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가 조선보다 거의 이백년이나 먼저 상륙했다
임진왜란은 그들의 앞잡이인 조선근해의 대마도 도주와 무리에서 이다
대마도 도주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은 소서행장의 사위이었다
그는 임진왜란의 주축장수중의 하나였다
그는 임진왜ㅐ란을 준비한 풍신수길이 싫어하는 장수로서
조선전쟁에서 가장 먼저 죽으러고 천주교신자들로 구성된 부대의 장수로서
선봉을 맡겼다
그는 재침인 정유재란때에도 그를 몰모로 부산을 다시 쳐들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일본은 인구의 1%도 안되는 사라만이 그리스도를 믿고있다
그리고 이들은 지식층으로 쏠려 있다는 것이다.
일본이 임진왜란으로 많은 조선포로병이 일본으로 끌려왔다
이들은 조선에 와있던 외국노예무역상에게는 좋은 먹이감이었다
이들을 살핀 천주교선교사들은 그들을 보호하는 명목으로
그들을 대거 입교시켰다 그리스도교신자들이 한때에 나가사끼를 중심으로
수십만명이었고 조선 포로들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도 세울정도였다
그들은 따로 교회를 직십다는 기존 불교사원을 제공해 주었다고 한다
일본은 본디 불교국가로서 지방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막부시대여서
이들정책은 백성으로 많은 원성을 받았다
이들을 유지하기 위해서 새로 정권을 잡은 도꾸가와 집안은
외국선교사와 이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대거 추방하였다
글 인하여 아시아군에서 새로운 복음의 씨앗을 뿌라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과 전쟁으로인지는 모르지만 조선으로 선교사들은 파병되지 않았다
나까사키를 중심으로 영지를 운영하는 소서행장은
조선에서 돌아와 일본내전으로 패해 몰락하는 바람에
몇만병의 그리스도인들이 대거 척살되었다
그들은 일본이 신문물을 받아들이고 서양과 통상을 하는 초기 몇년동안
신앙의 자유를 허럭하지 않았다. 그때에도 많은 수가 순교했다고 한다
섬에서 까지 샅샅이 뒤져서 사람을 처형했기에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듯했다
그들은 1930년경 신앙의 자유를 주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국교를 신사를 중심으로 하는
천황제에 두고있고 이를 보편화되었기에
이들은 그리스도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조선의 그리스도의 확장은 나라에서 금하고 순교시대임에도 늘어난것은
그리스도교가 산간지역에 있는 교우촌을 중심으로 퍼져있었기 떄문이다
더군더나 일본은 바국의 성서를 발간하기 이전에 중국에서 성서를 수입해서 사용하였기에
어려운성서를 아는 것은 지식인 뿐이었고 이들의 사상은 단지 가정에서
성서를 공부하기에 힘쓰고 따로 교회에 나아가는 일이 드물었다
이를 신학적으로는 무교회주의라고 하였다
이로 인해서 지금도 아직도 일본은 소수의 그리스도인들만이 있는 것인데
지금 한국은 여러가지 이유로 교회가 쇠퇴하고 있고 노령화되어서
여러측면에서 위축되어가고 있다
이런 모습이 심해지면 분명 성서형제회와 같은 단체는 그 색깔을 잃어버릴것이고
유럽과 같이 텅빈 교회가 생길것이고 일본처럼 교회는 마을에서 사라질것입니다
1801년 첫 대규몽의 순교자를 내었던 조선은 그 피해를 떠나서
전국 각지역에 특히 산간지역애서 사제없이 평신도회장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이는 성서한권없이 단지 기도로서 모인 민초들로 이루어졌기 떄문이다.
우리의 교회나 공동체를 살리는 길은 순교정신시대로 다시 돌아가는 길뿐이라는 것이다.
조선은 박해시절속에서도 30여년간 조선에 한분의 사제도 없이
성장해 나갔음을 잊지 말아야 할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