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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 변했고 나도 변했다 – 팔공산(파계봉,가마바위봉,비로봉,삿갓봉,갓바위)
1. 왼쪽부터 팔공산 동봉, 비로봉, 법왕봉
태백산에서 소백산맥 쪽으로 큰 줄기 한 가닥을 내어주고서도, 백두대간(白頭大幹)은 여태 신이 풀리지 않아,
그 아랫배에 힘을 마지막 몰아 쥐고서는, 불끈 팔공산을 일구고 여세를 몰아 가지산맥까지 내어뻗히고 있다. 그래서
팔공산(1,192.9m)은 한반도의 그 단전(丹田)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만큼 힘이 꽉 찬 느낌이다.
하늘에서 눈의 조리개를 좁혀 거기만 내다보면, 그것은 흡사 천하장사가 서로 샅바를 움켜잡고 맞붙은 형국일 시
분명하다. 주능선이 크게 ㄱ자로 휘어진 까닭부터 그렇다. 양편 힘을 배분하느라 왼쪽 끝 북서면에서 가산릉이 떠다
밀고 있는가 하면, 남서면에서 도덕산릉이 옆구리를 괴어주면서 거기 오른쪽 북동에서 또 신령릉이 등줄기를 떠받
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꺾임새 뒤쪽, 주봉의 뒤통수에서 시루봉릉이 등을 대어 앉음새 전체에 확실한 구도를
잡아주고 있다.
―― 김장호(金長好, 1929~1999), 『韓國名山記』 ‘팔공산(八公山)’에서
▶ 산행일시 : 2023년 7월 1일(토), 맑음, 운무
▶ 산행코스 : 한티재,삼갈래봉,파계봉,거북봉,가마바위봉,서봉,비로봉,동봉,염불봉,도마재,신령봉,삿갓봉,은혜봉,
노적봉,갓바위,갓바위주차장
▶ 산행거리 : 이정표거리 17.6km(도상 16.2km)
▶ 산행시간 : 6시간 50분
▶ 교 통 편 : 대성산악회(18명) 버스 타고 가고 옴
▶ 구간별 시간
07 : 13 – 복정역 1번 출구
08 : 33 – 충주휴게소( ~ 08 : 55)
10 : 40 – 한티재, 산행시작
11 : 10 – 파계재
11 : 30 – 파계봉(把溪峰, △994.1m)
11 : 46 – 거북봉(979.2m), 휴식( ~ 11 : 56)
12 : 14 – 가마바위봉(1,053.9m), 톱날바위
12 : 55 – 1,066m봉, 점심( ~ 13 : 07)
13 : 28 – 서봉(1,150.2m)
13 : 36 – 오도재, ┣자 갈림길 안부, 오른쪽은 수태골주차장 2.9km
13 : 56 – 비로봉(毗盧峯, △1,192.9m)
14 : 12 – 동봉(彌陀峰, 1,167.0m)
14 : 43 – 1,042m봉, 팔각정
15 : 11 – 도마재(신령재)
15 : 16 – 신령봉(996.5m)
15 : 31 – 바른재
15 : 42 – 삿갓봉(931.3m)
16 : 12 – 느패재(능선재)
16 : 15 – 은해봉(恩海峰, 891m)
16 : 36 – 노적봉(891m), 북방아덤
17 : 00 – 갓바위(855m)
17 : 30 – 갓바위 주차장, 산행종료(18 : 27 – 버스 출발)
19 : 55 – 문경(양평)휴게소( ~ 20 : 08)
21 : 50 – 복정역
2-1. 팔공산 지도
2-2. 팔공산 지도
3. 문경 지나면서 바라본 차창 밖 풍경, 주흘산은 구름에 가렸다
4. 파계재 가는 길
5. 파계봉 가는 길
6. 가마바위봉에서 바라본 톱날바위
7. 톱날바위
8. 비로봉 쪽 팔공주릉
9. 청운대, 하늘정원
▶ 파계봉(把溪峰, △994.1m)
한티재. 큰 재라는 뜻이다. 해발고도 700m. 준령이다. 산행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동쪽으로는 팔공산 주릉으로
가고, 서쪽으로는 가산산성 치키봉과 가산을 넘고 오계산, 실봉산, 백운산, 매봉산, 황학산, 유학산을 넘어 구미
천생산으로 간다. 나는 11년 전 겨울에 킬문 님과 가산산성에서 천생산까지 갔었다. 도상 34.6km. 15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때는 한파주의보보다 더 추운 동천(冬天)이어서 속도 내기가 아주 좋았다.
오늘은 그때와는 정반대로 폭염주의보보다 더 무더운 염천(炎天)이다. 팔공산 들머리 데크계단 오르막 입구에서
일행들이 주춤한다. 팔공산 종주할 사람은 먼저 가시란다. 나 혼자인가요? 하고 묻자, 또보아 님이 가실 거라고 한
다. 그 철각과 함께 가기는 버거우니 내 우선 길 저축부터 해야겠다 하고 먼저 출발한다. 여기 올 때도 그랬지만 산
중턱 위로는 운무가 잔뜩 끼었다. 한티재 숲속 길 또한 짙은 안개 속이다. 대기는 선선하지만 몇 발짝 나아가자 더운
기운에 비지땀을 쏟기 시작한다.
팔공산은 지난 5월 23일자로 그간 도립공원에서 국립공원으로 승격하였다. 태백산에 이어 23번째다. 그러나 여러
이정표나 안내판 등에는 아직 도립공원인 상태다. 조난이나 사고 등을 대비한 현위치 번호판이 갓바위에서 1번부터
시작하여 한티재에 이르러 150번으로 끝난다. 그 거리가 이정표 거리로 15.6km이니 대략 100m마다 현위치 번호
를 매긴 셈이다. 그 번호를 역순으로 모두 지나가야 한다니 시작부터 아득하다.
길 좋다. 완만한 소나무 숲길이다. 산책 나온 듯한 가벼운 차림의 사람들을 자주 마주친다. 안개 속이라 아무 볼 것
이 없으니-안개 속 농담의 수림이 아름답기는 하다- 막 간다. 긴 오르막인 삼갈래봉(833m)을 넘어 뚝 떨어지면 ╋
자 갈림길 안부인 파계재다. 앞으로 오를 파계봉도 그렇지만 파계재도 ‘파계사(把溪寺)’라는 절 이름에서 유래한다.
파계사는 ‘계곡의 물줄기를 잡는다’라는 뜻을 지닌 절로 원래 절 주위에 아홉 갈래나 되는 물줄기가 흘렀는데, 땅의
기운이 흩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절 아래에 연못을 파고 물줄기를 한 데 모았다는 데에서 이름이 유래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절 이름으로 ‘파계사’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파계(破戒)는 계(戒)를 받은 스님이 그
계율을 어기고 지키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파계재에서 파계봉까지는 긴 오르막 1.05km이다. 거친 숨 한번
몰아쉬고 내쳐간다. 오르막 막판에는 울창한 숲속 계단 길이다. 파계봉은 영객송이 반기는 암봉이다. 조망이 썩 좋
을 듯한데 오늘은 운무가 짙어 무망이다. 오석의 정상 표지석과 삼각점(310 재설, 78.11 건설부)이 있다.
적어도 1시간을 주기로 휴식하기로 한다. 한티재에서 파계봉까지 3.15km. 길이 좋아 50분 걸렸다. 파계봉 다음
봉우리는 ┣자 갈림길이 있는 장꼬방봉(994m)이다. 장꼬방은 ‘장독’의 방언이다. 완만하게 길게 내리고 그렇게 올
라 거북봉(979m)이다. 정상은 그늘진 너른 공터다. 휴식한다. 곧 뒤이어 또보아 님과 근산 님, 꼬꼬 님이 도착한다.
함께 휴식한다. 입산주 탁주를 독작한다. 그들은 술기운이 돌면 다리에 힘이 풀리기 때문에 산행 중에는 마시지 않
는다고 한다.
넷이 함께 간다. 먼 길을 갈 때는 함께 가라고 했다. 오로지 걷는 데 열중하느라 말이 없다. 마치 경주하듯 간다.
바윗길이 나온다. 상여바위를 지난다. 가파른 오르막이다. 이정표의 톱날바위가 가깝다. 가마바위봉은 경점이다.
비로봉으로 가는 팔공주릉이 한 눈에 들어오는데 운해가 그 장릉을 차마 넘지를 못하고 있다. 톱날바위인가 보다.
몇 개의 바위가 불꽃처럼 솟았다. 그 허리께로 잔도를 놓았다. 톱날바위 지나고 나이프 릿지가 잠깐 이어진다.
10. 청운대, 장군바위
11. 서봉에서 바라본 동봉(미타봉)
12. 서봉에서 바라본 비로봉, 팔공산 주봉이다
13. 팔공산 서릉, 가마바위봉
14. 비로봉 정상
15. 청운대, 하늘정원
16. 비로봉과 법왕봉
▶ 서봉(1,150.2m), 비로봉(△1,192.9m)
여태와는 다르게 길이 사나워진다. 바윗길은 젖어 여간 미끄럽지 않다. 숨은벽 다름 아니다. 멀리서는 줄달음하기
좋은 산릉으로만 보았는데 밧줄 달린 슬랩을 자주 만난다. 넷 중 누구라도 선뜻 쉬어가자고 하였으며 좋으련만 서바
이벌 게임을 하는 것처럼 그저 걷는 데 여념이 없다. 1,066m 고지 공터가 나온다. 내가 졌다. 내 허기져서 더 못가
겠다고 하며 널브러지자 다른 일행들이 기다렸다는 듯 요기 좀 해야겠다며 배낭 벗고 자리 잡는다. 반석 하나씩 차
지하여 상으로 삼고 늦은 점심밥 먹는다.
배가 부르니 살 것 같다. 비로소 눈에 초점이 잡힌다. 오르막 바윗길이 대수냐 성큼성큼 걷는다. 서봉이 금방이다.
서봉도 경점이다. 사방 한 번 얼른 둘러보고 데크계단 내린다. 0.4km. 뚝뚝 떨어져 바닥 친 안부는 ┣자 갈림길인
오도재다. 오른쪽은 수태골 주차장(2.9km)을 오간다. 숲속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미끄러운 사족보행 바윗
길도 나온다. 등로 살짝 비킨 바위에 다가가 온 길 살핀다. 가마바위봉 너머는 운무에 가렸다.
비로봉 오른쪽 사면 도는 길에 왼쪽 철조망 쪽문이 열렸다. 비로봉을 직등하는 길이다. 냉큼 쫓는다. 이중 철조망
사이의 키 넘는 풀숲에 길이 뚫렸다. 이내 주등로 돌길과 만난다. 비로봉 70m. 배낭 벗어놓고 다니러간다. 하늘이
트여 따가운 땡별이 가득한 돌길이다. 별스런 조망이 없는데 이 비로봉 정상을 굳이 개방한 이유를 모르겠다. 서봉
에서 사면 돌아 동봉으로 곧장 가면 좀 좋겠는가 말이다. 삼각점은 1등이다. 군위 11, 1979 재설.
비로봉 안내판의 내용이다.
“팔공산은 불교의 성지라고 할 만큼 명산대찰이 많은 곳이다. 동봉을 아미타불(극락세계에 계신다는 부처님)을 줄
여서 미타봉으로 부르고 가장 높은 이곳을 ‘모든 곳을 두루 비춘다’는 뜻으로 비로봉이라 부른다. 구전되어 내려오
는 비로봉은 영원한 빛 영원한 생명을 뜻하는 불교적 윤회사상과 맞아 떨어지고 민중에게 항상 꿈과, 소원을 발원하
는 말이다.”
그래서다. 우리가 가는 팔공산 종주 길은 ‘소원길’이다.
왜 팔공산이라 했을까? 아직까지 명쾌한 답이 없다. 예전에는 공산(公山)이라고 했고, 신라 때 부악(父岳)이라고도
했으나 공악(公岳)의 오기로 해석한다.
은해사조에 ‘원효대사가 제자 1,000명을 거느리고 언양 천성산에서 데리고 화엄경을 강의하다가 그 중 8명만을
데리고 팔공산으로 옮겨 암자를 지어 살았는데 삼성암에서는 3명이 견성(見性)을 하고 또 오도암에서는 5명이 득도
했다’고 나와 있으나, 그것은 후대의 조작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둘째는 고려 왕건이 서기 927년, 이 산 동수(桐藪)에서 후백제 견훤을 맞아 싸우다가 크게 패배했는데, 그 가운데
신숭겸(申崇謙), 김락(金樂) 등 8장수가 전사했으니, 그로부터 이 산 이름을 팔공산으로 불렀다고 하는 달성군지의
기록이다. 그러나 8장수의 전사사실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등 어느 역사기록에도 드러나지 않으니 그것도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이 싸움의 흔적은 예종이 지은 도이장가(悼二將歌) 등에 남아있기는 하다.
셋째는 이 산자락이 8고을에 걸쳐 있어 그렇다는 것이다. 그것도 시대에 따라 행정구분이 들쭉날쭉 했으니, 믿을 것
이 못 된다는 것이다. 한편 이 산의 봉우리수로 헤아려드는 견해도 있고, 이 산 품안에 산재하는 사암(寺庵) 수로 헤
아리는가 하면, 또는 그 절간에서 배출한 고승대덕의 머리수로써 해석하려 드는 이들도 있다.(김장호, 위의 책)
17. 동봉(미타봉)에서 바라본 서봉
18. 팔공산 동릉, 멀리 가운데가 노적봉
19. 동봉(미타봉)
20. 동봉(미타봉), 그 왼쪽 아래는 염불봉
21. 가운데가 비로봉
22. 소혀바위봉(985m)
23. 팔공산 서릉
▶ 동봉(미타봉, 1,167.0m)
나는 근 30년 전에 대구에서 2년을 살았는데 그때 팔공산을 철따라 오르내렸다. 그때는 비로봉에 접근하지 못하도
록 통제하였다.
동봉을 향한다. 사면 돌아 주릉에 들고 안부에는 6m 높이의 석조약사여래입상(石造藥師如來立像)이 있다. 약사여
래는 동방의 정유리(淨瑠璃) 세계에 있으면서 중생의 고통을 없애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 불상도 역시 서쪽을 향하
고 있다 한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고통이 시작된다. 동봉이 멀리서는 첨봉(尖峰)이더니만 다가가니 더욱 곧추선 침봉(針峰)이
다. 가쁜 숨 헐떡이며 기어오른다. 동봉. 암봉이다. 팔공산 최고의 경점이다. 사실상 팔공산 주봉 역할을 한다. 온 길
과 갈 길이 다 보인다. 배낭 벗어놓고 휴식한다. 또보아 님이 시원하게 가져온 키위를 내민다. 그 맛이 사과나 수박
등에 비할 바가 아니다. 입안에서 오물거리기만 해도 스르르 녹는다. 나도 산에 올 때는 이런 키위를 가져와야겠다.
동봉에서 염불봉 가는 길. 예전에는 팔공산 산행의 하이라이트였다. 세미클라이밍 코스로 릿지를 오르내리는 짜릿
한 손맛을 즐기는 길이였다. 그런데 데크계단으로 덮어버렸다. 무섭게 변했다. 예전의 팔공산은 어디에도 없다.
데크계단 오르내리느라 하트바위, 말등바위, 염불봉, 흔들바위, 성기바위, 여성바위, 남근석, 벼랑바위 등도 몰라보
고 지나친다. 다만, 히프바위 1,042m봉 북쪽 사면에 팔각정을 세웠다. 팔공산 비로봉 주변을 가장 잘 바라볼 수 있
는 경점이다.
매산 홍직필(梅山 洪直弼, 1776~1852)이 「동화사에서(桐華寺)」에서 바라본 팔공산이 혹시 여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一策飄然到八公 지팡이 하나 들고 표연히 팔공산에 이르러
步隨流水上禪宮 흐르는 물 따라 선궁에 올랐노라
千年樓閣凌天起 천 년의 누각은 하늘 높이 솟아 있고
萬丈峯巒特地雄 만 장의 봉우리는 유별나게 웅장하여라
花落客從紅雨裏 꽃잎이 떨어지니 나그네는 붉은 빗속으로 들어가고
洞深僧出白雲中 골짝이 깊으니 승려는 흰 구름 속에서 나오는구나
堪憐草木猶驚賊 초목이 오히려 적을 놀라게 함 사랑스럽고
回笑東山折屐翁 동산의 나막신 굽이 꺾인 노인을 비웃노라
ⓒ 성신여자대학교 고전연구소ㆍ해동경사연구소 | 성백효 (역) | 2016
주1) ‘초목(草木)이 …… 함’은 남북조 시대 전진(前秦)의 황제인 부견(苻堅)이 동진(東晉)을 정벌하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침략하였다가 비수(淝水)에서 사현(謝玄)이 거느린 진군(晉軍)에게 대패하였는데, 이때 두려운 마음을 품고
수춘성(壽春城)에 올라 팔공산(八公山)을 바라보니, 산의 초목들이 모두 진나라 군대로 보였다고 한다. 여기서는
동화사가 있는 산의 이름이 같은 팔공산이기 때문에 이 고사를 든 것이다.
주2) ‘동산(東山)의 …… 노인’에서 동산은 진(晉)나라의 명재상인 사안(謝安)이 재상이 되기 전 20여 년간 은거하였
던 곳으로 회계(會稽)에 있는바, 노인은 바로 사안을 가리킨다.
숲속 부드러운 길이 이어진다. 길게 내려 도마재(신령재)다. 우리 일행 대부분은 여기에서 동화사로 하산한다. 미리
말하자면 오늘 갓바위까지 종주한 이는 나와 근산 님 뿐이다. 도마재에서 동화사는 가는 길은 폭포골이다. 염천 산
행의 산골짜기 물놀이는 그 이유가 될 만큼 유혹적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는 처음부터 마음이 흔들릴까봐 도마재
에서 폭포골 하산은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다. 간다. 혼자다. 내 뒤로 일행이 또 오는지 알지 못한다.
24. 멀리 가운데가 비로봉
25. 왼쪽부터 서봉, 동봉, 비로봉
26. 왼쪽은 삿갓봉
27. 멀리는 팔공산 서릉
28. 팔공산 남쪽 지능선
29. 가운데가 서봉, 동봉, 비로봉
30. 아래는 팔공컨트리클럽
▶ 삿갓봉(931.3m), 갓바위
동봉의 내리막 기세는 도마재에서 끝난다. 다시 산을 간다. 여러 봉우리를 오르내려야 한다. 산행 마감시간이 17시
30분이라고 했다. 늦어도 갓바위는 17시까지 가야 한다. 혹시라도 그 시간에 대지 못하면 우리 버스는 그냥 가시라
하고, 나는 따로 버스 혹은 기차로 가야겠다고 마음먹는다. 한바탕 비지땀 흠뻑 쏟아 신령봉이다. 그 북릉 또한 암봉
을 품고 있는 장릉이어서 홀연 마음이 동하는 코스다. 숙제다.
신령봉 한 차례 내린 안부는 바른재다. 삿갓봉이 가깝다. 긴 데크계단 오른다. 삿갓봉도 비로봉 주변을 막힘없이
바라볼 수 있는 경점이다. 무릇 이름 붙은 산봉우리치고 만만한 산은 없다. 특히 산의 형세가 삿갓모양이라는 삿갓
봉이나 또는 신선봉, 옥녀봉, 수리봉, 매봉 등은 하나같이 첨봉이다. 삿갓봉 지나 운부봉 넘고 한차례 뚝 떨어졌다가
핸드레일 붙잡고 긴 바윗길 오르면 은해봉이다. 봉봉 오르내림이 심하여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린다.
노적봉이리라. 북방아덤과 발가락바위는 오르는 인적이 분명하지만 왼쪽 사면의 잘난 우회로 따라 줄달음한다.
관봉은 오르지 못하도록 철조망을 치고 막았다. 관봉을 오르는 것은 아마 그 아래 정좌한 갓바위 부처님이 있어
불경하다고 막았으리라. 오른쪽 사면 길게 돌아 돌계단이 나오고 바로 위가 갓바위다. 정식 명칭은 관봉석조여래좌
상이다. 보물 제431호다. 갓바위 부처님이라고도 한다. 부처님 앞의 너른 마당에는 많은 신도들이 절하고 있다.
예전에 갓바위 부처님을 뵐 때는 매우 우람히 크다는 느낌이었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왜소하게 보인다.
갓바위에서 갓바위 주차장까지 2km다. 그 절반은 돌계단 1,365개를 내려야 한다. 스틱 부축 받아 내린다. 돌계단
내리막 옆 골짜기에는 물소리가 우렁차다. 그 소리로 땀 식힌다. 오가는 사람들이 적어 한산하다. 아마 날이 워낙
더워 갓바위 오르기를 꺼려하나 보다. 발목과 무릎이 화끈거리게 내려 관암사다. 관암사 용궁은 주계곡에 자리 잡았
다. 계류 층층 폭포가 소리 높여 법문한다. 관암사부터는 차가 오가는 너른 포장도로다.
마지막 스퍼트 낸다. 내리막 쏟는 발걸음을 제동하려니 힘들다. 계곡 옆 먹자동네 지나고 주차장이다. 간신히 산행
마감시간인 17시 30분에 맞췄다. 우리 버스가 보이지 않아 방대장님에게 전화 걸었다. 아직 동화사에 있다고 한다.
동화사에 일행들이 다 내려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곳에는 18시 20분께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그 계류를 가만
두고 내려 온 게 아쉽다. 다시 오른다. 먹자동네 옆 층층 폭포에 다가가 땀으로 범벅이 된 낯이나 씻는다. 그리고 한
음식점에 들어 얼음 동동 띄운 메밀 냉국수와 탁주 주문한다.
서울 가는 길. 팔공산에 대한 옛글을 찾아보았다. 대산 이상정(大山 李象靖, 1711~1781)의 「남유록(南遊錄)」이
눈길을 끈다. 대산은 1748년(영조 24)에 이곳에 왔다. 대산이 힘에 부쳐 오르지 못한 광석대는 염불봉이다.
“암벽을 기어 조금 오르니 염불암이 팔공산 꼭대기에 있었고 그 안에는 입정(入定)하고 있는 승려 몇이 있었다.
암자 뒤에는 큰 바위가 똑바로 서 있는데 호사가가 몇 길 높이의 미타상(彌陀像)을 새겨 놓았다. 또 그 뒤에 일인석
(一人石)이라고도 부르는 왕좌석(王坐石)이 있는데, 승려의 말이 고려 태조가 견훤(甄萱)의 난리를 피해 이곳에 올
랐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골짜기 밖 10리에 신 장절(申壯節)이 절의를
다하여 죽은 곳이 있으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또 그 위 백 보쯤 되는 곳에 십 수 명에게 그늘을 드리울 정도 크기의 석엄(石广)이 있는데,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이곳에서 입정(入定)하였다. 석면(石面)에 새겨진 ‘눌암(訥菴)’이라는 두 글자는 지금도 알아볼 수가
있다. 그 후로 선승(禪僧)들이 종종 와서 머물지만 대체로 오래 있지는 못한다. 꼭대기에 광석대(廣石臺)가 있는데
힘이 다하여 오를 수가 없었다. 공보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우리가 승경을 찾아 깊이 들어왔다가 험준한 곳에 이르
러 곧 쉬고 있으니, 또한 도리어 학문의 경계로 삼을 만하다.”라고 하였다.”
31. 팔공산 서릉
32. 노적봉 북방아덤
33. 관봉
34. 팔공산 남쪽 지능선
35. 노적봉
36. 갓바위, 관봉석조여래좌상
37. 갓바위 주차장 가는 계곡
첫댓글 제목이 넘 좋습니다. 자연의 풍광이 넘 좋습니다. 늘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직접 경험하면 더욱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