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숫자를 본다. 우리에게 숫자라는 기호는 이제 없으면 너무 불편해진, 살아가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 되었다. 나는 그 중 0이라는 수에 주목해보았다. 0도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어디서는 볼 수 있는 익숙한 수다. 그래서 이 0이라는 수가 낯설다는 생각은 해보기 힘들지도 모른다.
0은 일반적으로, '아무것도 없다'를 뜻한다. 물이 아예 없으면 '물이 0ml 있다'고 하고, 물건이 없으면 '물건이 0개 있다'와 같이 표현한다. 이렇게 우리가 쓸 때 0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몇 가지 상황에서 0은 어색하고 낯설게 보일 때가 있다.
대표적인 예시 하나로, 길이 0m라는 말을 생각해보자. 과연 이 세상에 0m라는 것이 존재할까? 우리의 세상에서 0m, 즉 폭 또는 길이가 아예 없는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작은 것을 측정해도 그 길이는 0보다는 길 것이다. 또는 우리는 점을 크기도 길이도 없는 것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즉 점은 정의 상 0m라고 말할 수 있는데, 우리가 종이에 점을 찍는 순간 그 점은 크기와 길이를 가지게 된다. 즉 0m는 우리는 말하고 그릴 수 있지만 실제로 0m는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수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0은 더욱 낯설게 느껴진다. 과거에 수학을 배웠던 기억을 조금 가져오면, 정수라는 표현이 있었다, 정수는 양의 수를 표현하는 자연수와 자연수 앞에 -를 붙인 음수, 그리고 0으로 구성되어있는데 0은 자연수, 음수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고 그 자체로 하나의 분류가 된다. 그 뿐만 아니라, 모든 정수는 짝수 또는 홀수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짝수는 보통 2의 배수라고 정의하고 0×2이기 때문에 0을 짝수로 정의하는데, 일부 수학자들은 아직도 0은 홀수라고 주장하는 만큼 0의 홀짝은 논란이 있는 상태이다. 이렇게 0은 정수임에도 어디에도 속하기가 애매한, 생각에 따라 낯선 수가 될 수 있다.
'익숙하지만 낯설다'라는 주제에 대해 고민하면서, 내가 삶을 살아오면서 아무 의심 없이 평범하게 받아들이던 것이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낯설음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이 낯설음을 무시하고 익숙함을 가지고 살고 때로는 낯설음을 받아들이고 바꿔가는 태도를 가지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댓글 전공에 맞추어서 과제를 잘 해낸 것 같아요. 아시다시피 '폭 또는 길이가 아예 없는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에 고대인은 0이라는 숫자를 쓰지 않았습니다. 아라비아인들에 의해 유포된 이 0은 수학에서 엄청난 진보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말에서는 '0ml가 있다' 정도에 해당하는 말이 있습니다. '비어 있음'이라는 말인데요. 빈 상태는 아무 것도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서구에서는 'empty'라는 말로 표현하지만, 우리는 '비다', '비우다'라는 원형으로 쓰기도 하지만, '비어 있다'라고 쓰기도 합니다. 빈 상태라는 뜻이겠지요. 서양철학에서는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에게도 '비어 있다'라고 하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있는 것은 모두 일정 정도의 장소를 가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동양에서는 허(虛)와 공(空)처럼 비어 있는 상태에 대한 개념이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수학은 공리이므로, 이 점에 대해서도 생각을 확장해나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