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레터 95]믿기 어려운unbelivable 일들과 어록들analects
그분(어른 김장하)에 관한 휴먼 다큐와 책(『줬으면 그만이지』)을 보고 읽은 후,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지도록 큰 감동과 감명을 받았다. 그런 분을 알게 된 것만도 행복한 일이었다. 그분이 평생토록(40여년) 묵묵히 수행한, 보통의 사람으로선 도저히 ‘믿을 수 없는unbelivable’ 수많은 선행善行들과 늘 주변에 알려질까봐 과묵寡黙해 오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남긴 몇 가지 짤막한 어록語錄들을, 나는 적시해놓지 않을 도리가 없어 이 신새벽 자막을 두드리는 까닭이다.
- 그분의 호 ‘남성南星’은 당신의 삶의 지표를 정해주신 스승같은 존재였던 할아버지가 지어줬다 한다. 보일 듯 말 듯 하면서도, 어디에서나 앞에 나서지 않고 제 역학을 하는 그런 사람이 되라고 했다 한다. 원래 남성은 수壽를 담당하는 남극노인성으로, 남성이 비치는 곳에서는 (아픈 사람들이) 오래 산다고 하여, 한약방 이름을 남성당한약방으로 지었다.
- 자선慈善이라는 단어로도 부족한 그분의 선행에 대해 자신이 밝힌 이유는 이렇다. “배우지 못한 원인이 오직 가난이었다면 그 ‘억울함’을 다른 나의 후배들이 가져서는 안되겠다고 하는 것이고, 한약업에 종사하면서 돈을 번다면 그것은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윤이겠기에 그것은 내 자신을 위해 쓰여져서는 안되겠다는 생각때문이었다”
- 드러난 것만도 1000여명이라는 ‘김장하 장학금’의 특징을 보아도, 그분의 성품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어느 경우든 장학금 수여식이나 전달식 그리고 사진도 찍지 않는다. △성적보다는 가정형편에 따라 우선선발한다. △가급적 1회성이 아니라 졸업할 때까지 전액지원한다. △등록금은 물론이고 생활비 등 각종 경비까지 지원한다. △드물지만 재수생 입시학원비와 하숙비도 지원한다. △거주가 마땅치 않으면 집에 데려와 자녀처럼 지원한다. △장학금 관련한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고 누가 물어봐도 말해주지 않는다.
- 장학금을 받은 한 친구가 “큰 은혜에 보답하는 큰 사람이 못돼 죄송하다”고 하자 “그럴려고 준 게 아니다.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다”며 “나에게 갚을 필요는 없고, 다음에 당신처럼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그때 그 사람에게 갚으면 된다”고 말했다.
- 초등학교(경남 사천 정동초등학교) 동기동창 최관경 선생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는 말만 하는 학교 선생이지만, 장하는 이 나라에 없는 진짜 참스승이다” 많은 분들의 멘트가 있지만 “말없는 태산준령이라 닮고 싶어도 도저히 닮은 수 없는 분”이라는 말로 대신하자.
- 중학교 때부터 당신의 집에서 숙식을 하며 지원한 한 여학생이 민주화운동으로 수형생활을 마치고 찾아뵙자 “민주화를 위해 몸을 던지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그 또한 사회에 기여하는 길이다. 안타까우면서도 오히려 자랑스러운 일”이라며 격려해줬다고 한다.
-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열풍이 몰아닥칠 때, 명신고등학교 이사장으로서 교육당국의 무수한 압박을 묵묵히 이겨내며, 단 한 명의 교사도 해직하지 않고, 되레 그들을 말없이 격려하는 ‘뚝심’을 발휘했다.
- 학교를 세워 반석盤石에 올려놓은 후 국가가 기증한 명신고등학교의 ‘명신’은 <대학> 첫머리의 ‘대학지도大學之道’의 명명덕明明德과 재신민在新民에서 따온 것으로, 그분의 교육철학을 엿볼 수 있다.
- <한민족문학>이라는 무크지의 원고료를 무상지원하는 가운데, 책 말미에 도움을 준 사람 이름을 밝혀놓자, 불같이 화를 내어 배포된 책까지 회수하여 고쳐 발송할 정도로 '결벽증'도 있었으나, 그 잡지에 당신의 논문 <진주정신에 관한 소고>(원고지 75장분량)을 처음 실었다한다.
- 선구적인 형평衡平운동가 강상호(1887-1957) 선생을 기리는 묘비 뒷면의 문구를 보라. “모진 풍진의 세월이 계속될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선생님이십니다. 작은 시민이” 여기 이 ‘작은 시민’이 문구를 쓰고 경비를 지원한 그분인 것은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 그분 특유의 유머감각(개그코드)도 몇 가지 선을 보이는데, 기품이 보인다. 진주성박물관 세미나때 일본 관계자들이 들어서자 “여러분은 지금 진주성에 무혈입성하셨다”고 뼈 있는 농담을 해 주변을 숙연하게 했으며, ‘빌 게이츠가 노래를 어떻게 부를 줄 아냐’는 질문을 던진 후 “마이크로 소프트하게 부른다”며 지인들을 웃길 줄도 아시며, 산행모임의 이름이 ‘불백산행회’인데, 불백은 ‘불러줘야 나가는 백수’의 준말이라고 한다.
- “줬으면 그만이지, 어떤 기대도 간섭하지 말라야 한다”는 그분의 나눔과 배려의 철학이 어느 자리의 녹취록이 여실히 증언하고 있다. 조금 길지만 들어보자.
“보시는 베풀 보布, 베풀 시施자로 우리말로 하면 ‘베풂’일 것인데, 엔드리스 러브endless love처럼 어떠한 조건(반대급부)도 없어야 진정한 보시이자 베풂일 것이다. 불교에 ‘무재칠시無財七施’를 보자. 낯빛을 항상 환하게 해 상대방이나 주변을 대하는 것도 큰 봉사이다(화안시和顔施). 눈빛을 편하고 부드럽게 해 상대를 바로보는 것이 자안시慈顔施이다. 언사시言辭施는 말씀을 부드럽게 해 상대방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고, 심려시心慮施는 마음씀씀이인데, 서로가 마음과 마음을 위로해주는 그런 마음가짐이 봉사라는 것이다. 몸으로 때우는 사신시捨身施, 누군들 무거운 짐을 들고가는 할머니를 보면 도와드리고 싶지 않겠는가. 자리를 어른에게 양보하는 상좌시床坐施, 방을 빌려주는 방사시房舍施도 있다. 이 무재칠시는 재산이 없어도 얼마든지 실천할 수 일인데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렇게 재산이 없어도 봉사할 수 있고, (재산이) 있으면 더 좋고, 그래서 숨 막힐 듯 아귀다툼하는 이 사회에서 우리가 보시를 통해 신선한 공기주머니를 터트리는 것과 가뭄 후에 소나기의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생을 사브작사브작 꼼지락꼼지락) 살아오고 있다”는 그분의 말씀이 마치 천둥번개같다.
- 그분의 오랜 친구는 딱 이렇게 요약했다.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무슨 뜻인가? 어떤 조건이나 집착없이 베푸는 보시. 추운 겨울날 헐벗은 거지에게 외투를 벗어줬는데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없어 ‘너무 하는 것 아니냐’고 하자, 그 거지가 “줬으면 그만이지 뭘 칭찬을 되돌려받겠다는 거냐”고 말해 자신의 수행이 크게 부족한 것을 깨달았다는 어느 스님의 일화가 생각나지 않은가.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푼 그분이야말로 이 시대 진정한 선지식善知識이 아닐까.
- 그분도 사람인지라 2008년 경상대에 끝내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그때 하신 어록이 한층 돋보인다. “똥은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핀다” 우리의 밥이 똥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모르시는가. 이른바 ‘똥 철학’이 그것이다. 그분의 삶에서 우러나온 철학, 이보다 더 확실하고, 머리에 금세 박히는 명언이 어디 있을 것인가.
-그분이 줄곧 견지해온 ‘진주정신’의 알짬을 그분의 논문에서 들여다보자. 임진왜란때 진주성싸움과 의병활동에서 나타난 주체정신, 남명 선생의 경, 의 사상과 지행일치를 바탕으로 한 호의정신, 고려 민권항쟁과 임술 농민전쟁, 형평운동에서 나온 평등정신이 곧 진주정신이란다. ▲주체정신 ▲호의정신 ▲평등정신의 맥을 이어받아, 늘 푸른 남강물과 같이 유유히 흘러가기를 바란다는 게 논문의 결론이다. 멋지지 않은가.
- <맹자>의 <진심장구>에 ‘군자삼락君子三樂’이 나온다. 제1락이 “부모구존父母俱存 형제무고兄弟無故”이고, 제2락이 “앙불괴어천仰不愧於天 부부작어인 俯不怍於人” 그리고 제3락이 “득천하영재 得天下英才 이교육지而敎育之”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잘 모신 것은 물론이고 형제까지 자신이 보살폈고, 하늘 땅 모두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으며, 수많은 장학생과 학교 설립을 통해 영재를 얻어 잘 길렀으니, 이 셋을 다 실현한 사람이 세상천지에 어디 흔할 것인가.
- 참말로 한 생을 사시면서 너무나도 애쓰신, 그 어떤 찬사도 사양하실, 이 시대 가장 멋진 어른 김장하 선생의 수복강녕壽福康寧을 빌며, 마지막으로 ‘진주의 시인’ 박노정 선생이 ‘달팽이에게’ 바치는 헌시를 감상하며 맺는다.
사부작거리는 게 네 장점이야
있는 듯 없는 듯 꼼지락꼼지락
거리는 것만으로 아무렴
살아가는 충분한 이유가 되고도 남지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
황홀해
눈부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