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가장 ‘익숙한 낯섦’은 가족과 집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23살인 지금까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가장 많이 만났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래서 어쩌면 내 가족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보다 더 익숙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너무 자주 붙어 있어서, 거의 매일을 봐서, 너무 익숙해서, 익숙하다는 생각조차 안 해보았던 것 같다. 익숙함을 넘어서 당연함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당연한 나의 존재들이 시간이 지나고, 내가 나이가 들고 생각이 많아져서일까 가끔씩 다르게 보일 때가 요즘 들어 많이 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낯설 게 느껴질 때가 있다.
요즘 들어서는 특히 동생들이 많이 낯설 게 느껴진다. 나에게는 여동생 둘이 있다. 둘째는 나와 2살 차이, 막내는 나와 5살 차이이다. 마냥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둘째 동생은 고등학교 졸업 후 좋은 회사에 취직했고, 1년차 직장인이다. 키는 나보다 커도 생각은 아직 한참 어리다고 생각한 동생이 가족 여행을 와서 회사에서 온 업무 전화를 받을 때, 나도 모르는 용어를 막 내뱉는데 꽤나 낯설게 느껴졌다. 내 옆에선 이렇게 까불까불한 동생인데 내가 생각했던 여느 직장인처럼 전화를 자연스럽게 받으니, 괜히 내가 동생처럼 느껴졌다. 익숙하지만 낯설었다. 가장 익숙한 사람이어서였을까 더욱이 낯설게 느껴졌다. 다음은 우리 막내. 다른 집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이 차이가 꽤 나다보니 어렸을 때부터 업어주고, 먹여주고, 유치원도 데려다주고, 데리러가고 막내 동생을 특히 끔직이 아꼈다. 더더욱 내 아기처럼 느껴지는 막내가 언제 낯설었을까 생각해보면, 처음으로 혼자 지하철을 탔을 때, 쇼핑몰 온라인 결제를 했을 때 등,, 별 거 아니지만 마냥 아직 유치원 다니던 어린 아기처럼 생각해서일까 이런 작은 일들을 해냈을 때, 익숙한 아기가 낯선 청소년으로 느껴졌다. 내가 동생들에게서 느끼는 익숙한 낯섦은 ‘동생들의 성장’인 것 같다. 너무 당연하게 내 옆에 있다보니 집 안에서의 시간은 멈춰있는 듯이 느껴졌던 것 같다. 집 밖에서는 사회의 직장인이었고, 어엿한 고등학생이었는데 그저 ‘내 동생’이라고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요즘은 아빠가 낯설게 느껴진다. 어렸을 때면 ‘아빠’하면 떠오르는 게, 든든하다. 키가 크다. 힘이 세다. 그런 게 먼저 생각이 났다. 지금은 가끔, 아빠가 하지 않던 화분을 애지중지 키울 때, 갑자기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흘릴 때, 아빠는 아들이 없어서 외롭다고 말할 때,, 항상 ‘강하다’라고만 생각했던 아빠의 섬세함과 슬픔과 외로움을 보게 되었다. 아빠가 요즘 많이 이상하네,, 낯설게 느껴졌다.(아빠는 여성호르몬이 많아진 것 같다고 하신다) 한 드라마에서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니까 이해해줘" 라는 대사를 들은 적이 있다. 이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아빠도 40대가 처음이고 50대가 처음이겠다..'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익숙한 낯섦은 집이다. 나는 육지에서 제주로 내려와 있다. 그래서 집에는 한 달에 한 번, 보통 바쁘다는 이유로 두 달에 한 번씩 가는 것 같다. 집과 떨어지기 전엔 몰랐던 것이 집을 오래 나와보니 분명 익숙했던 것들인데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공항에서 비행기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아파트 입구까지 왔을 때, 익숙한 길을 따라 걷게 된다. 하도 많이 왔다 갔다 해서 아무 생각 없이 걸어도 잘 맞게 가는 그런 길 말이다. 그런데 매번 1층 현관에서 비밀번호를 누를 때, 왜인지 익숙함에서 낯섦이 느껴지는 듯하다. “뭐지, 왜 이렇게 오랜만이지” 손은 비밀번호를 기억하지만, 왠지 마음에 ‘낯섦’이 떠오른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타고 오르는데까지 살짝 낯설다. 그리고 집 문을 열었을 때, 특히 오랜만에 집에 갔을 때, 집에 들어서자마자 처음 느낄 수 있는 것은 우리 집 냄새이다. 내 기숙사 방에서는 나지 않는 집 냄새가 있다. 집에 있을 땐, 너무 익숙해서 집 냄새가 있는지조차 생각해본 적이 없다. 오랜만에 집에 가면 순간의 낯선, 여기서의 낯섦은 처음 마주해 낯설다기보다 오랜만이여서 낯설게 느껴지는, 그 냄새. 하지만, 이는 금새 익숙함으로 바뀐다. “하,, 집 냄새”하고 숨을 흐-읍 마시고 내쉬게 된다. 나에게 익숙한 존재들의 집합된 냄새여서 그런걸까? 이내 편안해진다. 마치 아기들의 애착인형처럼 말이다.
사진은 우리 집 현관문인데, 가족과 집의 추억이 가득 담겨있는 공간이라 첨부해보았다.
첫댓글 현관이 아기자기하군요. 흔히 익숙하다라고 하면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사람, 사물, 공간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래서 집과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갔군요. 동생은 항상 어리게만 보이지요. 이렇게 익숙한 면만 보게 되면 동생의 다른 모습, 가치를 알지 못하게 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동생의 다른 면모, 가치에만 집중할 필요는 없습니다. 동생은 동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동생이기 때문에 뭘 해도 어리게만 보인다면 그것도 문제이겠지요. 내 동생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윗사람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동생의 그러한 면을 종합적으로 볼 때, 동생의 고민, 가치 등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익숙한 공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전유하고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할 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되던 것을 조금만 관점을 다르게 하면, 전혀 다른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기도 하고, 아파트 주민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세계관이 조금씩 확장되고, 각각의 삶이 좀 더 가치있게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