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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범사에 감사하는 습관과 결산의 달☜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신16:1-22절) 구원(救援)의 축제(祝祭)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두 가지 명절(名節)은 구정(舊正)과 추석(秋夕)입니다. 옛날에 정치인들이 음력설 대신 양력설을 설 날로 지키려고 무척 애를 썼지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구정과 추석이 되면 무려 이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민족 대 이동을 합니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 설(舊正)과 추석을 이렇게 중요하게 생각할까? 그것은 옛날 농경시대부터 내려오는 오랜 전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설(舊正)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복(福)의 시작이요, 추석은 그 복(福)이 풍성한 추수로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복(福)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거기다가 부모에 대한 효도까지 겹치게 되니까 도저히 그냥 넘어 갈 수 없는 필수적인 명절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민족에게 구정이나 추석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8.15광복절입니다. 우리가 일제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된 날이 바로 8월15일이고, 그 후, 대한민국이 세워지고 오늘의 우리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8.15광복절에는 정부에서 매년 하는 행사나 대통령특사로 모범 죄수들이 풀려나는 정도가 있을 뿐, 일반인에게는 거의 의미가 없는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일본의 지배에서 해방된 그날은 우리 국민들에게는 대단한 날이었습니다. 사람들마다 거리로 뛰쳐나와 마음껏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고, 감옥에 갇힌 죄수들이 풀려나고, 일본에 의해서 징용(徵用)을 갔거나 먹고 살기 위해서 고향을 떠났던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큰 해방은 경험하지 못했고, 오히려 한일 월드컵 축구 때, 우리나라가 4강까지 올라가니까 온 국민들이 붉은 옷을 입고 거리로 뛰쳐나오거나 아니면 밤새 자동차 경음기를 울리면서 거리를 질주했습니다.
이런 것이 곧 오락성의 축제입니다.
사람들이 먹고 살만하면 오락성의 축제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열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도 나중에 평화의 시대가 정착되니까 마차 경기나 검투 경기에 열광하면서 도덕성이 떨어졌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원히 변질되지 않는 축제의 날을 1년에 세 번 가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 날들은 모두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날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세 날을 영원토록 지키며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첫 번째 날이 유월절이었습니다. 이 날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된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날이 맥추절, 또는 오순절인데, 이 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가 초막절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돌아다닐 때, 하나님께서 생수(生水)를 주셔서 그들을 살려주신 것을 기억하는 절기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 절기를 모두 추수와 연결되게 하셔서 이 날이 모두 복(福)이 되게 하셨고, 물질적으로도 풍성한 축복(祝福)의 날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Ⅰ.유월절(逾越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위대한 날은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던 날이었습니다.
16:1절)아빕월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유월절을 행하라 이는 아빕월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밤에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수십 년 이상을 끔찍한 노예 상태에 있었습니다. 애굽의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너무나 학대(虐待)하고 착취(搾取)했습니다.
①그들은 이스라엘의 씨를 말리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정책이 얼마동안 지속되었는지 모르지만,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나일 강에 빠트려 죽여야 했습니다.
②그들은 이스라엘을 강제 노동에 동원했습니다.
그래서 그 더운 날씨에 진흙으로 벽돌을 구워서 비돔 성이라든지, 랍세스와 같은 여러 성을 건축했습니다. 이것이 모세가 태어나서 지도자로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계속되고 있었으니까 약 80년 이상 강제 노동을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력(自力)으로 이 노예 상태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전혀 없었습니다. 따라서 바로가 노린 것은 강제 노동을 하다가 지쳐서 다 죽든지, 아니면 남자 아이들의 씨가 말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없어지든지, 좌우간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존재를 이 세상에서 없애버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능력을 모세를 통해서 너무나도 똑똑히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냥 이스라엘 백성들을 몰래 애굽에서 탈출시킨 것이 아니라, 무려 열 가지 기적으로 애굽을 치시고, 애굽 왕을 완전히 굴복시킨 생태에서 당당하게 구원해 내셨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재앙(災殃)이 애굽의 모든 장자(長子)를 죽이는 재앙이었습니다. 이 장자 죽이는 재앙이 너무나 철저해서 애굽 왕으로부터 노예에 이르기까지 심지어는 모든 죄수들의 장자들이 하루 밤 사이에 다 죽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가축(家畜)까지도 첫 새끼는 그날 밤에 다 죽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너무나도 정확하게 첫 아들과 첫 새끼만 골라서 다 죽은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리 애굽 왕 바로와 그 신하들이 똑똑하고 잘났다고 큰 소리쳐도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손 안에 있고, 하나님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다 죽게 하실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는 완전히 무장(武裝) 해체(解體)가 된 셈입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植民地) 아래 있을 때, 학생들은 학도병(學徒兵)으로 끌려가고, 여성들은 정신대에 끌려갔습니다.
심지어 무기(武器)를 만든다고 교회 종도 떼어가고 연료가 부족하다 해서 산에 있는 소나무의 송진까지도 다 긁어 갔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일본을 이기고 독립한다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두 군데 원자폭탄이 떨어지니까 그 자리에서 일본 천왕(天王)은 두 손 들고 항복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부터 구원(救援)받았던 바로 그날이 유월절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에 양(羊)을 잡게 하셔서 양(羊)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사람도 죽지 않고 모두 구원(救援)을 받아 당당하게 걸어서 애굽을 나왔습니다. 유월절 밤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음식을 먹었는데, 두 가지를 했습니다.
①누룩이 없는 딱딱한 떡을 먹었고, ②허리에 띠를 매고 서서 급히 음식을 먹었습니다. 이것은 애굽을 속히 떠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곱게 애굽에서 떠나게 하지 않았습니다.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을 뒤에서 추격해서 홍해바다에 쓸어 넣으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갈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셨고, 추격하던 애굽 군인들을 모두 바다에 빠져 죽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이 날을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리 무력(武力)하고 어려운 고난 중에 있다 해도 출애굽의 정신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을 이런 식으로 지키게 하셨습니다.
16;2-4절)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소와 양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유월절 제사를 드리되 유교병을 그것과 함께 먹지 말고 이레 동안은 무교병 곧 고난의 떡을 그것과 함께 먹으라. 이는 네가 애굽 땅에서 급히 나왔음이니 이같이 행하여 네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 그 이레 동안에는 네 모든 지경 가운데에 누룩이 보이지 않게 할 것이요 또 네가 첫날 해 질 때에 제사 드린 고기를 밤을 지내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마다 홍해까지 와서 기념식을 가지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 대신 그들이 지킬 것은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딱딱한 떡을 먹는 것입니다.
유월절은 하루이고, 무교절은 유월절부터 일주일간입니다.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의 집이나 진중(陣中)에 누룩이 없게 해야 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가난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런 자격도 없지만, 오직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자비(慈悲)와 긍휼(矜恤)로 구원(救援)을 얻었습니다. 그것도 영원한 멸망(滅亡)에서 구원(救援)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단 일주일만이라도 세상의 맛있는 떡을 버리고, 고난의 떡을 먹으면서 과거에 종 되었던 때를 기억하고 감사해야 했습니다.
그럼 고난(苦難)의 떡을 먹으면서 무엇을 생각하게 될까?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복(福)은 100% 하나님의 은혜(恩惠)요. 선물(膳物)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서로 비교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종 되었던 때와 지금을 비교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남자 아이들을 모두 강에 빠트려 죽일 때와 지금을 비교해야 하고, 그 뜨거운 햇볕 아래서 벽돌을 구우면서 강제 노동 할 때와 지금을 비교해야 하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완전히 빈손으로 나올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하나님께서 너무나도 많은 은혜(恩惠)를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우리를 부요(富饒)하게 하셨습니까? 모든 것이 100% 하나님의 은혜(恩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유월절이 어떤 시기와 일치하게 하셨는가 하면, 봄 추수를 시작할 때와 일치하게 하셨습니다. 즉 유월절을 보리나 밀을 추수하기 시작하는 때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의 복(福)은 모두 유월절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유월절이 오늘날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그것은 곧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이 유월절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양(羊) 잡는 날에 붙들려 죽으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월절에 양(羊)을 죽여서 먹을 때, 두 가지를 조심해야 했습니다. ①뼈를 꺾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고기를 삶을 때, 짐승이 너무 커서 솥에 안 들어가면 뼈를 꺾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월절 양(羊)은 절대로 뼈를 꺾을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존귀하게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좌우편 두 강도(强盜)는 해질 때, 덜 죽었기 때문에 군인들이 그들의 다리뼈를 꺾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미 돌아가셨기 때문에 참으로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습니다. 유월절에 양(羊)을 먹을 때, 조심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이튼 날까지 두면 고기가 상할 수 있는데, 예수님은 부활(復活)하시기 때문에 썩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의 살은 부패(腐敗)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의 모든 복(福)의 시작은 예수님의 십자가(十字架)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 때, 더 능력 있고. 더 큰 은혜(恩惠)를 받게 됩니다.
우리가 높아지려고 하고, 세상의 왕관(王冠)을 쓰려고 하면, 부패(腐敗)하고 더러워지고 추(醜)해지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자기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높아지거나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慾望)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과 함께 죽으려고 할 때,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유월절은 언제나 은혜(恩惠)받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은혜(恩惠)를 받을 때, 우리 앞에 홍해가 갈라지고, 모든 사탄(詐誕)의 세력(勢力)이 도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하나님의 복(福)이 시작됩니다.
Ⅱ.맥추절(麥秋節)
16:9-12절)일곱 주를 셀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 날부터 일곱 주를 세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우리는 쌀이 주식이기 때문에 보리 추수나 밀 추수보다는 가을 추수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이나 서양에서는 밀이나 보리를 주식으로 하 기 때문에 봄 추수가 더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곡식에 낫을 대기 시작하는 때부터 7주를 계산해서 맥추절을 지켰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유월절부터 곡식을 거두기 시작하니까 유월절부터 7주 후가 맥추절이 됩니다. 그래서 맥추절은 별명(別名)이 많습니다. 7주가 지나서 지킨다 해서 칠칠절이라고도 했고, 칠칠이면 오십이니까 오순절이라고 했고, 봄에 보리나 밀을 추수했기 때문에 맥추절이라고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것은 세상에서 유능하고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보다는 하나님의 은혜(恩惠)에 감사(感謝)하는 백성들을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에서 종 되었던 때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하나님을 모르고, 마귀(魔鬼)의 종노릇 할 때를 생각하면, 지금 우리가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마치 평생 있어야 할 죄의 감옥(監獄)에서 풀려 나온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이 자유(自由)가 얼마나 귀한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존–뉴턴이라는 목사는 자신의 서재(書齋)위에 신16,12절)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라는 말씀을 붙여놓고 항상 쳐다보며 기억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호기심(好奇心)으로 죄를 짓고, 좋아서 죄를 짓지만, 죄는 마치 알코올 중독이나 마약(痲藥)중독과 같습니다. 나중에는 아무리 빠져나오려고 해도 이미 죄의 덫에 걸려 버려서 빠져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를 그 죄의 덫에서 나올 수 있도록 풀어 주셨고, 우리에게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 맥추절입니다. 보리나 밀의 풍성한 수확보다는 평생 죄로 사로잡혀 있던 죄의 덫에서 예수님이 우리를 나오게 하시고, 새로운 가정과 새로운 직장을 주셔서 우리들을 행복하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하는 것이 맥추절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맥추절과는 그 의미가 완전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맥추절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새로운 생활뿐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맥추절에 율법(律法)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불덩어리로 변한 시내 산(山)에서 모세를 통해 두 돌 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불도 이기고 지진(地震)도 이겼습니다. 나중에 엘리야는 모세가 올라갔던 그 산(山)에서 하나님의 임재(臨在)를 체험하게 됩니다. 엘리야가 굴에서 보니까 큰 폭풍(暴風)이 불어 나무가 뽑히고. 바위가 터져도, 지진(地震)이 일어나고, 큰 불이 붙어도 하나님께서는 안 계셨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세미한 음성 중에 그분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삶 중, 최고는 여호와의 산(山)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이것입니다.
그러면 이 맥추절이 우리와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 초대 교회 때, 이 맥추절 오순절에 한 자리에 모여서 열심히 기도하던 120명의 제자들에게 성령이 불길이 임했던 것입니다.
오순질의 성령은 우리의 존재 자체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하게 합니다. 이 성령은 우리 안에 있는 감정(感情)과 육체(肉體)에 하나님의 능력을 부어주셔서 우리를 완전히 다른 존재로 만들어 버립니다. 즉 새로운 인간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추수(秋收)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영혼(靈魂)을 추수(秋收)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기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기적은 성령의 역사이기는 하지만, 대체로 너무나 굳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갈아엎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적 자체는 영혼(靈魂)을 추수(秋收)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반드시 말씀을 듣고. 은혜(恩惠)를 받아서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드려야 합니다.
Ⅲ.초막절(草幕節)
16:13-15절)너희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우리나라는 가을에 추수하는 대표적인 것이 쌀이지만 이스라엘은 포도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도 농사를 잘 지어서 포도를 포도주 틀에 넣고 밟을 때, 그 기쁨이라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도 농사를 잘 지었으면 그 포도주를 실컷 마시고 춤을 춰야 할 텐데, 오히려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초막절은 자기가 살던 집을 나와서 들판에서 움막을 짓고, 일주일 동안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를 40년 돌아다녔던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다닐 때, 양식(糧食)도 문제가 되었지만. 더 심각한 것은 물이었습니다. 광야에는 그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실 수 있는 물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반석(磐石)을 쳐서 생수(生水)가 터져 나오게 하셔서 그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물을 마실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것도 한번만 하신 것이 아니라, 40년 내내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고. 시내 산(山)에서 말씀을 주셨다 하더라도 매일 물과 양식(糧食)을 주지 않으셨다면. 그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한 번만 큰 기적을 행하신 것이 아니라, 계속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셔서 물을 주시고,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결국 성소(聖所)안에 등대와 떡 상으로 영원히 남게 됩니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앞길을 인도하시고, 그들이 먹을 생명의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한참 잘 나가다가 한 순간에 졸지에 넘어져서 망(亡)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는 많은 사망(死亡)의 함정(檻穽)들이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평탄(平坦)한 길인 줄 알고 신나게 달렸는데, 그 앞에 실패(失敗)와 멸망(滅亡)의 구렁텅이가 놓여 있다면, 그는 어느 한 순간에 몰락(沒落)하고 말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오히려 세상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불안(不安)합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붙잡고 살아가지만,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데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依支)하고 살아가는데, 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너무나도 불안(不安)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그 신실(信實)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불안(不安)한 미래(未來)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다윗은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시I119:105절)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잡고 갈 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죄의 올무를 피하게 하십니다. 때로는 알고 피할 때도 있고, 모르고 피할 때도 있는데, 좌우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면, 죄가 정리(情理)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말씀입니까?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는 중에서 모든 만물(萬物)을 창조(創造)한 능력(能力)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創造)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지금 지탱하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면, 절대로 갑자기 망(亡)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연결(連結)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지키는 것이 초막절입니다.
우리가 복잡한 인간 사회 속에 들어 있으면, 사람들이 너무나 크게 보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나와 넓은 자연가운데서 보면.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왜소(矮小)하고 별 볼일 없는 존재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거기까지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초막 중에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혼자 있는 시간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깊이 묵상(默想)하는 시간이요, 그 말씀으로 자신을 아름답게 단장(端裝)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스라엘 남자들에게 이 세 가지 절기를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절기에는 하나님께 바치거나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인색(吝嗇)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진 것100%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엄청난 체험들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 가지를 조심(彫心)하라고 하셨습니다.
①공의(公儀)를 행하라는 이것입니다.
16:19-20절)너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너는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차지하리라”
하나님의 백성들의 특징은 공평(公平)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공평(公平)하다는 것은 쉬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공평(公平)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것인데, 사람은 어느 쪽에 편을 들어야 보호를 받을 수 있고, 지지(支持)를 받을 수 있습니다.
공평(公平)하면 어느 쪽에서도 좋아하지 않고. 잘난 체 한다고 하면서 욕 할 것입니다. 그리고 왜 사람들이 부자(富者)를 편 들게 되어 있는가 하면, 부자(富者)를 편 들면 반드시 부수입(副收入)이 생기고 반대로 부자(富者)를 섭섭하게 하면, 미움을 받거나 나중에 복수(復讐)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나의 처지(處地)가 어떠한가? 하는 것보다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하는 것을 반드시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을 섭섭하게 하면, 당장은 따돌림을 당하고, 어려운 일을 많이 있지만, 나중에 하나님께서 축복(祝福)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공격(攻擊)이 두려워서 하나님을 외면(外面)하고 사람의 편에 서게 되면, 담장은 그들이 좋아하고 인정(認定)하는 것 같지만, 나중에 하나님에 의해서 버림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느 편도 들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하는 이상(以上)을 될 수 없습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기편이 없기 때문에 늘 외톨이로 고독(孤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셔서 살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또 어떤 일이 있어도 우상(偶像)이나 미신(迷信)을 받아 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16:21-22절)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쌓은 제단 곁에 어떤 나무로든지 아세라 상을 세우지 말며 자기를 위하여 주상을 세우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偶像)을 세울까? 전능(全能)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당시는 우상(偶像)을 섬기는 자가 의식(儀式)이 열린 사람이고, 다양한 문화(文化)를 포용(包容)하는 사람으로 인정(認定)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상(偶像)을 섬기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세상적인 방법으로 성공(成功)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상(偶像)을 미워하신다고 하셨습니다.우리는 하나님의 능력(能力)을 믿어야 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만족하고 감사(感謝)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4:13절)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고백이 우리의 고백(告白)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융통성(融通性)도 없고, 너무 소극적(消極的)이어서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데,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能力)으로 더 안전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새로운 미래(未來)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구원(救援)은 말로만 주시는 구원(救援)이 아니라, 우리의 새로운 삶을 통하여 또 삶의 능력을 통하여 풍성(豊盛)하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전인(全人)구원(救援)에 우리는 주님께 항상 감사(感謝)해아 할 것입니다. 아-멘
찬송가 495장 익은 곡식 거둘 자가*
오늘의 묵상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6) 11/20 추수 감사 예배
◁가족같은 교회. 교회같은 가족▷
☞ 교갱원 설립할 創立member(마28:18-20/롬8:28)
37개 셀(cell)공동체는 열방의 죽어가는 소중한 생명을 멸망에서 구령할 사명있습니다.
20년 씨뿌리고. 잃은영혼찾고. 성례전과 수련회하기에 적합한 동탄 황금어장(漁場)에 교갱원을 설립할 創立member를 찾습니다. ※카톡회원들도 적극 동참합시다. 교갱원 주춧돌 동판에 創立member 이름을 새겨 후손들에게 영구적(永久的)기념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칭찬(稱讚)과 상급(賞給)이 있을 것입니다.
순종하는 믿음으로 하늘에 보물 쌓을 創立member
▽교갱원 설립할 온라인 특별 헌금▽
농협 NH콕뱅크 302-8772-0191-01(헌금 종류)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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