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964년부터 지금까지 농촌건설의 기본노선으로 삼았던 ‘우리 나라 사회주의농촌문제에 관한 테제’를 심화, 발전시킨 새로운 농촌건설강령, 즉 ‘우리식 사회주의농촌발전의 위대한 새시대를 열어나가자’를 채택했다.
지난 해 12월 말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보고한 이 강령의 기본 내용은 농민 강화, 농업 강화, 농촌마을 강화로 요약할 수 있다.
농민 강화는 농민의 사상의식수준을 높여 ‘사회주의 농촌건설 구상’을 실현하는 ‘농촌혁명가’로 준비시키자는 것으로 새로운 농촌건설에서 나서는 가장 주된 과업으로 지목되었다.
농업 강화는 농업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식량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자는 것으로 새로운 농촌건설의 기본 과업이며 향후 10년 동안 달성할 목표가 제시되었다.
농촌마을 강화는 농민의 생활환경을 근본적, 획기적으로 개선하자는 것으로 새로운 농촌건설에서 특별히 중시해야 할 과업으로 꼽혔다.
새로운 농촌건설강령은 몇 가지 주목할 지점을 안고 있다.
첫째, 농촌 개발을 농민 스스로의 힘으로 하겠다는 점이다.
북한은 최근 ‘사회주의건설의 전면적 발전’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사회주의농촌의 비약적 발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새로운 농촌건설강령은 농촌 발전을 두고 “국가의 전반적발전을 이룩하기 위하여 당에서 제일 중시하며 반드시 실현하자고 하는 전략적인 중대계획”이라고까지 하였다.
즉, 북한에서 가장 낙후한 산업, 지역 가운데 하나가 바로 농업, 농촌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보통 국가 차원에서 낙후한 산업, 지역을 개발할 때는 해당 산업, 해당 지역에 맡기지 않고 국가가 직접 나서서 개발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북한은 농민의 힘을 키워 농민의 힘으로 농촌을 개발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새로운 농촌건설강령은 “농업근로자들을 농촌혁명의 담당자, 주인으로 만드는 것은 사회주의농촌건설에서 나서는 가장 주되는 과업이고 그 승리를 위한 관건적 요인”이라고 규정하고 “농업근로자들의 사상을 개조하고 정치의식을 높여주는데 선차적인 힘을 넣어 그들 모두를 당의 사회주의농촌건설구상을 충직하게 받드는 농촌혁명가들로 튼튼히 준비시켜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하였다.
또 북한은 농촌에서 ‘사상, 기술, 문화의 3대 혁명’을 일으켜 농민을 “정치사상적면에서나 기술지식과 문화생활면에서 근본적으로 개명”해야 한다고 제시하였다.
원래 북한은 사회의 주인이 국민이며, 모든 것을 국민에 의거하여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걸 농촌 문제에 적용하면 농촌의 주인은 농민이며, 농촌 문제도 농민에 의거하여 해결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즉, 북한은 정부 정책의 집행자가 국민인 셈이다.
그래서 북한은 정부 정책에 국민이 적극 나서도록 호소하는 군중운동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천리마운동,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 만리마속도창조운동, 00일전투 등이 모두 군중운동이다.
이런 모습은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해결하고 국민은 정책의 대상, 정책의 시혜자가 되는 다른 나라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지금 대선이 한창인 우리나라 상황을 봐도 후보들이 국민에게 ‘이걸 해주겠다, 저걸 해주겠다’는 약속은 해도 ‘이걸 하고 저걸 해서 나라를 발전시키자’고 국민에게 호소하는 내용은 없다.
주목할 지점 두 번째는 정부가 파격적인 조치를 약속한다는 점이다.
새로운 농촌건설강령은 농기계공업 부문에 ‘특별중대조치’를 선포하였다.
특별중대조치의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았으나 “금성뜨락또르공장을 마력수가 높은 뜨락또르(트랙터)와 함께 여러 가지 능률 높은 농기계들을 생산할 수 있는 종합적인 공장으로 발전”시키는 문제와 “주요 농기계공장들과 농기계연구부문에 투자를 집중하여 나라의 농기계공업을 완전히 일신시키는 것”이 직접 언급된 것으로 보아 이와 관련한 조치로 추정할 수 있다.
아마도 금성뜨락또르공장을 연합기업소 수준으로 크게 격상하는 조치, 농기계공업 부문에 특별예산을 편성하거나 별도의 자금을 확보하는 조치가 아닐까 싶다.
또, 새로운 농촌건설강령은 협동농장 부채 탕감이라는 ‘특혜조치’도 선포했다.
북한은 “어려운 형편에서 경영활동을 하고 있는 협동농장들의 전반적인 재정실태를 세세히 분석”하고 “우리 농촌이 제 발로 일떠서게 하고 농장들의 경제적 토대를 보강해주기 위한 중요한 대책의 일환으로서 협동농장들이 국가로부터 대부를 받고 상환하지 못한 자금을 모두 면제할 데 대한 특혜조치를 선포”한다고 하였다.
북한의 농업 구조를 보면 매년 국가가 협동농장에 영농자재와 운영자금을 제공하며, 협동농장은 국가에 토지사용료와 영농자재 비용을 납부해야 한다.
그리고 남은 생산물을 농장원에게 배분하거나 자체로 처분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경영악화로 적자를 보거나 시설 개선, 확장을 위해 대부를 받는 경우가 생겨난다.
특히 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 영농자재의 국가공급체계가 무너지면서 협동농장이 자구책을 찾아야 했고 이 과정에서 부채가 쌓이고 이걸 아직까지도 해결하지 못한 경우가 있는 듯하다.
이런 부채 문제로 협동농장 경영이 악순환에 빠지고 자립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자 부채 탕감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경우도 농가부채는 농촌 사회의 뿌리 깊은 문제로 부채 탕감이 농촌사회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다.
아무튼 북한이 이런 파격적인 특별조치들을 하는 것을 보면 농촌 문제 해결에 상당한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주목할 지점 세 번째는 알곡생산구조를 벼와 밀로 바꾼다는 점이다.
새로운 농촌건설강령은 “나라의 알곡생산구조를 바꾸고 벼와 밀농사를 강하게 추진”하며 “식생활문화를 흰쌀밥과 밀가루음식 위주”로 바꾸는 방침을 제시하였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2020/2021 북한 식량 공급과 수요 전망’ 보고서에서 2020 양곡연도(2020년 11월~2021년 10월) 북한의 전체 곡물 생산량을 도정 전 기준 약 556만1천 톤으로 추산했다.
이 가운데 쌀이 211만3천 톤으로 38%, 옥수수가 221만4천 톤으로 40%를 차지했다.
가장 많이 생산하는 게 옥수수며 그 다음이 쌀이고 밀은 미미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옥수수는 단위면적 당 생산량이 쌀과 밀에 비해 압도적인데 미국의 경우 2019년 기준 헥타르 당 생산량이 옥수수 10,532kg, 쌀 8,374kg, 밀 3,475kg이다.
또 옥수수는 척박한 환경에서 관리를 하지 않아도 잘 자라는 작물이다.
하지만 지력 소모가 크고 물을 많이 소비하기 때문에 비료와 농약이 많이 들고 연작도 어려우며 보관이 힘들고 산에서 재배하면 자연재해까지 부르는, 장기적으로 볼 때 단점이 많은 작물이다.
북한은 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야산에 너도나도 옥수수를 심어서 옥수수 생산 비율이 급격히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국내 공식 통계자료에는 이 시기에도 쌀과 옥수수의 비율에 큰 변동이 안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야산에 심은 옥수수를 협동농장의 공식 생산물 집계에 넣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북한의 옥수수 경작면적을 대략 50만 헥타르로 추정하는데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경사지 경작지가 55만 헥타르 정도 될 것으로 추정되며 여기에는 대부분 옥수수를 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높은 옥수수 비율을 낮추고 쌀농사를 늘려서 장기적으로 안정된 농업 구조를 만들자는 게 북한의 구상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쌀과 밀은 이모작으로 키울 수 있기에 밀농사가 동시에 강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새로운 농촌건설강령을 발표하며 “우리의 모든 농촌을 내놓고 자랑할 수 있는 사회주의낙원으로 훌륭히 전변”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북한 농촌이 과연 어떻게 변화할지 주목해봐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