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1일(수)
* 시작 기도
주님...
천둥과 번개가 계속 이어지는 밤이었습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이 시간이 좀 곤하네요.
그래도 육신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자 일어나 말씀 앞에 앉았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에 마음을 두지 않도록 나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사오니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하게 하소서.
주님의 기쁨인 주의 정결한 신부로 세워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여 주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님을 향한 나의 사랑이 퇴색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언제 어떤 순간에 넘어질지도 모르오니 넘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담대히 아버지 품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나를 강권하여 주소서.
나는 주님의 것이요 주님의 소유입니다.
나를 받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창 26:12-25
제목 : 메워진 믿음의 우물을 다시 파라.
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100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14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15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16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17 이삭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
18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19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23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25 이삭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 나의 묵상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시므로 그가 이주 후 첫 해에 백 배의 수확을 거뒀다.
이삭이 더욱 부유해져서 거부가 되었다.
그가 거부가 되어 양이나 소와 같은 가축이나 종도 심히 많아지는 것을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하였다.
그래서 아브라함 때에 아브라함의 종들이 팠던 우물들을 흙으로 메워버렸다.
그리고 블레셋 왕 아비멜렉은 강성해진 이삭을 그랄 땅에서 추방하였다.
그랄 땅에서 쫓겨난 이삭은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살았다.
그리고 그가 한 일은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을 시기하여 우물들을 다 메웠는데 그 우물들을 다시 팠다.
그리고 아버지가 불렀던 우물의 이름을 그대로 다시 불렀다.
한편 이삭의 종들이 우물을 파서 물을 얻었는데 그랄의 목자들이 그 우물이 자기들의 것이라고 하면서 다퉜다.
이에 이삭은 그 우물의 이름을 다투다는 의미의 에섹이라 불렀다.
그 우물을 놔두고 또 다른 우물을 팠는데 그랄 목자들이 또 다시 와서 다투었음으로 그 우물의 이름을 대적하다는 의미의 싯나라 불렀다.
이삭은 그 우물도 그대로 놔두고 자리를 옮겨서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랄 목자들이 더 이상 다투지 않으므로 장소가 넓어졌다는 의미의 르호봇이라 이름을 지었다.
무엇보다 그는 그 땅에서 번성할 것을 확신하였다.
그 후에 이삭은 브엘세바로 올라간다.
그날 밤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신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겠고 너에게 복을 주겠다.
그것은 곧 네 자손이 번성하는 복이다.
이에 이삭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장막을 치고 거기에 거주하였다.
거기서도 종들이 우물을 팠다.
아브라함이 우물을 팠던 지역은 브엘세바로서 블레셋 그랄 땅 가까이에 있다.
브엘세바는 연평균 강수량이 50-200mm정도로 척박한 땅이다.
이곳은 유다 남쪽에 있는 사막이 시작되는 초입으로서 블레셋 사람들이 이곳에 있는 우물을 메웠다는 것은 선전포고와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그들과 싸우지 않고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또 다른 우물을 판다.
이삭은 철저하게 아버지가 팠던 우물을 다시 파되 이름 또한 똑같이 부른다.
그가 아버지의 우물을 다시 파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버지가 팠던 우물을 다시 파면서 아버지가 남긴 흔적을 발견하기 위함이다.
아버지의 삶의 모습과 신앙의 모습 그리고 아버지의 손길이 닿았던 흔적과 함께 아버지가 밑바닥에서 마셨던 우물의 생수도 마셨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가 생수를 마셨던 것은 그곳에서 아버지가 만났던 하나님을 만난 것과 같은 의미이다.
(24절)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이 순간,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이삭의 하나님이 되셨다.
이삭이 철저하게 아버지 아브라함의 우물을 파므로 생수를 마시고 또한 하나님을 만났던 것처럼, 오늘 나도 신앙의 선배들이 팠던 믿음의 우물, 성령의 우물을 파기를 원한다.
우리가 파야 할 신앙 선배들의 우물은 무엇인가?
그것은 목숨을 얻고자 신앙을 팔지 않았던 그들의 순교신앙이다.
그들은 비록 내게 유익이 없고 오히려 손해가 온다 할지라도 결코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부인하지 않았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해도 결코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길이 주님의 뜻이라 믿고, 십자가의 길과 순교자의 삶을 살아갔던 것이다.
이러한 삶을 살다가 비록 이 땅에서는 보상을 받지 못할지라도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하늘에서 받을 상급을 바라며 겸손히 눈을 감았다.
이 땅에서 세상의 가치관으로는 초라했을지라도,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얻을 영광의 면류관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에 비하면 나는 어떤가?
목에 칼이 들어오면 목숨을 얻고자 예수의 이름을 버리지 않는가?
예수를 믿는데 별 유익이 없고, 오히려 손해가 나며 힘들어질 때,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부인하지는 않는가?
내 뜻대로 안 되면 금방 절망하고 낙심하지는 않는가?
신앙의 선배들이 바라보았던 그 나라를 나도 지금 바라보고 있는가?
주님이 주실 영광의 면류관을 기대하고 있는가?
나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겠노라, 순교자의 삶을 살겠노라고 찬양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잘 한다.
하지만 정작 나의 삶은 십자가를 무시하고 무참히 짓밟는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제 나의 불신앙과 교만, 게으름과 나태함, 거짓과 불순종으로 메워진 믿음의 우물을 다시 파기를 원한다.
믿음의 선진들이 팠던 십자가의 우물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생수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아니 저주와 참혹함의 십자가 자체가 되신 우리 주님이 파놓으신 삶의 우물을 다시 파기를 원한다.
우리는 어린 자녀들이 밤에 열이 나고 아프면 뜬 눈으로 밤을 새우면서 돌보지 않는가?
하물며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시면서까지 자녀 삼은 우리를 끝까지 지켜 주실 줄 믿는다.
(시 121: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나는 지극히 부끄럽고 초라한 죄인이지만 이런 죄인도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오래참으심을 신뢰하며 오늘도 우리 주님의 그 사랑 앞에서 오열한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그 은혜가 그저 놀랍고 놀라울 뿐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말로만 입술로만 주를 찬양하며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겠노라 다짐했던 자가 여기 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순교자의 삶을 살겠노라고 맹세했던 악인 중에 악인이 여기 있습니다.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리브가의 뱃속에서부터 에서와 야곱을 주권적으로 인도하셨던 것처럼 이 죄인 그들에 비해서 더 추하고 죄악된 자이나 이런 나도 주님께서 창세전부터 택하시고 불러주심을 믿습니다.
창세전 언약에 신실하신 우리 주님을 오늘도 믿고 신뢰하오니 나의 생각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뜻과 언약에 합당하게 행하게 하소서.
거짓과 속임수로 가득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주 예수의 보혈로 깨끗이 씻어 주시고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주님만 바라며 살기 원하오니 세상에서 천일을 사는 것보다 주의 나라에서 하루를 살게 하소서.
우리 주님이 주신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