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애들하고 전부 다 같이 모여 밥 먹기 정말 힘드네."라고 중얼거리자, 아내는 "자식들이 이제 다 커서 각자 생활이 있는데, 예전처럼 모이는 건 기대하지 말아요. 다 큰 애들이 집에만 있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해."라고 한다. 식당으로 걸어가는데 몸살 기운이 있다는 아내가 걷기 힘들다고 한다. 오랜만에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손이 차다. 아내는 푹푹 찌는 한여름에도 에어컨 바람을 싫어한다. 겨울에도 이불을 잘 안 덮고 잘 정도로 열이 많은 나와 달리 아내는 동남아의 여름 날씨 같은 기온을 좋아한다. 아내가 베트남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날씨 때문이라고 한다. 아내와 난 달라도 너무 다르다. 취향도 서로 같은 게 별로 없다.
금요일이라 가족 단체 카톡방에 다 같이 저녁 먹자고 문자를 보냈는데 아무도 답장이 없다. 막내는 대학생이라 수업 중이니 문자를 못 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둘째도 아르바이트하는 중이라 못 볼 수 있다 싶은데 아내와 첫째는 답이 없다. 하나같이 무심하다. 가족 단톡방에 내가 제일 뻔질나게 사진과 문자를 올리고 있다.
퇴근길에 아내와 애들이 사는 집으로 곧바로 갔다. 어머니와 난 분가해서 아내와 따로 지내고 있다. 여섯 식구가 이십 년간 한집에서 옥신각신 살던 때가 문득 그리워진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끊임없이 하는 잔소리와 치매 증상까지 보인 어머니를 아내는 무척 힘들어했다. 그런 아내를 위해 결국 어머니를 모시고 따로 나가 살게 되었다. 아내와 따로 살아보니 편한 점도 있지만 외로울 때가 더 많다.
아내와 아이들이 사는 집에 들어가자, 웬걸 첫째가 집에 있다. 헬스한다고 카톡을 못 보았다고 한다. 아직 퇴근 전인 아내에게 전화했다 "몸살기가 있어 밥하기 싫으니, 오늘은 그냥 밖에서 저녁 먹어요."라고 한다. 엄마가 해주는 집밥을 유난히 좋아하는 큰아들도 오늘 저녁은 별수 없이 식당 밥을 먹을 수밖에 없다. 무뚝뚝한 아들만 셋이니 항상 주방일을 혼자 하는 아내가 안쓰럽다. 이럴 때 딸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집밥은 먹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나나 큰아들은 밥 먹는 거조차 홀로서기가 안 되어 있다.
맛집이라 자리 잡기 위해 저녁을 먹기로 한 식당에 먼저 도착했다. 전화 예약이 안 되는 식당이다. 식당에 들어가자 빈자리가 없다. 대기 번호 7번을 배정받았다. 아내와 큰아들을 기다리며 식당 앞에 우두커니 혼자 서 있다. 뭔가를 기다리는 것도 혼자 기다리는 것과 누군가와 같이 기다리는 건 사뭇 다르다. 혼자 기다리는 건 시간이 느리게 지나가고 쓸쓸하다. 혼자 서 있기 싫어서 아들에게 전화했다. 아마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식당에 빈자리가 생길 것 같다고 말했다. 아들이 다른 식당으로 가자고 한다. 공원 근처에 새로 문을 연 고깃집으로 향했다.
며칠 전 아내 방 책장 속에 사라 밴 브레스낙이 쓴 '혼자 사는 즐거움'이란 책을 발견했다. 책 표지에 이렇게 적혀있다. "모든 인생은 혼자 떠나는 여행이다. 혼자 떠날 수 있어야만 외로움과 쓸쓸함을 당당하게 견뎌 나갈 수 있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남편, 누구의 부모로서 살아가는 삶은 잠시 접어둔 채 이 책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오롯이 당신 자신과 마음을 터놓고 마주해 보라. 혼자 산다는 것은 싱글이나 독신으로 산다는 의미가 아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 속에서 고유한 자신만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원치 않게 남편과 떨어져 살면서 이런 책을 읽으며 외로움을 달래고 있나 싶어 가슴이 짠해진다. 아내에게 책을 빌려서 나도 요즘 읽고 있다. 아내와 별거 아닌 별거를 한 지 벌써 삼 년이 다 되어간다. 아내와 같이 살고 싶어 애들 다 장가보내면 어머니와 셋이 같이 살자고 했다. 아내는 죽어도 싫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어머니가 하늘나라 가는 날까지 아내와 같이 살 팔자는 아닌 모양이다. 아내는 홀로서기를 잘할 듯하다.
막내아들이 태어나서 며느리와 동거하기 시작한 우리 어머니. 손자 셋을 다 키우고, 집안 살림 도맡아 하시다가 늙어 치매 초기 증상이 오자 자식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들게 할 수는 없었다. 남들은 이구동성으로 어머니와 같이 살지 말고 아내와 지내는 것이 정상이라고 하지만 난 그럴 수 없다. 노인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혼자 사는 외로움이 아니던가. 어머니는 홀로서기를 감당하지 못해 건강이 나빠지고 치매도 더 빨리 찾아올 듯 하여 불안하다.
어머니는 아직도 도시 생활에 서툴고 시장 볼 때 셈도 잘 못하실 정도로 어리숙하시다. 가스 불에 새까맣게 태워 먹는 냄비며 프라이팬을 보면 도저히 혼자 지내게 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진다. 다행히도 어머니의 치매는 아직 경도인지장애 상태에 머물고 있다. 식사도 잘하시고 목소리도 우렁찰 정도로 기운이 넘친다. 귀가 어두운 아버지와 살아서 그런지 지금도 기차 화통 삶아 먹은 듯 목소리가 커질 때가 많다. 그래도 어머니는 홀로서기가 불가능해 보인다.
아들 셋도 이제 짝을 만나 결혼하면 분가해서 홀로서기를 시작할 것이다. 막내는 혼자 한 번 살아보겠다면서 집을 나갔다고 한다. 난 몰랐다. 나에게 의논도 없이 그런 결단을 한 막내가 좀 섭섭했다. 막둥이는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대학교 근처에 원룸을 구했다고 한다. 용돈조차 바래지 않고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스스로 감당한다. 혼자 사는 연습을 너무 일찍 시작하는 듯해서 안쓰럽다. 아내는 막내가 제일 자립심이 강한 아이니 그리 걱정할 것 없다고 태무심한 소리를 한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미덥지 않아 하는 나와 달리 아내는 아이들을 믿는다. 평소 대화를 많이 해서 아이들 성향을 잘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어디 한 곳에 마음 편히 머무를 수 없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처했지만, 배 아파 낳아주고 키워준 어머니와 철딱서니 없는 신랑과 살아준 아내 둘 다 소중하고 감사하다. 우리 가족 중 지금 제일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은 아내일까, 나일까? 아무래도 홀로서기를 제일 열심히 연습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인 것 같다. 나도 사라 밴 브레스낙처럼 혼자 사는 즐거움에 빠질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
첫댓글 조태강 선생님은 37기 입니다.ㅣ
작가가 허용하면 이 글도 우리 회원님이 '읽기'를 하고 싶습니다.
학장님
참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37기 조태강님은 고인이십니다
고인의 <홀로서기> 글 읽으니
더욱 안타깝습니다.
그렇군요, 실례를 범했습니다. 홀로 사시려고 ----- 먼저 가셨나요?
우리는 모두
홀로 나왔듯이 언젠가 홀로 들어갑니다
아름다운 기억만 갖고 돌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이어령 선생님의 마지막 영상이 떠오르는
가을입니다
어머니를 위하여
아내와 떨어질 수 있다는것에 의문입니다
바른 홀로서기일까요? 어쩔 수 없는 홀로서기 일까요?
조태강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