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의 화쟁 사상과 현대의 다원주의
2018101249 윤리교육과 송진수
현대 사회에서는 다양한 가치관, 주관, 문화가 뒤섞여 다양한 결과들이 나오며 그만큼 더 다양한 문화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회를 살아가면서 자신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지 고민하고 살아간다. 어떤 세대는 새로운 것을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도 하고 어떤 세대는 자신이 속한 주류 문화의 전통적 방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기도 한다. 또 어떤 세대는 자신이 고수해 온 문화의 전통성만을 고집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세대 속에서 어떠한 가치관을 가져야 하는가?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기본적 입장은 다원주의를 기반으로 한다. 다원주의란 다양한 가치관, 이념, 문화 간의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한 구성원의 공존을 추구하는 태도로서 앞서 말한 새로운 것을 수용하는 데 있어 가장 효과적이라 말할 수 있는 입장이다.
이러한 다원주의에서 추구하는 것은 결국 다양한 가치관의 공존이며 모든 사람의 의견은 평등하게 중요하다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 즉, 다원주의의 핵심은 다양한 가치관이 하나의 문화 안에서 통합될 수 있음을 전제하고 있으며 융화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문화의 형태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지만, 다른 동양적 사상이 바로 원효가 제시한 화쟁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원효의 화재이란 무엇인가? 중관파와 유식 파가 대립하고 있을 때 원효는 그 대립을 다양한 불교 종파의 이론이 일심을 각기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렇기에 이러한 대립은 일심으로 돌아가 조화를 이루면 진리 전체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화쟁 사상을 활용하여 다원주의를 개선하면 다원주의가 받는 비판인 어디까지 수용하고 어디서부터는 수용하지 않는지 그 기준이 오로지 엘리트 즉, 기득권층의 지배를 받는 것 아닌가 하는 비판에 대해 반박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 다원주의가 무차별적으로 모든 것을 수용하는 것이라는 극단적 문화 상대주의를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며 어떤 지배 세력의 논리에 따라 수용하는 기준을 설정하는 지배 논리로서 작용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문화는 서로 융화될 수 있으며 그 기준은 문화가 가진 본래의 의의가 서로 통합될 수 있기에 통합이 가능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서로 다른 종교의 융합이 있을 것이다. 종교란 그 특징상 서로 융합하기 상당히 어려운 점이 있다. 대립하고 경쟁하는 것이 다른 종교로서 익숙한 입장일 것이다. 그러나 그 두 종교가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면 그러한 부분에서 두 종교는 대립하기보다는 힘을 합칠 수 있을 것이다. 화재에서 보았듯 결국 바라는 목표가 하나이고 바라보는 각자의 입장이 다른 것으로 생각한다면 두 종교가 완전히 통합하기는 어려워도 목표를 향해 가는 데 있어 대립할 이유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힘을 합치는 것이 더 올바른 방향일 것이다.
끝으로 원효의 화쟁사상과 오늘날의 다원주의는 그 바탕의 차이가 있기에 다른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주목하고자하는 것은 상당히 많은 부분이 맞닿아있다는 점 이다.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논쟁과 갈등들은 각 이익집단의 이익추구간의 갈등도 분명히 있지만 개중에는 결과적으로 한 방향을 지향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화쟁의 입장으로 그 갈등을 대할 때 우리는 더욱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첫댓글 화쟁은 대립적인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 실제로는 오케스트라처럼 조화를 이루는 관계라는 점을 주의환기시키는 용어입니다. 따라서 쟁송, 곧 다투는 것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들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대개 우리는 이 화쟁을 통일된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전체주의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것을 허용하되, 그것이 어느 한 쪽에 의해 파국에 이르거나, 서로 조화되지 않아 시끄러운 소음으로 되지 않도록 애쓰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케스트라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다른 악기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악기 소리를 듣고 조율해야 하는 것이지요. 너무 소리가 크다면 줄여야 하고, 너무 작다면 키워야 합니다. 상호주의를 넘어서 다문화상생, 또는 다원주의를 오늘날 표방하는 이유도 같은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논쟁과 갈등을 없애는 방법은 서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