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악이 세상에 많아지고, 그들 마음의 모든 생각과 뜻이 언제나
악하기만 한 것을 보시고, 세상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
(5~6)
창세기 6장 5절의 '보시고'에 해당하는 '와야르'(wayar)에서 '보다'에 해당하는 '라아'
(rah)는 '조사하다', '주목하다', '진단하다'는 뜻이 있다.
이것은 주 하느님께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 세상 사람들을 면밀히 살펴보셨음을
뜻한다.
창세기 6장 5절은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는 창조 때에 사용된 문장과 대조를
이룬다.
창조 때의 하느님의 시선에는 기쁨과 만족, 충만감이 있었는데, 지금 여기서
비추어지는 주 하느님의 시선에는 의노와 아픔이 서려 있다.
인간은 자신의 죄악을 사람들 앞에서는 감출 수 있으나, 눈동자처럼 이 세상을 살피시는
전지 전능하신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감출 수 없다(예레17,10).
여기서 '악이 세상에 많아지고'에 해당하는 '랍바 라아트'(rabah raath)에서
'라아트'(raath)는 '라아'(raah)의 연계형으로서 '깨트리다', '악하게 되다'는 뜻을 지닌
'라아'(raah)에서 유래하여 외형적 범죄라는 범위를 넘어 '해로움', '불행', '슬픔'을
가져다 주는 모든 '잘못된 것', '나쁜 것', '사악한 것'등을 포괄하는 용어이다.
그리고 '세상에 많아지고'로 번역된 '랍바'(rabah)는 '라브'(rab)의 여성
형용사이다.
이것은 창세기 6장 1절에서 '늘어나다', '번성하다'로 번역된 '라바브'(rabab)에서
유래한 말로 '풍성한', '큰', '넓은', '강대한', '범람한' 등의 다양한 뜻을 지닌다.
이것을 볼 때 노아 홍수 이전의 세상에는 하느님의 심판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덕적으로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외부적인 범죄와 부조리만이 아니라 각 개인의
심성 안에 온갖 악함이 흘러 넘치는 등 사회가 온통 부패했음을 알 수 있다.
'그들 마음의 모든 생각과 뜻이'
히브리어로 '마음'(heart)을 가리키는 용어는 여기 나오는 '레브'(leb)와 '레바브'
(lebab)가 있는데, 성경에서는 여기에 처음 등장한다.
히브리인에게 있어서 마음은 지, 정, 의(知情意)의 원천으로 간주된다.
말하자면, 마음은 지식과 지혜의 자리이며, 감정의 자리이기도 하고(탈출4,14;
판관16,25), 양심과 도덕의 자리로 간주되기도 한다(욥기27,6; 2사무24,10).
따라서 마음은 인간 자신을 대표하기도 하며(잠언4,4), 모든 사고, 욕망, 말과 행동의
원천으로 간주된다(창세20,5; 잠언17,9).
그런데 노아 시대 사람들은 이러한 마음이 오염되어 죄악으로 가득찼기 때문에
생각이나 감정이나 의지 역시 오염되었고, 말이나 행동도 죄악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생각'에 해당하는 '마하샤바'(mahashabah)는 '숙고', '책략',
'계교' 등의 뜻이 있으며, '뜻'에 해당하는 '예체르'(yatser)는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그릇을 만들거나 조각가가 심혈을 기울여 조각하는 것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모양으로 만들다', '꼴을 이루다'에 해당하는 '야차르'(yatsar)에서 나온 단어로서
심사숙고하여 세밀하게 계획을 세우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노아 시대 사람들은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를 뿐만 아니라, 세밀하게 뜻을
세워서 악한 일을 도모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모든'에 해당하는 '콜'(kol)은 뒤이어 나오는 '언제나'와 동일한 단어로서 모든
개체 전부와 모든 시간 전부를 가리킨다.
이것을 볼 때, 인류의 조상 아담이 범죄한 이래 원죄(原罪)아래 있는 모든 인간 전체가
예외없이 타락 가운데 있으며, 아담의 타락한 인간성과 원죄성이 계속됨을 지적한다.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
원래 하느님의 창조 사업을 대표하는 단어가 '창조하다'에 해당하는 '빠라'(bara)
이다.
이 단어는 이미 존재하는 재료를 가지고 만들어 내는 형상과 산물에는 결코 쓰이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의 창조 사업을 표현할 때만 쓰인다.
이 단어는 '만들다'에 해당하는 '아사'(asah)와 '짓다'에 해당하는 '야차르'(yatsar)
동사를 동반하기도 한다(창세1,26; 2,7).
비록 인간 창조의 장엄성과 하느님의 개입을 강조하기 위해 쓰인 단어가 '빠라'(bara)
였지만(창세1,27), 본래 인간 창조의 의도를 얘기하실 때에는 '아사'(asah)가 쓰였다
(창세1,26).
창세기 6장 6절에서 '빠라'(bara)가 쓰이지 않고, '아사'(asah)가 쓰인 것은 인간
창조의 과정이나 결과보다는 인간을 창조하시기로 의도하셨던 하느님의 마음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하느님의 모상과 유사성을 따라 만들 것을 의도하고 창조했던 인간이 하느님께서
만드셨던 그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제 마음대로의 길로 달려가는 것을 마음 아파하시는
하느님의 심정을 드러내기 위해 '아사'(asah)가 쓰인 것이다(에페2,10참조).
여기서 '후회하시며'에 해당하는 '와인나헴'(wainnahem; was grieved; it
repented)은 '나함'(naham)의 단순 재귀형으로서 '뉘우치다', '후회하다', '슬퍼하다',
'애도하다' 등의 뜻이 들어 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하느님께서 스스로 후회하셨다거나 슬퍼하셨다는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미리 다 아실 뿐
아니라, 당신의 뜻에 따라 행하신 것에 대해 전혀 후회하실 일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상대로 창조하신 소중한 피조물인 인간이
범죄함으로써 벌받아 멸망할 수 밖에 없게 된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인간이
이해하기 쉽도록 인간적인 측면에서 묘사한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