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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barnabak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이사야 2:1-5
오늘 본문은 1절에서 밝히고 있는 대로 주전 8세기에 유다나라에서 예언활동을 했던 유명한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입니다. 당시 유다는 신흥강국으로 부상한 앗수르의 영향 하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그로 말미암아 국운이 점점 쇠약해지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이사야 선지자는 말일에 있게 될 이스라엘의 부흥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선지자하면 부정과 불의에 대하여 엄격하게 비판하고 정죄했던 사람들로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선지자들의 역할은 비판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려움 속에서 희망을 예언하고 문제 속에서 해답을 이야기하고 어려움 속에서 부흥을 예언하였습니다. 멸망의 순간에도 구원을 노래했던 사람들이 선지자들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희망을 전파해야 할 사명이 있는 줄 믿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 안에서 희망을 노래하고 희망을 전파해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쇠퇴에 쇠퇴를 거듭하던 시대에 말일에 있게 될 부흥을 예언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언급하고 있는 말일(末日)은 쉽게 말씀드리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그 이후를 말합니다. 성경에서 말일은 종말을 말하는데 종말은 주님이 오신 이후부터 주님이 다시 오실 재림까지를 종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말일은 예수님이 오신 이후의 신약시대를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전 8세기에 예언활동을 했던 이사야 선지자는 700여년 후에 이 땅에 오실 구세주 메시야의 오심을 예언하므로 이 땅에 소망의 빛을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빛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고 하면서 예수님을 참 빛 즉 세상을 비추는 구원의 빛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예수님은 여호와의 빛입니다. 이 빛에 행할 때 우리에게 구원이 있고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여호와의 빛에 행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세상을 비추는 구원의 빛을 받으며 살 수 있겠습니까?
먼저, 교회에 가야 합니다.
2절 말씀을 보면 이사야 선지자는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전의 산은 구약에서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시온산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는 새 예루살렘 즉 교회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교회가 모든 산 위에 뛰어날 것이요 우뚝 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온산은 사실 해발 600미터정도 되는 그렇게 높은 산은 아닙니다. 그 주변에는 더 높은 산도 많이 있습니다. 시온산 앞에 있는 감람산이 더 높습니다. 그러나 그 산이 모든 산 위에 굳게 설 수 있는 것은 높이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 하나님의 성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그렇게 높은 산은 아닐지 모릅니다. 사실 교회보다 더 높고 더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의 가르침보다 더 높고 더 고상한 가르침도 있을 수 있습니다. 더 인간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매력적인 교훈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보다 더 고상하고 더 철학적이고 더 헌신적으로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모든 산 위에 뛰어난 산이 되고,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수 있게 되는 것은 교회에는 다른 어느 곳에도 없는 하나님이 계시고 구원의 복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옷 가게에 예쁜 옷이 없으면 그곳은 옷 가게가 아닙니다. 커피 전문점에 커피가 없으면 그곳은 커피 전문점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인간의 어떤 모임이나 어떤 가르침이나 어떤 수련 속에서 구원이 없으면 그곳은 진정한 구원의 장소가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최고의 목표인 구원이 없는데 어떻게 그 모임을 최고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구원의 복음이 없는데 어떻게 그 복음을 최고의 복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구원의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데 어떻게 그 가르침을 최고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구원입니다. 생명입니다. 그 구원을 위해서 사람들은 종교를 만들었고 철학을 연구했고 수련을 강조했습니다. 그 최고의 가치인 구원을 줄 수 있어야만 그곳이 최고의 장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에는 비록 높게 보이지 못하고 비위를 상하게 하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을 수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복음이 있기에 모든 산위에 뛰어나는 줄 믿습니다. 모든 산꼭대기에 우뚝 서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요즘 교회에서도 인간 처세술을 가르치고 성공학 등 인간 교양강좌를 하는 교회들도 많이 있는데요, 물론 그런 것들이 최종 목표는 아닐 줄 압니다만 그러나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나도 모르게 교회가 다른 비본질적인 모습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이 선포되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교회는 사실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많은 교양강좌를 할 곳이 없어서 교회에서 또 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성공적인 처세술을 가르칠 곳이 없어서 교회에서 그것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가 아니더라도 그런 것을 할 곳은 많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서 배우면 됩니다. 교회는 구원의 복음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구원을 복음을 통하여 생명을 얻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일이요 교회가 모든 산 위에 우뚝 설 수 있는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라고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2절 하반절에 보면,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그렇습니다. 이 예언대로 사도행전에 소개된 예루살렘 교회도 처음 시작은 120명의 무리로 시작했지만 베드로의 설교를 통하여 3천명이 되었고 그 후에는 오천 명이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숫자를 셀 수 없는 수다한 무리가 모여들었습니다. 팔레스틴의 변방에서 미약하게 시작되었던 교회는 그 후 300년이 지난 이후 전 로마를 복음으로 정복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이방신들과 우상들 위에 뛰어난 종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도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궁극적으로 해결 받고자 하는 생명의 문제, 구원의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간직하고 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보물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교회의 가치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교회의 존재이유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복음을 증거 하는 우리 참소망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두 번째로, 여호와의 빛에 행하기 위해서는 여호와의 산에 오를 뿐 아니라 여호와의 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3절 말씀을 보면, 많은 백성들이 가면서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여호와의 산에 오르는 이유를 그들은 그곳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교회는 세상의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기 위해서 교회로 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을 기록한 목적을 설명하는 가운데 먼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하면서 그렇게 구원받은 성도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이 두 번째 목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르치기 위해서 성경이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아무렇게나 살 수 없습니다. 내 마음대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교회에 나와야 하고 여호와의 산에 올라야 합니다. 올라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얼마 전에 로또 복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복권을 사서 그 복권에 당첨될 기대를 하면서 일주일을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복권에 당첨되기 위해서 그들은 몇 가지 미신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먼저는 당첨된 복권방에서 당첨이 잘 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예전에 당첨된 번호가 또 나올 확률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권을 사서 지금까지 당첨된 번호를 쭉 적어놓고 그 중에 어떤 번호를 쓸 것인가를 고민하는데 얼마나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민하는지 어떤 집사님이 농담으로 그렇게 진지하게 공부를 했으면 지금 한 자리를 했어도 했을 것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잘 나오는 곳이 또 한군데 있는데 그곳이 군대입니다. 군대에 가면 대대 ATT 연대 RCT 등 많은 평가가 있습니다. 그 평가에서 성적이 잘 나와야 지휘관들이 잘 진급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얼마나 공부를 많이 시키는데 수첩에다 빽빽이 적어서 열심히 공부를 합니다. 공부를 안 하면 책망을 받고 기합을 받고 그렇기에 쉬는 시간도 없이 열심히 외우고 암송을 합니다. 그러면서 ‘내가 진작 이렇게 공부를 했으면 판, 검사도 됐을 것이다’고 자조 섞인 말을 합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일을 로또 복권에 기울이는 정성만큼도 기울이지 않고 군대에서 공부하는 일보다 더 수고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말씀을 배우는 일을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 선택적인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배우면 좋고 안 배워도 신앙생활을 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안 배웠다고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고 안 배워도 얼마든지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착각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 신앙생활을 엉뚱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면서 나는 말씀대로 살고 있다고 착각을 하면서 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호와의 산에 오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의 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살지 않고 그의 길로 그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즘 현대인들이 산을 매우 좋아합니다. 산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요즘 같은 여름에는 밤에도 산에 오른다고 합니다. 낮에는 너무 더워서 오르기가 힘드니까 밤에 전등을 갖고 산에 올라간다고 합니다. 건강을 위해서 산에 오르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우암산만 오르지 말고 백화산만 오르지 말고 동네 앞산만 오르지 말고 여호와의 산에도 오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의 산에 오르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산에 오르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우리는 여호와의 빛에 행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여호와의 빛에 행하기 위해서는 말씀대로 사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4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의 산에 올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 사람들의 모습이 나오는데요,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싸우고 전쟁했던 삶을 벗어버리고 서로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전쟁을 하였습니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일상화되고 어떻게 보면 인간의 역사에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버린 전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그칠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의 기대입니다. 그것이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 말씀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게 될 때 전쟁의 무기가 버려지고 평화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이러한 엄청난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과연 믿는다고 하면서 무엇을 실천하고 무엇을 이루었는가를 한 번 곰곰이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나의 가정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났습니까? 어떠한 기적적인 일이 발생했습니까? 부부간의 전쟁이 그쳤습니까? 가정에 평화가 이루어졌습니까? 술주정뱅이에서 술을 끊고 성실한 아빠가 되었습니까? 남을 이용만 하던 삶에서 남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으로 바뀌어졌습니까? 그런 것들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한 그런 기적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능력입니다. 말씀의 능력입니다.
여기에서 여호와께서 판단하신다는 말은 히브리원어로 ‘솨파트라’는 말로서 ‘다스리다’ ‘왕 노릇하다’는 뜻을 갖고 있는 말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받은 축복가운데 놀라운 축복이 우리 가운데 성령 하나님이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에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라”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에서는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지배를 받으며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으며 살기를 원하시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전쟁이 그치고 평화가 이루어지고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우리는 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 믿음의 능력을 믿고 기대하며 변화되는 삶으로 살아가기를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실 줄 믿고 여호와의 빛에 행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