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참전 용사
“꼭 그 나이 때가 되면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녀석이 나오더라.”
“하기야 여름 낙엽도 있잖아.”
“그래도 그 나이이면 초가을이지 여름은 아니지.”
고등학교 동기회 모임에서 60대 초에 낙엽이 되어 떨어진 친구 이야기를 했다. 화날 일이 있더라도 웃음으로 떼우던 순한 친구였다., 노래방에만 가면 제일 먼저 마이크를 쥐고 들어주지도 않는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를 혼자서 뽑아내던 친구였다. 동기회를 하면서 그 친구 이야기가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젊었을 적에 다녀왔던 월남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누가 ‘월남전이라면 **이지,’라면서 그 친구 이름을 들먹였던 것 같다.
그는 초급 장교로 일찌감치 지원하여 월남으로 갔다. 누구보다도 많은 경험을 했으므로 월남전이라면 이야기 거리가 당연히 많다. 김세레나가 위문공연을 왔을 때 악수도 했고, 식사도 함께 했다는 자랑도 자주 한다. 그리고 한 여름밤에 모기에 뜯기면서 순찰은 나갔던 이야기도 더러 한다. 나는 월남전에 참전하지 않았으므로 듣기만 했다. 간혹 하는 질문도 사실과 너무 동떨어지다보니 진지하게 답해주려고도 하지 않는다.
“젊은 놈들은 월남전에 참전한 사람을 돈을 받고 미국 놈의 앞잡이를 하였다며 창녀 취급을 한다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때 우리가 벌어온 돈으로 나라를 일으켰잖아. 그 덕에 우리처럼 꽁보리밥을 먹지 않았잖아.”
영감탱이들이 월남전 이야기를 하다보면 목소리가 거칠어지는 일이 흔하다. 뿐만 아니라 보리밥만 먹던 시골 젊은이가 돌아올 때는 텔레비전도 가지고 왔다느니. 약삭빠르고 재주 있는 친구는 한 재산을 모우기도 했다는 등, 돈을 번 이야기는 가지를 치고, 잎을 달아서 풍성해진다. 월남전 참전의 이야기에는 뭔가 모를 자부심이 서려있다. 한 친구가 말했다. 혈압이 높아 보훈 병원에 가서 고엽제 후유증이라 진단받고 나니 고속도로 통행료도 공짜이고------, 보상으로 받는 이것저것을 자랑했다. 나는 ** 생각이 났다.
“그렇다면 **도 고엽제 때문에 일찍 ------.”
모임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아니라고 했다. 지병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자꾸 고엽제가 떠오른다. 내가 그들의 말을 수긍하지 않고 자꾸 허튼 소리를 한다 싶었는지 한 친구가 자기의 경험담을 털어 놓는다.
“야간 순찰을 나갈 때 고엽제 원액을 얼굴에 바르고 나갔어. 월남 모기가 얼마나 지독한지 한 번 물리면 가려운 것이 문제가 아니고 퉁퉁 부었어. 고엽제를 바르고 나가면 모기들이 얼씬도 안했어.”
“원액을 발랐는데도 괜찮았어?.”
“지금 멀쩡하잖아.”
‘지금 멀쩡’한 것이 그 친구가 고엽제의 후유증으로 먼저 간 것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친구의 말로는 노랑 드럼 통에 원액이 담겨 있었다. 노란색이라면 위험물질의 표시이다. 혹시 해골 그림은 없었느냐고 했더니 그건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정부가 병사에게 위험물질이라는 교육을 시키더냐고 하니 그런 일도 없었단다. 정부에서 왜 위험하다는 교육을 시키지 않았을까? 그것이 의문이었지만 나도 고엽제에 대해서는 주워들은 지식뿐이므로 더 이상 이렇쿵 저렇쿵 말할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후유증이 나타났고 정부에서도 인정하여 작으나마 복지 혜택을 주면서 생색을 낸다. 내 친구는 고속도로를 공짜로 달릴 수 있다고 자랑이다. 그렇다면 우리 영감탱이들이 바로 희생자인데도 희생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정부가 나쁘다. 고엽제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더 많은 보상을 해야 한다고 했더니 막상 피해자인 친구는 정부를 옹호하고 나를 나무랐다. 모임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 세대들은 5. 16 혁명 공약처럼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고 굳게 믿는다. 월남전에서 몸이 상한 것이 억울하지 않다. 뻴셈과 덧샘을 해보니 자식 세대들이 밥을 굶지 않으므로 손해 보지 않았다는 계산이다. 나라를 일으켰다는 자부심까지 가진다.
교직에서 퇴직한 친구가 화가 난 표정으로 아들의 말이라면서 전했다. 텔레비전에서 태극기를 든 노인들의 행렬을 내보내고 있었다.
“영감탱이들이 집에서 아이나 볼 것이지. 거참, 영감탱이들 때문에 나라가 요 모양이라니까.”
“이 자슥아 방금 뭐라고 했어. 영감탱이 때문에 나라가 어떻다고.”
“아버지 계셨어요.”
훔칠 놀라서 뒤돌아 본 아들이 슬그머니 일어서더니 방문을 열고 나가버리더라고 했다. 우리 영감탱이들은 하나 같이 ‘우리 아이도 마찬가지야’ 라고 한다. 배가 고파서 돈 버는 일이라면 몸 사리지 않았던 늙은이를 돈에 몸을 팔았다고 비난한다. 우리가 억울하다면서 백 만이나 모여서 촛불을 들었다. 배가 부른 요즘 젊은이들은 늙은이가 헛소리를 한다고 한다.
2017. 7
첫댓글 월남참전용사, 파독 광부와 간호사
그들 모두 개인적인 이유로 갔지 나라를 위해 간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난 그에게
ㅡ당신은 단 한번이라도 나라를 위하여 선택해본적 있나?ㅡ
라고 묻고 싶습니다
개인적인 바른 선택이 국가와 민족을 위한 선택이겠지요
그렇게 대한민국은 자라왔습니다
ㅡ대한민국ㅡ
그럼요. 국가란 개인이 잘 살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도 어떤 행동을 결정할 때 개인과 국가, 둘 중에 어디에 무게를 둘까요.
이런 것도 수필의 좋은 소재가 아닐까요.
이런 것을 사회적 진실과 개인적 진실의 대립이라고 하거든요. 이 이야기도 다음에 한 번 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