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3216 경제학과 유현우 2024년 10월 24일
일상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
낯선 철학 하기
일상은 반복적이다. 보통 사람들은 저마다 일상 루틴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의도해서 만든 루틴일 수도 있고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루틴일 수도 있다.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서 비슷한 시간에 밥을 먹고 비슷한 시간에 잠에 드는 것처럼 단순한 것이라도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코 반복적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의 일상은 매 순간 다르다. 그것을 자각하고 일상을 보내본다면 일상에서 당연하게 느껴지는 모든 부분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우리는 하루하루가 비슷한 일상이라고 느낀다. 커다란 이벤트가 있지 않은 한 어제와 오늘이 비슷하다고 느끼고 오늘과 내일이 비슷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과 어제는 다르며 오늘과 내일도 다를 것이다. 우리는 어제 있었던 일을 평가할 수는 있지만 내일 있을 일을 예측할 수는 없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우리 일상에서 익숙함이 사라질 것이다.
나는 일상이 반복적이라고 생각했다.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서 비슷한 시간에 학교에 가고 비슷한 시간에 집으로 향한다. 나름대로 일상의 루틴이 잡혀 있다. 일상에서 모든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나의 일상이 반복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나의 일상에서 당연하게 보이는 것은 사라졌다. 아무 생각 없이 먹던 음식을 곱씹어 먹다 보면 항상 먹던 그 음식이, 당연했던 것이 낯설게 느껴진다. 평상시에 듣던 음악을 바꾸어보고 평상시에 가던 길을 다르게 가보는 것들로도 일상의 낯섦을 느낄 수 있다.
일상이 가장 크게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은 바로 일기를 쓸 때이다. 일기를 쓰면서 하루를 정리하다 보면 결코 반복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일상을 정리하다 보면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이지만 익숙함에 속아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일상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었던 간단한 세 가지 예를 생각해 보았다. 물론 나의 경험이다.
첫 번째는 작게 본다면 사소한 것들만 바뀌어도 일상의 익숙함이 사라진다. 예를 들어 항상 일찍 일어나던 시간에 늦잠을 잔다던가, 항상 강의를 듣던 시간에 다른 무언가를 한다면 말이다. 항상 익숙했던 일상이 낯설게 느껴진다. 내가 직접 피부로 느끼고 살아오던 일상이기 때문에 더욱 쉽게 느낄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조금 크게 본다면 나의 일상은 평화롭지만 다른 이의 일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순간이다. 예를 들면 전쟁과 식량난으로 고통받는 이의 일상을 보게 되었을 때이다. 내가 직접 피부로 느끼고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나의 평화로운 일상이 낯설게 느껴진다. 나의 이 평화로움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감사해짐과 동시에 낯설어진다.
세 번째는 마지막은 더 크게 보았을 때다. 바로 죽음에 대해서다. 나는 큰 착각을 하면서 살아간다. 삶이 끝나지 않는다는 착각을 하면서 죽음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고 살아간다. 죽음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인다면, 혹은 사람의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당연한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면 나는 일상이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죽음을 이해하거나 내가 지금 당장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 생각 하게 된 이유는 두 번째에서 말한 예를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일상이 낯설게 느껴지고, 익숙하게 생각하고 여겼던 것들이 낯설게 느껴질 때면 이질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낯섦을 하나씩 관찰하다 보면 일상이 즐겁게 느껴진다.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면서 웃고 내일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가끔은 익숙한 내 일상을 낯설게 보고, 낯설게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첫댓글 유가의 경전인 사서 가운데 중용에서는 '일용일상의 덕'을 강조합니다. '일상의 힘', '일상을 살아가는 힘'이라고 번역할 수 있답니다. 중(中)은 '딱 들어 맞는다', '진리', '본질'을 의미하고, 용(庸)은 '평범하다', '모자라다'는 뜻으로 일상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일상을 벗어난 이상을 꿈꿉니다. 그것을 성취하면, 그곳에 이르게 되면, 부족한 현실이 해결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마치 '행복'을 뜻하는 파랑새를 찾아나선 치르치르와 미치르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행복은 일상을 벗어난 어떤 것에 있지 않고, 그러한 일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 그리고 실제로 살아가는 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치르치르와 미치르는 집에 돌아와서 파랑새가 본래 집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물론, 일상은 우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뿐더러, 대개는 배신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실존철학자들은 세계가 부조리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부조리하지만 그곳에서 살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결국 우리는 기대를 가지면서 일상을 제법 꽤 잘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