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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서 해
집 앞 강으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은 이따금 들과 수수밭을 우수수 스쳐간다. 마당 가운데서 구름발같이 무럭무럭 오르는 모깃불 연기는 우수수 바람이 지날 때마다 이리저리 흩어져서 초열흘 푸른 달빛과 조화되는 것 같다.
벌써 여러 늙은이들은 모깃불가에 민상투 바람으로 모여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끝없는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주인 김 서방은 모깃불 곁에 신 틀을 놓고 신을 삼는다. 김 서방의 아들 윤길이는 모깃불에 감자를 굽는다.
어른이나 어린이나 가물과 장마를 걱정하고 이른 새벽 풀끝 이슬에 베잠방이를 적시면서 밭에 나갔다가 어두워서 돌아와 조밥과 된장찌개에 배를 불리고 황혼 달 모깃불가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이 그네에게는 한 쾌락이다.
"날이 낼두 비 연오오겠는데…….”
수염이 터부룩하고 이마가 훨렁 벗어진 늙은이가 하늘을 쳐다보면서 걱정하였다.
"글쎄 지냑 편에 는 금시 비 올 것 같더니 또 벳기는데·…‥”
서너 살 되었을 어린애를 안고 앉아서 김 서방의 신 삼는 것을 보던 등이 굽은 늙은이는 맞장구를 치면서 하늘을 보았다.
퍼렇게 갠 하늘에는 조각달이 걸리었고 군데군데 별이 가물거렸다.
“보리마당질 할 생각하면 비 안 오는 것두 좋지마는 조이와 큉(콩)이 다 말라죽으니…… 참 한심해서.”
하는 이마 벗어진 늙은이의 소리는 타들어가는 곡식이 안타까운지 풀기 없었다.
“오늘 쇠치네(작은 물고기) 잡으러 가니까 저 웃소에 물이 싹 말라서 괴기덜이 통 죽었습데·…‥”
거멓게 탄 감자를 집어내놓고 손과 입에 거멍이 칠을 하면서 발라먹는 윤길이는 어른들 말에 한몫 끼었다.
“하여간 이게 싱구럽지(상서롭지) 못한 일이야…… 김 도감두 알지마는 (어린애 안은 늙은이를 보면서) 웃소 물이 좀 많은 물이오?”
머리 벗어진 영감은 큰 변이 났다는 듯 가래를 탁 뱉고 담배를 뻑뻑 빤다.
“하여튼 큰일 났군! 우리 아버지 때에두 그 물이 마르더니 흉년이 들어서 모두 자식을 다 잡아먹었다더니……”
하면서 무릎에서 꼬물거리는 어린애를 다시 추켜 안는다.
“그 물 때문에·…‥.”
신 삼던 김 서방은 첫머리를 내다가 뚝 끊었다. 그는 신날을 틀에 걸고 힘을 끙끙 쓰면서 조였다. 여러 늙은이들은, 그것을 보면서 김 서방이 말하기를 초조히 기다렸다.
“그 물 때문에 나래는(뒤에는) 왼 세상이 다 죽더라두 시장 저 박 관청 너 논은 다 말랐는데두…… 흥!”
그는 너무도 어이없다는 듯이 저편에 말없이 앉아서 하늘만 보는 키 작은 늙은이를 보았다.
“아, 실투 올해 논을 풀었다더니 어찌 됐소?”
말 좋아하는 이마 벗어진 최 도감은 박 관청을 보았다. 박 관청은 기막힌 듯이 먹먹히 앉았다가,
“올해 이밥만 먹는다믄 볼일 다 보겠소!”
“하하하……”
박 관청이 빈정거리는 바람에 모두 웃는다.
“관청은 저래 쓸구는(빈첬대는) 바람에 걱정이야·…‥ 흐흐……”
김 서방은 혼잣말처럼 외우면서 신바닥을 신틀 귀에 놓고 방망이로 땅땅 두드렸다.
잠깐 침묵……
강물 소리가 철철 들린다. 어디선지 두견새 소리가 은은히 흘러왔다. 이슬이 내려서 축축한 밭에 달빛이 푸른 안개처럼 흘렀다.
우수수·…‥ 소리가 나더니 바람이 몰아와서 무럭무럭 오르는 연기를 동쪽으로 몰아갔다.
“엑 애해 애햄.”
바람에 날리는 연기가 코에 들어간 박 관청은 기침을 콕콕 하면서 서편 쪽으로 옮겨 앉았다. 이때껏 그저 말없이 앉았다가 기침을 콕콕 하면서 홀짝 뛰어가 앉는 것이 원숭이 같았다.
동네 어린애들은 박 관청을 잰내비(원승이) 영감이라고 부른다.
“일은 거저 일이 아니야·…‥ 이래서 달달 볶아 죽이자는 게지!”
김 서방은 침묵을 깨쳤다.
“세상이 이렇구서야 바루 되겠소. 두만강에 멱이 돋구 당목이 똥슷개(뉘지) 되문 세상이 망한다더니.”
그 이마 벗어진 늙은이는 눈을 끔벅하면서 큰일이나 난 듯이 말하였다.
“망해두 어서 망하구, 흥해두 어서 흥해야지 이거 이러구서야 어디 견디겠소.…… 글쎄 술두 맘대루 못 해먹구 담배두 못 져먹는 세상에 살아서는 뭘 하겠소·…·참 우리야 쉬 죽겠으니 또 모르겠소마는 이것덜이 불쌍해서……”
김 도감이란 영감은 악 절반 한탄 절반으로 뇌면서 무릎에 안은 손자를 내려다본다. 꼼지락거리던 어린것은 푸른 달빛을 받고 고요히 잠들었다.
“허 저 간도루 멀쪽허니 ○○ 가는 게 해롭지 않지·…·(한참 끊었다가) 어서 빨리 ○○이 뒤집히구 ○○이 나야 하지·…‥.”
김 서방은 신틀과 삼던 신을 밀어놓고 담뱃대를 털면서 모깃불 앞에 다가앉았다.
“괜히 시방 젊은 아이들은 철을 모르고 덤베지만 세상이 바루 돼두 때 있는 게지 어디 그렇게 됩메?”
박 관청은 혀를 툭 채였다.
“아 더 이를 말이요. 시방 우리 눔아두 공부를 합메 하구 성화를 대구 서울 가서 댕기더니 젠년에 만센지 떡센지 부르고 시방 징역을 하지만 어디 그렇게 되겠소! 다 운이 있는 겐데·…·아 홍길동이며 소대성이 같은 장쉬두 때를 기다렸는데……”
이마 벗어진 영감은 제 뜻은 이러한데 세상이 모른다는 듯이 푸닥거리를 놓았다.
이때 김 서방은 집 안으로 머리를 돌리고,
“야 체네·…·거기 보리감지 (감주)를 좀 내오나라.”
한다. 여러 늙은이들은 그 소리에 말을 잠깐 끊었다가 못 들은 체하고 그대로 이야기를 하였다.
“시방두 충청두 계룡산에는 피난 가는 사람이 많다는데·…·정 도령이가 언제 나오나……?”
김 도감은 한 손으로 어린애를 안고 한손으로 모깃불에 담뱃불을 붙인다.
그네들은 그네의 힘으로 저항치 못하는 자연의 위력을 생각하는 때마다 알 수 없는 공포를 느끼고, 그 공포를 느낄 때마다 분요하고 괴로운 세상을 한탄한다.
그 한탄 끝에는 무슨 힘 ― 자기네를 안아줄 무슨 힘을 무의식적으로 바란다. 이것이 그네의 신앙이다. 이 신앙이 은연중 그네에게 용기를 준다.
“갑산서두 날개 돋은 장쉬 났다는데?”
이마 벗어진 영감은 신기한 것이나 말하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이때 저편에서 득득 하더니 쿵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러 사람은 그리로 눈을 주었다. 처마 그늘로 달빛이 반이나 밑둥에만 비치인 외양간에서 나오는 소리다. 그것은 말이 여물을 달라고 구르는 소리다.
“야 윤길아, 네 가서 쇠(소)를 깔(꼴)을 줘라.”
김 서방은 감자를 구워먹다가 맨땅에 팔을 베고 누운 윤길이를 보았다. 윤길이는 윗방 앞 뒤주간 옆에 세워놓았던 꼴단을 집어 들고 어둑한 외양간으로 들어갔다.
윤길이가 들어간 부엌문(복도는 외양이 부엌과 서로 이어 있다. 소 여물을 주려면 부엌으로 들어가야 된다)으로 머리 터부룩한 큰 처녀가 조그마한 감주 항아리를 들고 맨발로 나왔다. 김 서방은 항아리 속에 띄워놓은 바가지로 감주를 떠서 여러 늙은이에게 권하였다. 늙은이들은 꿀꺽꿀꺽 마시고 수염을 씻으면서,
“엑 시원하구나!”
한다. 맨 나중 김 서방이 감주 바가지를 입에 대는데 어디서,
“에구.”
하는 소리가 났다. 모두 그리로 눈을 주었다. 외양간에 들어갔던 윤길이는 달아나오면서,
“에구 아배(아버지)! 쇠 눈깔에 펴런 불이 있소!”
하고 무서운지 뒤를 슬금슬금 돌아본다.
“엑 시레소니(바보) 같은 눔아야, 나는 또 큰일이나 났다구·…‥즘승의 눈이 밤에 보믄 그렇지 어째 하하.”
이마 벗어진 늙은이는 책망을 하다가 웃었다. 부른 배를 만지면서 달을 쳐다보던 박 관청도 빙그레 하였다.
“글쎄 장쉬 나믄 어찌겠소?”
중간에 끊어졌던 말은 김 서방의 입으로 다시 이어지었다.
“어째?”
“아 그 왜놈들이 장쉬 나는 곳마다 쇠말뚝을 박아서 못 나오게 하는데…… 저 설봉산에서두 땅속에서 장쉬 나너라구 밤마다 쿵쿵 소리 나더라오. 그런 거 왜놈들이 말뚝을 박았다 빼니 피 묻었더라는데·…‥”
말하는 김 서방은 모기가 등에 붙었는지 잔등을 툭툭 친다.
“흥 그런 게 무슨 일이 되겠소.”
김 서방의 말이 끝나자 모든 늙은이들은 탄식하면서 달을 쳐다보았다.
난데없는 흰 구름조각이 서천에 기운 달을 가리었다. 환하던 강산은 어슥하여졌다. 빛나던 밭들은 수묵을 풀어친 것 같다.
흐린 달을 쳐다보는 여러 늙은이의 눈에는 근심이 그득한 것이 장차 올 세상을 보는 것도 같고 하늘에서 무엇이 내려와 안아주기를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였다.
“시방두 어디 제갈량 같은 성인이 있기는 있으련마는 소식이 없어……”
원숭이 같은 김 도감은 담배를 빨다가 말했다. 그 목소리는 어디든지 무엇이 있으리라고 믿는 어조였다.
“있다 뿐이요. 제갈량이며 쟁비며 이순신 같은 이가 다 있지만 그렇게 쉽사리 나서겠소?”
이마 벗어진 영감은 대를 옆에 놓고 무릎을 안았다.
“있구 말구…… 우리두 목도한 일인데……”
하고 김 서방은 벌겋게 타드는 모깃불을 펀히 들여다보다가 다시 말을 이어서,
“우리 ‘선돌’ 있을 때에 우리 이웃에 무산 간도서 나온 한 사십 되는 영감노친(노파)이 있었는데 그 영감의 성이 김가가 돼서 늘 김 영감 김 영감 하는데 자식이 없었단 말이요! 그래 늘 절에두 댕기고 뒤왠(뒤울안)에 칠성단을 묻고 밤이면 정화수를 떠놓고 삼 년인지 사 년인지 자식을 빌었소. 에구……”
하고 김 서방은 애쓰던 것이 눈앞에 뵈는 듯이 이마를 찡그리며 툭 혀를 차고 다시,
“그때 그 영감노친이 자식 때문에 애도 쓰더니…‥ 그 덕인지 저 덕인지 노친(노파)이 잉태가 있겠지요! 그런데 페롭은(이상한) 것은 열넉 달이 돼두 안 낳겠지……”
“그게 실루 장쉰 게지.”
이마 벗어진 영감은 알아맞혔다는 듯이 소리쳤다. 김 서방은 잠깐 끊었던 말을 다시 이어,
“글쎄 들어보오. 그런데 며칠어간이나 영감노친이 꾹 배겨 있다가 나오는데 보니까 노친은 뚱뚱하던 배가 쑥 꺼졌겠지!”
하고 김 서방은 불 꺼진 담배에 다시 불을 붙여서 뻑뻑 빨았다.
“아― 니 아이를 낳는 소리두 없이 배가 그렇게 꺼졌단 말이오?”
박 관청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 낳는 소리 있을게믄 페롭다구 하겠소……”
김 서방은 말을 이어서
“그래 우리가 모두 암만 물어봐야 그저 웃기만 하구 대답을 해야지! 그래 여편네들은 그 노친을 다 벳기고까지 보니 젖이 다 불구 뱃가죽이 다 텄더랍메!”
하고 눈을 번득하였다.
“그래서는 아이는 아니로구만.”
어린애 안았던 김 도감이 말하는 바람에 김 서방은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그런데 그 노친은 동생이 있는데 그 안깐(여편네)의 말을 들으니……”
“그 안깐은 어떻게 알더란 말이요?”
이마 벗어진 영감은 신기한 듯이 물었다.
“낸재(어이구)! 영감두 가만 있소·…·어디 들어보게…….”
김 서방의 말이 토막토막 그치는 것이 안타까운지 박 관청은 이마 벗어진 영감을 핀잔주었다. 그 바람에 모두 조용하였다. 김 서방은 담배를 뻑뻑 빨다가,
“그 동생 되는 안깐은 그날 밤에 거기서(그 영감노친의 집) 자다가 봤단 말이지. 밤중이 되니까 노친 자던 방에 푸른 안개가 자욱이 돌고 지붕에 흰 무지개가 서더라오. 그러더니 한쪽 볼에 별이 돋고 한쪽 볼에 달 돋는 선녀 둘이 소리 없이 방에 들어와서는데 상(향)내가 코를 소르르 지르더라오.”
김 서방은 바로 향내가 코에나 들어가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고 코를 증긋하였다.
“그게 참 장쉬 나는 게로군!”
이마 벗어진 영감은 핀잔 받은 것을 그새 잊었는지 또 감탄하였다. 김 서방의 말이 이에 미치니 모두 취한 듯이 김 서방만 치어다본다. 땅에 자빠졌던 윤길이까지 일어나 앉아서 정신없이 듣고 있었다. 모든 사람의 눈은 무엇을 보는 듯하였다. 김 서방은 담배를 빨면서 무엇을 생각하는 듯하더니 비밀한 말이나 하듯이 어성을 나직나직이 하여 “그러더니만 선녀가 하나는 노친의 왼팔 아래 자댕이(겨드랑이)에 손을 대니까 왼자댕이가 툭 터지면서 애기가 스르르 나오더라지! (이때 모든 사람은 빙그레 재미있게 웃었다) 애기가 금방 나자 노친의 자댕이는 그만 터졌던 둥 말았던 둥 하게 아물고 애기는 이내(곧) 향탕에 목욕을 시키더라오. 애기는 말이 애기지 키가 여남은 살 먹은 아이만치 크고 눈은 찍 째진 것이 왕방울 같고 귀는 이렇게 크고 (손을 펴서 자기 귀에 대고 눈을 크게 떠서 그 흉내를 내면서) 팔, 다리, 손 할 것 없이 참 철골로 생겼는데 말을 다 하더라는데…….”
참말 신기한 일이라는 듯이 눈을 끔벅하는 김 서방의 목소리는 더욱 힘 있었다. 그는 담뱃대를 땅에 놓고 기침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내려 왔던 선녀는……”
하는데 곁에 앉았던 윤길이가 뛰어나가면서,
“개똥(반딧불)! 저 개똥불!”
한다. 모두 그쪽을 보았다. 김 서방도 말을 끊고 그리를 보았다. 뒤주 간 뒤 콩밭 위를 파란 반딧불이 가물가물 지나간다.
개똥! 개똥!
저 개똥불!
우리 애기
초릉(둥롱) 삼자!
개똥! 개똥!
윤길이는 부르면서 콩밭으로 뛰어간다. 그것을 보던 김 서방은 어성을 높여서,
“그래…….”
하는 바람에 늙은이들은 모두 머리를 돌렸다.
“그 내려왔던 두 선녀는 애기께 비단옷을 입히구 이내(곧)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더라오. 그리고 새벽이 되니까 애기가 벌떡 일어나서 ― 아버지 어머니 저는 떠납니다― 하더라오.”
“어디루 갈까.”
여러 늙은이는 약속이나 한 듯이 물었다. 그네들은 함께 김 서방의 이야기에 기뻐하였다, 걱정하였다 한다. 김 서방은 그 대답은 하지 않고 제 말만 하였다.
“그리고 부모에게 절 하더라오. 그러니 그 어머니가 울면서,
―에구 내 만득자야 네 어디루 가니? 나두 가자! 하고 일어나려니까 그 애기는 말하기를,
―나는 이제 선생을 따라 ○○산으로 갑니다. 이제 오래지 않아 세상에 ○○가 나서 백성이 ○○에 들겠으니 저는 ○○산에 가서 공부를 해 가지고 그때에 나와서 ○○를 평정케 하겠습니다. 그러나 몇 달 동안은 집으로 젖 먹으러 새벽마다 오겠으니 어머니, 우시지 마시오.
하고 두 팔을 쭉 펴니 커다란 날개가 쑥 벌어지더라오.”
여기까지 말한 김 서방은 숨이 차는지 휘 ― 쉬였다. 여러 늙은이들은 김 서방의 한숨까지 재미있다는 듯이 모두 얼굴에 웃음을 띠고 소리 없이 김 서방의 입을 쳐다보았다.
밤은 깊었다. 마당에는 이슬이 추근히 내렸다. 밤이 깊을수록 달은 밝고 물소리는 컸다. 강으로 오르는 바람은 뜰 앞 밭을 스치면서 어둑한 집을 지나 뒷산으로 우수수 올리닫는다. 모깃불 놓은 겨는 다 타서 꺼먼 재가 남고 실 같은 연기가 솔솔 오른다.
“우리 클아배 (할아버지) 때에두.”
하고 이마 벗어진 영감이 말을 끄집어내려고 하니까 김 서방은 말하려고 쫑긋거리던 입을 닫히고 박 관청은 혀를 찍 갈기면서,
“가만 있소. 날래(어서) 김 서방이 이야기를 끝내오.”
하고 툭 쏘았다. 그러나 이마 벗어진 영감은,
“가만 가만 있소. 내가 먼저 얼른 할께·…….”
하고 말을 내려고 하였다.
“에구 영감도 주새두 없는게! 그래 얼른 짖소! 흐흐…….”
“에 짖다니? 양반을 모르고, 하하하.”
하고 이마 벗어진 영감이 웃는 바람에,
“하하하……”
모두 웃었다. 웃음이 끝나자 이마 벗어진 영감은 입을 열었다.
“우리 클아배 때두 날개 있는 장쉬가 나서 그 아버지가 윤디(인두)루 다 지져놔서 그만 죽었다오! 그래 어서 하오. 내 말은 이뿐이오.”
하고 김 서방을 보았다.
“에구 영감두 싱겁다. 그 소금을 가지고 댕기오.”
하고 박 관청은 이마 벗어진 늙은이를 보고 다시 김 서방을 보면서,
“그래 그 뒤에두 오더라오?” 하고 물었다.
“그래…….”
김 서방은 말을 시작하였다.
"그래 날개를 펴고 마당에 나서더니 온 데 간 데 없더라오! 그리구 이튿날부터 새벽마다 닭 울 때면 젖 먹으라 오더라오.”
“얼마나 젖 먹으라 오래 댕기더랍데?”
김 도감은 물었다. 김 서방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아니…… 그런데 그런 장쉬가 났다는 말을 하지 말라구 골백번이나 당부한 것두 듣지 않구서리 그 장쉬를 낳을 때 본 안깐이 이야기를 해놔서 그 골 원님이 그 말을 들었겠지…….”
“저런 망할 년.”
말질한 여편네가 곁에 있으면 단박 때려죽일 듯이 박 관청은 이를 악물었다.
“그래 휴―”
김 서방은 한숨을 태산같이 쉬고 나서,
“원님은 나라에 역적이 생긴다구 장쉬를 잡아쥑이라고 했단 말이요. 그래 사령에게 윤디를 주면서 장쉬 젖 먹을 때에 그 날개를 지지라구 했단 말이야……”
예까지 말한 김 서방은 입을 다물었다. 그 낯에는 천연한 빛이 돌았다.
“그래서 인재라는 인재는 다 죽이고…… 이눔의 나라이 안 망하구 어찌겠습메 글쎄!”
박 관청은 화나는지 가래침을 뱉었다. 말없이 하회를 기다리는 김 도감과 이마 벗어진 영감의 낯에는 긴장한 빛이 푸른 달빛에 어른거렸다.
“빨리 빨리 하오!”
박관청도 궁금한지 김 서방을 재촉하였다.
“그래 그 사령이 윤디를 벌겋게 달과(달궈) 가지고 그 집 부슷개(부엌 아궁이)앞에서 기다리는데 새벽이 돼서 마당에서 쾅쾅하고 발 구르는 소리가 나더니― 어머니!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난단 말이야!
그래 그 어머니는,
―오오 우리 장군님이 왔소!
하고 문을 열어보니까 그 장쉬는 마당에 섰는데 큰 칼을 짚고 투구갑옷을 입었더라오.
―빨리 들어와서 젖을 먹어라.
하니까 장쉬는,
―어머니 저는 이제는 집으로 못 오겠습니다. 우리 집에는 저를 잡으려고 사령 놈이 윤디를 가지고 있어서 나는 집으로 못 오겠습니다.
하더라오. 그 소리에 사령놈은 똥물을 쏘구 자빠졌더라오.”
“사령 온 줄은 어떻게 알가?”
“흥 그리게 장쉬라지!”
박 관청과 이마 벗어진 영감은 한마디씩 뇌였다.
“그리구 대문 밖으로 나가다가 들어와서,
―어머니 저는 이제 ○○산에 들어가 있다가 십 년 후에 나오겠으니 그때에 와서 어머니, 아버지를 뵙겠습니다.
하고는 그만 온 데 간 데 없더라오. 그런데 그 원님이란 작자는 가만히 있었으면 일 없겠는거 그 이튿날 그 장쉬 아버지와 어머니를 붙들어다가 때리구 옥에 가두었단 말이요. 그랬더니 그날 밤에 관계 마당에서 큰 소리가 나면서 원님은 피를 물고 죽고 옥문은 깨지고 그 장쉬 어미 아비는 간 곳이 없었는데 그 뒤에는 지금까지 소식이 없단 말이요.”
이야기를 끝낸 김 서방은 담뱃대에 담배를 담았다. 달을 쳐다보고 빙그레하던 김 도감은,
“그눔 그 원님눔 잘되었군! 그 치벌(앙화)을 맞은게지! 그 영감노친은 아들(장수)이 데려간게지?”
한다.
“그런 장쉬덜이 다 어디 가서 있을까? 그런 사람 낳는 사람은 전생에 좋은 일을 많이 한게야·…‥”
박 관청은 말했다.
“여부 있소! 다 덕을 닦아야 그런 아들을 낳는게지…… 그리구 그런 장쉬덜이 백두산이나 계룡산 같은 데야 있겠지만 때가 안 되구사 나오겠소!”
김 서방은 모든 것을 자기혼자나 아는 듯이 말했다.
“나오기는 어느 때던지 나올걸……? 에구 어서 나와서……”
이마 벗어진 영감은 말끝을 뚝 끊어버린다.
“나오구 말구! 하지마는 다 때 있는 겐데·…… 시방 시속사람들은 괜히 위야하고 우리네 × ×이나 거저 감은 소용이 있어야지…… 다 때가 돼서 장쉬가 나야지!”
김 도감은 무릎에서 자는 어린것을 내려다보고 달을 쳐다보면서 시
속을 한탄하고 새 ○ ○을 기다린다는 듯이 말하였다.
“이제 보오마는 때는 꼭 있을게요!”
미래를 보는 듯이 힘 있게 말하고 달을 쳐다보는 김 서방의 눈은 빛났다. 다른 늙은이들도 신비로운 꿈에 싸인 듯이 멀거니 앉아서 달을 쳐다보았다. 그 눈은 달빛 받은 그 늙은 눈은 다같이 달 속에서와 하늘 우에서 무엇을 찾고 그윽이 믿는 듯이 빛나고 위엄 있게 보였다.
흐르고 높고 넓은 하늘은 의연히 대지를 덮었다. 그 서쪽에 걸린 달도 의연히 신비롭게 비치였다. 뒷산과 앞벌에 살그니 흐르는 안개는 철철철 소리치는 강물 위로 몰렸다. 높은 하늘 푸른 달 아래 안개 속에는 무슨 큰 거령이 그윽이 숨은 듯이 보였다.
뜰 앞 밭을 우수수 스쳐오는 바람결에 산새 소리가 두어 마디 들렸다. 늙은이들은 여전히 돌아갈 것을 잊고 말없이 앉아서 강 안개와 푸른 달을 본다. 그 모양은 달과 하늘에 말없는 기도를 드리는 것같이 침묵한 속에 그윽한 위엄 이 흘렀다.
-끝-
2016년 11월 14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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