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는 것은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는 것은 문희봉 모임에 나가 보면 ‘말하기를 참 좋아하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단 말을 시작하면 다른 사람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습니다. 관광버스 안입니다. 한 번 마이크를 잡으면 놓지 않으려는 사람을 심심찮게 만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사람 참 말 잘한다.’는 평을 하기보다는 그 사람 얘기에 역겨움을 느낍니다.잘난 척하면 적만 생깁니다. 말을 독점하면 적이 많아집니다. 그가 하는 말은 힘 빠진 산울림이라 표현하면 적절하겠지요. 차광막은 햇빛을 가립니다. 삿갓은 부끄러움을 가립니다. 그는 부끄러움도, 염치도 없는 사람입니다.나는 말하는 것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덕담은 많이 할수록 좋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감동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일단 들어줍니다. 그리고는 ‘그래, 그래.’ 공감하면서 하나가 되려 노력합니다. 그게 아닐 경우에는 ‘나 같으면 이렇게 하게 되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레 말해봅니다.지적은 간단하게, 칭찬은 길게 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도 잔소리는 용서가 안 됩니다.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은 뒤에서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의 험담은 그 사람이 아닌 자신에게 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을 제일 싫어합니다. 총에 의한 상처는 세월이 흐르면 지워집니다. 그러나 말에 의한 상처는 평생 갑니다. 아니 무덤에 가서도 지워지지 않습니다.나는 묻기보다는 그냥 가만히 진지하게 들어주는 편입니다. 말을 하기 쉽게 하지 않고, 알아듣기 쉽게 합니다. 흥분한 목소리보다 낮은 목소리가 더 위력이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신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들어 준다는 느낌을 받으면 자신의 비밀까지 모두 털어놓습니다. 그런 연후에는 두 사람 사이가 더 가까워집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우러나와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농담이라고 해서 다 용서되는 것은 아닙니다.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준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누군가가 나를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가슴을 벅차게 하는 일인지 모릅니다. 무시당하는 말은 바보도 알아듣습니다. 험담에는 발이 달렸습니다. 말은 입을 떠나면 책임이라는 추가 기다립니다.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백 마디의 충고보다 단 한 번의 공감과 따스한 시선이 아닐까요. 공감과 따스한 시선은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들어주는 청량제 역할을 합니다. 말도 연습해야 잘 할 수 있습니다. 약점은 농담으로도 들추어선 안 됩니다.내 입에서 터져 나오는 말은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말임에도 아직 어미 젖 묻은 아기의 옹알이보다 더 알아들을 수 없으니 이걸 어찌합니까. 많이 생각해서 한 마디 던지는 신중함을 보인다면 내 인생은 결코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 터이지요.투명한 언어의 낮은 소리, 극도로 절제된 감정과 언외언(言外言)의 은은한 서정, 이런 것들을 품에 안고 이웃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사람을 보면 존경스럽습니다. 무덤까지 가져가기로 한 비밀을 털어놓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입니다. 나는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습니다.피 흘리지 않고도 추락하는 새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산의 소리를 들어보라고, 계곡이 들려주는 노랫소리를 들어보라고. 백 번 죽고, 천만 번 죽어 가루가 되어도 변하지 않는 색깔과 올곧은 매운맛을 보여주는 고춧가루와 같은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