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옛날이여!
나는 일제로부터 독립하기 2년 전인 1943년 3월에 태어났다.
이 사진은 돌 때 찍은 거라니
1944년 이맘때쯤일 것이다.
내가 태어나기 2년 전,
일본은 미국 진주만을 폭격했다.(1941년 12월)
비행기 4백 여대를 동원해 미국을 서늘하게 했던 것이다.
다음 해엔 동남아에서 싱가포르를 점령하기도 해
승승장구하는가 했지만
미국이 전열을 가다듬어 일본을 괴멸시킬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세계사가 요동치는 가운데에 태어났고
돌도 맞아 기념사진도 찍었다.
내 아버지는 한양공고를 나오셨다(당시 한양중)
그래서 시대에 휘말리지 않고 평탄하게 엔지니어 생활을 하셨다.
그러나 그건 전쟁물자 만드는 조병창(造兵廠)이었다.
그래서 나를 친일파 자손이라 손가락질해도 할 말이 없다.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내 아버지가 멘토로 섬기던 일본 기사가 말하길
"일본은 결국 망할 거야."라고 하더란다.
그 말을 내게 들려주셨더라면
더 밝은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을 텐데~
요동치는 국제정세가 염려되었던지
나는 으등거리고 사진을 찍은 것 같다.ㅎ
미당 서정주는 일제 말기에 황국시민을 노래했다.
그게 친일로 낙인찍혀 자신을 괴롭혔다는데
어느 땐가 술회하기를
"일본이 그렇게 쉬 망할 줄은 몰랐지."
그랬다더라.
그분에 대해 내가 무어라 말할 자격은 없다.
허나, 앞날을 내다볼 혜안이 없다면
이리저리 휩쓸릴 수밖에 없기도 할 게다.
그러나 무지렁이로 살 수는 있다.
1945년 광복이 되자 미군(美軍)이 진주했다.
그러자 일본의 조병창을 미군이 접수했고
내 아버지는 그곳에 취업했다.
그런 병력으로 미국이 우리나라를 방위했는데
이걸 이유로 나를 친미파 자식이라 말해도 할 말은 없다.
당시 나의 할아버지는 시골에서 존재 감 없이 살아가셨다.
그래서 친일파도 친미파도 아니요
그저 공자왈 맹자왈이나 하시다 돌아가셨다.
광복이 되자 나라를 재조직하고 일꾼을 모집해야 하는데
나의 할아버지는 거기에 아무 쓸모가 없었다.
다만 나의 아버지는 현대식 교육을 받았기에
나라의 부름을 받고 경찰에 투입되었다.
광복의 기쁨과 혼란이 거듭한 가운데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나의 아버지는 전쟁터에 투입되었다.
이걸로 보아 나를 애국자 자식이라 해도 될까?
맥아더의 인천상륙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나라는 적화통일되었으리라고 한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나는 어떤 자식이 되었을까...?
허나, 시류에 쉽게 영합해 장난치는 인사들이
결국은 망하고 말기도 하더라.
시끄러운 이 시국에 나는 어디에 서야 하나...?
괜한 걱정 같지만 우크라이나를 보면
심각하기도 하다.
아래 사진은 미군 진주 때에 찍은 거다.
첫댓글
내포된 글 속의 뜻이
무엇을 의미함인지 알겠습니다.
정치 놀음으로,
그들의 입에 오르는 것이
진정한 국민을 위한 것인지
국민 화합을 위함인지요...
일본 선생이 가르치는
공부도 하지 말아야 했고
직장도 버려야
애국하는 것인지요.
정치논쟁이 될까봐 말을 아끼지만
그래도 글의 뜻을 알아주시니 고맙네요.
여기서 콩꽃님도 더러 욕을 먹지요.
그러면 콩꽃님보다 더 잘 할 사람, 봉사정신이 있는 사람 나와보시라 해요.
그러면 도와드려야지요.
그렇다고 분탕질이나 하는 사람이면 안 되겠지요.
석촌 선배님의 돌사진이 귀엽습니당
그래서 나도 우리 5060에서 최초로 내 돌사진을 올립니당
나의 아버지는 케이대를 나온 그 당시 최고 엘리트 였었습니다
그리고 51세로 돌아가실때 까지 고위급 직장인 으로 근무를 했었습니당
나의 아버지는 인간적으로나 경제적인 능력 면으로나 훌륭한 분이었습니당
그런데? 너무 일찍 돌아가셨으니 나에게는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지용
이상 나의 아버지 이야기도 해보았습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그러셨군요.
그런데 돌사진에서 지금의 모습이 느껴지네요.ㅎ
친일, 친미, 애국자 같은 단순 레이블이 역사적 상황과 개인의 운명에 의해 만들어진 부수적 평가일 뿐이며,
일반적으로 대다수의 개인이나 가문은 그저 시대의 흐름에 따라 휩쓸릴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 이유로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개인의 선택은 시대적 상황과 환경에 의해 좌우되며, 후대의 잣대로 단순하게 평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역사와 정치적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개인의 입장과 선택에 대한 성찰을 중심으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그리고 단순한 레이블에 편승하지 않고
진정한 의미의 책임 있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라는 고민으로 읽었습니다.
울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 탄광에 징용되어
열악한 환경으로
살아 돌아오지 몰할 것 같아
어머니(내 할머니) 돌아가셨다고
전보치라 하셔서
무사히 귀국하셨다는
웃지 못할 코미디를
연출하는...
육이오 때는
포섭 대상 1호로 찍혀
수복 때까지
마루 밑 땅굴에서
기거하셨다고 함
지금은 참 좋은 세상
자유가 넘쳐 문제
모자 쓴 석촌님의 돌 사진 정말 귀여워요.
그때 돐사진는 대부분 한복 입은 모습인데
석촌님의 돌 의상은 조금 다르군요.
우리도 지금 국내외 혼란의 한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선배님 인생사가 역사네요.
식민지와 내란을 겪으면서
상처없는 영혼이 어디 있겠는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버텨내신 선배님께 파이팅이예요.
수필방 정모에 참석을 못해서
죄송해요.
친구들이랑 열흘동안 놀러갔거든요.
실체도 없는 친일파..
개념정의도 애매한 친일파..
그저 불온한 세력이
국가에 위해를 가하는
불순한 언동이고 ..구호일뿐으로 저는 판단합니다.
얼마전 이야기입니다만
어느 장관이 친일파라는 공격을
국회라는 패륜들의 집합소에서 계속 당하던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분 선대가 의병장 출신 가문이었습니다.
그런데..그런후에도 공격은 계속되더군요.
국적이 어디냐는둥...뭐냐는둥..정말 징글징글한 것들이드만요..
저는 친일파 운운하는 자들 인간으로 안봅니다.
일제 강점기 국내에 거주하며
일본의 시책에 순응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징용간 피해자들도 따지고 보면 일본 경제에 도움을 줬다고 할때
그렇다면 그분들도 친일파인가요?
친일파라는 의도가 불온하고 불순한 이야기에 ..
그러니까 아마도 제글에 달린 누군가의 댓글보시고 석촌님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신 것 같은데..ㅎ
모쪼록
평온한 저녁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다녀가신 분들 모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