊이와 높이가 만들어낸 울창한 숲과
계곡은 모두의 탄성을 자아낸다. 이제 가파른 오름길의 시작에 앞서 심호흡을 하며 한컷!
햇볕이 파고들 틈이 없이 푸른숲이다. 이파리의 빛이 햇볕의 양에 따라 다양한 빛깔로 비춰진다.
푸르름이 짙어가는 어리목의 숲이다.
쓰러진 고목과 낙옆더미에서 '선갈퀴'가 분재처럼 자라고 있다.
10여분 오름길에 숨을 몰아쉬는 일행을 쉼터에 두고 등로를 벗어난 숲속에서 귀한 꽃을 만난다.
'은대난초'다. 숲길에 요렇게 이쁜꽃을 만나는 선물은 늘 기대되고 충족되는 기쁨이다.
'큰앵초'도 습한 음지에서 곱게 얼굴을 드러낸다.
다시 오름길.. 계단을 따라 오르는 길이 지루하지만 커다란 풍채의 참나무가 잠시 눈길과 발길을
쉬게한다. '頌德樹' 다.
자연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선조의 겸손함과 전설적인 영험함이 느껴지는 우람한 모습이다.
자연이 만들어 낸 솜씨는 인위적인 손길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등줄기가 드러난 나무뿌리 한
켠에서 때맞춰 꽃을 피운 '세바람꽃'과 평범한 풀잎, 뱀딸기의 꽃과 이파리가 수를 놓은듯 우아
하게 자라고 있다.
한무리의 청소년들이 재잘대며 산을 오르고 있다. 그네들의 대화에서 풋풋함이 풍겨온다.
벌써 산길을 내려오는 소녀들이 건네오는 미소가 환하고 이쁘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 힘내라는
귀여운 거짓말에 함께 화답한다. 참 장하구나~*
드디어 숲길을 벗어나 너른 평원이다. 윗세오름의 시작이다. 평원에는 이미 지기 시작한 철쭉과
누렇게 퇴색한 산죽과 특이한 빛깔의 식물이 제주방언처럼 낯설게 다가온다. 고사리처럼 올라
오는 줄기이지만 고사리와는 먼 생김새와 빛깔이 이국적이다. 무얼까?
사제비 약수에서 식수를 보충한다.
고도가 올라가며 철쭉의 빛깔도 더욱 곱고 생생하다.
거센 바람을 맞으며 키가 작아진 '흰그늘용담'이 바닥에 붙듯이 피어 있다. 작지만 강인한 생명
력이 느껴진다.
거의 오르막을 느낄 수 없도록 슬그머니 고도를 높이며 세찬 바람이 고도를 증명하 듯 불어온다.
동화속의 햇님과 바람이 나그네의 옷을 벗기려 내기한 이야기가 떠오르며 모자와 옷깃을 단단히
매무새한다.
멀리 누렇게 보이는 평원이 초원처럼 보이지만 산죽의 마른잎새가 잔디처럼 보이는 것이다. 산
죽의 침투로 철쭉이 제대로 배겨나질 못하고 군데군데 모데미로 피어 있다.
어느새 1500고지다. 1100도로에서 시작했으니 고도를 많이 높혔다.
오름을 설명하는 표지판이다.
육지의 '미나리아재비'와 닮았지만 제주의 식물은 약간씩 토착화한 느낌으로 확실치는 않다.
제법 고운 빛깔의 철쭉이 오랜 오름길의 피로를 잠시 씻어 준다.
오름을 설명해준 표지판과 비슷한 모습으로 멀리 하늘과 맞닿은 오름의 실루엣이 멋지다.
어리목의 숲길에서는 '큰앵초'가 보이더니 세찬 바람속에서도 아늑한 자리를 틈타 '설앵초'가
윗세오름의 바위틈에 자라고 있다. 미숙한 솜씨로 고운빛을 놓쳐 안타깝다.
멀리 백록담의 북벽이 둥근 모자의 틀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돌아본 오름길의 나무 등로와 누런 산죽밭은 시침을 뚝 떼고 고요하다. 이렇게 바람이 거센데도...
등로의 옆으로 슾지가 형성되어 있고 물푸레나무와 이름모를 나무들이 제법 자라고 있다. 주목
이 살아천년 죽어천년이라는데, 살아 백년 죽어백년이라는 구상나무가 간간히 눈에 띈다.
거센 바람을 이기지 못한 향나무가 누워서 바닥에 붙어 세를 불리고 있다. '눈향나무'다.
가끔씩 눈에 띄는 흰꽃나무의 이름은 무엇일까? 아그배나무 같기도 하고..
드디어 윗세오름대피소다. 여러무리의 사람들이 때 맞춰 점심을 들고 우리도 여기서 도시락을
푼다. 사람에게 익숙한 까마귀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먹기 위해 새로 온 등산객 주변으로 모여든
다.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기회이기에 도시락의 육류를 골라 던져준다.
점심을 마치고 북벽쪽으로 오르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영실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오름길 보다 바람이 더욱 세차진다. 흐린 날씨에도 또렷이 보이는 북벽의 모습이 아름답다.
오늘 산길에서 만난 두번째 샘물이다. '노루샘'이라는 이름이 곱다. 달빛 맑은날 노루가 몰래와
먹고가는 샘물일까? 촬영에 신경쓰다 발목을 삐끗한다. 에고고.. 이러면 곤란한데..
윗세오름까지의 산행은 세찬 바람과 너른 평원의 산죽, 간간히 보이는 야생화의 출현으로 한라
산의 면모가 기억된다. 이제 기대 되는 영실쪽의 풍경에 기대를 안고 발길을 옮긴다.
첫댓글 오~랫만에 들어 와서 반가운 님의 글 잘 읽고 갑니다 자주 참여하지 못해서 미안 할 따름입니다.
^^* 그간도하시지요 말없이 지켜 봐주시는 힘에 흐린날이지만 기운이 납니다. 고맙습니다*
수려한 작문과 자연보다 더 아름답게 표현한 사진을 보며 20년도 더 지난 어리목등로를 따라 한바탕 신명나게 한라 춤을 추고 나룻배는 물을 건너갑니다.
제주도는 같은 조국의 산면서도 이국적인 느낌까지 취할 수 있는 신비의 섬이더군요. 고맙습니다*^^*
오하마나호,,,작년 이맘 때 즈음에 푸름님 주선으로 그 배에 몸을 태우고 꿈에 그리던 한라산을,,,고마운 마음으로 잘보고 갑니다.
^^* 광야님께는 특한 추억이 있으시다죠 그날 이야기를 들으면 지금도 웃음이.. 흐린 장마철이지만 늘 밝은 태양하나 가꾸시기를...*
지난 겨울에 다녀온 한라산이 다시 떠오르네요. 영실 및 윗세오름쪽은 늦가을 단풍때 함 가려고 하는데 미리 예습 잘했습니다.
언제가도 반겨주는 한라산에 멋진 풍경과 야생화를 잘 담아 오셨네요,언제나 좋은사행~~~~^ㅇ^
정성어린 글속에서 한라산길을 따라 걸어봅니다. 이쁜 야생화와 세세한 곳까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