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도산은 일본에서 영웅이 되었다.
2차세계대전 패전으로 주눅이 든 일본인들..
반면 기름기 흐르는 얼굴에 미소와 여유도 있고 덩치까지 큰 미국인들..
그래 그들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던 일본인들..
그런 그들에게 어느날 영웅이 나타났다.
덩치 큰 미국선수들을
레슬링 경기 사각의 링에서
사정없이 무너트리던 역도산..
그 역도산이 전후 일본인들에게 영웅으로 다가온 것이다.
사실..내용을 보면 역도산은 한국인이지만
그래도 외형상 일본인이기에 열광하고 환호했다.
열패감도 경기중에는 언제 그랬냐는듯..
일본인들 눈에서 눈 녹듯 사라졌다.
가난하던 시절 우리의 50년대..
섬마을 청년 김일이 역도산에게서 꿈을 보았다.
그래 무작정 일본으로 밀항했고 ..그 댓가를 혹독히 치루고
하지만 고생고생 끝에 역도산과 조우 그의 제자가 됐다.
그리고 그의 아낌없는 후원에 기대주 선수로 성장하는데..
그러나 그것도 잠시..역도산은 야쿠자의 칼에 비명으로 타계한다.
그후 김일은 각고의 노력으로.. 일본의 강력한 프로레슬러로 성장하고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진 자이언트 바바나 안토니오 이노끼와 함께
일본 프로레슬링계를 리드하며 전성기를 누리는데
그런 그가 돌연 귀국 60-70년대 우리나라 프로레슬링계를 발전시킨다.
역도산과 일본 사람들이 그랬듯..가난하고 힘든 생활을 이어가던 당시 한국인들에겐
김일의 등장과 박치기에 추풍낙엽이 되던 덩치큰 외국선수들을 보며
나를 포함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열을 느꼈을까.....
정말 그랬다..가난하던 시절 김일은 우리 국민들의 영웅이었고..
덩달아 경기가 열렸던 장충체육관과 이광재 아나운서의 목소리..
그것까지도 우리 마음 속에 오래오래 각인되었으니...
당시 레슬링 팬이었던 박대통령이 그를 청와대로 초청..
이말저말 끝에 소원을 물었다~한다.
김일이 말했다..그가 태어난 남도의 작은섬에 전기가 공급되면 참 좋겠다고..
그래서 김일의 고향 섬마을에는 소중한 전기가 들어가고..
김일도 보은으로 소형 발전기 수십대를 나라에 애국한다.
세월은 흐른다.
쉼없이 흐른다.
그러다보니 영웅도 때되면 죽는다.
기자가 김일 죽기전 물었다..
"프로레슬링은 쑈입니까?"
김일이 말했다.
"인생은 드라마입니다..."
드라마와 쑈..
그게 그거인지..아니면 다른거인지~~
*
격동기
근현대사에서
수많은 영웅들이 명멸해 갔습니다.
그 수많은 영웅들중에서 특별히 한두명 꼽으라하면
저는 단연코 국내에서는 이승만,해외에서는 고르바쵸프를 거명합니다.
왜 그리 생각하는지...기회되면 글로 올려 보겠습니다.
*
역도산이나 김일은 파이터입니다.
파이터도 그냥 파이터가 아니고 최고의 파이터죠.
그런데 사실은 저도 파이터입니다.
비록 남들이 인정 안하는 순둥이 무명이지만 그래도 무패를 자랑합니다.
역도산이나 김일은 아시다시피 싸움의 무대가 사각의 링입니다.
사각의 링은 지켜야할 룰이 있고..생존하기 위하여 끊임없는 절제와 체력관리가 요구됩니다.
게다가 홍수환 같은 권투선수들은 15회전을 뛰어야하니
정말 처절하고 극한의 체력이 요구되는 정글의 세계지요.
파이터라도 사각의 링 아닌 그라운드를 무대로 하는 저 같은 경우
특별한 룰이 없습니다..설령 룰이 있더라도 상황에따라 싸우면 됩니다.
기술도 뭐 별게 없지요..그때그때 상황따라 박치기도 하고 무릎으로 가격도 하고..
주변에 있는 각목에 심지어 권총을 사용해도 상대가 악의 무리라면 누가 뭐라하겠습니까..
아무튼 그게 현장의 싸움 방식이고 그라운드 파이터의 운명이겠지요.
그라운드가 무대인 우리네 삶..
삶에 있어서 현실은 교과서와 분명 다릅니다.
첫댓글
그때 그 시절
프로레슬링의 인기는
대단했지요
김일 장영철 천규덕....
아직도 그들의 신비의 묘기는
생생합니다
그러나
프로레슬링은 각본에 의한 쇼라는
장영철의 폭로에
아!
충격적였지요
ㅎㅎ..예
그 폭로로 김일과 장영철은 결별했는데
김일 죽기전 화해했다 하더군요.
홑샘선배님도 사진으로 뵙기에 술 한병 하시면
성룡과 막상막하 취권의 위력이 대단하실 것 같습니다.
합덕 우강 평야 벼 위에 올라있던 사마귀들도 모두나와
저게 뭐야?..처음보는 권법인데 우리 당랑권하고는 조금 다르네...이러면서 수군댈거 같군요..ㅎ
뭔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코 끝이 찡하고
가슴에서 찌징~ 울림이 있습니다.
약하고 힘없는
나라의 백성인 탓에,
한 때, 역도산은 마음에 내재해 있던 설움을
분출하게 한 우리의 영웅이기도 했습니다.
김일도 그랬습니다.
용기와 정의가 살아있는 파이터들은
정신력과 몸에 내재해 있는 멋진 힘을 가졌습니다.
저는 무서워서, 내 일이나 챙기고
가족이나 챙기는 무대의 파이터는 못되어서...
글 잘 읽었습니다.
무대 위 격투기 선수는 아닐지라도
콩꽃님은 날이 갈수록 다듬어지고 강해지는
카리스마가 보통이 아닙니다.
모임 사진에서
그점 여실히 드러납니다..ㅎ
읽어내리노라니 김두한 의원이 떠오르네요.
"형님, 어떤놈이 나쁜놈입니까?"
선배에게 이렇게 묻고 두드려 팼다지요
국회에 똥물을 퍼부은 건 유명한 이야기지만
지금 나타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데 김일선수 이야기인데요
박통이 소원을 물어보니 체육관을 지어달라 했답니다.
그래서 그의 고향 고흥에 가보니 김일체육관이 있어요.
그런데 그곳이 고향인 소띠방의 곡즉전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지방에선 김일선수를 바보로 취급한답니다.
왜냐니까, 섬인 그곳에 전기시설을 해달라고 했으면 영웅취급을 해주는건데
겨우 체육관이어서 그렇답니다.
전기는 그 뒤에 들어왔겠지요.
저는 그 말을 듣고 김일선수를 다시 봤습니다.
어려운 나라사정에 체육관으로 마무리했으니까요.
제가 거꾸로 알았나 봅니다.
저도 전해들은 이야기라서 신빙성에 문제 있을 수 있고..
고흥이 고향인 곡즉전님이나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석촌님 말씀이
사실에 더 부합하는 걸로 알겠습니다.
사실 시골동네 고흥에
그당시 체육관을 건립했다면
그일은 가성비 낮은 잘못된 투자를 한 것 같군요...
흠, 이승만요?
왜 그리 평가하는지 듣고 싶네요
친일을 청산하지 못하고 옹호했고
아직까지도 유지하는데도...
그분이 얼마나 위대한지는
위에서 말했듯 말할 기회가 있겠지요
사실 친일파를 단정하는
기준설정은 너무도 어려운 사안으로
신만이 할수 있는일이겠습니다.
물론 북쪽처럼 독재체제 공산체제에서는 무자비함이 있기에 가능하겠지만...
당시 남한은 신생국답지않게
자유민주주의체제였기에 매우 어수선했고
게다가 남로당세가 70-80%로 워낙 강해서
치안이 엉망이었고..남로당의 폭동..위조지폐 발행등 각종범죄..
이렇듯 산적한 긴급 당면 문제들 해결에 눈코뜰새 없었을테니
친일파니 뭐니 이런 일들은 신경쓸 상황이 아니었을 겁니다.
@가을이오면 흠, 그렇군요...
친일파를 가르는
그것은 신만이 할 수 있는 거군요ㅎㅎ
그럼, 법은 무슨 잣대로 정하나요?
@길위에서 인간이라면 은혜에
최소한 감사함을 표할줄 알아야 합니다
은혜를 모르면 인간이 아닙니다.
답글에서 친일파 기준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제시햇습니다.
그렇다면 댓글자는 동문서답하지 말고 자신의 친일파에 대한 개념 정의라든가
친일파는 이렇게 구분하여 처리하여야한다는 정도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순서이고 도리이고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불온한 패거리들이 실체도 없는 친일파 구호로
나라를 혼탁하게하고 또 거덜내고 있음은 작금의 불행한 현실입니다
@가을이오면 ㅋㅋㅋ실체가 없는 친일파라구요?
댁의 이 글을 sns에 공개해도 되나요?
그리고?
뭔 은혜요?
누가 누구에게 은혜를 베풀었나요?
참나...ㅠㅠ
내 어린 시절 김일. 역도산 이름은 들었지만
관심이 없어서 티브이 중계도 보지 않았습니다.
여자 어린이들은
아무래도 격투기에 관심이 덜했겠죠.
남자 아이들..그리고 어른들은 당시 환호했고 그게 사는 낙이었을 겁니다.
그당시 푸로레스링은 티브이 최고의 인기 푸로 이었습니당
그게 쇼인지 스포츠 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당
손에 땀을 쥐는 경기 이었습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태평성대님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
쑈인지 아닌지는 당사자들이 말 안하니 알수 없는 일이고..ㅎ
국민들은 그저 행복감에 즐거웠습니다.
김일 선수를 생각하면 전 30분에
5원을 내고 TV를 보던 만화방이 늘 같이 떠오릅니다.
좁은 방에 발 디딜 틈 없이 옹기종기 붙어앉아 다함께 박수치며 응원하던 풍경.
영웅을 향한 환호와 찬양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