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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종교개혁의 5대 강령 로마서 1:16-17(20231029)
종교개혁의 5대 강령(로마서 1장 16~17절) -마경훈목사 - YouTube
우리 교회는 작년에 38명의 지체들이 유럽 4개국 기도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때 저는 여러분에게 기회가 된다면 종교개혁의 5대 강령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종교개혁의 5대 강령에서 綱領(강령)이라는 말은 ‘일의 으뜸이 되는 큰 줄거리’를 말합니다. 종교개혁자들의 주장 중에서 핵심이 되는 5가지를 말합니다. 저는 기도여행 이후에 몇 번 종교개혁의 5대 강령을 여러분에게 나누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습니다. 오늘은 506주년 종교개혁주일입니다. 오늘은 제가 그동안 여러분과 나누고 싶었던 종교개혁의 5대 강령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내용은 김재곤목사님의 “루터의 생애와 종교개혁의 내용”에서 많이 빌려왔습니다. 김재곤목사님께서 정리를 잘하셨기 때문에 저는 약간의 수정, 편집, 설명과 예화를 추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종교개혁운동은 독일의 비텐베르크(Wittenberg)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던 34세의 가톨릭교회 신부인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1517년 10월 31일에 과연 가톨릭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신앙의 내용, 특히 구원론이 맞는 것인지 토론해 보자며 비텐베르크 성(城) 교회의 정문에 95개 조항의 토론 논제를 붙여 놓음으로 시작된 기독교 신앙 개혁 운동입니다. 여기에서 개혁이란 새로운 것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가톨릭교회가 너무 성경에서 벗어났는데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본질 회복을 말합니다. 새로운 종교를 만들자는 운동이 아니라 본래의 기독교를 회복하자는 운동입니다.
그런데 루터가 왜 굳이 10월 31일을 종교개혁운동을 시작하는 날로 택했을까요? 가톨릭교회에서는 10월 31일을 ‘모든 성인들의 축일’, 다른 말로 ‘만성절’(All Hollows Day, Saints Day)로 지킵니다. 그래서 이 날 가톨릭교회에서는 신자들에게 성자들의 유골이나 유물을 공개하여 그것들을 만지게 하고 그것들에 입을 맞추게 하면서 그것들을 경배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행위를 통해 연옥에 있던 조상들의 영혼이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두 말할 필요 없이 비성경적, 비신앙적입니다.
그렇다면 가톨릭교회에서 왜 10월 31일을 만성절로 정해 지키게 했을까요? 그 이유는 영국의 켈트족이 지키고 있던 죽은 자와 관계된 절기를 가톨릭교회에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켈트족은 사람이 죽으면 그 죽은 사람의 영혼이 1년 동안 하늘을 떠돌다가 10월 31일이 되면 그 영혼들이 누군가의 몸에 들어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날이 되면 사람들은 그 영혼들이 자신의 몸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귀신의 옷을 입고 귀신으로 분장했습니다. 그 전통을 이어받은 풍습이 할로인데이(Holloween Day)입니다.
그 당시 대부분이 기독교 신자들인 유럽 사람들이 그런 켈트족의 풍습을 지켰습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이 풍습이 비성경적이고 비신앙적인 풍습임에도 교회의 절기로 받아드렸습니다. 10월 31일을 성인들의 축일, 즉 만성절로 정한다음 신자들이 그 날 성인들을 잘 경배하면 연옥에 있는 조상들의 영혼이 천국에 가게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얼마나 잘못된 가르침입니까? 그래서 루터가 이런 가톨릭교회 가르침이 잘못된 것임을 분명하게 지적하기 위해 10월 31일을 정해 종교개혁운동을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럼 마르틴 루터가 어떤 사람입니까? 루터는 1483년 독일의 아이슬레벤에서 광산 사업체도 경영하고 시 의원으로도 활동했던 아버지 한스와 어머니 마르가레테의 아들로 태어나 자라다가 1501년에 에르푸르트대학에 입학하여 1502년에는 문학사학위를, 그리고 1505년에는 문학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법률가가 되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그는 다시 에르푸르트대학 법학과에 진학하여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루터는 1505년 7월, 그의 인생에 있어서 전환점이 되는 중요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폭우를 피해 친구와 함께 큰 나무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 때 그 나무에 벼락이 떨어져 함께 있던 친구가 죽었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그는 광부를 수호하는 성인인 ‘성 안나’에게 수도사가 되겠다고 서원합니다. 사실 이것도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루터는 더 이상 법학을 공부하지 않고 2주 후 아우구스티누스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사가 됩니다. 그리고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해 하나님의 용서도 받고, 그래서 영혼의 평안도 누리기 위해 수도원 규칙에 따라 금식과 고행을 누구보다 더 열심히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죄사함 받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고, 영혼의 평안도 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당시 수도원장이었던 요하네스 슈타우피쯔의 권유로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1507년에는 사제가 되고, 1509년에는 신학박사 학위도 받았습니다.
루터는 1510년에 로마로 출장을 갔는데, 그는 그 출장을 성지순례 가는 것만큼 기뻐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기 위해 올라가셨다는 계단이 예루살렘에서 라테나노(Laterano)의 성 요한 성당에 옮겨져 있었는데, 그가 그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오르면서 기도하는 것을 너무도 간절히 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로마에 도착한 이후 그 성당에 가서 그 계단을 주기도문을 계속 암송하면서 무릎으로 기어올랐습니다. 그는 죽은 할아버지의 영혼이 연옥에 있다면 자신이 지금 쌓고 있는 공적으로 할아버지의 영혼이 천국으로 옮겨가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계단 맨 위까지 올라왔음에도 할아버지의 영혼이 천국으로 옮겨졌다는 확신이 생기지 않습니다. 루터는 크게 실망합니다.
로마에서 수도원에 돌아간 루터는 비텐베르크대학에서 성경을 가르치게 됩니다. 그는 성경을 가르치다가 시편에 계속 반복되어 나오는 구절 때문에 흔들렸습니다. 그 구절은 “주의 의로 내 영혼을 환난에서 끌어내소서”이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설교 본문에 나오는 “복음에 하나님 의가 나타나서”라는 구절은 그를 답답하게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까지 그가 배웠던 하나님의 의는 사람의 죄를 심판하는 무서운 공의였고, 사람이 그 죄에서 용서받으려면 선행이나 고행과 같은 행위를 행해야 한다였는데, 그 말씀들은 자신이 배웠던 것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선행과 고행 등의 행위가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무서운 공의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비텐베르크 수도원 탑에 있는 방에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다가 큰 깨달음을 갖게 됩니다. 그 깨달음은 하나님의 의에는 사람의 죄를 벌하시는 공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용서해 주시는 사랑의 의, 즉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며 마련해 놓으신 사랑을 통해 이루시는 의도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의는 그 어떤 죄인이든 자신이 치루어야 할 죄의 값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치루어주셨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그 믿음이 바로 그 죄인을 의인되게 하는 능력이 된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는 사람의 행위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지만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어 마련해 놓으신 사랑의 의를 통해 사람은 얼마든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복음을 깨달았습니다.
당시 로마 가톨릭이 지금 교황청으로 사용하고 있는 베드로 성당을 짓다가 자금이 바닥나자 교황 레오 10세가 막대한 공사비를 조달하기 위해 대량의 면죄부를 발행했습니다. 면죄부가 뭡니까? 부적입니다. 그걸 사면 사는 만큼 지은 죄가 사해진다는 것입니다. 면죄부란 죄를 용서하는 대가로 돈을 받고 발행한 증명서입니다. 로마가톨릭교회는 교황과 성인은 잉여공적(즉 남아 있는 공적)을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들이 쌓은 선행과 공적은 너무 많아서 교황의 권한으로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교황이 갖고 있는 이 권한은 죽은 자나 산 자를 ‘죄의 징벌’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천국으로 들여보낼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이었습니다.
1517년 초엽 중부 독일지방에 뛰어난 웅변으로 명성을 떨치던 신부 ‘요한 테젤’(John Tetzel)이 교황의 휘장을 앞세우고 나타나 교황의 이름으로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테젤은 유창한 언변으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여러분 들으시오. 여러분의 사랑하는 부모형제가 연옥의 고통 중에 ‘살려 달라’고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귀를 열고 여러분의 아버지 어머니가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나는 너를 낳아주었고 키워주었고 재산까지 남겨주었건만 너는 우리를 이 고통 받는 곳에서 구해주지 않는구나. 이 뜨거운 불꽃 속에 우리를 그대로 놔둘 셈이냐?’ 여러분은 고통 받는 그들의 영혼을 구해낼 수 있습니다. 찰랑하고 동전이 돈궤에 떨어지는 순간 연옥에서 고생하던 영혼은 천국으로 뛰어오릅니다.” 절절히 가슴을 파고드는 테첼의 웅변에 돌아가신 부모형제를 생각하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돈주머니를 들고 몰려들어 테젤에게서 면죄부를 샀습니다. 당시는 아직 종이화폐가 보급되기 전이라 주화를 사용하던 때였고, 면죄부 구매에 돈이 너무 몰려 판매대 한쪽에서 주화를 찍어내는 소동까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면죄부는 한 사람당 3마르크씩 판매 되었습니다. 3마르크는 약 5천 원 인데, 그 당시에는 매우 큰돈이었습니다. 아마도 지금으로 보면 몇 백만 원 정도 될 것입니다. 교회가 그야말로 장사하는 집, 강도의 소굴이 된 겁니다.
마틴 루터는 테젤 신부가 자신이 거주하는 비텐베르크 성에서 면죄부를 판매하는 것을 보고 격분했습니다. 루터로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비텐베르크 성교회 정문에 가톨릭교회의 잘못된 가르침을 고발하는 95개 조항의 항의문을 게시했던 것인데, 그게 결국은 중세 종교개혁의 어마어마한 신호탄이 된 겁니다.
그런 루터를 가톨릭교회가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교황 레오 10세는 1521년 1월에 루터를 이단으로 파문했습니다. 그럼에도 루터가 돌이키지 않자, 교황은 자신의 영향권 아래 있던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카를레스 5세에게 루터를 소환하여 심문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래서 루터는 1521년 3월에 보름스에서 열린 신성로마제국 의회에 출석하여 그동안 그가 주장했던 내용들을 취소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그 질문에 루터는 하루의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다음 날 루터는 의회에 출석하여 ‘자신이 펴낸 책은 경건서적과 애국서적과 교리서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 중 경건서적이나 애국서적들에 나오는 내용들은 취소할 이유가 없고, 교리서적에 나오는 내용들도 그 내용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나 명백한 이성에 의해 확인되기까지는 취소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루터는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외칩니다. “제가 여기 서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 저를 도우소서! 아멘”
그런 루터에게 카를레스 5세는 “누구든지 루터를 죽여도 된다”는 브룸스 칙령을 내립니다. 그때 프레드리흐(Fredrich) 백작이 루터를 가짜 납치를 해서 바르트부르그(Wartbrug) 성에서 일 년 동안 보호해주었습니다. 그 곳에서 루터는 라틴어로 된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기 시작하여 1522년 9월에 마쳤습니다. 그리고 그 번역한 성경을 출판했습니다. 독일 사람들이 그동안 라틴어를 몰라 읽지 못했던 성경을 읽게 되자,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성경을 자기들의 언어로 번역하여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가톨릭교회의 여러 가르침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루터는 비텐베르크 시의회의 요청으로 비텐베르크로 돌아와서 그곳에 머물며 논문도 쓰고 책도 저술하고 강의도 하면서 종교개혁운동을 더 힘차게 진행시켰습니다. 그 결과 유럽의 많은 가톨릭교회들이 개신교회로 바뀌었고, 종교개혁운동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루터는 종교개혁운동을 성공적으로 진행하다가 1546년 63세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루터가 주장한 종교개혁의 강령은 무엇입니까?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입니다. 여기서 ‘오직’이라는 뜻을 가진 ‘솔라’(Sola)라는 단어를 앞에 붙인 것입니다. 칼빈은 두 가지를 첨가했습니다. 이것을 5대 솔라라고 합니다. 이 솔라라는 단어는 뒤에 따라오는 단어의 형태에 따라 ‘솔루스’(Solus)나 ‘솔리’(Soli)로 변형되기도 합니다만 뜻은 ‘솔라’와 같은 ‘오직’입니다.
1.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오직 성경’입니다.
모든 권위는 성경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책이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 3:16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기 때문에 성경에 대한 해석과 교리는 성경으로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가톨릭교회는 성경에 대한 해석의 결정권이나 교리를 정하는 결정권을 교황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마리아의 평생 동정녀설이나 승천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할로인데이를 변형시킨 만성절, 그리고 면죄부를 사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도 교황이 정하고 신자들에게 믿고 행하라 했습니다.
가톨릭에 의하면 교황에 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①그리스도는 그의 교회를 위하여 지상에 대리직을 세우셨다(가톨릭교회 교리서 제 882조, 883조). ②대리직은 로마 감독이 가지고 있다. ③제1대 로마 감독은 베드로이며, 그 후임들은 교황들이다. ④교황은 신앙과 행위에 관한 교리를 결정적으로 선포할 때는 직무상 오류가 없다.” 가톨릭에서는 교회의 최고의 머리인 교황이 온 교회에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선포할 때는 오류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은 교황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성령께서 오류에서 보호하신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신앙과 도덕에 대한 교황과 연합한 주교들의 결정도 오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교황의 무오성이란 교황이 어떠한 면에서도 오류가 없다는 뜻은 아니라고 변명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범죄 가능성이 있으며, 역사·철학·과학·정치 등 기타 어떠한 분야에서도 무오하다는 뜻은 아니라고 합니다. 오로지 신앙과 도덕 문제에 관한 교리를 선포할 때는 오류가 없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교황에게는 정말 신앙에 관한 교리들, 도덕에 관한 교리들에는 오류가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교황도 인간입니다. 인간은 유한하며 불완전합니다. 그러므로 교황이 신앙과 교리를 선도할 때에 무오하다는 주장은 억지입니다.
교황의 무오(무류)교리는 일반적 상식에도 맞지 않습니다. 교황도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아닙니다. 완전하신 분은 삼위일체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천주교 역사를 보면 교황·추기경·감독·신부·수녀 등 수많은 오류와 범죄행위는 이루 다 형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그것은 잘못이라면서 신앙과 관계된 모든 결정권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에 있다고 했습니다. 루터의 말 그대로 성경은 모든 것을 결정짓는 최고 권위의 책입니다. 교황이 말했어도, 그리고 신학 박사가 말했어도, 그 말이 성경에 어긋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아무 직분도 갖지 못한 무식한 사람의 말일지라도 그 말이 성경의 가르침에 맞는다면 그 말은 맞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진리입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운동을 하면서 당시 유명한 가톨릭 신학자였던 조한 에크(Johann Eck)와 1519년 7월에 ‘라이프치히 논쟁’(Leipzig Debatte)을 했습니다. 이 논쟁에서 두 사람이 반복하며 했던 말이 있었습니다. 에크는 “교황님이 말씀하시기를”이라는 말을 반복했고, 루터는 “성경이 말씀하시기를”이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에크가 교황을 반복적으로 강조하자 루터는 에크에게 “마귀가 십자가를 피해가듯 당신은 성경을 피해간다”고 하면서, “성경을 아는 평신도가 성경을 모르는 교황보다 훨씬 더 신령하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으며, 우리에게는 구원의 지혜와 생활의 지침이 됩니다. 저와 여러분은 언제나 성경에 최고의 권위를 두고 성경의 진리를 믿으며 성경의 진리를 따르며 성경대로 사는 건강한 신앙인들이 되기 바랍니다.
2. 솔라 그라티아(Sola Gratia), ‘오직 은혜’입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인간의 자유의지로 갖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갖게 됩니다. 사람이 믿기로 결정한다고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의 선물을 주셔야 믿어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8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구원받게 하는 믿음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고 구원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받아드리기로 결정하기 전에 하나님이 내가 결정할 수 있도록 먼저 은혜를 베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정말 이 말씀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정직하게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올 이유보다 하나님을 외면할 이유가 많았던 사람이었고, 또 예수님 믿는 것을 좋아하기보다는 귀찮아했고 싫어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오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불러 주시지 않았다면, 그리고 예수님을 믿게 해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도 없고 예수님을 믿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것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닙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고 선물입니다.
그런데 가톨릭교회에서는 구원받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한다 하면서도 100%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고, 그 은혜에 인간이 행하는 그 무엇이 더해져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은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이 더해져야 완전해지는 부족한 은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제 친구 둘이 신앙토론을 했습니다. 제가 옆에서 들어보니 저는 그 친구들의 이야기가 하나도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을 믿는 두 친구가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저는 두 친구가 이야기 하던 신앙적인 내용들이 단 번에 믿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마치 전기 스위치와 같습니다. 교회에 전기로 돌아가는 시설들이 많습니다. 천장에 있는 전등, 여름에는 예배당을 시원하게 만들어주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냉온풍기, 그리고 음향장비나 LED 전광판 등은 다 전기로 돌아갑니다. 전기 스위치를 OFF하면 어떤 장비도 돌아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도 그 장비들은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전기 스위치를 ON하면 그때부터 모든 장비가 작동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앙의 스위치를 ON해주시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믿음을 갖고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신앙의 스위치를 ON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구원받은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그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3. 솔라 피데(sola fide), ‘오직 믿음’입니다.
죄 사함과 구원은 인간의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에서 온다는 말입니다.
1512년 어느 날 루터는 수도원의 탑에서 회심을 체험하는 ‘탑의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를 변화시킨 말씀은 로마서 1:17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루터는 이 말씀을 읽고, 구원은 사람의 공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확신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가진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죄의 문제입니다. 로마서 3:23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모든 사람은 죄인이고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 천국에 가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죄 때문에 천국에 갈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피부에 와 닿지 않아서 그렇지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지옥은 유황불이 타는 못이고 거기서는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당하지만 단 한 방울의 물도 구할 수 없으며 영원히 고통당해야 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의 죄를 없애고 의인이 되어 천국에 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여러 방법들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 방법들 중에는 선행도 있었고, 금욕도 있었으며, 종교생활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방법들을 통해 죄인이 의인이 되어 천국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그런 방법들을 행했기에 이제 자신의 죄가 없어져 의인이 되었다고, 그래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 의인이 되고 천국에 갈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를 용서해 주시고 의인으로 인정해 주시는 것,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권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의인이 되어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사람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하나의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그 하나님의 방법이 기록되어 있는 책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그 말씀들 가운데 하나가 오늘 본문인 17절 말씀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에 나오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말씀의 뜻은 한마디로 ‘오직 믿음’입니다. 즉 죄인이 의인이 되어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정해주신 방법을 따라야 하는데, 그 방법이 바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믿음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 믿음으로만 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의인이 되게 하는 믿음, 천국에 가게 하는 믿음을 누가 가질 수 있습니까? 그 믿음은 그 누구라도 가질 수 있습니다. 본문 16절 말씀입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이 말씀에 나오는 유대인과 헬라인은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그 누구라도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다면, 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의인이 되어 천국에 갑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이 진리는 우리에게 엄청난 선물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도 완전한 행위를 가질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행위로 완전해질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갈라디아교회 교인들 중에는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율법을 행하므로 의로워지려는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갈라디아서 5:4입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갈라디아 교인들 중에는 율법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할례를 행해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확신하지 못하고 행위로 구원을 받으려고 한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교회 교인들에게 율법을 행하므로, 특히 할례를 받으므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했습니다. 갈라디아서 5:6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이 능력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선물을 받은 것을 감사하고 그 믿음을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기며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4. 솔루스 크리스투스(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앞의 세 가지 강령은 루터의 설파였다면 네 번째와 다섯 번째 강령은 칼빈이 더해서 5대 강령이 된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온다는 말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죄인을 의인이 되게 하는 하나님 은혜가 사제를 통해 온다고 말합니다. 즉 사제가 행하는 일곱 가지 성례를 통해 죄인이 의인이 되는 하나님의 은혜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루터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그동안 매일 같이 사제가 집례 하는 성례에 참여해 보았지만 그것으로 죄인인 자신이 의인이 되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고 하면서 사제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럼 사제가 아니면 누구를 통해 죄인이 의인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까? 바로 예수님입니다. 교황이나 사제와 같은 중재자가 없어도 죄인인 그 사람에게 예수님이 직접 그 은혜를 주신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솔루스 크리스투스’,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루터는 1520년에 저술한「독일 귀족에게 고함」이라는 책을 통해, ‘사제는 교황이 임명한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바로 사제다.’라고 하면서 ‘만인 제사장설’을 주장했습니다.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 신앙인과 십자가 사이에는 루터의 표현대로 ‘놀라운 교환’이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직접 예수님에게 자신의 더러운 죄를 드리면 예수님은 그 죄를 십자가에서 받으시고 완전한 의로 교환해 주십니다. 그렇게 사람이 예수님에게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통해 의인이 되어 천국에 갈 수 있는 은혜를 직접 받습니다.
요한복음 14:6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구원을 위한 다른 길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하나님께서 주신 유일한 구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늘 기억하면서 언제나 우리를 의인되게 하시고 천국가게 하시는 예수님만을 의지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5. 솔리 데오 글로리아(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모든 영광은 피조물이 아닌 창조주 하나님께만 돌린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10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자신이 구원받은 것이나 사도로 사역한 것을 포함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은혜를 주셔서 믿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능력을 주셔서 그 능력으로 우리가 교회도 섬기고 하나님의 일도 하고 생활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영광을 받을 사람이 아닙니다. 모든 영광을 받으실 분은 우리에게 은혜와 능력을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당시 가톨릭교회에서는 그 영광을 말로는 하나님께 드린다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만 나타나야 할 성당 안에 역대 교황을 비롯한 여러 성인들의 얼굴을 그려놓고, 그들의 무덤을 만들어 놓고, 그들의 유품들을 전시해놓고, 그것들을 경배했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신앙은 그런 사람들이 아닌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솔리 데오 글로리아’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외쳤습니다.
바른 신앙인은 잘못된 것이 있을 때에는 자신이 책임지고, 잘 된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게 된 이유는 우리가 그런 바른 신앙인이 되지 못한 까닭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바른 신앙의 소유자들이 되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종교개혁 주일을 맞아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루터가 잘못된 가톨릭교회에 맞서 진정한 기독교를 회복하기 위해 담대하게 외쳤던 종교개혁의 핵심적 내용에 칼빈이 첨가한 내용을 더한 종교개혁의 5대 강령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종교개혁운동을 통해 바른 기독교 신앙의 본질과 내용을 회복한 개신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한 일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종교개혁의 내용인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늘 기억하면서 믿음의 길을 가기를 바랍니다.
종교개혁의 5대 강령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오직 성경’입니다.
2. 솔라 그라티아(Sola Gratia), ‘오직 은혜’입니다.
3. 솔라 피데(sola fide), ‘오직 믿음’입니다.
4. 솔루스 크리스투스(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5. 솔리 데오 글로리아(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