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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우침주(積羽沈舟)
새의 깃이라도 쌓이면 배를 가라앉힌다.
積 : 쌓을 적(禾/11)
羽 : 깃 우(羽/0)
沈 : 잠길 침(氵/4)
舟 : 배 주(舟/0)
작은 물건이라도 꾸준히 모으면 나중에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대표적인 속담이‘티끌모아 태산’이고 들어맞는 성어가 진합태산(塵合泰山)이다.
평소의 사소한 일이라도 열성을 다하라는 가르침을 주는 말은 너무나 많다. 90세 되는 노인이 마을 앞뒤의 산을 대를 이어 옮긴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이나 도끼를 갈아 바늘 만들기란 마부작침(磨斧作針),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수적천석(水滴穿石), 이슬이 바다를 이루는 노적성해(露積成海) 등이 있다.
여기에 더하여 새의 깃이라도 쌓이고 쌓이면(積羽) 배를 가라앉힐 수 있다(沈舟)는 이 성어도 작은 힘을 합치면 큰일을 이룰 수 있다는 가르침을 준다.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기원전 403년~221년 패권을 놓고 다투었던 7개 강국을 오가며 외교전을 펼쳤던 장의(張儀)에 의해 이 말이 유래했다. 칠웅(七雄)으로 일컬어졌던 진(秦), 초(楚), 연(燕), 제(齊), 한(韓), 위(魏), 조(趙) 사이에 세력을 넓히려고 쓴 전술이 합종연횡(合從連衡)이다.
장의와 함께 귀곡(鬼谷) 선생에 사사한 소진(蘇秦)은 최강국인 진나라에 맞서려면 6국이 힘을 합쳐야 된다며 합종책(合縱策)을 주장했다. 여기에 맞서 장의는 합종이 일시적 허식이며 진을 섬겨야 안전하다고 설득하여 동맹을 맺는데 성공했는데 이것이 연횡책이다.
전한(前漢)시대의 학자 유향(劉向)의 전국책(戰國策) 중에서 위책(魏策)에 실린 내용을 보자.
전국 시대, 동주(東周) 왕조는 나날이 쇠퇴해지고 있었다. 이에, 각 제후들은 천하를 다투기 시작하였는데, 이들 가운데 진(秦)나라의 세력이 가장 강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약소국들이 연합하여 진나라에 대항하자는 합종책과 진나라를 따라 다른 약소국을 정복하자는 연횡책이 등장하였다.
진나라의 상국(相國)인 장의(張儀)는 제(齊), 초(楚), 연(燕), 조(趙), 한(韓), 위(魏) 등 여섯 나라의 합종 맹약이 매우 견고한 것을 알았다. 장의는 곧 재상의 직을 사직하고 위나라에 가서 합종 연맹을 탈퇴하도록 위나라 왕을 설득하려고 하였다.
장의는 위나라에 온 이듬해 위나라의 상국에 임명되었다. 그의 몸은 위나라에 있었지만, 마음은 진나라에 있었으므로, 줄곧 연횡책으로써 진나라로 하여금 천하를 차지하게 하려는 생각뿐이었다. 장의는 위왕에게 진나라와 연합하여 제나라나 초나라 등을 정벌하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위나라 왕은 진나라의 야심을 알고 장의의 말을 듣지 않았다.
진나라 왕은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하여 대군(大軍)을 보내 위나라 공격하는 한편, 비밀리에 사람을 보내 장의에게 보물을 보냈다. 장의는 보물을 받았으나 보답을 하지 못하여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위나라 양왕(襄王)이 죽자, 그는 위나라 애왕(哀王)에게도 진나라를 받들 것을 권하였다가 거절당하였다.
장의는 암암리에 진나라가 위나라를 정벌해주기를 원하였다. 위나라는 전쟁에서 패한 뒤, 일 년후에는 다시 제나라의 침범을 받아 패하였다. 이 틈을 노려 진나라는 다시 위나라를 공격하여, 먼저 한(韓)나라 대장 신차(申差)의 군대를 섬멸하였는데, 죽은 자가 8만2천에 달하였다.
장의는, 위나라의 거듭되는 패전으로 합종에 분열이 일어나자 이 상황을 이용하여, 위나라의 애왕에게 권하였다. 장의는 위나라의 지세와 병력 상황 등을 분석하며, 현재 처해있는 상황과 합종의 취약함 등 불리한 조건들을 말했다.
且夫從人多奮辭而少可信.
차부종인다분사이소가신.
說一諸侯而成封侯,
설일제후이성봉후,
是故天下之游談士莫不日夜 搤腕瞋目切齒
시고천하지유담사막불일야 액완진목절치
以言從之便, 以說人主.
이언종지편, 이설인주.
人主賢其辯而牽其說, 豈得無眩哉.
인주현기변이견기설, 개득무현재.
臣聞之, 積羽沈舟, 群輕折軸,
신문지, 적우침주, 군경절축,
眾口鑠金, 積毀銷骨, 故願大王審定計議.
중구삭금, 적훼소골, 고원대왕심정계의.
합종론자들은 호언장담하는 자들은 많아도 믿을 만한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군주 한 사람에게 합종책을 설득시키면 후(侯)에 봉해지기 때문에 합종론자들은 밤낮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눈을 부릅뜨고 침을 튀기면서 군주에게 유세하려고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들의 변설에 군주가 현혹되어 넘어가면 차츰차츰 나라는 기울어지고 마는 법입니다. 제가 듣기에, 가벼운 깃털도 쌓이고 쌓이면 배를 가라앉히고, 가벼운 짐도 모이면 수레의 굴대를 부러뜨리며, 민중이 입을 모아 외치면 쇠도 녹이기까지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하니 왕께서는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합종론자들의 감언이설에 놀아나지 말라는 이야기다. 애왕은 합종에서 탈퇴하고 진나라와 연횡했다.
작은 것이라도 소중히 여겨 모은다면 큰 것을 이룬다는 미덕은 변함이 없지만 오늘날 물질이 풍요해지면서 퇴색했다. 사소한 것은 업신여기고 조금 모이면 흥청망청 쓰는 세태는 걱정스럽다. 부가 대물림되고 빈부격차가 줄어들지 않아 절망스런 사회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 소비한다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로 해결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 積(쌓을 적, 저축 자)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벼화(禾; 곡식)部와 음(音)을 나타내는責(책, 적)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責(책, 적)은 여기에서는 똑같이 생긴 것이 많이 모임을 뜻한다. 禾(화)는 곡식을, 積(적)은 곡식을 거두어 들여 많이 비축하는 일을 뜻하는데, 나중에 곡식에 한하지 않고 물건이 모이다, 쌓이다 따위의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積자는 '쌓이다'나 '저축'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積자는 禾(벼 화)자와 責(빚 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責자는 가시가 돋친 돈을 뜻하는 글자로 '빚'이라는 뜻이 있다. 여기에 禾자가 결합한 積자는 빚이 계속 쌓이고 누적되듯이 볏단이 포개진다는 뜻이었다. 다만 지금의 積자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누적되다'나 '쌓이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積(적, 자)은 (1)곱 (2)적취(積聚) 등의 뜻으로 ①쌓다 ②많다 ③머무르다 ④울적하다 ⑤병이 들다 ⑥심하다(정도가 지나치다) ⑦더미 ⑧곱하여 얻은 수 ⑨부피 ⑩넓이 ⑪자취(어떤 것이 남긴 표시나 자리) ⑫병(病)의 이름 ⑬주름 그리고 ⓐ저축(貯蓄)(자) ⓑ모으다(자) ⓒ저축하다(자) ⓓ쌓다(자)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쌓을 저(儲), 쌓을 온(蘊), 쌓을 저(貯)이다. 용례로는 사물에 대하여 긍정하고 능동적인 것을 적극적(積極的), 쌓여서 막힘을 적체(積滯), 사물에 대하여 그것을 긍정하고 능동적으로 활동함을 적극(積極), 오래 쌓인 폐단을 적폐(積弊), 물건을 쌓아서 보냄을 적출(積出), 물건을 실음을 적재(積載), 착한 일을 여러 번 함을 적선(積善), 돈을 모아 둠 또는 모아 둔 돈을 적금(積金), 여러 해를 적년(積年), 모아서 쌓아 둠을 적립(積立), 공을 쌓음을 적공(積功), 거듭 생기는 좋은 경사를 적경(積慶), 곡식을 쌓아 둠을 적곡(積穀), 오래 걸림을 적구(積久), 포개어 쌓음 또는 포개져 쌓임을 누적(累積), 많이 모이는 일 또는 그것을 축적(蓄積), 일정한 평면이나 구면의 크기를 면적(面積), 물건이나 일이 산더미처럼 많이 쌓임을 산적(山積), 점점 불어서 쌓이고 늘어남을 증적(增積), 많이 덮쳐 쌓임을 퇴적(堆積), 모여 쌓이는 것 또는 모아 쌓는 것을 집적(集積), 입체가 차지한 공간 부분의 크기나 부피를 체적(體積), 실제의 용적 또는 면적을 실적(實積), 바닷가나 강가를 메워서 뭍을 만드는 일을 매적(埋積), 선박에 짐을 싣는 일을 선적(船積), 물건을 담을 수 있는 부피를 용적(容積), 흙이 쌓여 산이 된다는 뜻으로 작은 것도 많이 모이면 커진다는 말을 적토성산(積土成山),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을 적진성산(積塵成山), 작은 것도 쌓이면 크게 됨 또는 적은 것도 쌓이면 많아짐을 일컫는 말을 적소성대(積小成大), 한 방울 한 방울의 물이 쌓여 연못이 됨을 이르는 말을 적수성연(積水成淵), 쌓이고 쌓인 섶나무의 탄식이라는 뜻으로 먼저 쌓인 섶나무는 항상 아래에 있듯이 고참이 승진하지 못하고 늘 아랫자리에 있음을 한탄함을 이르는 말을 적신지탄(積薪之歎), 원망이 쌓이고 쌓여 노여움이 깊어짐을 일컫는 말을 적원심로(積怨深怒), 새털처럼 가벼운 것도 많이 실으면 배가 가라 앉는다는 뜻으로 작은 일도 쌓이고 쌓이면 큰 일이 됨을 이르는 말을 적우침주(積羽沈舟), 착한 일을 많이 한 결과로서 좋은 일이 자손에게까지 미침을 일컫는 말을 적선여경(積善餘慶), 여러 해를 두고 싸움에 종사함을 일컫는 말을 적고병간(積苦兵間), 여러 해를 두고 하는 수고와 괴로움을 일컫는 말을 적년신고(積年辛苦), 인심을 많이 잃음을 일컫는 말을 적실인심(積失人心), 착한 일을 많이 한 집을 일컫는 말을 적선지가(積善之家), 악한 짓을 많이 한 집을 일컫는 말을 적악지가(積惡之家), 재물을 모아 능히 유익한 일에 씀을 이르는 말을 적이능산(積而能散), 여러 해 동안 쌓인 회포를 일컫는 말을 적년회포(積年懷抱), 마음과 힘을 자꾸 씀을 이르는 말을 적비심력(積費心力), 악한 짓을 많이 하면 그 죄 때문에 재앙이 자손에게 미침을 일컫는 말을 적악여앙(積惡餘殃), 산더미같이 많이 쌓임을 일컫는 말을 적여구산(積如丘山), 짐을 실을 수 있는 정량을 일컫는 말을 적재정량(積載定量), 집안이 몹시 가난하여 죽은 사람은 장사지내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적시재상(積屍在床), 사람들의 악담이 많으면 굳은 뼈라도 녹는다는 뜻으로 여러 사람의 악담이 무서움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적훼소골(積毁銷骨), 재앙은 악을 쌓음에 인한 것이므로 재앙을 받는 이는 평소에 악을 쌓았기 때문이라는 말을 화인악적(禍因惡積), 곡식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음을 일컫는 말을 속적여산(粟積如山), 아주 적은 것이라도 쌓이고 쌓이면 큰 것이 됨을 이르는 말을 수적촌루(銖積寸累), 매우 많이 쌓여 있음을 이르는 말을 여산적치(如山積峙), 금과 옥을 산처럼 모음을 일컫는 말을 퇴금적옥(堆金積玉) 등에 쓰인다.
▶️ 羽(깃 우, 늦출 호)는 ❶상형문자로 우(우)와 통자(通字)이다. 새의 날개의 모양을 본뜬 글자를 만들어 날개나 나는 것에 관한 뜻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羽자는 '깃털'이나 '날개', '조류'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羽자를 보면 두 개의 깃털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새의 깃축과 깃판을 함께 그린 것이다. 羽자는 이렇게 새의 깃털을 그려 '날개'나 '새', '날다'라는 뜻을 표현했다. 羽자는 깃털은 새가 하늘을 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의미에서 '돕다'라는 뜻도 갖고 있다. 그래서 羽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깃털'이나 '날다', '돕다'와 같은 뜻을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羽(우, 호)는 (1)오음(五音)이나 칠성(七聲) 음계(音階)의 하나. 오음(五音) 음계(音階)의 다섯째 음, 칠성 음계(音階)의 여섯째 음임. 양약(洋藥)의 음계(音階) 라(La)에 비할 수 있음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깃, 깃털 ②깃 장식(裝飾) ③깃꽂이 ④(짐승의)날개 ⑤새, 조류 ⑥살깃(화살에 붙인 새의 깃털) ⑦부채 ⑧정기(旌旗: 정(旌)과 기(旗)를 아울러 이르는 말) ⑨오음(五音)의 하나(가장 맑은 음) ⑩낚시찌 ⑪벗, 패거리 ⑫편지(便紙) ⑬(서로)돕다 ⑭(이마가)우묵하다(가운데가 둥그스름하게 푹 패거나 들어가 있다) 그리고 ⓐ늦추다(호) ⓑ느슨해지다(호)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날개 익(翼)이다. 용례로는 새의 날개를 우익(羽翼), 새의 깃과 짐승의 털을 우모(羽毛), 거죽에 고운 털이 돋게 짠 비단을 우단(羽緞), 선녀나 도사가 입는다는 옷으로 새의 깃으로 만든 옷을 우의(羽衣), 한 편의 날개 털을 우편(羽片), 새 중에 가장 뛰어난 새를 우걸(羽傑), 새의 깃 같은 모양이나 상태를 우상(羽狀), 새의 깃 또는 화살에 붙인 새의 깃을 우령(羽翎), 새의 깃을 꽂아 장식한 갓을 우립(羽笠), 새의 대가리에 뿔 모양으로 솟은 털을 우각(羽角), 깃의 살갗에 박힌 부분을 우근(羽根), 새의 날개 치는 소리를 우음(羽音), 급히 전함을 우전(羽傳), 새의 머리에 길고 더부룩하게 난 털 또는 그런 털을 가진 새를 우관(羽冠), 새의 보드라운 털이 촘촘히 난 부분을 우역(羽域), 새의 깃으로 짠 직물을 우직(羽織), 오음의 다섯째 소리를 우성(羽聲), 어깨깃을 이르는 말을 견우(肩羽), 닭깃을 이르는 말을 계우(鷄羽), 꽁지 깃털을 미우(尾羽), 짐승의 털과 날짐승의 깃을 모우(毛羽), 날짐승의 썩 짧고 보드라운 털을 면우(綿羽), 털을 뽑는 일을 발우(拔羽),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날짐승을 잡우(雜羽), 묵은 털이 빠지고 새 털이 나는 일을 환우(換羽), 나무로 만든 공작을 수우(樹羽), 새가 깃털을 다듬는 행동을 정우(整羽),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오른다는 뜻으로 술이 거나하게 취하여 기분이 좋다는 말을 우화등선(羽化登仙), 새의 깃이 무거운 몸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게 한다는 뜻으로 경미한 것도 많이 모이면 유력해짐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우핵비육(羽翮飛肉), 화살에 한 번 상처를 입은 새라는 뜻으로 환난을 한 번 겪은 일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상궁지우(傷弓之羽), 느시 깃의 탄식이라는 뜻으로 백성이 난리나 부역으로 부모를 봉양할 수 없음을 탄식하는 말을 보우지차(鴇羽之嗟), 새의 깃이 덜 자라서 아직 날지 못한다는 뜻으로 사람이 성숙되지 못하고 아직 어림을 이르는 말을 모우미성(毛羽未成), 새털처럼 가벼운 것도 많이 실으면 배가 가라앉는다는 뜻으로 작은 일도 쌓이고 쌓이면 큰 일이 됨 또는 작은 것 힘없는 것도 많이 모이면 큰 힘이 된다는 말을 적우침주(積羽沈舟), 돌을 호랑이로 잘못 알고 쏘았더니 화살이 깃까지 돌에 깊이 꽂혔다는 뜻으로 열성을 다하면 무슨 일이든 이루어낼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사석음우(射石飮羽), 항우와 같이 힘이 센 사람이라는 뜻으로 힘이 몹시 세거나 의지가 굳은 사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항우장사(項羽壯士) 등에 쓰인다.
▶️ 沈(잠길 침, 성씨 심)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삼수변(氵=水, 氺;물) 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깊이 아래로 늘어 뜨리다의 뜻을 가진 글자 冘(임, 침)로 이루어졌다. 수중(水中)에 가라앉다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沈자는 '잠기다', '가라앉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沈자는 水(물 수)자와 冘(망설일 유)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沈자의 갑골문을 보면 강물에 떠내려가는 소가 그려져 있었다. 홍수로 소가 물에 떠내려가는 모습인 것이다. 그런데 소전으로 넘어오면서는 소 대신 목에 칼을 차고 있는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다. 목에 칼을 찬 사람은 죄수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沈자는 강물에 죄수를 수장시키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沈(침, 심)은 ①잠기다 ②가라앉다 ③빠지다 ④원기를 잃다 ⑤오래다 ⑥오래되다 ⑦침울하다 ⑧막히다 ⑨무겁다 ⑩숨다 ⑪늪(땅바닥이 우묵하게 뭉떵 빠지고 늘 물이 괴어 있는 곳) ⑫진흙 ⑬호수(湖水) 그리고 ⓐ성(姓)의 하나(심) ⓑ즙(汁)(심)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빠질 면(沔), 빠질 몰(沒), 빠질 륜/윤(淪), 묻힐 인(湮), 빠질 닉/익(溺), 잠길 잠(潛), 잠잠할 묵(默)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뜰 부(浮)이다. 용례로는 일이 잘 진전되지 않음을 침체(沈滯), 잠잠하게 아무말도 하지 않음을 침묵(沈默), 물에 빠져서 가라앉음을 침몰(沈沒), 물질 따위가 가라앉아 들러붙는 것을 침착(沈着), 물에 잠기는 일을 침수(沈水), 마음에 뼈저리게 느낌을 침통(沈痛), 성정이 가라앉아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음을 침잠(沈潛), 액체 중에 있는 미세한 고체가 가라 앉아서 바닥에 굄을 침전(沈澱), 깊이 궁구 하느라고 정신을 모아서 조용히 생각함을 침사(沈思), 잠잠하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음을 침묵(沈黙), 걱정이나 근심 따위로 밝지 못하고 우울함을 침울(沈鬱), 성정이 차분히 가라앉고 조용함을 침정(沈靜), 물위에 떠올랐다 잠겼다함을 부침(浮沈), 정신이 푹 까부라짐을 혼침(昏沈), 기운이나 기세 등이 삭아 없어짐을 소침(消沈), 성질이 명랑하지 못함이나 날씨가 흐리고 맑지 못함을 음침(陰沈), 스스로 가라앉음을 자침(自沈), 다시 침전시키는 일을 재침(再沈), 소금에 절인 고기나 채소를 염침(鹽沈), 미인을 보고 부끄러워서 물고기는 물 속으로 들어가고 기러기는 땅으로 떨어진다는 뜻으로 미인을 형용하여 이르는 말을 침어낙안(沈魚落雁), 배를 가라앉히고 솥을 깬다는 뜻으로 필사의 각오로 결전함을 이르는 말을 침선파부(沈船破釜), 세상에 나와서 교제하는 데도 언행에 침착해야 함을 이르는 말을 침묵적요(沈默寂寥), 술과 계집에 마음을 빼앗김을 일컫는 말을 침어주색(沈於酒色), 솥을 깨뜨리고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으로 싸움터로 나가면서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고 결전을 각오함을 이르는 말을 파부침주(破釜沈舟), 식량을 버리고 배를 침몰시킨다는 뜻으로 목숨을 걸고 어떤 일에 대처하는 경우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사량침주(捨量沈舟), 세상이 변하는 대로 따라서 변함을 일컫는 말을 여세부침(與世浮沈), 의기가 쇠하여 사그라짐 또는 기운을 잃고 풀이 죽음을 일컫는 말을 의기소침(意氣銷沈), 새털처럼 가벼운 것도 많이 실으면 배가 가라앉는다는 뜻으로 작은 일도 쌓이고 쌓이면 큰 일이 됨 또는 작은 것 힘없는 것도 많이 모이면 큰 힘이 됨을 이르는 말을 적우침주(積羽沈舟), 단엄하고 침착하여 무게가 있음을 이르는 말을 단엄침중(端嚴沈重), 인심과 문화와 사회에 새롭고 확실한 것을 찾는 활기가 없어 진보 발전하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위미침체(萎靡沈滯), 말수가 적고 침착한 모습을 이르는 말을 과묵침용(寡默沈容), 조그마한 틈으로 물이 새어들어 배가 가라앉는다는 뜻으로 작은 일을 게을리하면 큰 재앙이 닥치게 됨을 비유하는 말을 소극침주(小隙沈舟) 등에 쓰인다.
▶️ 舟(배 주)는 ❶상형문자로 통나무 배의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한자의 부수로는 배와 관계가 있음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舟자는 '배'나 '선박'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舟자는 조그만 배를 그린 것이다. 강줄기가 많은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수로가 발달했었다. 강에는 여러 종류의 뗏목이 떠다녔지만, 그중에서도 舟자는 1~2명만이 탑승할 수 있었던 조그만 배를 그린 것이다. 이 배는 돛 없이 노를 저어 움직이던 것이었기 때문에 舟자의 상단에 있는 점은 노가 생략된 것이다. 이처럼 舟자는 배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부수로 쓰일 때는 대부분이 '배의 종류'나 '옮기다', '움직이다'와 같은 뜻을 전달하게 된다. 참고로 舟자와 丹(붉을 단)자는 매우 비슷하게 그려져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舟(주)는 ①배, 선박(船舶) ②반(제기인 준을 받쳐놓는 그릇) ③성(姓)의 하나 ④몸에 띠다 ⑤배 타고 건너다 ⑥싣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배 강(舡), 배 방(舫), 배 항(航), 배 박(舶), 배 선(船), 배 함(艦)이다. 용례로는 서로 배를 타고 싸우는 전쟁을 주전(舟戰), 배를 타고 감을 주행(舟行), 배처럼 생긴 모양을 주형(舟形), 배와 수레를 주거(舟車), 뱃놀이를 주유(舟遊), 작은 배를 한 줄로 여러 척 띄워 놓고 그 위에 널판을 건너질러 깐 다리를 주교(舟橋), 배로 통하는 길 선로를 주로(舟路), 배로 화물 등을 나르거나 교통하거나 하는 일을 주운(舟運), 뱃사람을 주인(舟人), 뱃사공을 주자(舟子), 배에 실음을 주재(舟載), 배와 뗏목을 주벌(舟筏), 소형의 배를 주정(舟艇), 네모지게 만든 배나 배를 나란히 맴 또는 나란히 선 배를 방주(方舟), 작은 배를 단주(端舟), 한 척의 배를 단주(單舟), 작은 풀잎이 배처럼 떠 있다는 뜻으로 작은 배를 이르는 말을 개주(芥舟), 조각배를 편주(扁舟), 같은 배 또는 배를 같이 탐을 동주(同舟), 배를 물에 띄움을 범주(泛舟), 외롭게 홀로 떠 있는 배를 고주(孤舟), 가볍고 빠른 배를 경주(輕舟), 배는 물이 없으면 가지 못한다는 뜻으로 임금은 백성이 없으면 임금 노릇을 할 수 없다는 말을 주비수불행(舟非水不行), 배 속의 적국이라는 뜻으로 군주가 덕을 닦지 않으면 같은 배를 타고 있는 것과 같이 이해 관계가 같은 사람들이라도 적이 되는 수가 있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주중적국(舟中敵國), 칼을 강물에 떨어뜨리자 뱃전에 그 자리를 표시했다가 나중에 그 칼을 찾으려 한다는 뜻으로 판단력이 둔하여 융통성이 없고 세상일에 어둡고 어리석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각주구검(刻舟求劍),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한 배에 타고 있다라는 뜻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는 원수라도 협력하게 됨 또는 뜻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한자리에 있게 됨을 이르는 말을 오월동주(吳越同舟), 잡아매지 않은 배라는 뜻으로 정처없이 방랑하는 사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불계지주(不繫之舟), 솥을 깨뜨리고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으로 싸움터로 나가면서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고 결전을 각오함을 이르는 말을 파부침주(破釜沈舟), 조그마한 틈으로 물이 새어들어 배가 가라앉는다는 뜻으로 작은 일을 게을리하면 큰 재앙이 닥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소극침주(小隙沈舟), 배를 삼킬 만한 큰 고기라는 뜻으로 장대한 기상이나 인물을 이르는 말을 탄주지어(呑舟之魚), 달 하나를 세 배에서 본다는 뜻으로 하나의 달을 보는 사람의 경우에 따라 각각 달리 보인다는 뜻에서 道는 같으나 사람마다 견해가 다름을 일컫는 말을 일월삼주(一月三舟), 새털처럼 가벼운 것도 많이 실으면 배가 가라 앉는다는 뜻으로 작은 일도 쌓이고 쌓이면 큰 일이 된다는 말을 적우침주(積羽沈舟), 한 조각의 작은 배를 일컫는 말을 일엽편주(一葉片舟), 뭍에서 배를 민다는 뜻으로 고집으로 무리하게 밀고 나가려고 함을 이르는 말을 추주어륙(推舟於陸) 등에 쓰인다.
장의(張儀)
▶️ 전국시대의 상황
중국의 사회 구조와 제도가 처음으로 정립된 왕조는 주(周)왕조다. 주(周)는 하(夏), 은(殷)의 뒤를 이어 요순시대의 이상 정치를 행하여 동아시아에서는 전통적으로 이상 사회의 전형이었다. 그러나 기원전 8세기경 북방 견융(犬戎)족의 침입으로 수도를 낙양(洛陽)으로 옮기면서 춘추시대(春秋時代)와 전국시대(戰國時代)로 접어들게 된다.
춘추시대에는 제후국들이 천자국인 주왕실(周王室)을 받드는 봉건제가 약하게나마 유지되었으나, 전국시대에는 그마저 사라져 주왕실의 존재를 아예 무시하고 말 그대로 제후국끼리 싸워서 힘을 과시하고 영토를 확장하며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합집산하는 풍조가 중국 전체에 만연하였다. 이러한 풍조를 조장한 인물 중에 한 사람이 장의였다.
춘추시대의 수많은 나라가 난립하였고, 전국시대에는 진(秦), 초(楚), 연(燕), 제(齊), 한(韓), 위(魏), 조(趙)의 일곱 나라가 주축이 되었으니 이른바 전국칠웅(戰國七雄)이다. 전국칠웅 가운데 신흥 강국 진(秦)은 나머지 여섯 나라에 비해 훨씬 강성했다. 그래서 그 여섯 나라가 당면한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는 진과의 관계를 합리적으로 세워서 자국을 보호하는 일이었다. 전국시대 당시 정치적 역학은 오로지 합종(合從)과 연횡(連衡)을 축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중원(中原)의 세력 판도는 서북방의 신흥 강국인 진이 함곡관(函谷關) 서쪽을 넓게 차지하고, 이에 대하여 동쪽에는 여섯 나라가 벽을 둘러치듯 거의 남북 종렬로 위치한 형태였다. 합종의 종(從)은 종(縱), 즉 세로를 의미하며, 여섯 나라가 남북으로 동맹하여 진을 봉쇄하는 체제다. 연횡의 횡(衡)은 횡(橫), 즉 가로를 의미하는 것으로 각국이 개별적으로 진과 동서로 동맹 관계를 맺어 평화를 추구하는 외교 정책을 말한다. 합종책을 가장 설득력 있게 전개해 진의 동쪽 진출을 15년 동안 막은 인물이 소진이며, 이에 맞서 연횡책을 전개해 진의 전국통일을 도운 인물이 장의다.
▶️ 수학(修學)과 유세(遊說)
장의는 중원에서도 중앙에 해당하는 위나라에서 태어났다. 젊었을 때 제나라로 가서 소진과 함께 종횡가의 원조인 귀곡자(鬼谷子)에게서 유세학을 배웠다. 귀곡선생의 문하에는 이들 외에도 지난날 병법을 배운 방연(龐涓)과 손빈(孫臏)도 있었다.
소진과 장의는 귀곡선생으로부터 강태공이 주석한 음부경(陰符經)과 췌마술(揣摩術)을 익힌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공부는 유창한 말솜씨로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외교 전술을 펼쳐 천하의 판을 다시 짜는 데 필요한 방법들이었다.
학문 연마를 마친 두 사람 중에 먼저 출세한 사람은 소진이었다. 소진이 조나라에서 합종을 성사시켜 명성을 떨치고 있을 때 장의는 각 제후를 찾아다니다 초나라로 들어간다. 그는 초나라 재상 소양(昭陽)의 식객(食客)이 되어 연회에 참석하였는데, 그 연회에서 재상의 가보인 화씨벽(和氏璧)이 사라졌다.
재상의 부하들은 장의를 의심했다.“장의는 가난하고 행실이 불량하니 분명 재상의 화씨벽을 훔쳤을 것입니다.” 도난 사고가 보고되고 부하들이 장의를 붙잡아 매질하며 자백을 강요했다. 그래도 장의는 화씨벽을 훔쳤다고 말하지 않았고, 뚜렷한 증거도 없었으므로 소양은 어쩔 수 없이 그를 풀어주었다.
이 무렵 소진은 조나라 왕을 설득하여 합종을 약속받았지만, 진나라가 제후들을 공격하여 합종의 연대를 깨고 서로 등을 돌리게 하지 않을까 두려웠다. 소진이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진나라에 힘을 쓸 만한 사람은 장의밖에 없었다. 소진은 장의에게 은밀히 심복(心腹)을 보내 그를 자기편으로 만드는 계획을 꾸몄다.
심복의 정체를 모르는 장의는“소진이 재상이 되었으니 옛 친구의 도움을 청해보는 게 어떻겠는가?”라는 심복의 말을 듣고 난 뒤 곧바로 조나라로 가서 소진에게 만나 줄 것을 요청하였다. 재상 소진은 문지기에게 그를 들여보내지도 말고 돌아가지도 못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그렇게 한 지 며칠이 지나서야 장의는 정무로 바쁜 소진을 만날 수 있었다.
소진은 장의를 뜰 한구석에 앉게 하고, 형편없는 음식을 내주었다. 그리고는 장의를 천거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꾸짖고는 돌려보냈다. 장의는 옛 친구에게 도움은 커녕, 모욕을 당하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장의는 제후들 가운데 섬길 만한 자는 없지만, 진나라라면 조나라와 소진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침내 진나라로 들어간다.
장의의 처지와 미천한 신분으로는 진나라 왕을 만날 수 없었다. 진나라에서 만난 후원자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은 장의는 번듯한 행색으로 차려입고, 왕에게 바칠 예물인 폐백(幣帛)을 준비하여 수레를 타고 진나라 수도로 들어갔다. 마침내 장의는 진혜왕을 만날 수 있었고, 혜왕은 그에게 객경(客卿)의 벼슬을 내렸다.
장의는 자신을 도운 후원자에게 신세 진 것을 갚으려고 하자 그가 말했다.“저는 조나라 재상 소진의 가신입니다. 소군(蘇君)께서는 합종의 맹약이 깨질 것을 우려하여 선생께서 진나라 조정을 장악하기를 원하여 선생을 몹시 화나게 하고, 저를 몰래 선생에게 파견하여 필요한 비용을 대주고 벼슬에 오르도록 한 것입니다. 이 모두가 소군의 계책입니다. 이제 선생께서 등용되셨으니, 저는 돌아가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장의가 감복하여 말했다.“내가 소진만 못 한 것이 분명하오. 내가 소진의 책략으로 진나라에 등용되었는데, 어찌 조나라를 치겠습니까? 소진이 살아있는 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며, 내가 감히 무엇을 할 수 있겠소.”소진과 장의는 동문수학한 상대를 서로 배려하는 생각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 뒤 세월이 흘러 장의는 진나라 재상이 되었고, 진나라에 등용된 지 15년이 되었다. 소진이 조나라에서 실각하기 전까지 장의는 합종을 깨지 않았다. 소진이 조나라에서 실각하여 떠났으므로 장의는 합종을 깰 수 있는 명분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 무렵 진혜왕(秦惠王, 또는 秦惠文王)은 촉을 공격하여 진의 영토로 복속시켰다. 진나라는 더욱 강성해졌다.
진혜왕 10년에 장의는 진혜왕에게 연횡을 적극적으로 피력하였다.“지금 천하는 6국이 합종을 하여 우리 진에 대항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 바람에 우리는 15년 동안이나 함곡관(函谷關)을 나가서 중원을 경략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합종을 깨고 연횡을 이루어 천하를 도모해야 합니다. 연횡은 6국을 하나씩 진에 복속시키는 것입니다.”
진혜왕은 장의의 연횡론에 찬성했다. 장의는 지리적으로 진과 경계한 자신의 조국 위나라에 대해서는 6국 동맹에서 탈퇴해 진과 동맹을 맺도록 설득하였다. 위애왕(魏哀王)은 맹약을 깰 수 없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장의는 위나라를 위협하기 위해 비밀리에 진나라 군대를 동원하여 먼저 한나라를 공격하여 8만여 명의 목을 베었다. 장의는 다시 위애왕을 설득하였고, 위나라는 마침내 장의의 위협에 굴복하여 합종을 깨고 진나라에 화친을 청하였다.
진이 제를 치려고 하자, 제와 초는 합종을 맺는다. 이에 장의는 먼저 초회왕(楚懷王)을 만나 상(商)과 오(於)의 땅 6백 리를 바친다고 속여 초와 진의 동맹을 성사시킨다. 물론 진나라로 돌아온 장의는 6백 리의 땅은커녕 한 뼘도 주지 않고 초와 제를 이간질했다. 장의의 이간질로 초와 제는 절교를 선언한다.
장의는 초회왕을 속인 죄로 자신에게 화가 난 회왕의 노여움이 풀려야 초와 진의 연횡이 가능하리라 판단하여 자진해서 초나라에 인질로 잡혀간다. 장의는 초나라에서 자신의 측근 근상(靳尙)을 매수하고, 근상과 회왕의 부인 정수(鄭袖)를 통해 회왕의 노여움을 풀고 간신히 죽음을 면한다.
장의는 초나라를 떠나기 전에 초회왕에게 이렇게 설득한다.“(…) 천하의 제후들 가운데 남보다 늦게 복종하는 자는 먼저 망할 것입니다. 또 합종에 참가하는 나라들은 양 떼를 몰아 사나운 호랑이를 공격하는 것과 차이가 없습니다. 호랑이와 양은 서로 적수가 되지 못하는 것이 명백한데도, 왕께서는 사나운 호랑이와 손잡지 않고 양 떼의 편에 섰습니다. 신은 왕의 계책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진은 초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니, 진실로 그 땅의 형세로 보아도 서로 가깝게 지내야 할 사이입니다. 왕께서 진심으로 신의 의견을 받아들이신다면, 신은 진의 태자를 초에 볼모로 보내고 초의 태자를 진에 볼모로 보내겠습니다. 또 진의 왕녀를 왕의 시첩으로 삼게 하고, 1만 호(戶)의 도읍을 바쳐서 왕의 탕목읍(湯沐邑)으로 삼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초와 진은 형제의 나라가 되어 영원히 서로 정벌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장의는 맨 먼저 자신의 조국 위나라와 진나라의 화친을 시도했다. 그리고 초나라 회왕을 설득해 배후의 위협을 없앤 다음, 한나라 위후(威侯), 제나라 민왕(湣王), 조나라 무령왕(武靈王), 연나라 소왕(昭王)에 이르기까지 협박과 회유로 합종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장의의 연횡이 작용할 수 있었던 것은 6국의 동맹이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장의는 동맹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한쪽 귀퉁이를 무너뜨린 다음, 그 탄성을 이용해 연쇄적으로 차례차례 동맹 전체를 와해시켰다. 이것은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원교근공이란 멀리 떨어진 제후국과는 동맹관계를 유지하며 인접한 제후국을 공격하여 영토를 확장하는 정책으로, 진이 중국을 통일(기원전 221년)할 때까지 국시(國是)로 삼았다.
▶️ 장의의 죽음
6국 가운데 마지막으로 연과 진의 연횡을 성사시킨 장의는 이 일을 알리기 위해 진으로 간다. 그러나 그가 미처 진에 도착하기 전에, 자신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던 혜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아들 무왕(武王)이 즉위하게 된다. 진무왕(秦武王)은 태자 시절부터 장의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가 왕이 되자 신하들 대부분이 장의를 헐뜯었다.
장의는 자기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진무왕을 직접 찾아가 사태를 해결하려 하였다.“동쪽에 큰 변란이 있어야만 왕께서 제후들의 많은 땅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제나라가 진나라에 가장 많은 땅을 바쳤습니다. 그래서 제나라 왕이 저를 무척 미워합니다. 제나라는 제가 있는 곳이면 반드시 군사를 일으켜 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위나라로 가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제나라는 반드시 위나라를 정벌할 것입니다. 위나라와 제나라의 군대가 서로 대치하고 있을 때, 왕께서 한나라로 들어가고, 군사를 함곡관 밖으로 출병하여 공격은 하지 않으면서 주나라를 압박하면, 주나라는 왕권을 상징하는 제기(祭器)를 내놓을 것입니다. 천자를 끼고 천하의 토지와 호적을 살펴서 제후들을 호령하는 것이 왕자(王者)의 사업입니다.”
진무왕은 장의의 말을 그럴듯하다고 여기고는 장의를 위나라로 보냈다. 제나라는 과연 대군을 파견해 위나라를 공격하였다. 위애왕이 두려워하자, 장의는 자신이 제나라 군대를 퇴각시키겠다며 애왕을 안심시켰다.
그러고는 자신의 가신(家臣)인 풍희(馮喜)를 제나라로 보내 제민왕을 달래도록 하였다.“왕께서 정말 장의를 미워하신다면 위나라를 공격하지 마십시오. 장의는 진나라를 떠날 때 진왕에게, 제나라가 자신이 가는 나라를 공격할 것이니 그 틈에 주나라 수도로 진군하여 천하 통일의 기반을 다지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진왕이 그를 위나라로 보냈는데, 지금 왕께서 위나라를 공격하면 장의의 계략에 말려드는 것밖에 안 됩니다.”
제민왕이 사람을 보내 확인해 보니 과연 그 말이 맞았다. 그래서 위나라 공격을 중단했으며, 장의는 위나라 재상이 된 지 1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소진의 비극적인 죽음과는 대조적인데, 전국시대 말기를 화려하게 주름잡았던 풍운의 책략가가 맞은 죽음치고는 차라리 무미건조했다.
▶️ 장의에 대한 후세의 평가
장의의 연횡책은 철저하게 힘의 논리다. 반면에 국력은 약하지만, 지리적 이점과 군사들의 사기와 국왕의 통치력 등을 분석한 다음 동맹으로 6국을 설득하던 소진의 논리는 정교하다. 그러나 장의의 논리는 소진에 비해 거칠기는 하지만 설득력이란 면에서는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 더욱이 소진이 열거한 각국의 장점을 철저하게 반대 논리에 따라 약점으로 지적한 부분은 그 당시 제후들이 연횡책을 따른 이유이며, 웅변과 관련하여 전경에 장의가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종의 제국주의 정책을 무자비하게 추구하는 진나라에 대해서 힘이 약한 여섯 나라가 선택할 수 있었던 최선의 정책은 연합해서 대항하는 길뿐이었다. 그러나 장의는 진나라의 신하로서 진나라의 이익만을 위해 일하였으므로, 여섯 나라에 궁극적으로 멸망하는 길을 택하도록 설득한 것이다.
강압적이고 기만적인 외교술로 제후국들을 무력화하는 데 앞장섰던 장의는 훗날 진시황(秦始皇)의 천하 통일(기원전 221년)에 이바지하였지만, 역설적으로 힘과 모략을 앞세운 장의의 외교술은 진나라의 멸망(기원전 206년)을 앞당긴 원인 중에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