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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수컷의 속성☆]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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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의 속성]
유승도 시집 / 시에시선 020 / 시와에세이(2019.02.27) /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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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의 속성
유승도
내 눈에는 새끼가 어미에게 달려드는 것으로 보이는데 흑염소는 어미가 아니라 암컷으로만 보이는 모양이다
소년의 풋풋한 기세로 자라난 새끼 옆에서 어미 흑염소는 엎드린 채 괴성을 내질렀다 이윽고 양수가 터지자 수컷 새끼 두 마리가 어미에게 달려들었다 아비 수컷도 함께 뒤엉켜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암내만 풍기면 달려드는 수컷들 앞에서 나는 끼어들지도 못하고 마냥 서 있었다 세상이 흘러가는 힘은 이렇게도 막을 수 있는 게 없다
삭풍이 건네는 말
유승도
생사가 자연이요
너도 자연이니
세월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도
서러워하지 마 화내지도 마
슈우우우우우우 나를 거쳐 산등성이 너머 그 너머로
달려가는 바람의 말이 들려오는 저녁
떠났네
유승도
배가 부르다 싶으면 숨쉬기가 힘들어진다며 숟가락을 일찍 놓았다
폐암이라며 담배를 피면 어떡하냐
질책에도 희미한 웃음을 드러내고 말더니
새벽,
먹고 싶다 하여 밤늦게 아내가 끓어 놓은 도토리묵은 잘 식어 찰진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
멀리 보이던 산이 미세먼지에 잠겨, 말없이 가버린 사람의 모습이 잡히질 않는다
가을 산책
유승도
자동차 바퀴에 납작 눌려서 집 앞 길바닥에 붙은 뱀이 발을 막는다
먹으려고 죽인 게 아니라 무서워서 죽이거나 어린 아들이 행여나 어찌 될세라 두려워서 죽인 독사다 내 눈에 띄었으면 또 죽였을 것이니 지나다 깔아버린 운전자가 밉지 않다
죽은 놈인데도 검고 붉은 얼룩무늬가 빛을 발한다 '슉' 발목을 물고 늘어질 태세다 다가가지 않고 보았다 슬픔을 자아낼 만큼 어여쁜 몸이다
불현듯 고개 들어 둘러보니 독사의 형색으로 물들은 산중이다
독사를 잡아먹은 가을이 꿈틀거리며 흐른다
한 마리가 늘었다
유승도
닭장을 벗어나 거니는 닭아 한 마리 늘었다 매일 홀로 튀쳐나와 돌아다니더니,
포섭한 것인지 부러웠던 닭이 따라나온 것인지
아우러져 다니는 모습이 신혼부부다
어째 짝을 찾으니까 좋냐? 물으니
그렇다는 듯 나란히 발걸음도 맞추어 곤드레나물 밭을 거닌다 다가서가는 흉내만 내도 걸음을 빨리 하여 달아나던 어제의 닭이 아니다
그런데 너희 외에 나올 애들이 더 있는 건 아니지? 둘이 파헤치고 쪼아먹는 것만으로도 텃밭이 엉망이 돼 가는데,
아들의 동화
유승도
빵집을 열어 종일 빵 냄샐 맡으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입에 빵을 넣으면 빵빵하게 웃음 짓는 사람들을 보면서 하루를 보내면 얼마나 좋겠어요?
가게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빵 냄새를 맡고는 기분이 좋아져 굳은 얼굴이 퍼지는 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흐뭇하잖아요
인생이 고소하고 부드럽고 달콤할 거예요
좋은 징조
유승도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았더니
보름달이 슬며시 웃고 있다
달이 나를 보고 웃다니
가만, 뭐 좋은 일이 있으려나
방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가 곱다
멧돼지 고기를 먹으며
유승도
꾸물럭꾸물럭 뱀도 씹히고 씁쓸쌉쌀한 도토리도 씹힌다 낙엽이 덮인 땅을 썩썩 코로 파대는 짐승이 다가온다 버섯 균사 내음이 온몸을 뒤덮는다
삶은 고기는 단단했다 웅덩이에 몸을 담그고 뒹굴어 흙으로 범벅이 된 몸을 나뭇등걸에 쓱쓱 문지르는 멧돼지의 억샌 털과 등가죽이 잡힌다 푸후푸후 내뱉는 숨결이 귀를 스친다
그놈이나 나를 향해 달려오던 산이었다
힘을 주어 우걱우걱 씹던 비게 한 점 없는 팍팍한 육질이다 멧돼지만 이 알고 있는오래된 숲의 그늘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입추는 지나고 비는 내린다
유승도
아침부터 굵은 빗줄기가 쏟아진다 서까래와 지붕이 만나는 곳의 틈에 지은 참새 집에서 새끼들의 외침이 빗소리를 가르며 방으로 들어온다 소리가 요란한 걸 보니 둥지를 떠날 날이 가깝다 벌레를 물고 드나드는 참새의 모습이 한두 번 눈에 잡혔는데, 영 배가 차지 않는 모양이다
저 둥지에서만 올해 들어 새 번 째 새끼들이 자라고 있다 봄부터 가을이 보이는 지금까지 참새의 번식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그들의 모습이나 슬쩍슬쩍 곁눈질하며 지냈다 사람의 기척을 살피며 오가는 어미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먹이를 달라고 소리를 질러대는 새끼들에게 ‘야 자식들아 조용히 못하겠냐! 구렁이라도 데려다주련? 엉!’ 고함을 치기도 했다
입추가 지나면서 여름밤의 열기도 꺾였다
눈물이라도 찔끔 짜내야 하나
우리 모두 스쳐 지나가는 사이어니
유승도
어린 너를 사 가지고 올 때는 밤이었지 트럭 짐칸에 목이 묶인 채 서서 도로를 밝히는 불빛이 무서운지 말이 없었지
지금은 낮인데 너는 그때와 다름없이 말이 없구나 스쳐 지나가는 사람과 그들의 집과 새와 구름과 나무와 산과 강이 너의 눈엔 곧 보이지 않게 되겠지 그래서 고갤 좌우로 돌리며 멀어지는 것들과 다가오는 것들에 아쉬움인지도 모를 눈빛을 던지는 것인지(만세를 외치고 있는 커다란 뿔이 뒷유리를 치는 소리만이 차가 나아가는 속도를 따라 어디론가 날려간다)
까만 염소야 너와 내가 어쩔 수 없는 동행이라고는 해도 살아 있는 동안은 우리 모두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이인 것을 인정해야 하지 않겠니 함께 했던 몇 년의 세월을 뒤로 보내며 너를 싣고 도축장으로 가는 이 길이 아니더라도
다행이다
유승도
병아리가 횃대에 날아오를 정도가 되면 어미 닭은 더 이상 품어주질 않고 모이를 찾아주긴커녕 돌아보지도 않는다
흑염소도 그렇다 젖을 뗀 뒤론 자식과 먹이를 다툰다 아비는 암컷 새끼 뒷등에 올라타고 수컷 새끼는 아비 흑염소의 눈을 피해 어미나 오누이의 뒤에 올라타 성기를 박는다
얼마나 다행인가
사람 같질 않으니
소쩍새가 울어서
유승도
오늘 하고자 했던 밭 갈기를 마치고 마당에 서서 어둠이 내리는 앞산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곧 밤이 되자 소쩍새가 어둠은 달구며 웁니다 서산 위로 초승달이 뜨고 별들도 하나둘 나타나 빛을 쏘아댑니다 등 뒤 골짜기에선 물소리가 저승사자의 웃음소리인 듯 다가옵니다 숲에선 짐승의 발걸음 소리가 새어 나옵니다
달이 향나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옮겨지는 동안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습니다 밤이 익을수록 깊이 파고드는 소쩍새 소리만 아니었다면 일찍 방으로 들어가 몸을 뉘였을 테지요 달과 별과 물소리와 숲속 짐승과 나를 이어주는 소리만 아니었다면
붕어
유승도
어머니날이 다가오묜 조회 시간이나 음악시간엔「어머니 은혜」란 노래를 불렀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나는 목청 높이 부르는 아이들 속에서 선생님의 눈초리가 두려워 입만 빵긋빵긋
바람 속에서 살아가기
유승도
폭풍을 맞아 상체를 숙인 채 걷던 할머니의 손에 쥔 보자기가 풀리면서 사과가 길바닥으로 쏟아졌다
노인은 주저앉아 달아나는 것들을 손으로 잡아 보자기 안으로 모은다 제발 가만히 좀 있어라 사정하지만 둥근 것들은 구르려 하고 바람은 굴리려 한다
노인의 손아귀를 벗어나 차도로 나간 아이들이 바퀴에 깔려 으깨진다 자동차를 피한 아이는 차도 중앙으로 달려간다 분리대에 닿아 몸을 추스르고 있는 아이도 보인다
노파의 갈퀴손이 보자기를 다시 꽉 조여 맨다 일어나 몸을 숙인 할머니는 길 중앙으로 가서 위태롭게 서 있는 아이를 보자기 안으로 넣고 차로 분리대에 기대 있던 아이고 집어넣는다
길을 걷는 할머니의 보자기가 출렁인다 좀 더 세차게 바람이 분다 할머니는 허리와 고개를 좀 더 숙이며 걸어나간다 둥글게 둥글게
비명
유승도
비실비실 타들어 가는 작물들을 보고 있자니 내게서도 타는 냄새가 난다
풀풀 흙먼지가 날리는 한낮, 물기 없는 풀들이 잎을 돌돌 만 채 널브러진 길가에 서서 망연자실 앞을 보고 있자니 들판 너머 산 너머에서 불이 붙어 타들어 가는 몸으로 비틀비틀 걸어오는 사막 인간들
현대시작법
유승도
현대시는 이런 것이다
현대시는 이렇게 쓰는 것이다
이런 현대시작법
현대적이지 못한 현대시작법
드러나지 않게
유승도
회양목에 ㅍ꽃이 핀다 줄기를 따라 다닥다닥 피어났다
곁을 오가더라도 발을 멈추고 가만히 보아야 보이는 꽃, 쓰윽 지나다 보면 꽃이 피었는지 어쨌는지 알 수가 없다
사철 푸른 잎을 따라 꽃도 잔잔한 녹음을 띠고 있어 방그르르 아이들 웃음처럼 피어나도 반짝 드러나지 않는다 은근한 향기가 나를 감싸는 때가 있기도 하나 어디서 날아오는지, 눈앞에 꽃을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다
하는 일이 없어도 하루는 왜 이리 빠르게 흘러가는가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다가 산 넘어가는 달을 따라서 가볍게 가리라 마음을 잡으면서도 누구보다 빨리 봄을 알아 피어나는 꽃을 친구로 사귀지 못한 채 또 10년을 보냈다
완전한 혁명
유승도
죽으면 더는 인간이 아닐 것이니
나에 대한 혁명을 더 이상 필요치 않겠지
여리고 맛있다
유승도
처음 달린 고추와 오이를 따서 밥반찬으로 먹는다 풋내가 입안을 가득 메우는 것이 여릿여릿하면서 맛있다
먹거리는 대개 어린 것이 맛있다 소도 돼지도 그랬다 사춘기에 막 접어든 아이들 같은 소나 돼지를 잡아먹으면 입안에서 스르르 녹았다
나는 어떨까? 누군가가 나를 먹는다면 맛이 있을까?
배고픈 짐승이 먹는다면 맛있게 먹겠지만 그렇더라도 야리야리하거나 살살 녹는다거나 하지는 않을 거 같다
나도 오래 살았다
끝난 뒤
유승도
비닐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참새 두 마리가 모이를 먹다가 한 마리는 열려진 문으로 날아가고 한 마리는 하늘로 가려다 비닐에 막혀 떨어져 뒤따라온 개에게 먹혔다
날아갔던 참새가 다시 날아와 비닐하우스 안을 날아다니며 울부짖었으나
산촌의 평화
유승도
한낮의 인자한 햇살이 산야를 비춘다
개나 염소 팔아요
밭에서 옥는 사람들과 낮게 엎드린 집들 사이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있다
게나 염소 삽니다
손에 손을 맞잡은 새들의 지저귐, 하늘 높이 산 너머로 와우와우 몰려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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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또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오니 내 나이도 60이다. 무엇인가를 해놓거나 남긴다는 것도 별 의미가 잡혀지지 않는다. 그런 중에도 나는 글을 쓰고 있고 그 결과물로 또 한 권의 시집을 내게 되었다.
어쭙잖은 말은 더 늘어놓지 않기로 한다. 다만 지금까지 내가 시인으로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옆에서 나를 밀어주었던 몇몇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만은 밝혀두고 싶다. 내 시 중에 사람의 마음을 달래주는 글이 한 편이라도 있다면 그건 내가 쓴 것이 아니라 그들이 쓴 것이다.
2019년 새해 아침
망경대산 중턱 오두막에서
유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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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도 詩集 [※수컷의 속성※]
[ 시인의 산문 ] -
더 어두워진다 해도
유승도
어둠이 깔리는데, 하루 종일 가만히 있던 전화기가 울린다.
“어, 승도! 난데, 여기 모운동에서 주문리로 내려가는 길인데 좀 와줄 수 있어? 술을 먹었는데, 어질어질해서 차를 세우고 잠깐 잠을 잤더니 시동이 걸리질 않네, 배터리가 방전된 모양이야.”
모운동은 내가 사는 망경대산의 반대편 경사면에 위치한 마을이다. 광산이 돌아갈 땐 빛나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한창때엔 외지에서 일을 하려고 사람들이 많이도 왔지. 막차를 타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돌고 돌아 언뜻 눈부신 세계가 눈에 들어왔을 때‘야 산중에 뭐 이런 세상이 다 있나!’하고 놀라는 거였지. 그리고 버스에서 내려 다방과 술집이 어우러져 걸판지게 돌아가는 광경에 또 놀라고, 술에 취해 잠에서 깨어난 아침의 거무튀튀한 모습에 다시 놀라곤 했지.”
처음 찾아온 사람들이 세 번을 놀라곤 했다는 모운동 이장의 말이 허풍으로 들릴 만큼 마을은 변했다. 극장까지 있었다는 마을이지만 떠날 사람은 다 떠나간 뒤에 다시 찾아 들어온 사람들이 새로 단장하여 탄광촌의 모습을 벗어버렸다. 구세군 연수원이 들어서고 폐교된 초등학교 건물은 펜션으로 바뀌었다. 판화 미술관도 들어서고 집들은 지붕을 개량하고 벽화도 그려 넣고 마을 중앙엔 소규모 공연 정도는 할 수 있게 야외무대도 설치했다. 갱도 입구까지 산책로도 정비돼 있는 등 관광지로 변모시키려는 노력이 보인다. 그러나 관광지라고 하기엔 썰렁한 모양새다. 농사를 짓는 전통적인 농촌도 아니고 관광지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니 그저 산촌이라고나 해야 할까?
방문을 열고 나가 집 앞에 세워둔 차까지 가는 짧은 시간에도 머리를 적셔 축축해질 만큼 비는 꽤 굵직한 방울로 내렸다. 우산을 쓰고 나올걸. 잠시 후회하는 마음이 스쳤으나 되돌아갈 정도는 아니었다.
바람 소리가 엔진음을 뚫고 차 안까지 흔들었다. 낙엽이 빗속을 어지럽게 날며 차 앞 유리 밖의 세상을 조각내곤 땅으로 내리거나 등성이 너머로 날아간다.
등성이 굽잇길을 돌 때마다 낙엽에 바퀴가 미끄러지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가 따라붙었다. 비에 적셔진 낙엽이 빗물에 번들거리는 아스팔트에 떨어지지마자 달라붙어 길은 온통 낙엽으로 덮였다. 길가의 소나무와 아카시아와 참나무․ 낙엽송․ 사시나무 등의 잎이 비바람이 몰아칠 때마다 도로 위 하늘을 가린 나뭇가지들로부터 떨어져 길을 덮었다. 와와와 수천수만의 군인들이 뒤엉켜 죽고 죽이는 육탄전이 벌어진 도로였다. 피비린내가 차안까지 스며들었다. 그렇다고 차를 세울 수는 없었다. 깜깜한 숲속 길이다. 귀신이 떼거리로 몰려들어 끌고 가도 모를 길에서 차를 세우고 뭘 어쩌자는 것인가? 가야한다. 목적지가 있으니 그곳까지 가면 된다. 목적지도 없이 가야만 했던 길이 몇몇이었던가?
우구 아빠가 모운동엔 웬일인가? 하긴 동네가 다르다 하여도 좁은 지역이다. 모운동에 아는 사람이 있어 술 한 잔 나누러 왔다는 것이 이상한 일일 수는 없다. 이상한 건 그게 아니라 내게 전화를 한 것이다. 함께 있던 사람에게 전화를 하면 될 것을 왜 내게 했을까? 차가 없는 사람 집에 왔었나? 아니면 술을 마시다 서로 다투기라도 했나?
길옆으로 살짝 들어간 곳에 새로 지은 집이 보였다. 길이 있으니 외딴 산중의 높은 곳이라고는 해도 집이 들어선다. 아래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구불구불 이어진 길은 자동차가 아니라면 오갈 엄두도 내기 힘든 길이다. 탄광이 없었다면 찻길이 날 수 없는 산이다. 마을과는 동떨어진 외딴 산중을 찾아 들어온 사람이 문득 보고 싶다.
나도 이곳에 들어올 때 사람을 찾아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산 위를 향해 구불텅구불텅 등성이를 돌길 몇 번, 산정쯤 되겠다 싶은 곳에서 내려 보니 중턱쯤이었다. 안내해준 사람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길 위쪽에 낡은 오두막 한 채가 있었다. 다른 집은 보이지 않았다. 겨울로 들어선 무렵이어서 그런지 황막하게만 와 닿는 산등성이에 들어선 집과 주위의 밭 풍경이 마음을 끌었다. 즉시 주인을 만나 계약을 했다.
비어 있던 오두막을 고치는 중에 산비탈을 타고 띄엄띄엄 들어서 있는 집이 10채 정도 된다는 것을 알았으나 어차피 농사를 지으며 살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없는 것 보다는 나으리라 생각했다.
산을 넘어 등성이를 돌고 돌며 내려가는 길에도 낙엽들이 뒤덮였다. 여기까지 오면서 미끄러지지 않았는데 뭐 어쩌랴 싶은 생각이 들자 마음이 좀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서야 모운동의 불빛이 차창 밖으로 반짝였다. 전국에서 탄질이 제일 좋았다고 하는 옥동탄광의 본거지가 있던 마을이었지만 이제는 산속에 있는 그저 그런 촌일 뿐이다.
으으! 저 차인가? 근데 여기는 마을을 벗어난 길이 아니잖나? 모운동을 살짝 벗어난 길가라고 했는데….
마을을 벗어나 길가를 살피며 조심조심 차를 몰았다. 산모퉁이를 돌아나갈 때는 더욱 천천히 나아갔다. 차는 보이지 않았다. 아까 그 차가 맞나?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조금만 더 내려가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술을 마신 상태니까 거리 감각이 떨어져서 꽤 벗어난 거리를 ‘살짝’이라는 말로 표현했을 수가 있었다.
모운동과 산 아래 강변 마을인 주문리 사이의 중간 지점까지 갔으나 차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이왕 중간까지 내려왔으니 주문리까지 가보자. 가는 길에 발견하면 다행이고 아니면 다시 올라가면 되겠지. 어차피 폭이 좁아 차를 돌리기도 어려운 길이었다.
산 아래로 내려가자 구제역이 번질 대 돼지를 파묻은 지점이 길옆으로 보였다. 돼지를 묻은 이후 양돈장은 폐쇄됐다. 그때 돼지들은 생매장을 당했지만 양돈장 주변에 살던 네다섯 집은 축복을 받은 거나 다름없었다. 돈이 없어 이사를 가지도 못한 채 똥냄새에 파묻혀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었다.
언덕 같은 야트막한 산 하나로 분리돼 있는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도 쾌재를 부르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또 다른 누군가는 심각한 피해를 당해야만 하는 세상살이다. 나라 차원에서는 그나마 이득이 되는 것인지. 축산진흥정책을 세워 축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는데 돈을 지원하면서 행정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가축을 기르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소중한 나라다. 고기 맛을 풍성하게 볼 수 있게 된 일반 사람들에게도 괜찮은 나라일 수 있다. 그러나 축사 주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돼지 같은 나라다. 축사 주위의 자연 생태계에도 마찬가지다.
다 좋을 수만은 없다고 한다면 피해를 보는 사람들에겐 응당 보상이 따라야 하건만 그런 일은 피를 토하며 달려들어 한바탕 싸움을 해야만 겨우 조금이나마 손에 쥐어지는 것이니 웬만한 일은 그저 얼렁뚱땅 넘기게 된다. 정 못살 정도가 아니라면, 떨치고 일어나 나라와 싸우는 일은 좀체 일어나지 않는다. 다행인지는 몰라도 돼지 축사에서 나오는 냄새는 가까운 곳에서 사는 사람들에겐 지옥이나 다를 바 없어, 너나없이 가로막아 새로 짓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돼지를 묻은 지점을 지나자마자 차를 돌렸다. 모운동을 벗어나기 전에 길가에 세워져 있던 차가 틀림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무리 술을 먹었다 하더라도 산을 다 내려와서까지 모운동을 살짝 벗어난 길가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터였다. 차를 타고 10분정도 걸리는 거리를 그리 가깝게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내려온 길을 되짚으며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에도 내려올 때와 같이 차 한 대 만나는 일이 없었다. 다만 온통 깜깜하여, 길을 벗어나 나무를 들이받거나 낭떠러지로 떨어지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바짝 긴장된 상태로 앞을 살폈다.
내 차를 본 우구 아빠가 손을 흔들었다. 한참 만에 전화를 받은 우구 아빠에게,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는 중이니 좀 더 기다리라고 얘기를 해놔서일 게다. 차를 옆에 세우고 내렸더니 민망하다는 듯 슬쩍 웃음을 지으며 다가와 손을 내민다.
“좀 아까 내려가면서 보긴 봤는데 그냥 지나쳤었죠.”
휴대 전화로 불을 밝힌 채 배터리 선을 내 차에 연결하는 우구 아빠의 뒤에 서서 한마디 툭 건넸다.
“빠앙.”
경적을 짧게 울리며 우구 아빠는 집을 향해 떠났다. 오랜만이라 그렇겠지만 우구 아빠도 많이 늙었다. 요 몇 년은 일 년에 한 번 정도 본 것 같으니 소원하게 지낸 셈이다. 내가 만경대산에 정착한 그해에 만났으니 20년이란 세월을 어울린 사람이다.
“안녕하십니까! 시를 쓰신다며?”
농협 앞에서 수염과 머리를 길게 기른 도사풍의 남자가 내게 말을 걸었던 것이 1998년 봄 혹은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김삿갓 생가 옆에 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더니 내 아들만 한 아이가 있었다. 이름이 우구라고 했다. 그다음 만남부터 호칭을 ‘우구아빠’라고 했다. 나보다 나이가 세 살 더 먹은 이유로 경우에 따라 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 뒤로 가끔 만나며 서로 아는 사람을 소개하여 여덟 명이 함께 어울렸다. 고향을 떠났다가 돌아온 한 사람을 빼고는 다 외지인이었다.
우구와 내 아들인 현준이는 유치원부터 시작해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함께 다니게 되면서 단짝이 되었다. 비록 우구는 영월공고로 현준이는 영월고등학교로 갈리게 되었으나 군대에 있는 지금까지도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통화를 하며 지내고 있다. 상근 예비역으로 집에서 출퇴근을 하며 군 생활을 하고 있는 현준이에게 우구는 휴가를 나올 때마다 찾아와 밤새워 놀다가 간다. 그에 비하면 나와 우구 아빠나 현준 엄마와 우구 엄마의 사이는 예전만 같지 못하다. 여덟 사람이 가족을 동반하여, 여름은 강에서 겨울엔 각자의 집을 돌아가며 만나 술도 마시고 음식도 해 먹으며 놀던 때에 비하면 휑한 바람만 부는 사이가 되었다. 두 가족은 아예 멀어져 만남이 없고 나머지 여섯 가족도 특별한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곤 일부러 시간을 내어 만나는 일은 없다. 서로에 대한 열정이 식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다들 나름대로의 삶이 그만큼 안정되어 있다고나 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나이가 먹은 탓일까?
집으로 가는 길엔 비바람이 잦아들었다. 대신, 불빛이 없다면 한 걸음도 나아가기 힘든 지경의 어둠이 온 세상을 덮었다. 몰아치던 폭풍우마저 삼켜버림 듯한 캄캄함이 앞을 막았다. 자동차 전조들이 없다면 헤쳐갈 엄두조차 나지 않을 일이었다. 피할 수만 있다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다가오는 비나 바람 폭설. 이 어둠까지도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과다함은 잠시거나 하룻밤을 넘기기 힘들다. 길어도 하루나 이틀 이내이다. 하루나 이틀이 길고 긴 시간일 수 잇다. 그 사이에 어찌해볼 수 없는 불상사가 일어나 생이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피하고 있으면 대부분은 별일 없이 지나게 돼 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피한다는 것도 기실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자신을 죽이거나 무릎을 꿇고 노예가 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오늘 같은 날의 밤에 산을 넘어가 일을 보고 다시 산을 넘는 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할 수 있음에 대해 자동차에 감사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다 자연스런 일이라 생각한다. 문명도 자연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는 일이니 더욱 그렇다.
집 앞에 차를 세우고 엔진을 끄니 많은 것들이 순식간에 지나간 느낌이 몰려온다. 어둠을 뚫고 방에서 새어나오는 빛이 눈에 들어온다. 아늑한 밤이다. 밥상을 차려놓고 나를 기다리는 아내와 아들의 모습이 잡힌다. 집과 우주는 집 한 채라는 면에서 본다면 다를 게 없는 존재다. 나는 언제나 우주라는 집에 들어 유유자적하며 지내다 집 자체가 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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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인간 세상이 아니라 자연 세상이 그대로 드러나는 시집이다. “살아 있는 것들아 우리 서로 욕하진 말자”(「노을 너머를 바라보다」)는 시 구절처럼 기르고 가꾸는 동식물들은 물론 멧돼지나 꿩 등 야생, 산과 들과 하늘과 별 등 대자연과 온몸으로 어우러지며 나온 시편들. 예쁨과 미움, 선과 악 등 인간 세상의 분별을 떠나 자연이 쓴 이 시편들이 인간의 야성, 자연성을 돌려주고 있다. 시의 문법도 부러 짓거나 꾸민 것이 아니라 생각할 틈새 없이 자연스레 터져 나온 즉물적인 자연 문법이다. 교감이니 관조니 하며 학습과 교양으로 쓴 자연시와는 그 본질과 문법부터 다르다. TV 인기 장수 프로그램「나는 자연인이다」추석 특집 주인공으로 나와 많은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천생 자연인 유승도 시인, 이번 시집을 통해 야성적이면서도 한없이 따스한 자연의 시편들을 다시금 보여주고 있다. ― 이경철. 시인, 문학평론가
시집을 열면, ‘오래된 미래’로서의 자연 풍경들이 산수화 병풍처럼 고즈넉이 펼쳐져 있다. 그곳에는 “망경대산에 20년 넘게 살다 보니 나보다 먼저 봄을 맞아 피어나는 동백꽃이 산의 모습임을 알겠다”(「동백꽃 처녀」)는 자연파 시인이 인생을 찬찬히 사유하며 천천히 거닐고 있다.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참나무 한 그루가 푸른 꽃 한 송이다”(「5월」)라고 노래하고, 자연과 생명의 전일성을 “독사를 잡아먹은 가을이 꿈틀거리며 흐른다”(「가을 산책」)는 독특한 이미지로 그린다. 또한 “암내만 풍기면 달려드는 수컷들 앞에서 나는 끼어들지도 못하고 마냥 서 있었다”(「수컷의 속성」)고 하여 동물적 행동에서 자연의 시원적 원리를 발견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지구, 그 점 안의 점으로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의 전부라고 외친다”(「창백한 푸른 점」)고 적으면서 자연을 우주적 상상과 인간 비판의 매개로 삼는다. 하여 이 시집에 펼쳐진 자연 병풍은 생명과 인생과 우주를 하나의 풍경으로 이어주는 시적 상상의 바탕인 셈이다. 이 바탕 위에서 유승도 시인의 자연시 혹은 생태시가 탄생한다.
― 이형권. 문학평론가, 충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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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도 시인∥
∙ 충남 서천에서 태어났다.
∙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
∙ 995년『문예중앙』으로 등단하였다.
∙ 시집으로『작은 침묵들을 위하여』『차가운 웃음』『일방적 사랑』『천만년이 내린다』『딱따구리가 아침을 열다』. 다.
∙ 산문집으로『촌사람으로 사는 즐거움』『고향은 있다』『수염 기르기』『산에 사는 사람은 산이 되고』 등이 있다.
∙ 현재 영월 망경대산 중턱에서 농사를 조금 지으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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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자연 그대로의 삶이 농사와 시가 되는 영월 만경대산의 유승도 시인!
이순으로 접어든 강원도 영월 만경대산의 유승도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수컷의 속성』이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유승도 시인의 이번 시집『수컷의 속성』은 앞의 시집들과 마찬가지로 그가 삶의 터전을 이루고 있는 강원도 영월 망경대산의 자연을 시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시인의 독특한 약력에서 보듯 그는 아직도 자급자족의 농사를 지으며 만경대산 중턱의 삶의 터전을 지키고 있다. 그러면서 농사는 물론 주변의 동식물과 한 몸을 이룬 채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자연과 삶이 하나라는 가장 시적인 시세계를 견인하고 있다는 증거다.
여기는 내 집 옆이다 나도 물러설 수는 없다 그래, 나를 어찌하고 싶다면 덤벼라 누구 하나가 죽어야 한다면 한번 해보자
낫을 든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살짝 피하면서 찍어야 한다
멧돼지는 팍팍 땅을 찍으면서 달려왔다
마악 발을 움직이려는 찰나였다 좀 더 세게 땅을 앞발로 팍 찍는가 싶더니 멧돼지가 방향을 틀어 나무 사이로 달려갔다
목숨을 걸고 싶은 마음은 없었구나 비켜줘서 고맙다
멧돼지의 발걸음이 일으키는 소리도 곧 들리지 않았다 숲이 깊다
―「사투를 벌여야 한다면」 전문
짐승의 세계에서 어떤 영역을 지켜내는 것은 삶을 유지하는 양식이다. 이 시에서 사투를 벌이는 이유가 “내 집 옆이다 나도 물러설 수는 없다”에서 드러나듯 곡식과 가축을 지키고자 하는 농사꾼의 결연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다행히도 멧돼지는 “방행을 틀어” 비켜간다. 여기에서 시인은 “목숨을 걸고 싶은 마음은 없었구나 비켜줘서 고맙다” 절한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함께하는 삶의 양식, 공동체적 삶의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유승도 시인은 영월 만경대산의 오막살이에서 20여 년 동안 농사를 지으며 시를 쓰고 있다. 그의 농사와 시 속에는 싱싱한 곡식과 푸성귀가 가득하고 마당에는 가축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또한 들과 산에는 날짐승과 들짐승이 어우렁더우렁 함께 한다. 그것은 “생사가 자연이요/너도 자연이니/세월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도/서러워하지마 화내지도 마”(「삭풍이 건네는 말」 부분)와 같이 자연을 숭배하며 살아온 시인의 이력이 짙게 배어 있다. 따라서 이순을 맞이하며 펴내는 이번 시집은 유승도 시인만의 독특한 시적 세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생활시’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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