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 '오륜길'
"세상이 달라 보인다… 이런 길이 남아 있다는 게 천만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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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정구 선동 상현마을에서 신천마을로 가는 길에 만나는 측백나무 숲.
조금 더 가면 편백나무 숲길도 만나 볼 수 있다. 정대현 기자 |
사람은 자기가 있는 위치에 따라 보는 눈이 달라진다.
오륜대 전망대에 올라서면 그걸 다시금 깨닫는다.
평지에서 시야에 들어오는 회동수원지는 극히 일부이다.
하지만 평지에서 보는 수원지와 오륜대 전망대에서 보는 수원지는 완전히 다르다.
회동수원지가 이렇게 큰 줄을 전망대에서 비로소 알았다.
'금정 오륜길'은 사람은 어디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크기와 넓이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 주는 길이다.
오륜길은 오륜대한국순교자박물관→오륜 본동 마을 덱(Deck)길→땅뫼산 황톳길(땅뫼산 생태숲·편백림 산림욕장)→이도재→ 김민정 갤러리→오륜대 전망대→오륜대 선착장→새내 마을(수원지 마을)→선동상현 마을→신천교→신천 마을에 이르는 8㎞ 남짓 구간이다.
또 확장해 인근 기장군 철마로 이어지는 아홉산, 생태학습공간이 잘 꾸며진 수원지 뒤 윤산 등도 가 볼 만하다.
주변에는 주차공간이 부족해 대중교통이 편하다.
회동수원지 생태 학습 공간 가치
황톳길 편백림 상쾌한 산책길
부산 천주교·일제 항거 역사 남아
공용 주차장·화장실 없어 불편
너무 많은 음식점 눈에 거슬려
■ 이곳에 어떤 속살이 숨어 있나
금정 오륜길의 첫머리는 오륜대 한국순교자 박물관이다.
부산지역 천주교의 역사를 이야기해 주는 곳이다.
금정구 부곡동 기찰마을에서 오륜대 방향으로조금 오르면 오른쪽에 있다.
6만여㎡의 부지에 성전, 박물관, 순교자 묘소, 십자가의 길, 사무실 등으로 구성된 오륜대 순교자 성지로,
한국순교복자수녀회에서 수십 년간 모아 온 소장품들을 박물관에 전시해 놓았다.
지난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찾았을 때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시복식에서 시복된
이정식 요한과 양재현 마르티노, 두 명의 부산 지역 순교자의 동상이 박물관 입구에 세워져 있다.
박물관에서 1㎞ 남짓 회동수원지 방향으로 올라오면 오륜 본동 마을이 나온다.
이곳은 부산이 자랑할 만한 경관을 자랑한다.
서울에서 가끔 부산에 오면 이곳을 찾는다는 서민원 씨는 "부산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천만다행이다.
아직은 상업 침해를 덜 받고 있는 곳으로, 부산 시민이 힐링하는 공간으로 그만이다"고 말했다.
금정구는 오륜 본동 마을 앞 갈대습지에는 덱(deck)길을 만들어 수심과 관계없이 언제나 이용 가능하도록 했다. 미술 작가들도 이곳을 찾아 그림을 그리는 장면도 가끔 목격할 수 있을 정도다.
덱 난간에서 바라본 풍경은 신선도 부럽지 않을 정도다.
물안개 자욱한 회동저수지와 산봉우리, 붉은 자태를 뽐내는 소나무 숲이 한눈에 들어온다.
갈대숲과 함께 노란 꽃의 창포와 부들도 무성하다.
아이들의 자연, 생태 학습의 장으로도 그만이다.
물에 잠긴 나무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이곳과 연결된 1㎞ 남짓한 땅뫼산 황톳길(생태숲)은 수원지 물높이와 맞닿아 이어진다.
황토길은 평탄해 노인도 힘들지 않고 걸을 수 있다.
특히 황톳길 중간에는 편백림도 조성돼 있어 마음마저 상쾌해지는 기분이다.
마음으로 보고 눈으로 읽고 온 몸으로 느껴야 한다.
'느린 듯 빠르고 지는 듯 이기며 비운듯 채워라' 라는 말은 이 황토길과 썩 어울리는 말일 듯 싶다.
황톳길을 빠져나오면 노출콘크리트와 합성 목재, 복층 유리를 가미한
지상 3층 형태의 아름다운 집 '이도재(履道齋)'를 만난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부산 금정성당 주임신부를 역임한
박승원(니꼬메데스) 신부가 퇴임 후 여생을 보내고 있는 곳이다.
또 하나의 속살이 있다.
바로 오륜대의 역사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후반 부산에서는 물 부족으로 상수도 시설을 시급히 확충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리해서 만들어진 게 회동 수원지다.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 주영택 원장은
"1942년 일제가 회동수원지를 조성할 때 맑은 개천의 산중 호숫가에 기암절벽을 이룬 오륜대와
다섯 마을 중 등곡, 새내, 까막골, 아랫마을 이렇게 네 마을을 수몰시켰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몰지구 주민은 응분의 보상을 받지 못했다.
삽과 곡괭이를 들고 시위를 했다.
일제 항거가 역사로 남아 있는 곳이다.
1942년 1차 준공식 때 경남 도지사 오오노 대야가 축사할 때 한 수몰민이 "오색테이프를 자르는 저 가위는
우리 창자를 자르는 가위이고, 수원지에 저수된 저 물은 우리들의 피눈물이다"라고 탄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1832년 편찬한 동래부읍지에는 오륜대는 동래부의 북쪽 15리에 있는데, 이곳엔 바위가 기이하다.
옛날 다섯 명의 노인이 지팡이를 꽂고 노닐며 구경했다고 하는데 이 때문에 이름 지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팡이를 꽂고 놀았던 다섯 노인 때문에 오륜대는 오노리(五老里) 마을이라고도 불렀다.
오륜대는 산수가 아름다워 부산 8대(臺) 중 하나로 꼽힌다.
■ 미래자산으로 키워 나가려면
금정 오륜길엔 채워야 할 게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화장실과 공용 주차장이다.
공용 화장실은 선동 상현 마을에는 있지만, 오륜 본동 마을에는 없다.
이장수(67) 오륜동 1통장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많은데 화장실과 주차장이 없는 게 가장 큰 애로다.
외지에서 온 사람들도 불편하다고 한다. 특히 주말이면 자가용이 길옆에 빼곡하게 주차돼 있어 마을버스가 빠져나가기 힘들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화장실과 공용 주차장을 만드는 것은 마을 전체로 보면 크게 표가 나는 일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마을의 부가가치를 높여 궁극적으로 주민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길이라는 게
시리즈 자문그룹의 지적이다.
문화 공간도 부족하다.
문화는 머뭇거리고, 기웃거리는 하나의 소통 공간이다.
4년 전 이곳에 터를 잡은 김민정 갤러리가 삭막한 이곳에 문화의 향기를 불어넣고 있다.
김민정 관장은 "예술인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산책하며 회의도 갖는 문화공간이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1층에서는 학생, 일반인을 대상으로 도자기, 바리스타, 현대 미술 수업도 이루어진다.
오륜 숲 속 자연예술제를 2회째 열고 있다.
내년에는 환경 사진전도 가질 예정이다.
회동수원지 일대는 1964년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후 시민의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해 오다
2010년 1월부터 일반에 개방됐다.
시는 이곳의 물로 명장정수장을 통해 하루 10만여 t의 수돗물을 생산해
동래·금정·연제·해운대구와 기장군 일대에 공급하고 있다.
이런 곳에서 좀 비워야 할 게 있다면 음식점이다.
이곳에 너무 많은 음식점이 들어서고 있어 안타깝다.
선동 상현 마을에서 신천교 방향으로 이어지는 편백 숲은 신혼부부들이 결혼을 앞두고
기념사진을 많이 촬영하던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편백림을 사이에 두고 옛 추억을 되새겨 보는 사진전을 갖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길 속의 이야기는 이렇게 새롭게 더해지는 것이다.
정달식 기자
공동기획 동아대 디자인환경대학 지역유산재생연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