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고향은 전남장흥에 건산4구 일명 개아리라는 곳입니다.
한마디로 논농사를 본업으로 살아가는 농촌마을입니다.
저희 동네엔 한두살에서 많으면 서너살 터울로 남자들 10명정도 여자들 10명정도의 어린이들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남자들 10명중에서도 나름 잘나가는(?) 애들 다여섯명이 자주 어울렸습니다.
제가 어린시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곳은 저희 마을에서 십분 거리쯤에 있는 일명 장흥교도소에서 똥물이 흘러 내려온다는 냇가였습니다.
저희가 냇가로 수영하러 간다면 항상 어른들이 장흥교도소에서 똥물이 내려 온다며
“ 이 써글놈에 새끼들아, 무슨 지랄 이라고 똥물에 헤엄지러가냐 응 피부병 걸릴라고?”
무더운 여름에 여름방학에 누구 하나 학원 다니는 사람도 없고 덥고 무료한 여름에 똥물이 흘러 온다 한들 저희들에 눈엔 쉬리가 사는 일급수로 보였습니다.
삼삼오오 어울려 수건이며 물수경이며 작살이며 신호대에 묶은 백원짜리 조립낚시대에 자기집 거름애서 캐온 지렁이를 챙겨 일급수 똥물 냇가에 도착 합니다.
도착하자 마자 누구랄것 없이 깨댕을 홀딱벗고 물 속으로 뛰어듭니다.
저희 냇가 나름 깊었습니다. 지금 기억에 수심이 2~3미터 가량 되었던거 같습니다.
어르신 말로는 여기서 수영하다가 죽은 사람도 있다고합니다.
물귀신 있어서 밑에서 다리 잡아 당긴다며 그곳에서 수영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그것에서 죽은 사람은 한명도 없습니다.
다들 똥물에 빠져 죽기는 싫었나 봅니다.
나름 수심이 깊은 관계로 어린애들이나 수영을 잘못하는 애들은 수심이 낮은 자리에서 수영을 해야 했습니다.
옷 다 벗고 수영을 하다가 저 멀리서 여자애들이 오는 낌새들이 보이면 “야, 가시나들 온다. 빤수 입어라”
우린 모두 혼수백산이 되어서 니 빤수가 내 빤수고 내 빤수가 니 빤수가 되곤 했습니다.
여자애들도 지금 생각하면 빤수 하나 달랑입고 수영을 했습니다.
어린애들이니 가릴 찌찌가 없었겠죠.^^; 이렇게 신나게 수영을 하다가 배가 고프면 저희들은 본능적으로 먹을 것을 구하기 시작합니다.
국민학교 고학년 형들은 여름의 부르주아의 상징인 크고 동글한 물수경과 네모만 각목에 조각칼로 작살이 나갈 수 있는 구간을 파고 앞엔 우산대로 총입구를 만들고 100원주고 자전거점에서 산 폐타이어를 옆부분에 달아서 정말 멋진 작살을 손수 만들어서 물수경을 쓰고 작살을 손에 들고 잠수를 합니다.
한참을 이렇게 물 속을 오르내리다 보면 어느새 작살촉엔 메기며 붕어가 잡혀 있습니다.
낚시대를 가져 온 애들도 부지런히 고기를 잡아 올립니다.
고기를 잡지 않던 애들은 냇가 옆 밭에 가서 배추며 파 오이 가지 지천에 널린 산딸기를 따옵니다.
아부지 몰래 훔쳐 온 라이타로 모아 온 장작에 불을 붙입니다.
잡아 온 고기를 나무가지에 고기에 입에 끼워서 굽기 사작합니다.
맛소금도 아니고 집 소금푸대에서 한움큼 쥐어 검정봉다리에 담아 온 굶은 소금에 찍어 먹었던 고기 맛은 최고였습니다. 그리고 파는 구워서 초장에 찍어 먹으면 얼마나 감칠맛이 나던지. .
그렇게 저희는 배고픈 배를 채우고 또 다시 물놀이를 합니다.
어느날이였습니다.
한참 신나게 다이빙이며 돌찾기놀이를 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무언가가 떠내려 오는겁니다.
“ 저거 뭐시여? 나무토막이냐 뭐시냐?”
“ 나무토막은 아닌거 같은디, 뭐시다냐?”
잠깐 후 저희 앞으로 떠내려 온것 오리였습니다.
“ 형 오린디” “아야, 뭐더냐.얼른 잡아야”
이 광경을 지켜보던 애들이 순식간에 오리에게 달려 들어 무사히 오리를 생포합니다.
양날개쪽지를 잡아든 애 주위로 수영을 하던 모든 애들이 모여듭니다.
“ 어디서 떠내려 왔다냐?”
“ 저기 위에 개똥이집 오리 아니여?”
“ 그런갑다야, 오리 어짤라냐? 갔다줄거냐?”
“ 뭐할러 갔다줘야? 누구집에서 떠내려 온지도 모른디 어떻게 갔다줘야.”
“ 저기 위에 개똥이집만 오리 키운다냐?”
저희들은 소리 없이 움직입니다.
어떤 애들은 불을 필 나무를 구하러 가고 냇가에서 집이 가까운 애는 소금은 가질러 갑니다.
자유를 꿈꾸웠던 오리는 지질이도 복이 없어 물놀이게.허기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고기를 섭취하지 못한 국민학생들에게 걸린겁니다.
냇가에 떠내려 온 솥에 물을 끓여 털을 뽑은 후 배를 갈라 내장을 적출 한 후 쇠꼬챙이 꽂아 열심히 굽습니다. 노릇노릇 구워긴 오리바베큐는 옹기종기 모여 앉은.국민학생들에 의해서 사라집니다.
이 사건인 즉 개똥이네 오리실종 사건입니다.
그리고 몇해 후 나름 국민학교 중,고학년이 되어 저희는 주낙을 구입합니다.
반찬을 하려 어머니가 사서 말려 놓으신 고등어 두마리를 훔쳐서 냇가로 도망갑니다.
훔쳐 온 고등어를 바늘에 맞추어 큼직 큼직 잘라서 주낙 두개를 냇가 양 사이드에 설치합니다.
긴가민가 하며 다음날 향했던 냇가에 설치된 주낙엔 자라며 매기며 장어가 주렁주렁 걸려있습니다.
저희는 신이나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준비해 온 금색 스댕양동이에 담기 시작합니다.
양동이에 가득 채워집니다.
“이거 어짜까?” “시장통 가서 팔자”
“언마나 주까?”
“장어랑 자라 매기도 있는디 많이 주것제”
“안그냐?”
“그라제”
어린시절 우리에겐 자라가 장어가 매기가 최고였습니다.
물고기가 가득든 쓰댕 금색양동이를 들고 전쟁에 승리한 장수들 인양 시장통으로 향합니다.
민물고기 파는 가게 이곳저곳에 들려 가장 많은 금액을.제시한 곳에 팔아 넘깁니다.
금색 쓰댕양동이도 덤으로 줍니다.
그날 저희는 짜장면에 떡볶기에 극장에 오락실에 롤러에 원없이 먹고 놀았던거 같습니다.
그럴만한 놀이공간도 문화공간도 없었지만 피자며 통닭이며 햄버거같은 간식도 먹지 못했지만 고기도 집안에 행사가 있을때만 어쩌다 한번씩 먹는 가난한 농촌 촌놈들이였지만 그때 우리는 억만금을 주어도 사지 못할 평생 되새기며 행복한 어린시절로 언제든 돌아갈 수 추억이라는 동심을 산게 아닐까요?
여러분도 어린시절 추억들을 안주 삼아 좋은 사람들과소주 한잔 맛나게 기울릴 수 있는 오늘 밤이 되갈 바랍니다.^^ 반응이 좋으면 좌충우돌 저의 어린시절 이야기들을 연재하겠습니다.
첫댓글 저도어린시절 부잡하게 놀았는데 나이들수록 추억을 먹고산다는데 좋은 어린추억을갖고 계시네요 글잘보고 갑니다
제2탄도 기대됩니다.
또 재밌는 글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