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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 장소와 시기: 2012년, 도쿄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일본 동부 군마현에서 1,500년 전 하루나 화산의 분화로 순식간에 덮인 마을 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04:12]. 이탈리아의 폼페이처럼 시간이 멈춘 듯한 상태였습니다.
인골의 특징: 마을 발굴 중 갑옷을 입은 채 멈춰버린 남자의 인골이 발견되었습니다 [06:31]. 일본 고고학계에서 갑옷을 착용한 채 발견된 인골은 처음이었습니다 [06:49].
미스터리: 화산 폭발 당시 사람들은 마을 반대 방향으로 도망갔지만, 이 남자는 오히려 화산을 바라보며 마을로 돌아온 자세로 발견되어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08:27].
2. 백제와 연결되는 증거
갑옷 기술: 남자가 착용했던 철제 갑옷과 투구는 당시 일본에서 최고 지위의 인물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09:36]. 특히, 철 조각을 이어 만든 비늘 갑옷(찰갑) 제작 기술은 당시 한반도에서 전해진 최신 기술이었습니다 [10:17].
동물뼈 갑옷: 남자의 주변에서 발견된 둥글게 말린 동물뼈 갑옷은 그 형태가 백제의 왕성 중 하나였던 서울 몽촌토성에서 발굴된 유물과 매우 흡사하여 [12:36], 이 고급 문화의 뿌리가 백제일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13:05].
신체 분석: 인골 고고학적 분석 결과, 이 남자는 40대 남성(키 164cm)으로, 허벅지 안쪽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흔적이 있어 오랫동안 말을 탄 기마 무사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15:36]. 또한, 얼굴 복원 결과 길고 좁은 얼굴형으로 일본 토착민과는 다른 특징을 가졌습니다 [17:17].
3. 백제의 말 기술과 일본의 발전
말 문화의 전래: 고대 일본에는 말과 소가 없었으며, 말은 한반도에서 전해졌습니다 [24:00]. 일본서기에는 백제왕이 아직기를 시켜 좋은 말 두 마리를 일본에 전한 것이 시작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4:14].
백제인 이주 집단: 오사카 지역의 유적지에서 말 관련 유물과 함께 다량의 한반도식 생활 토기가 출토되어 [26:54], 이 지역의 말 사육장이 백제계 이주민 집단에 의해 운영되었음을 증명했습니다 [27:28].
군마의 중요성: 이 갑옷 입은 남자가 살았던 군마현은 이름부터 '말의 땅'이라는 뜻으로, 넓은 평지가 있어 대규모 말 사육의 핵심 지역이었습니다 [39:34].
역할: 남자의 치아 분석 결과, 그는 서쪽(오사카 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성인이 되어 군마로 이주했습니다 [41:43]. 그는 최고급 갑옷을 입은 것으로 보아, 야마토 왕권이 백제 이주민과 손잡고 세력을 확장하는 시기에 대규모 말 생산을 위해 파견된 최고 지도자나 특사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42:56].
4. 백제 말을 탄 남자의 마지막
최후의 행동: 남자가 마을로 돌아온 행동은 지배자로서 마을을 지키고 화산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한 책임감 때문이었을 수 있습니다 [44:48].
증언: 화산 아래에서 최후를 맞은 이 남자는 1,500년 만에 세상에 나와, 기록 너머에 실제로 존재했던 고대 한국과 일본 사이의 특별했던 인연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45:49].
첫댓글
아 ~~
이 외에도 일본 황실에서 숭늉을 먹고 어머니를 오모로 부르고 한국계 풍습이 전해지고 있죠. 여러모로 도래인계열로 의심해볼만한 증거가 나오죠 이방자 여사의 말에서도 교차검증이 가능한것도 있구요
사실 소화 천황 본인이 황실이 조선땅에서 나왔다고 인증한 적도 있으니..
최근에 야마토왕이 백제혈연 운운하는 것은 주의해서 들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냥 심플하게 몽골과 고려가 혼인관계를 맺은 것과 유사하다는 생각이고 외교적 동맹 이상의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또한 그들이 주장하는 고대일본 지배층의 기마민족이동설은 이 발견으로 깨진 것으로 보아야할 것 같습니다. (역사적 확인으로는) 근초고왕께서 아직기를 통해 2마리의 말을 야마토왕에게 보낸 것을 시작으로 고대 일본에 백제출신 기마집단이 말을 키우고 퍼뜨렸다는 것이 이번 군마현의 유적 발견으로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이네요.
@Red eye 아키히토 천황이전에 소화 천황때 교수랑 인터뷰를 진행한 내용에서 나온 겁니다.
사실 일본 황실은 이미 그들 신화에서부터 한반도 남부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는 점에서 그들 출자에 대해서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6.01.13 12:24
음...난 사실, 백제와 야마토의 관계는 그런 풍속 한두개로, 심지어 기마술 문제로 설명하는건 부족하다 여겨집니다.
중세유럽의 동군연합 비슷한게 있는듯 한데, 그건 좀 설명이 복잡하더군요. 하...
@밸틴1 일본 황실 선조들의 신화 특히나 스사노오 나니기 천일창 신화를 보면 한반도 남부에 대한 애착이 보여서 이들의 출자가 한반도 남부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카롱 나도 덴노가문의 출신지가. 한반도 모처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있는데.....
좀 더 체계적으로, 대대적인 조사가 필요하단 생각입니다.
@밸틴1 일본 황실을 조사하면 어느정도 단서가 잡히겠지만 요원하겠네요...
@마카롱 네. 일본 극우들이 그 점을 이용해서 ‘고토회복’ 운운하는 이론거리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냥 저는 오래전 한반도를 통해 대부분 일본땅으로 건너간 조몬인들처럼 조몬인들 이후에 한반도를 거쳐서 그냥 들어간 부류로 보는 입장이고 백제보다는 오히려 가야국 사람들과 더 친숙하고 교류가 더 많았었더랬죠.
@Red eye 아, 죄송합니다만 그런견해--고토회복의 빌미로 쓸 가능성이 있다도 수십년전부터 관측되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일본이 민주주의 국가냐? 팩트를 악용해 독재국가, 침략국가로 변신하려한다."라고
받아치면 된다 생각합니다.
팩트는 그 자체로 존중받으면 되는데, 그것을 과몰입하거나 악용하는 부류들(환빠같은이들)이 문제니까요.
"민족의 영광" "군주를 사회의 정점에 놓기" "유교의 족보중시" 같은 쇼비니즘, 군주제의 유습이 이런 고토회복같은 엉뚱한 주장의 근원입니다. 난 연구를 통해 이런 그릇된 생각들을 학자들이 쓸어버려야한다 생각합니다.
같은 경우로 고려(고구려)의 영토를 조금만 넓게 잡으면 앞뒤안가리고 국수주의라고 하는 경우
백제와 동남아지역 교역로문제도 고고학, 문헌고찰이 없는 상태에서 국수주의라 몰아부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난 일요일에 KBS1 에서 재미있게 봤었죠
최근 가야사들이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어서 고대사에 더욱 관심이 생겼는데 2012년 일본 군마현에서 발견된 백제출신의 갑옷입은 사람 발견이 더욱 눈에 띄었네요.
@Red eye ㅇㅇ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