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우스 산/밴쿠버와 태평양을 한눈에 조망하는 그라우스 산
죽기 전에 캐나다에서 꼭 가봐야 할 곳 글·사진 이남기 사진작가 | 캐나다 통신원 boriwool@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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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라우스 전망대에서 북쪽으로 보이는 더 라이온스(The Lions). 동봉과 서봉으로 이루어진 라이온스는 밴쿠버를 대표하는 봉우리 중 하나이다. |
흔히 캐나다 하면 로키 산맥부터 떠올리지만 서부 태평양 연안을 따라 형성된 해안산맥(Coast Mountains)도 그에 못지않은 명산들을 품고 있다.
새롭게 시작하는 ‘밴쿠버 명산 순례’는 알래스카에서 시작해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 남부 프레이져 강(Fraser River)까지 장장 1600km에 걸쳐 200km의 폭을 가지고 이어지는 해안산맥에 자리 잡은 밴쿠버 인근의 명산들을 캐나다 현지 통신원을 통해 소개한다.
캐나다는 분명 매력적인 나라임에 틀림없다.
그 넓은 땅덩이에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대자연이 존재한다는 것은 좁은 땅덩이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겐 일종의 축복으로 여겨진다.
어디를 가나 푸른 녹지가 펼쳐지고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태고의 정적이 감도는 나무숲이 우릴 반긴다.
거기에 끊임없는 개발의 유혹 속에서도 가능하면 대자연의 원시성을 지켜내려는 이곳 사람들의 노력이 돋보인다.
캐나다 서쪽에 있는 도시, 밴쿠버(Vancouver)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도시이다.
서부 캐나다를 대표하는 도시이며, 2010년 동계 올림픽 개최 예정지이기도 하다.
흔히 산 사람들에겐 밴쿠버를 캐나다 로키로 가기 위한 관문 정도로 일컫지만, 여기에도 뛰어난 명산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로키에는 아름다운 설산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반면, 해안산맥에 속하는 이곳 산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그 아름다움을 뽐낸다.
밴쿠버 가까이에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산들이 몇 군데 있다.
첫 번째로 ‘ 벤쿠버의 절정(The Peak of Vancouver)’이라 불리는 해발 1250m의 그라우스(Grouse) 산을 소개한다.
그라우스를 첫 번째로 소개하는 이유는 도심에서 가깝다는 입지 조건 외에도 산 하나를 전략적으로 개발해 훌륭한 레저 공간으로 변모시킨 점 때문이다.
연중 어느 때나 이곳에 오르면 등산뿐만 아니라 각종 아웃도어 활동을 편리하게 즐길 수 있다.
물론 이런 방식의 개발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도 있을 수 있겠지만, 산을 이렇게 집약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오히려 산림 훼손을 줄이는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라우스에서는 등산과 산악 마라톤은 기본이고 여름엔 헬기 투어, 패러글라이딩, 벌목꾼 공연이나 생태 탐방을 즐길 수 있고, 금요일 저녁이면 콘서트도 열린다.
겨울철엔 연평균 약 3m의 눈이 내리는 탓에 스키와 스노보드, 스노슈잉(Snowshoeing), 스케이트, 눈썰매까지 즐길 수 있다.
특히 12월에는 산타클로스와 순록이 끄는 썰매를 볼 수 있는 이벤트도 마련한다.
그라우스엔 스카이 라이드(Sky Ride)라 불리는 케이블카가 매 시간 15분마다 운행을 한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레스토랑과 카페, 극장, 장비점, 선물가게, 원주민 조각상, 야생동물 보호구역 등이 있어 산책이나 데이트에도 좋다.
밴쿠버 산꾼들 화제의 중심 GG 트레일 코스 그러나 등산객들에겐 케이블카로 산을 오른다는 것 자체가 그리 썩 개운치가 않다.
그런 사람들을 위하여 GG라는 트레일 코스가 개발되어 있다.
GG는 ‘그라우스 그라인드(Grouse Grind)’의 약자로, 2.9km의 길이에 853m의 고도를 올라야 한다.
지난 1월에 캐나다 내셔널 포스트지가 ‘죽기 전에 캐나다에서 꼭 가봐야 할 100곳’을 선정해 발표했는데, 이 GG를 걸어올라 전망대에서 밴쿠버를 내려다보는 것이 64위를 차지했다.
그 정도로 GG는 유명세를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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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야를 가렸던 구름이 조금씩 걷히며 모처럼 밴쿠버 시내 모습이 나타난다. 태평양으로 나가는 화물선 한 척이 유유히 바다를 가른다 |
원래 GG는 운동선수들의 체력단련장으로 사용하던 것을 일반인들이 이용하게 되면서 등산객들이 몰려들었다.
GG를 매일 오르는 마니아들이 생겨나 여름철이면 하루 수백 명씩 GG를 오른다.
웬만한 산꾼이라도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가 소요된다.
이곳 등산객들에게 GG는 단연 화제의 중심이다.
서로 초면인 사이라도 GG를 몇 분에 오른다고 기록을 대면 금방 맥주잔을 부딪는 친구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백두대간을 종주한 사람들이 느끼는 동류의식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걸어 오른 사람들에게는 그 정직한 발품에 대한 보상인지 하산시 케이블카 요금으로 5$를 받는다.
GG에는 트레일 출발점과 도착점에 설치해 놓은 측정기를 이용해 자신의 기록을 잴 수가 있다.
칩을 내장한 ‘서미트 시커 카드(Summit Seeker Card)’를 구입해 이 두 곳의 측정기에 대면 기록이 측정된다.
그러면 이 GG의 공식 기록은 과연 얼마일까. 남자는 작년 9월에 열린 ‘제15회 Grouse Grind Mountain Run’ 대회에서 기록이 갱신되었는데, 밴쿠버에 사는 미셸 심슨(Michael Simpson)이 26분 26초의 대기록을 세웠다.
여자는 2002년 같은 대회에서 켈리 마타울(Kelly Matoul)이 세운 32분 54초가 최고 기록이다.
가히 산을 날아다니는 수준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GG와 그라우스를 취재하기 위해 밴쿠버 한인 산우회의 일요산행을 따라 나섰다.
이 산우회는 1997년 창립된 교민 최초의 산악모임으로 그 동안 교민들을 자연으로 이끄는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혼자서도 언제나 올 수 있는 곳이라 산행에 참석한 인원이 그리 많지는 않다.
오늘 산행을 이끄는 이성준 산행대장은 GG를 39분에 주파한 건각의 소유자이다.
지난 여름, 나는 말로만 들어오던 GG를 처음으로 찾았었다.
도중에 한번도 쉬지 않고 죽을힘을 다해 올랐건만 58분에 간신히 턱걸이 했던 기억이 난다.
폭설로 폐쇄된 트레일, 자기 책임 아래 올라가라 겨울철에 눈이 쌓이기 시작하면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보통은 트레일을 폐쇄한다.
오늘도 역시 트레일 폐쇄라는 안내판과 함께 철망에 달린 문은 굳게 잠겨 있다.
그렇지만 옆길로 들어서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제재가 없다.
대신 스스로의 안전은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
이 정도에 기죽을 산 사람들이 아니지 않은가.
여름철 그리도 부산했던 트레일에 인적이 사라져 여유롭기만 하다.
울창한 나무에 시야까지 가리니 어두침침하고 적막하기만 하다.
거기에 날씨는 왜 이리 변화가 심한지 모르겠다.
빗방울을 뿌리던 구름이 잠시 흩어지며 그 사이를 햇빛이 비집고 들어온다.
며칠만에 보는 햇살인가. 흐린 날 숲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감이 좀 풀리는 듯 하다.
4분의 1 지점을 지날 즈음, 노란 경고판이 눈에 띤다.
지금부터는 경사가 급하고 험하니 자기 책임 하에 올라가라는 경고성 문구이다.
캐나다인들의 안전의식에 대하여는 높이 평가하는 편이지만, 어떤 때는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것 아닌가도 싶다.
중간 지점을 통과하면서 차츰 눈이 나타난다.
스패츠와 아이젠을 꺼내 눈길 채비를 갖춘다.
겨울의 밴쿠버는 비가 많다.
그냥 많은 정도가 아니라 무척 많다.
오죽하면 지난 1월에는 이곳에 비가 내린 날짜가 연속 28일이나 되었다.
1953년의 기록을 갈아 치우느냐로 관심이 집중되었지만 타이기록에 머물렀다.
산 아래 기온이 보통 섭씨 4~5℃라면 해발 1000m가 넘는 지역은 영하권일 것이고, 비가 눈으로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덕분에 산에 들면 언제 어디서든 설산을 마음껏 즐길 수가 있다.
고도를 높일수록 발이 눈에 빠지는 깊이가 달라진다.
처음엔 발목을 덮다가 4분의 3 지점을 통과하면서 무릎까지 빠지기 시작한다.
오르막 경사도 무척 심해졌다.
숨은 차고 다리는 퍽퍽해진다.
나뭇가지를 비집고 눈까지 내린다.
이 눈은 그래도 맞을 만하다.
가끔은 나뭇가지에 쌓여있던 눈덩이가 무게를 못 이겨 아래로 떨어지는데 머리에 정통으로 맞으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래서 겨울산행에는 헬멧을 쓰라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기록측정기가 설치된 도착점에 닿았다.
샬레(Chalet)가 있는 정상 부근은 숲 속 길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탁 트인 능선이 스키 인파로 북적거린다.
눈을 털고 샬레로 들어서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몸을 녹인다.
하늘과 산 아래를 가득 메운 구름 때문에 조망이 엉망이다.
날씨만 좋으면 밴쿠버 도심은 물론 멀리 태평양 해안선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인데 말이다.
오후엔 맑아진다는 일기예보를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산행을 함께 한 일행들은 케이블카로, 일부는 걸어서 내려가 홀로 남게 되었다.
스키 리프트가 설치된 그라우스 정상 대신 그 뒤에 버티고 선 댐(Dam) 산으로 향한다.
그라우스를 지나쳐 댐 산으로 갈라지는 길목에서 산림감시원(Park Ranger)에게 제지를 당했다.
지난 며칠간 눈이 너무 많이 내려 눈사태의 위험이 있다고 진입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하기야 눈사태는 고도보다도 산사면의 경사도나 강설량에 좌우될 것이니 아쉽지만 여기서 발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샬레로 돌아와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린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던지 구름을 뚫고 나온 태양이 바다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약 1시간가량 눈 위에 한 바탕 그림을 그려 놓는다.
댐 산까지 가지 못한 아쉬움을 이것으로 달랠 수밖에. 조금 있으니 산 아래에서 먹구름이 몰려와 하늘을 덮는다.
이제 하산을 서두르라는 하늘의 계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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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바탕 공연을 마치고 막을 내리듯이 홀연 산 아래에서 구름이 몰려와 태양과 샬레를 감춰 버렸다. |
그라우스 산 길잡이
한국과 밴쿠버 사이는 3개 항공사(대한항공, 에어캐나다, 싱가포르항공)가 직항편을 운행한다.
그라우스 산은 시내에서 가깝기 때문에 밴쿠버를 방문하면 꼭 가볼 만한 명소 중 하나이다.
밴쿠버와 태평양을 내려다보는 조망이 아주 훌륭하다.
GG를 직접 걸어 오르거나 시간이 없는 사람은 케이블카(Sky Ride)를 타도 좋다.
케이블카 요금이 비싼 것이 흠이다.
성인은 1회 왕복에 29.95$를 받는다.
물론 회원으로 가입하면 연회비 89.95$를 내고 연중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도심에서 차로 이동하면 케이블카 타는 곳까지 약 15분이면 도착한다.
북쪽으로 Lions Gate Bridge를 건너 Capilano Road를 따라 가면 그 끝에 있다.
시내버스를 탄다면 Lonsdale Quay에서 236번 버스를 탄다.
요금은 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