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도 봉래산
산행지도
부산 영도 [봉래산&태종대]
지도
부산 영도 봉래산
국제신문 기사 입력일 : 2015-09-23
이경식 기자
'삼신할미' 전설 깃든 절영도 중심에 올라 부산의 풍광 음미해본다
- 고신대~목장원 둘레길 경유
- 대법사서 출발~동삼동 하산
- 총길이 9㎞·소요시간 4시간
- 해돋이마을 벽화 시선 끌어
- 장사바위·아씨당·불로초공원
- 민간설화 읽고 걷는 재미 쏠쏠
- 아치섬·묘박지·남항·북항 등
- 내륙 밖에서 바라본 부산 장관
- 조봉 오르니 삼신할미바위 눈길
중심에서는 중심이 보이지 않는다. 중심을 보려면 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보고 싶은 범위를 시야에 확보할 수 있는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거리두기는 단순히 관찰대상의 원근 조절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물리적 거리가 관찰의 형식이라면 관점은 내용이다. 중심의 관점에 고착되어 있으면 성찰(거리두기)이 불가능하다. 중심의 관점에서 중심을 평가하면 독단을 낳을 뿐이다. 주변의 관점에서 중심을 평가하는 시각 전환 내지 입장 바꾸기가 전제되어야 중심이 제대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부산을 보려면 부산에서 벗어나야 한다. 배산임수 도시, 부산의 얼굴은 산을 등진 상태로는 보이지 않는다. 바다로 나가 산을 바라봐야만 얼굴이 드러난다. 영도 봉래산을 찾았다. 부산을 온전히 보기 위해서다. 오륙도나 목도, 토도 등 부산 앞바다의 무인도들도 부산을 잘 볼 수 있는 곳이지만, 따로 배를 대절하지 않고는 가기 어렵다. 굳이 이런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도 봉래산 조봉·자봉·손봉 등 세 봉우리나 둘레길 주요 지점에 설치된 전망대에 서면 평소 보지 못했던 부산의 다양한 얼굴이 오롯이 눈에 들어온다.
봉래산의 매력은 이뿐 아니다. 삼신할매바위, 산제당·아씨당, 장사바위, 불로초공원 등 전설이 깃든 곳이 산재해 안내판에 적힌 이야기를 읽으며 걷는 재미가 쏠쏠한 데다 산행구간 곳곳에 물맛 좋은 약수터가 있어 물을 가져오지 않는다 해도 언제든 갈증을 풀 수 있다. 갈림길이 많아 영도 어디에서나 봉래산에 오르내릴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본지 산행팀은 봉래산의 숱한 접근로 가운데 신선동 대법사 입구에서 출발하는 코스를 택했다. 산행은 둘레길을 한 바퀴 돈 뒤 정상인 조봉(395m)과 자봉(387m), 손봉(361m)을 차례로 거쳐 동삼동 쪽으로 하산하는 코스다. 총길이는 약 9㎞, 소요시간은 4시간가량. 둘레길은 해돋이배수지(자연생태학습장)와 고신대학교, 목장원, 산제당을 진행방향으로 정해 순환한다. 이정표가 없는 갈림길에서는 국제신문 산행팀 리본을 달아놓았으니 이를 보고 걸으면 별 무리 없이 산행을 즐길 수 있다.
대법사 입구에서 20m쯤 올라가면 왼쪽에 둘레길로 들어서는 문이 있다. 이를 통과한 뒤 30분가량 걸리는 구간에 두 차례의 갈림길이 나오는데 모두 해돋이배수지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이어 30분 정도 보행구간에서 만나는 세 차례의 갈림길에선 죄다 왼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해돋이배수지에 도달한다. 배수지에 도달하기 전 둘레길변에 있는 해돋이마을의 담벼락에는 벽화와 돋을새김한 조각이 설치돼 있어 눈길을 끈다. 배수지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다 10분쯤 후 해련사 입구에서 국제신문 리본을 따라 왼쪽으로 진행한다.
5분쯤 걸으면 우람한 덩치의 바위가 떡 하니 버티고 서 있다. 봉래동과 청학동 사이 아리랑고개에 있는 이 바위는 위에 장사의 신발 같은 돌이 얹혀 있다고 해서 장사바위라고 부른다. 이 바위에는 두 가지 전설이 있다. 하나는 9척 장신의 거인 전설이다. 이 거인은 봉래산에 살면서 매일 마을로 내려와 한 끼에 쌀 한 말씩 먹어 치웠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다에서 괴물이 나타나 마을 처녀를 잡아 가자, 거인은 평소 밥을 먹여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괴물과 싸우다 죽는다. 그 이후 거인의 주검이 장사바위로 변했다고 한다. 다른 전설은 봉래산 장사가 영도 앞바다를 넘어 감만동 쪽으로 뛰었는데, 무사히 바다를 건넜지만 신발 한 짝이 벗겨져 장사바위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는 북구 만덕동의 장사바위 전설과 유사하다. 만덕동 장사바위에는 장사가 금정봉으로 뛰다가 남긴 발자국이 있다고 한다.
장사바위에서 목장원 쪽으로 간다. 30분쯤 걷다 보면 너덜길이 나오고 왼쪽으로는 해양대학교가 있는 아치섬이 보인다. 15분쯤 후 전망대에 이른다. 바로 아래에 펼쳐진 바다는 배들이 항구 밖에서 임시적으로 머무는 묘박지다. 오른쪽으로 송도 암남공원과 그 뒤로 다대포가 사이좋게 몸을 포개고 있다. 10분쯤 후 갈림길에서 오른쪽을 택해 가다 보면 함지골 편백산림욕장이 쉬어 가라고 손짓한다. 20분쯤 후에 전망대를 또 만난다. 여기선 시야가 송도에서 자갈치와 남항으로 넓어진다.
20분쯤 가다 둘레길 문을 지나 10분쯤 더 걸으면 산제당이 나온다. 고려 말 신돈(辛旽·미상~1371)의 모함으로 영도에 유배된 최영(崔瑩·1316~1388) 장군의 첩이었던 선녀 때문에 말이 병들어 죽는 일이 발생하자 부산진첨절제사 정발(鄭撥·1553~1592)이 이를 조정에 아뢰고, 동래 부사 송상현(宋象賢·1551~1592)은 봉래산에 산제당과 아씨당을 지어 해마다 제사를 지내며 선녀의 넋을 위로했다고 한다.
봉래산 정상 쪽으로 30분쯤 가면 불로초공원에 닿는다. 봉래산에는 삼신할미가 살고 있다. 삼신할미는 영도에 사는 사람들을 늘 보호해주고 외지로 나간 영도 주민들의 안위를 보살피는 산신령이다. 삼신할미는 산삼과 불로초를 기르고 있는데, 영도구가 상상의 나래를 펴 지난해 7월 공원을 조성한 뒤 불로초 재배지인 양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 공원에 있는 하늘마루 정자에 서면 송도와 남항, 북항 등 부산 해안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공원에서 40분쯤 산을 오르면 조봉에 이른다. 조봉에는 삼신할미바위가 있다. 영도 주민들은 이 바위를 신성시해 그 위에 절대 올라가지 않는다. 조봉에서 30분쯤 걸으면 봉래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자봉이, 다시 30분쯤 더 가면 세 번째 봉우리인 손봉이 나온다. 손봉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하산한다. 20분쯤 가면 임도에 이르고 임도를 가로질러 내리막길을 따라 반도보라아파트 쪽으로 10분쯤 걸으면 산행 종착지인 동삼동 절영종합사회복지관에 도착한다.
◆떠나기 전에
- 영선동·신선동·청학동·봉래동
- 신선사상 담긴 영도 지명 신기
영도는 '신선의 땅'이다. '봉황이 날아든다'는 뜻을 지닌 봉래산(蓬萊山)에서부터 신선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영선동(瀛仙洞) 신선동(新仙洞) 청학동(靑鶴洞) 봉래동(蓬萊洞) 등 영도의 대부분 동명에는 신선사상이 깃들어 있다. 신선과 관련되지 않은 동명은 동삼동(東三洞)과 남항동(南港洞)뿐이다. 동삼동에는 상리 중리 하리 등 3개의 마을이 있는데, 영도의 동쪽에 자리 잡고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남항동은 남항가에 자리 잡았다는 뜻이다.
부산 최고의 절경 태종대에도 신선대가 있다. 영도에 신선과 연관된 지명이 많은 것은 신선이 노닐 정도로 풍광이 아름다워서이겠지만, 사는 곳을 선경으로 가꾸고 싶은 주민들의 간절한 바람도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 영도만이 아니다. 부산의 다른 지역에도 신선과 관련된 지명이 수두룩하다. 연제구 연산동과 수영구 망미동의 뒷산인 배산에 있었다는 겸효대(謙孝臺)가 그중 하나다. 겸효대는 선인 김겸효가 살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금정구 장전동의 소하정(蘇蝦亭)도 또 다른 예다. 이곳에서 소하라는 사람이 흰 사슴을 타고 금구선인(金龜仙人)과 놀았다고 전해진다. 남구 문현동 배정고등학교 뒷산에도 광선대(廣仙臺)라는 곳이 있었다고 한다. 진시황의 방사 서불(徐市)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이곳을 들렀다는 '서불과차(徐市過此)'라는 글을 새긴 돌비석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